087-J1.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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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그래?"
나라의 놀란 외침에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끼이면 안 되는 게 바퀴에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액정의 탐지 숫자는 0이다.
난 검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앞바퀴 쪽으로 다가갔다.
녹색 그물망에 각종 쓰레기가 잔뜩 끼어 있었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울타리용 그물망이다.
그런데 나라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난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 이게 뭐야?"
나도 그녀와 같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물망과 엉킨 쓰레기 더미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이 껌벅이고 있었다.
버스 앞바퀴와 바닥 사이에 끼어 있는 그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우리를 바라보며 연신 눈을 껌벅였다.
휴대용 액정을 깜박해서 버스 안의 성희에게 물었다.
"탐지 숫자는?"
"0이야"
그런데 내 눈앞에서 붉은 눈을 여전히 껌벅거리고 있는 저 존재는 분명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그동안 마주쳤던 인간형 괴물의 모습도 아니다.
붉은 눈은 괴물의 그것과 닮아있었지만, 눈과 머리의 일부분 이외에는 쓰레기 더미에 가려져 있어 제대로 놈의 형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괴물이라면 버스에 닿는 순간 터져버렸을 텐데"
내가 쪼그리고 앉아 그 괴생명체를 바라보며 말하자 나라도 가까이 다가오더니 입을 열었다.
"꺼내야지?"
그때 버스에서 성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뭔데 그래?"
내가 일어서며 성희 쪽으로 고개를 들자 머리를 쭉 내밀고 있는 지붕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휙! 턱!
그때 할아버지가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뭐가 있어?"
할아버지도 쪼그리고 앉아 버스 아래를 살폈다.
"괴물 아녀?"
"그랬으면 터져버렸겠죠. 탐지에도 안 걸리고 있어요."
"흠"
난 다시 자세히 놈을 살폈다. 놈의 머리는 사람보다 조금 작았다.
"너 뭐냐?"
의미 없겠지만 우리말로 물어봤다.
"캬아악!"
"아 씨 깜짝이야!"
악마쥐의 괴성처럼 반전이 있는 소리다. 버스에서 놈의 괴성을 들은 성희가 말했다.
"악마쥐와 비슷한 놈인가? 그런데 왜 탐지에 안 잡히지?"
"비슷한 느낌이 없진 않은데"
내가 중얼거리자 나라가 묻는다.
"무슨 소리야?"
"귀여운 악마쥐 본적 없나?"
나 대신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도 빌라촌 교회 난장판 사태가 일어났을 때 목격한 모양이다.
"이놈은 무슨 원숭이 같구먼"
"악마 원숭이일 수도 있죠. 어쨌든 이대로 둘 순 없으니 일단 꺼냅시다."
내가 검으로 녹색의 그물망을 찢자 나라와 할아버지가 강하게 엉킨 쓰레기와 함께 그물망을 뜯어냈다.
그러자 놈의 몸이 드러났다.
"아이씨! 뭐야!"
놈은 머리에 다리 여섯 개가 달린 흉측한 모습의 괴생명체였다. 몸통이 어딘가 가려져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예 몸통이 없었다. 아니 저 대가리가 몸통인 건가?
"귀여운 게 아니었네!"
여전히 다리가 그물에 엉켜있어 도망도 가지 못하는 놈은 붉은 눈을 껌벅거리며 버둥거렸다.
괴물 특유의 이빨을 살펴보려고 했는데 놈의 입이 보이지 않았다. 저 흉측한 머리 겸 몸통에는 오직 눈 두 개만 달려···.
"눈이 뒤통수에도 있어"
"네 개?"
"그러면 뒤통수가 아니지 않나? 어디가 앞이야?"
놈의 몸통 겸 머리에 달린 네 개의 붉은 눈이 각각 따로 움직이며 우리와 버스를 살피고 있었다.
여섯 개의 다리에는 부드러운 털이 나 있었다. 마치 개나 고양이의 다리 같다.
"보면 볼수록 징그럽네!"
쾌에에엑!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놈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버둥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놈의 붉은 눈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뭐야?"
놀란 우리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놈의 발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탐지 숫자 1이야!"
성희의 외침과 동시에 난 검을 겨눴다. 할아버지와 나라도 잔뜩 긴장한 채 놈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놈이 엄청난 속도로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는 탓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우리가 빈틈을 노리고 괴물을 노려보는 사이 놈은 눈을 번뜩이며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높이 뛰어오르더니 번개같이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낌새를 이미 눈치챈 그는 어렵지 않게 옆으로 피했고 괴물은 그 속도 그대로 버스에 부딪혔다.
파직!
놈의 머리와 여섯 개의 다리가 분리되며 버스에 각각 달라붙더니 이내 초록의 액체로 터져나갔다.
"괴물 상태를 숨기는 놈도 있는 건가?"
탐지 숫자로만 괴물의 접근을 파악했던 우리의 정보 기반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버스 창에서 성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탐지뿐만 아니라 접촉 파괴까지 피한 놈이야."
"공격성을 드러내야 괴물로 인정되는 건가?"
내 말과 동시에 회색 연기와 함께 코르카 한 개가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바로 버스로 흡수되었다.
그때 지붕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 뭐가 있어요."
지붕에서 학생이 소리쳤다. 이미 웅성거림으로 대충 예상했다. 한 놈이 아니다. 난 버스 앞바퀴에 남은 그물과 잡동사니를 빼내 던져버리며 소리쳤다.
"타시죠"
둘은 버스 지붕 위로 올랐고 난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음침한 폐 연립에는 아직 화가 나지 않은 원숭이 머리들이 숨어있었다.
"인간과 비슷하네"
성희의 중얼거림에서 뭔가 말 못 할 사연이 느껴졌다.
탐지 숫자는 0이다. 놈들은 아직 평온한 상태다. 놈들을 화나게 만들고 버스로 유인하면 코르카를 꽤 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포탑이나 접촉 파괴로는 본전밖에 안 되니 직접 잡아야 한다.
어두운 건물 안에서 번뜩이는 붉은 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어제 홍수의 난리 통에서 놈들은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 물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놈들인가?
"출발 안 해?"
지붕에서 할아버지의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코르카 욕심에 괜히 생존자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면 안 될 것 같다.
"갑니다."
난 다시 악셀을 밟았다. 아까보다 가볍게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깝긴 하네'
난 폐 연립 건물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이제 무조건 탐지를 믿어도 안 되겠는걸"
"그러게"
버스는 언덕을 더 내려와 편의점 건물 앞에 도착했다. 난 버스를 세우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가게 상태가 엉망이네요."
아주머니와 학생은 멍하니 서서 거의 폐허가 된 자신들의 터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편의점 유리문은 깨져있었고 방범 철창은 마구 찌그러져 있었다. 가게 안은 각종 쓰레기와 진흙으로 엉망이었다.
그런데 편의점과 연결되어 있던 가정집 건물이 아예 사라졌다.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무슨 임시 건물 같은 느낌이더니 거센 물살을 견디기 어려웠나 보다. 그나마 편의점 건물은 벽돌이다.
"엄마 집에 가요"
학생이 엄마의 팔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이가 말하는 그 집이란 곳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건 반쯤 폐허가 된 편의점 건물뿐
그녀는 삶의 터전이 사라진 것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여유롭게 그녀를 기다려 줄 수 없었다.
"여기 머물긴 힘드시겠어요. 우선 같이 가시죠"
그녀가 여전히 멍하게 서 있자 성희가 다가와서 다시 한번 말했다.
"좀 더 안전한 곳을 찾아봐요."
옆의 아이도 다가와서 엄마 손을 잡았다.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아들을 잠시 바라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동해시에 잠깐 들르실 수 있을까요?"
동해라면 어차피 강릉 가는 길에 있다.
"물론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인사했다. 난 얼떨결에 그 인사를 받으며 버스 지붕 문으로 향했다.
"아 잠시만요."
"네?"
"가게에 쓸만한 게 남았을 거예요. 창고에 술도 있고, 홍수에 아직 괜찮을진 모르겠지만···."
할아버지와 준호씨와 나의 동공이 동시에 커졌다.
"아···. 네···. 그럼 실례하겠···."
나는 천천히 말하며 버스 뒤쪽 사다리로 향했다. 그런데 내 오른편으로 두 남자가 지붕에서 바로 뛰어내리는 게 보였다. 그중 하나는 각성자도 아닌 부부의 남편 준호씨다.
'각성자였나? 술 각성?'
성희만 버스를 지키고 있고 우리는 모두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사라진 자기 집터를 우울한 표정으로 살폈고 아주머니는 구석에서 깨진 액자를 챙겼다. 가족사진이다.
"남편분이신가 봐요."
한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다. 오래된 사진이었다.
"네···."
난 더 묻지 않고 창고로 걸어갔다. 이미 그곳에는 반쯤 부서진 문을 뜯어내는 두 남자가 있었다.
흙탕물로 엉망이 되어 넘어져 있는 진열대 사이에서 나라의 음성이 들렸다.
"어머! 이것도 있어!"
여성들에게 필요한 화장품이거나 혹은 위생용품일 듯싶었다. 성희에게도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은데, 나라가 알아서 챙기겠지.
우두둑!
반쯤 부서진 채 끼어 있던 문을 준호씨가 뜯어냈다. 아무래도 각성자인 걸 숨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창고 안도 각종 오물로 엉망이었지만 선반에 놓여있는 플라스틱 상자는 멀쩡했다.
"위스키다."
"와인도 있어"
할아버지와 준호씨의 음성을 들으며 난 안을 더 살폈다.
"중국 술도 있네요. 사케도 있고···. 아, 이건 깨졌네, 일본 거라 방류된 건가?"
창고 안에는 그 외에도 음료수와 기타 다양한 물품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물품이 많네요. 어떻게 계산이라도 해드려야 하는데"
가게 계산대 근처를 살펴보던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미 넘칠 정도로 계산해주셨어요."
그녀는 더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가게 주인과 함께 편의점을 털다시피 물건들을 들고나와 버스 일 층과 지붕에 나눠서 실었다. 손이 많으니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 가게를 나오려다 구석에 쌓인 생수병들을 잠시 바라봤다. 어차피 버스에서 무제한으로 생수병이 나오긴 하지만 그건 소량이라도 코르카를 소모한다.
2리터짜리 생수병이라 무게도 많이 나가서 대부분 그냥 두려고 했는데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난 팔에 끼워놓은 액정을 살폈다. 주변에 괴물은 없다. 그리고 좀 전에 원숭이 대가리 놈들도 아직 적의를 품지 않았다.
"샤워하실 분"
내가 소리치자 지붕에 오르던 부부와 가게 앞에 서 있던 모자가 날 동시에 바라봤다.
난 가게 입구에 널려있던 플라스틱 팔레트를 하나 집어 들고 창고로 들어갔다.
"생수병 한 팩씩 들고 따라오세요."
마침 가게에는 샤워젤과 샴푸 그리고 샤워볼까지 있었다.
어차피 가져가지 않을 생수라면 이렇게라도 쓰고 가면 될 거 같다.
"오!"
특히 진주씨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아줌마에게 먼저 양보했다. 그들의 가게다.
"다른 생존자들에게 생명수가 될 수도 있으니 막 쓰진 말자고요."
내가 말하면서도 사실 말이 안 되긴 했다. 혹시 모를 다른 생존자들을 생각한다면 아예 쓰지 말고 두고 가는 게 맞겠지.
그런데 버스의 위생 또한 중요한 문제였다.
"으아···. 살 것 같아"
이전에 챙겨놨던 옷가지들을 전부 나눠줬다. 치수가 맞진 않겠지만 그래도 대부분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여서 편하게 입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제 남은 여분의 옷가지는 없다.
"빨래는 제가 할게요."
나라가 그들이 입었던 지저분한 빨랫감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세탁기···. 건조기···. 그리고 가능하면 커피 머신···.'
난 운전석에 올라 눈을 감고 기도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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