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만렙
내 품에서 느껴지는 성희의 숨소리가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다.
나는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 보려 애썼다. 하지만 움직이는 건 눈꺼풀과 눈알뿐이었다.
성희가 내 시야 범위에 없어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단지 그녀의 약해지는 숨소리만 겨우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창밖에서 초록빛이 버스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일어날 수 없어 밖의 상황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초록빛이다.
마지막으로 창밖을 목격했을 때는 온통 붉은 빛뿐이었는데 왜 초록빛이?
'혹시···. 코르카···?'
지금 온통 창밖의 세상을 초록의 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건 분명 코르카일 거다. 그리고 저렇게 온 사방을 밝힐 만큼 많은 수의 코르카가 생성되었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거대 뱀을 죽였다.
난 지금 바로 일어서서 창밖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니 액정의 코르카 숫자라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 팔도 뒤로 꺾여있어 그 무엇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아···."
놈을 처치했다는 생각에 갑자기 기운이 솟는 듯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오히려 조금 정신을 차리니 급격히 밀려오는 건 죽을 것 같은 통증이었다.
"끄으···."
코르카가 얼마나 나왔을까? 정말 궁금했다.
그때 갑자기 창밖의 초록빛이 더더욱 강해지기 시작했다.
'버스로 날아오고 있어'
그 순간 갑자기 버스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내가 예상하는 통증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눈이 타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으아아아"
겪어본 고통이다. 코르카를 몇 개나 흡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버스가 어떤 상태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버스가 진화 모드로 들어가고 있었다.
"끄아악!"
하얗게 불타오르던 내 시야는 어느 순간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급격하게 몰려드는 엄청난 고통에 난 내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조합되고 있는 느낌이다. 마취 없이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가 다시 바늘로 마구 꿰매면 이런 느낌일까?
"아아아악!"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문득 먹먹함이 느껴졌다.
내 비명이 정말 내가 지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내가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이다.
'착각인가?'
난 다시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질러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내 입에서는 작은 입김조차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니 내가 정말 입을 벌리고 있는 건가?
문득 내 몸의 고통이 정말 내가 느끼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온몸의 통증이 마치 무거웠던 옷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으니 정말 내 상태가 어떤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허무하게"
갑자기 진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아는 목소리다. 분노를 부르는 바로 그 음성
파란 머리 마시울
예전 도계리의 시골집에서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 갑자기 나타났을 때처럼 놈의 소름 끼칠 듯한 목소리는 사방에서 어지럽게 울리며 들려왔다.
"너 이 새끼!"
내가 입으로 말하고 있는 건지 내 인지능력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놈은 내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허어, 진정하라고···. 그나저나 대단한걸···. 마침내 끝까지 가다니"
'이 새끼가 뭐라는 걸까?'
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놈의 음성과 무게감을 감지하려 온 정신을 집중했다.
"운이 좋았군, 아니 운이 아닌가?"
여전히 내 머릿속, 그리고 사방에서 들리는 것 같이 놈의 목소리는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때 문득 몸의 감각이 조금 돌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내 등에서 검집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지금 내가 꿈속이 아니라면, 내 등에 그대로 검이 있을 거다.
"왜 대답이···."
지금이다. 난 바로 검을 빼내어 놈의 목소리 파형이 교차하는 지점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시발!"
놈이 쉽게 내 검에 닿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공을 가르는 검의 끄트머리에서 난 순간 묵직한 존재감을 느꼈다.
놈이 검에 닿지는 않았어도 충분히 놀란 듯했다.
사방에서 놈의 거친 숨소리가 잠시 들리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직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게 아니라 절대 암흑 상태인 느낌이다.
난 다시 집중했다. 그러자 아주 미세한 흐름이 조금씩 느껴졌다.
"왜 말이 없어! 쫄았냐?"
하지만 놈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놈의 위치를 파악하려면 놈이 입을 열어야 한다. 작은 숨소리의 흐름만으로 놈의 위치를 파악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때 발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마치 중력의 흐름이 거꾸로 된 듯 순간 나도 머릿속의 피가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으아"
그리고 아주 높은 곳에서 어딘가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 뭐야!"
그러다 갑자기 멈췄다. 정말 멈춘 걸까? 아니면 그저 느끼기만 하는 걸까?
"너 대체 뭐야?"
놈의 음성이 들리자마자 난 느낌 그대로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아 시발 그만 좀 하라고!"
순간 팔의 극심한 통증에 난 손에서 검을 떨어트렸다.
그와 동시에 온 세상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갑작스러운 강한 빛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서서히 밝은 빛에 적응하자 내 코 앞에 여성처럼 생긴 사내가 눈을 번뜩이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파란 긴 머리카락이 내 얼굴에 스치면서 휘날렸다.
"뭐야!"
내가 주먹을 휘두르려 했으나 내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정하라고"
놈은 두 걸음 정도 뒤로 순식간에 물러나더니 날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너 지금 여기가 어딘지는 알아?"
난 놈을 노려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무덤"
그러자 놈의 눈빛이 푸르게 변했다가 괴이하게 초록으로 변했다.
"하하하하 너 정말 웃긴 거 알아?"
"어"
순간 놈의 눈빛이 붉게 변했다.
"아는군."
"애들은 어떻게 했어?"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난 놈에게 다시 물었다.
"거기 도시를 여기로 가져오려고?"
순간 놈의 표정이 굳었다. 실실 웃던 놈의 미소가 전부 사라지니 섬뜩한 표정만 남았다.
"뭔 소리야? 뭘 가져와?"
그때 난 놈의 행동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날 딱히 위협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뭘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단지 시간을 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진우야
그때 어딘가에서 태형의 음성이 들려왔다.
"태형아!"
그가 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외쳤다. 그러자 마시울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누굴 부르는 거야?"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바로 우리 버스 안이다. 그런데 훨씬 넓어졌다. 크기가 일반 대형버스 정도는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거실 테이블 자리에 태형이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침대에는 성희가 누워있다.
'김씨 할아버지는?'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다.
난 태형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온몸이 마치 뻑뻑한 액체를 간신이 밀어내며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형은 창밖을 바라보며 멈춰있었다.
그때 버스 창밖에서 마시울의 파란 머리가 날리는 게 보였다. 놈은 버스 안을 노려보다 태형이를 발견하고는 눈이 점점 커졌다.
"어? 이 새끼?"
그때 시간의 흐름이 멈췄던 태형의 눈동자가 조금씩 돌아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진우 왔어?"
그는 곁눈질로 날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마시울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마시울과 태형의 눈이 마주쳤다.
"끄아아아아아!"
마시울의 눈깔 색이 마구 바뀌기 시작했다. 초록이었다가 붉게 변하더니 파란색으로 번쩍이다가 하얗게 변했다.
그러더니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난 태형에게 간신히 다가가서 그를 살폈다.
그의 눈도 하얗게 변해 있었다.
"태···. 태형아!"
내 부름에도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잠시 후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태형은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큰 괴성을 질렀다. 그때 창밖 마시울의 온몸에서 초록의 광채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아 시발!"
마시울은 욕설과 함께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더니 사방으로 미친놈처럼 날아다니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주변의 모든 흐름이 마구 날뛰는 느낌이 들더니 내 몸을 옥죄고 있던 시간의 왜곡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바람에 난 중심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버스가 진화했다. 그리고 침대에 성희가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몸의 형태도 부서진 인형 같던 좀 전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태···. 태형"
난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태형을 불렀으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난 다시 그를 둘러업고 비어있는 침대에 눕혔다.
버스 내부의 구조는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크기가 전부 커진 것 같은 느낌이다.
난 창밖을 살폈다. 우선 여기 위치부터 알아야 한다.
"응?"
그런데 사방이 온통 물이다. 안개가 자욱하긴 했지만 그래도 육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뀌이이이이이이!
갑자기 어딘가에서 괴물의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들릴 소리는 아니다. 내가 겪었던 수중 괴물은 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꺽다리나 못난이가 헤엄을 치고 달려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버스 우측 창밖 멀리 뭔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상어?'
등 지느러미 수십 개가 버스를 향해 빠르게 헤엄치고 있었다.
"바다 괴물?"
그런데 지금 버스는 보트 모드다. 그러면 접촉파괴는 동작하지 않을 거다.
난 거실 테이블의 액정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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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카 [7845] [0.08/H]
방어막 [1000/1000] [1 Kc]
광역 방어막 10m [OFF]
탐지 [ 0 < 29 < 158 ]
자동 접촉 파괴 [ON]
탄약 [200/200] [1 Kc]
투명 [OFF]
승차정원 [7/8]
차주 [한진우]
승객 [장성희] [추방]
승객 [최성운] [추방]
승객 [최성희] [추방]
승객 [나라] [추방]
승객 [김준배] [추방]
승객 [김태형] [추방]
[위치] [수평] [속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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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단지 방어막이나 탄약의 수치가 많이 오른 것 정도다.
그런데 코르카의 제한치가 사라졌다.
'이제 만렙인 건가? 딱히 엄청나게 업글한 느낌은 안 드는데?'
마침내 버스 창밖 유리창 가까이 거대한 이빨을 가진 괴물들이 나타났다.
'투명이 꺼져있었군, 아깝다! 육지였으면 놈들 그대로 작살나는데'
그리고 괴물들이 버스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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