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어비스
난 잔해 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리고 악셀을 살짝 밟았다.
우웅
보트 모드와는 또 다른 묵직한 진동음이 버스 바닥 부분에서 들려왔다.
버스의 조명이 점점 더 밝게 그쪽을 비추자, 모랫바닥에 놓인 물체의 모습이 눈에 잘 들어왔다.
"비행기?"
성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비행기의 아주 극히 일부분이었다.
"꼬리 날개 같아"
우리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형태를 살폈다. 심하게 부서져 있는 비행기의 꼬리 날개 파편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파란색의 무늬가 조금 익숙하긴 했지만, 어느 항공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왜 비행기 잔해가···."
성희의 말이 끝나기 전에 버스 뒤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여기에···."
버스 안에 이상한 먹먹함이 감돌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작은 목소리는 더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태형이 깼어?"
우리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때 게슴츠레 눈을 뜬 그의 얼굴이 보였다.
내가 침대로 다가가 단단히 조여놓은 침대 안전띠를 풀어주려 하자 그가 힘겹게 손을 들며 말했다.
"괜찮아···. 그대로 둬, 어차피 일어나기 힘들어"
목소리에 너무 힘이 없었다. 그리고 일어나봤자 또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의 말대로 그냥 침대에 눕혀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아까 뭐라고 한 거야? 제대로 못 들었어."
그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희성이가 탔던 비행기···. 꼬리 부분이 사라졌다더니···. 여기 가라앉아 있었네···."
난 잠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직 조수석에 앉아있는 성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조수석에서 일어나 거실 테이블 자리로 걸어오며 말했다.
"정말···. 여기가 그럼···."
그래도 혹시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동해 어디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거
우리 세상에서도 이미 이상한 괴물이나 생명체가 많이 등장했으니 꼭 너머의 세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희성이가 탔던 비행기는 이륙한 지 꽤 시간이 지났었으니 이미 아시아를 넘어 멀리 어딘가로 가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꼬리 날개가 여기에 가라앉아 있다면···.'
"넘어온 거 맞네"
내가 중얼거리자, 태형이 날 바라보며 뭐라고 말했다. 그런데 소리가 너무 작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안 들려"
내가 그의 얼굴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자 그의 희미한 목소리가 간신히 들렸다.
"여···. 여기서 빠져나가야···."
태형은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다시 기절했다. 그때 그의 섬뜩한 그 한마디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버스 주변으로 이상한 불빛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붉은빛이다. 가까이부터 멀리까지 수백 개의 오묘한 붉은 빛이 버스 창문 사방에서 보였다.
"괴물인가?"
성희가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난 거실 자리로 다가가 제일 가깝게 보이는 불빛을 관찰했다. 흐물거리며 투명한 생명체의 중심부에서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빛은 창밖을 바라보던 성희의 얼굴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해파리 같은 건가?"
성희도 신기한 눈초리로 관찰하며 입을 열었다. 내 눈에도 비슷하게 보이긴 했지만, 여기는 우리의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좀 전에 태형이가 했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액정의 탐지 숫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난 찝찝한 기분이 계속 들어 운전석으로 서둘러 돌아가 앉았다.
"올라가자"
위에 있던 거대 악어 같은 괴물이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버스에 묻어있던 거미 괴물의 피 냄새는 대부분 사라졌을 거다.
"괜찮겠지?"
성희도 조수석에 다시 앉으며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동하며 올라가자"
난 우측 레버를 위로 천천히 올렸다. 그러자 버스의 앞부분이 아주 조금 들리며 천천히 바닥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난 악셀을 밟았다. 거미 괴물의 초록 피가 흥건한 아까 그 수면으로 다시 가면 또 버스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다. 피가 번지지 않은 수면으로 올라가야 한다.
난 서서히 멀어지는 바닥과 여전히 사방에서 유영하고 있는 기이한 붉은 빛들을 바라봤다.
끼익! 쿵!
그때 갑자기 버스가 어디에 걸린 듯 갑자기 멈췄다. 위로도 앞으로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버스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디 걸렸나?"
버스 앞 유리 너머로는 심연 속으로 퍼져나가는 버스의 전조등 불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성희가 거실로 급히 이동해 사방의 창밖을 모두 살폈다.
그때 창밖으로 붉은빛들이 서서히 위로 올라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반투명한 놈들의 몸통에서 가느다란 실 같은 게 버스까지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수백 마리의 붉은빛 해파리의 몸통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줄기는 마치 어떤 거미줄 같기도 했고 낚싯줄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놈들은 우리 버스가 떠나는 걸 내버려 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우우우웅
놈들의 반투명한 그 가느다란 실 같은 줄은 버스를 아주 느리게 뒤덮기 시작했다. 마치 거미가 먹이를 거미줄로 감는 것처럼 그렇게
난 창문을 열고 검으로 잘라내고 싶었지만, 버스의 방어막이 이 엄청난 수압의 물까지 막아낼 순 없을 거다.
물속은 내가 직접 뭔가를 하기 어려운 곳이다. 특히나 이렇게 깊은 곳에서는 더더욱
"어쩌지?"
성희가 사방을 살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탐지에 걸리지 않으니 접촉 파괴도 안 되고, 지붕에 갈 수도 없으니 블루건도 쓰지 못한다.
난 다시 악셀을 힘껏 밟으며 수평 레버도 위쪽 끝까지 올렸다.
우우우우우우웅!
버스 전체에서 심한 진동과 함께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여전히 버스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젠장···. 아!"
난 문득 스치는 생각에 바로 액정의 광역 방어막 버튼을 눌렀다.
파파파파파팍!
그 순간 질긴 낚싯줄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창문 너머에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버스가 마치 탱탱하게 당겼던 고무줄이 끊어진 것처럼 급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꽉 잡아!"
버스는 엄청난 속도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속도가 너무 빨라 나는 수평 레버를 조금 내리고 악셀에서 발을 뗐다. 하지만 버스에 붙은 가속도는 어쩔 수 없었다.
"어지러워···."
성희의 말이 어지럽게 흩어지다 얼마 후 난 갑자기 심한 눈부심을 느꼈다.
푸아아아악!
버스가 순간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난 눈부심 때문에 간신히 실눈을 뜨며 주변을 살폈다.
버스는 너무 빠른 속도로 올라온 탓에 그대로 수면 위 허공으로 잠시 떠올랐다가 바로 다시 떨어졌다.
촤아아아아!
그리고 심하게 요동치다 이내 수평을 되찾았다.
"올라왔어!"
성희가 외쳤다. 밝은 빛에 적응되자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육지다!"
멀지 않은 곳에 땅과 숲이 보였고 버스는 파도에 밀려 조금씩 육지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난 바로 [위치] 버튼을 눌러 버스의 이동을 멈췄다. 접근하기 전에 우선 살펴야 한다. 저 숲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여전히 사방에 안개가 자욱해서 멀리까지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오십여 미터 정도 앞에 땅과 숲이 있었다.
숲의 모습은 기이했고, 또한 낯설지 않았다.
"꿈에서 봤던 나무야"
"그 나뭇잎?"
우리는 멍하니 잠시 그 숲을 바라봤다.
"정말 넘어왔어."
"그러게"
우리는 육지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액정의 탐지 숫자도 바라봤다.
잠시 그렇게 우리는 말 없이 관찰만 했다. 성희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아마도 저 숲 넘어 어딘가에 혹시나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부모님 생각이 들어서일 거다.
읍내 그녀 부모님 가게에서 그녀가 봤던 장면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때 그녀는 부모님이 괴물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건 확실한 그녀의 기억이 아니었다.
나도 그 숲을 바라보고 있자니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희성이는 어떻게 여기에 혼자 떨어지게 된 걸까?
아이들은 왜 여기까지 잡혀 온 걸까? 그 아이들과 나는 또 무슨 인연인 걸까?
그리고
할아버지는 대체 왜 여기에 계신 거고 무슨 생각인 건가?
그때 버스에서 진화 후에 사라진 김씨 할아버지에 관한 생각이 떠올랐다.
"김씨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을까?"
성희가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입을 열었다. 난 조금 정리된 내 생각을 말했다.
"결국 감염이지 않았을까 싶어"
"응?"
김씨 할아버지의 상태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발가락을 물리고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았다. 잠시 나아진 듯 보이다가도 다시 급격히 나빠지기도 했다.
그의 감염이 버스의 신비한 침대로 치유가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증세를 호전시키는 역할은 한 것 같다.
버스가 그의 변이를 늦추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는 버스와 함께 이쪽으로 넘어올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버스의 마지막 진화의 힘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김씨 할아버지가 함께할 수 없었다는 정도의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아직 거기에 계시겠지, 갑자기 버스가 사라진 채로"
"아···."
우리의 추측대로라면 그는 강릉 앞바다 어딘가에 떨어졌을 거다. 그의 생사를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그가 가고자 했던 강릉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가 오염 지역을 피해서 살아남았다면 본인의 힘으로 그가 가고자 했던 항구마을까지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다.
"길이 있어"
그때 전방을 살피던 성희가 입을 열었다. 나도 계속 주시하던 곳이다.
"버스가 갈 수 있을 거 같아"
울창한 숲속 안으로 이어진 길 같은 게 보였다. 우리의 비포장 산길 같은 느낌도 들었다. 바닥도 자갈 같은 게 인위적으로 조금씩 깔려 있었다.
"꺽다리가 만든 길일까?"
난 버스의 [투명] 버튼을 누르고 광역 방어막은 끈 채로 악셀을 밟았다. 그러자 보트 모드의 [위치] 버튼이 자동으로 꺼졌고 버스는 묵직한 저음을 퍼트리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근데 여긴 아무래도 호수 같아, 물안개도 그렇고 주변의 형세가 바닷가 같진 않아"
성희의 말에 나도 주변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여기 도착하고서부터 바다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파도도 잔잔했고 바다에서 나는 짠 비린내 같은 것도 맡지 못했다.
물론 여기가 우리의 세상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일전에 태형은 이곳의 지형이 거의 우리와 흡사하다고 얘기했었다.
"태백이나 강릉 근처에 이렇게 크고 깊은 호수가 있던가?"
"내가 알기로는 없는데, 이렇게 깊은 곳은"
"완전히 지형이 같은 건 아니겠지, 평행 우주라도 또 수많은 나비 효과들이 있을 테니"
우우우우웅
그때 버스의 바퀴가 땅에 닿는 느낌이 들더니 보트 모드가 해제되었다.
쿠쿠쿠쿠
바퀴가 진흙에 조금 헛돌다가 이내 버스는 땅으로 올라섰다. 난 완전히 땅으로 올라온 후 브레이크를 밟고 잠시 주변을 살폈다.
그때 버스 앞 유리로 나뭇잎과 흙먼지 따위가 날아와 달라붙었다.
"그때 그 나뭇잎이야."
난 안개로 가려져 있는 길 너머를 응시했다. 이 길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과 이어져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앞에 이 길이 나타난 건 이유가 있을 거다.
그리고 저 너머 어딘가에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다.
버스의 진화로 이 세계로 넘어온 건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그들을 데리고 다시 우리의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건 내 의지다.
그리고 우리의 세상을 엉망으로 만든 놈들의 계획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난 천천히 악셀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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