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J1.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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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굽지는 말고"
예전에 환풍기로 빠져나가던 냄새에 못난이가 반응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놈에게 추가 단서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내 말에 성희가 고기를 꺼내려다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냉장고 문을 닫았다.
난 창고를 열어 무기들을 점검했다. 아침에 교회에서 덩굴을 잘라내느라 검과 검집에 푸른 가루 같은 게 묻어있었는데 깔끔하게 사라졌다. 화살통에는 여전히 다섯 발의 화살이 들어있다.
그동안은 검만 뽑아서 손에 들고 나갔었는데 검집을 등에 메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처음 버스에서 검을 발견했을 때는 검집도 없었는데 진화 때 추가된 모양이다.
어느새 점심이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계속 비슷한 반찬만 먹으니 질릴 만도 한데 아직은 괜찮다.
창밖에 꺽다리가 계속 주변을 맴돌면서 관찰하는 게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밖의 괴물이 여전히 신경 쓰이는 듯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버스 창문에 커튼이라도 달아야 할 것 같다.
"이거 리필되는 통조림인가?"
돼지고기 장조림이 보여 성희에게 물었다. 마트에서 가져온 것과 버스의 무한 식량이 뒤섞여 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김 먹을 거?"
접시 위에 한 장 남은 김을 보며 성희가 물었다. 남은 밥의 양이 새 김을 꺼내서 뜯기 애매한 상황이다. 김 한 장에 우리의 시선이 닿았다.
"먹어라."
나는 장조림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뀌이이이 꽈이
그때 지붕에서 놈의 흉측한 괴성이 들려왔다. 예전의 마트에서 들었던 바로 그 특이한 소리다.
말하는 것 같은 저 괴물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문득 마트에서 만났던 태형이가 떠올랐다.
그는 각성하자마자 사라졌다. 죽었을까? 아니면 어디론가 강제로 이동된 걸까?
태형이는 눈을 보면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러면 괴물의 생각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놈이 갑자기 버스 옆으로 뛰어 내려왔다.
뀌이이 꽈이 꾸이
그러더니 버스 방향을 바라보며 뭐라고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물어보는 듯한 소리와 눈빛이다.
"눈치를 챈 건가?"
성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놈은 마트 옥상에서 날 관찰할 때 내가 버스 지붕에 오르는 것과 성희가 지붕 문으로 나오던 것을 전부 바로 앞에서 지켜봤었다.
물론 같은 종류의 놈인지 그때 만났던 바로 그놈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능이 있는 놈들이라면 정보도 공유할 가능성이 높다.
저놈들이 추가적인 정보까지 얻게 되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지금 죽여야겠어."
하지만 놈이 버스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붉은 탐지 램프로 터트릴 수가 없었다. 난 활을 들고 버스 옆문 손잡이를 잡았다. 이 정도 거리면 한방에 놈의 머리를 날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버스 문을 열기 직전에 작은 움직임이 버스 옆을 스치는 걸 목격했다. 너무 빨라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움직였다.
꺽다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 움직임이 사라진 곳을 살피는 사이 그 작은 괴물은 반대편에서 갑자기 나타나 순식간에 꺽다리의 다리 하나를 부러트리며 지나갔다.
뀌이이익!
꺽다리는 괴성을 지르며 옆으로 쓰러졌다. 마치 메뚜기 뒷다리처럼 생긴 놈의 다리는 부러져서 아랫부분이 멀리 날아갔고 놈은 일어나려다 다시 넘어지며 버둥거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날괴물이 꺽다리를 구하려 지상으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어딘가 높은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다.
카아아악!
작은 괴물의 괴성이 들렸다. 그리고 꺽다리를 잡으려던 날 괴물의 발 하나가 초록의 액체를 흩뿌리며 날아갔다.
꿰에엑!
날괴물은 고통의 괴성을 지르며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옆으로 휘청이더니 거대한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그 날갯짓에 탁한 흙먼지가 일었다. 매캐한 먼지 사이로 번뜩이는 붉은 눈이 여러 개 나타났다. 그리고 그 형체들은 공중에서 푸드덕거리는 거대한 날개를 향해 점프했다.
꾸엑!
날괴물의 날개에 구멍이 났다. 놈은 다시 공중으로 높이 날아오르려 다급하게 날개를 움직였지만, 바닥에서 먼지만 더 심하게 일으킬 뿐 놈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파직!
그 순간 날괴물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아까 못난이 괴물이 난도질당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파직! 파직!
바닥으로 떨어진 날괴물은 그렇게 몇 마리의 작은 괴물에게 연이어 공격당하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뜯겨나갔고 그 주변은 초록의 액체와 놈의 살점으로 난장판이 되었다.
바로 옆에서 초록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바닥에 쓰러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꺽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죽일 필요도 없겠다."
꽈직!
아랫부분이 날아간 꺽다리 다리가 윗부분까지 완전히 부서졌다.
꿰에에에이이익!
꺽다리는 고통을 참을 수 없는지 처절한 괴성을 질렀다.
상황이 이런데도 놈의 시공간 움직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어나지 않았고 작은 괴물의 계속되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꽈지직!
나머지 다리와 팔도 박살이 나며 날아갔다. 그 순간 놈은 꽉 움켜쥐고 있던 작은 괴물을 떨어트렸다.
팔다리가 모두 잘려 흉측한 머리와 몸통만 남은 놈은 붉은 눈을 번뜩거리며 주변을 다급하게 살폈다. 좀 전의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다.
놈에게 처음에 잡혔다가 조금 전 바닥에 떨어진 귀여운 괴물은 이미 죽었는지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그때 날괴물과 꺽다리를 박살 낸 주인공들이 마침내 모습을 제대로 드러냈다. 고작 네 마리의 작고 귀여운 괴물이다.
놈들은 꺽다리가 떨어트린 움직임이 없는 동료 곁으로 모이더니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퀘에에
동료의 죽음을 확인한 놈들은 갑자기 마치 대화하듯 작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화난 거 같은데?"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예상했다. 하지만 갑자기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난 다급하게 아이들의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빠드득 찹찹
그런 소리가 났다.
동족이 죽으면 저 작은 몸뚱이는 그저 식량으로 전락하는 것 같다. 네 마리의 귀엽게 생긴 괴물은 그렇게 동족의 사체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씹어먹었다.
"윽"
성희가 더는 보기 힘든지 고개를 돌렸다. 나도 구역질을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못난이가 거대 괴물을 뜯어먹을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 바로 옆에서 공포에 질린 붉은 눈을 번뜩이며 하나도 빠짐없이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꺽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지렸겠는데?'
동족을 깔끔하게 먹어 치운 네 마리의 귀여운 괴물은 동시에 옆에 있던 꺽다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꺽다리는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격렬하게 움직이더니 아주 조금씩 옆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게 보였다. 도와주고 싶을 만큼
하지만 저 정도 움직임으로 작은 악마 같은 괴물에게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 마리의 작은 괴물은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꺽다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려 몸부림을 쳤지만, 놈에게 다른 미래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작은 괴물은 바로 꺽다리의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음에도 가만히 서서 놈을 구경만 할 뿐 더는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흉측한 괴물 앞에서 작고 귀여운 괴물이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는 광경을 보니 마치 쓰러진 호랑이 앞에 햄스터가 느긋하게 서있는 모습 같았다.
문득 저 꺽다리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놈은 다른 꺽다리와 매우 달랐다. 나와 처음 만난 마트에서도 날 죽이려 달려들지도 않았었다.
괴물에게 연민 따위라니
난 마음을 다잡고 상황을 계속 지켜봤다.
카아아아아악!
갑자기 귀여운 괴물이 그 작은 입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는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생김새와 전혀 다른 끔찍한 소리였다.
너무 크고 이질적인 소리에 모두 귀를 틀어막았다. 버스에 노이즈 캔슬링이라도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요즘 자주 든다.
안의 소리는 밖으로 나가진 않지만, 우리도 밖의 소음을 듣고 싶지 않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한동안 귀를 막고 있는데 놈들이 갑자기 괴성을 멈추더니 뭔가 기다리는 듯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난 문득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버스 옆면에 매달아 놓았던 덩굴이 떠올랐다.
난 일어나 우측 창문을 아주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묶어 놓았던 덩굴로 손을 뻗었다.
그때 창문 너머 네 마리의 작은 괴물과 눈이 마주쳤다. 둥글고 귀여운 얼굴에서 번뜩거리는 붉은 눈이 일제히 날 노려보고 있었다.
"아 씨"
난 덩굴을 뜯어내고 바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반대편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런! 늦었네!"
반대편에 매달아 놓은 덩굴에 또 다른 작은 괴물 두 마리가 매달려 즙을 빨아 먹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손을 뻗었다가는 아마 내 손도 저 꺽다리나 혹은 저놈들이 씹어먹어 버린 동료와 다르지 않게 되겠지
상황이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바로 이동하고 싶었으나 버스가 움직이면 매달려있는 이놈들뿐만 아니라 저기 네 마리의 무시무시한 작은 괴물들도 따라올 거다.
게다가 이대로 언덕 위로 가게 되면 놈들은 저렇게 좋아하는 덩굴 식물의 본체를 발견하게 될 거고 그 때문에 더 많은 놈들이 모여들기라도 하면 빌라촌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민이와 그의 괴물 형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버스에 붙어있는 놈들이 덩굴 즙을 다 먹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난 바로 검을 들고 버스의 왼쪽 창문을 열었다.
벽에 달라붙어 덩굴 즙을 빨아 먹고 있던 놈들의 붉은 눈이 순간 번뜩였다. 난 바로 놈들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쿠아악!
작지만 거친 놈들의 짤막한 괴성이 울리며 동시에 두 마리의 목이 날아갔다. 난 바로 매달려있던 덩굴까지 마저 잘라낸 후 창문을 급히 닫았다.
그리고 좀 전에 봤던 무시무시한 네 마리의 위치를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다.
"헉!"
놈들은 이미 버스 우측 문 앞까지 다가와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버스는 보이지 않겠지만 방금 투명 너머로 덩굴 즙을 빨아 먹다 목이 날아가는 동료들의 모습은 목격했을 거다.
놈들은 목과 몸이 분리된 작은 괴물들의 사체 방향으로 뛰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사이에는 투명한 버스가 가로막고 있었다.
쿠에에!
버스 우측 벽을 계속 들이받으며 동료의 시체로 향하려던 놈들은 아직도 투명한 벽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듯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능은 낮은 거 같아 다행이다."
내 말에 성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모이기 전에 이놈들 정리하고 가자"
난 버스의 옆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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