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J1. 각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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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이 오싹했다.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청년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말을 성희는 듣지 못했는지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셨나요?"
내가 아무 말 없이 당황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자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시선을 버스로 향했다.
"처음에 저도 보고 놀랐어요. 사람들도 다 보고 있었죠. 그런데 사람들은 버스를 보고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난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긴장되는 청년이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만 있으니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나도 각성인가 뭔가 한 거 같아요."
나의 동공이 커지는 게 그는 재밌는 모양인지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저는 탈 수 있을까요?"
그래 이 질문이 언제 나오나 했다.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 청년이 각성한 건 뭘까?
"뭐야?"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성희가 다가오며 물었다. 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청년도 성희가 살벌한 표정으로 다가오니 잠깐 움찔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는 지우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저씨! 노란불!"
성운이의 다급한 음성이다. 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부 마트 안으로 들어가세요!"
다들 나의 급박한 외침에 허겁지겁 일어나더니 작은 철문 쪽으로 뛰어갔다. 그들의 발에 아직 접시 위에 남은 삼겹살이 마구 밟혔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그들에게 부딪혀 넘어졌지만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나와 성희가 뛰어가 할머니를 부축했다. 그리고 쪽문이 제대로 닫히는 걸 확인하고 버스 쪽으로 뛰려고 뒤를 돌아보자
버스에 청년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버스의 문이 닫혔다.
난 급하게 뛰어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안에서 잠갔는지 열리지 않았다.
작은 성희가 놈의 팔을 잡아끄는 게 언뜻 보였다. 하지만 아이의 힘으로는 소용없었다. 운전석의 성운이도 놈에게 달려들었으나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놈은 아이들을 밀쳐내고 버스 운전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나와 성희는 사다리 쪽으로 뛰어가 버스 지붕에 올랐다.
할아버지는 생체 인식 같은 거는 생각 못 하셨나 보다. 내가 스마트키 아니었나?
각성자가 전부 탈 수 있으면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 이 버스는 우리 집안 사람들, 아니 나만 운전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면 탑승객 허가나 추방 기능 같은 건 없나요?
마음이 급하니까 괜히 엄한 할아버지에게 화풀이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버스의 지붕에 달린 문을 열었다.
우리는 바로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침대 옆에 쓰러져 있었다. 놈이 반항하는 아이들을 심하게 밀친 것 같다.
"이 개새끼가 애들을!"
난 운전석으로 달려들어 놈의 목을 졸랐다. 그때 성희의 무릎이 놈의 머리에 닿았다.
빡!
그 순간 대시보드의 램프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의 [Warning] 램프가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어? 그러면 버스 아주 가까이에 괴물이 있어야 하는데?
놈의 목을 조르면서 창밖을 살폈지만,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놈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처맞고 있으면서도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게다가 표정이 아까 평온한 표정 그대로다.
이 새끼 무슨 괴물 같잖아?
어? 진짜 이놈이 괴물인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청년 같은데, 인간형 괴물과는 너무 다른데?
난 혹시 몰라 [Warning] 버튼을 눌러봤다. 괴물이라면 저 버튼으로 바로 터져버리지 않을까?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괴물이 아니거나 혹은 버스 내부에서는 동작하지 않는 거일 수 있었다.
난 놈의 팔을 틀어쥐고 핸들에서 손을 떼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당겼다. 성희는 주먹으로 놈의 머리를 연신 가격하고 있었다.
뻑! 뻑! 뻑! 뻑!
성희도 정말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분노의 주먹이 놈의 얼굴로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일반인이라면 이 정도의 공격에 얼굴이 떡이 되고도 남았을 텐데 놈은 여전히 버티며 핸들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쾅!
가로등에 버스가 부딪쳤다. 순간적인 충격에 우리 모두 앞으로 쏠리며 고꾸라졌다. 그때 쉴드 수치가 떨어지는 게 언뜻 보였다. 버스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뽑힌 가로등을 밟고 심하게 요동치면서도 앞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성희가 놈의 머리채를 잡고 뒤로 당겼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계속 가격했다. 그 때문에 버스가 좌우로 마구 흔들렸다.
그때 성운이가 나게 뭘 내밀었다.
내 검이었다.
사람한테?
그런데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를 위험하게 하는 건 괴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제거해야 한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난 검을 받자마자 바로 놈의 옆구리에 꽂아 넣었다.
괴물의 몸에는 두부 자르듯 스르륵 들어가던 검이 이번에는 질긴 가죽을 찢으며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끄윽!"
놈의 신음이 들렸다. 하지만 난 찌르는 힘을 멈추지 않았다. 질겨서 잘 들어가지 않아 한 손으로 중심을 잡고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성희가 검의 손잡이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그 힘에 손잡이를 잡은 손이 쓸려나가 엄청나게 뜨거웠다.
검은 그대로 놈의 몸을 관통해서 깊숙이 박혔다.
"커커컥!"
놈은 괴성을 지르면서도 아직 버티고 있었다. 난 핸들을 잡은 놈의 손을 간신히 떼어내고 멱살을 잡아 버스 뒤편으로 힘껏 당겼다. 놈의 발이 악셀에서 떨어지자 버스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검이 몸에 박히고도 안간힘을 쓰며 저항하는 놈을 우리 둘이 강제로 끌어내어 거실까지 겨우 옮겼다. 그 와중에도 성희는 놈의 얼굴을 끊임없이 가격하고 있었다.
마치 괴물 같은 놈이었다.
"성운아 문 열어!"
성운이가 버스 옆문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열리지 않았다.
"옆의 잠금장치!"
물리적인 잠금장치가 있었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던 거다. 급하니 그게 눈에 띄었다. 아까 놈이 버스 문을 닫을 때 움직였던 손 위치가 기억나기도 했고, 저놈은 저걸 어떻게 알았을까?
버스의 문이 열렸다. 놈은 끝까지 완강하게 저항했다. 어떻게 검이 꽂혀있는데도 이렇게 버티는지 정말 진절머리가 났다.
그때 성희가 버스 천정의 가구를 잡고 양쪽 무릎을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놈의 얼굴로 무시무시한 무릎 두 개가 날아갔다.
빠아악!
놈은 그대로 버스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난 바로 버스 문을 닫고 잠갔다. 지붕의 출입구도 닫고 잠금장치를 찾았다. 그런데 옆문과 다르게 잠금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손잡이를 조금 오래 잡고 있자 기계음이 들리면서 무언가 잠기는 소리가 났다.
아! 이거 처음 열 때 이 소리를 들었던 거 같다.
난 버스 밖을 살폈다. 버스는 마트 주차장 끝부분에 멈춰 있었다. 아까 가로등을 들이받아 속도가 줄어서 다행이었다.
놈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으로 뒹구는 걸 보고 문을 잠갔는데 지붕 문에 신경 쓰는 사이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다.
'아 씨 이거 찝찝한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지붕에서 울림이 들려왔다. 놈이 지붕으로 올라탄 모양이다.
'끈질긴 놈'
그리고 주먹으로 버스 지붕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쿵! 쿵!
괴물이 버스를 내리칠 땐 소리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각성한 인간이 공격하니 그 굉음과 진동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난 운전석으로 가서 쉴드를 살폈다.
"젠장!"
쉴드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인간형 괴물이 공격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한 번 내려칠 때마다 세 개 아니 네 개씩 떨어지는 것 같았다. 세기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이러다가는 쉴드와 코르카가 금방 바닥나 버릴 것이다.
"성희야"
난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방패를 집어 들고 버스 옆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바로 잠가"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내 팔에 스친 그녀의 손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나를 잡지 못했다.
내가 나가자마자 성운이가 문을 잠그는 게 보였다.
"이 새끼 내려와!"
이대로 내버려 두면 버스가 작살난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두 위험에 노출될 거다.
그러면 지금 나만 노출되는 게 낫다.
그리고 어차피 놈에게서 검을 찾아와야 한다.
몸에 검이 그대로 꽂힌 채로 놈은 버스 옆으로 뛰어 내려왔다.
아까 우리의 공격에 몸이 많이 상해 보였지만 그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여전히 소름끼치는 평온한 목소리로 그가 입을 열었다.
"버스만 넘기면 살려드릴게요."
정말 사람이 제일 무섭다.
특히 평범하고 착하게 보이는데 저런 괴물일 때 더더욱 무섭다.
"진우!"
버스의 창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활과 화살통이 날아왔다.
난 방패를 팔 깊숙이 끼우고 활에 화살을 걸었다.
"그건 또 뭐···."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살은 놈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놈은 재빨리 오른팔을 들어 얼굴로 날아들던 화살을 막았다. 하지만 그 화살은 그대로 놈의 팔을 뚫고 들어가 그의 오른쪽 눈까지 찔렀다.
팔로 막지 못했으면 머리를 뚫었을 화살이었다.
"윽!"
그는 왼손으로 화살을 뽑아 부러트렸다.
"아 씨 피 같은 화살을!"
그 사이 두 번째 화살은 이미 놈의 남은 한쪽 눈 근처로 날아가고 있었다.
"끄윽!"
놈은 그 화살까지 미처 막지 못했다. 두 번째 화살촉이 비틀거리는 그의 뒤통수에서 보였다.
그는 몸에 검이 꽂히고 머리에 화살이 관통된 채로도 한동안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두 눈을 모두 볼 수 없게 된 녀석은 그렇게 처량한 몸짓으로 팔을 휘둘렀다.
"아아아악!"
그래도 입은 멀쩡했는지 여전히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난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몸에 꽂혀있는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힘껏 당겼다.
하지만 검은 바로 뽑히지 않았다. 그때 그의 눈과 배에서 갑자기 분수처럼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 피는 내 온몸을 뒤덮었다.
난 눈이 따가웠으나 끝까지 부릅뜬 채로 검의 손잡이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번 좌우 그리고 위아래로 힘을 분산시키며 검을 흔들었다.
질긴 근육과 뼈가 갈리는 느낌이 손잡이로 그대로 전해졌다. 정말 섬뜩한 느낌이다.
몇 번 더 손잡이를 꽉 붙잡고 힘껏 흔들자 마침내 검이 뽑혔고 그 자리에서 많은 피가 쏟아져나왔다.
난 잠시 거리를 벌린 채 그를 바라봤다.
어떤 능력의 각성이기에 몸이 저렇게 되고도 버티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내 말 들리나?"
피가 여전히 두 눈과 배에서 울컥거리며 나오고 있는데도 놈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그런데 팔을 마구 휘젓던 놈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하지만 아직 거친 숨은 그대로 쉬고 있었다. 그 바람은 그의 입과 배로 동시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놈은 인간형 괴물이 아니라
그냥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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