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J1. 모두의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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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일단 올라가자"
성희와 내가 지붕에 오르자 물에 잠긴 읍내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우리에게 쏠렸다.
2터널은 막혔고 우회로는 물에 잠겨 있다. 버스가 물 위로 갈 수는 있지만 물속에서 또 어떤 놈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급할 건 없다.
"여기서 상황을 좀 지켜보며 기다리죠"
다들 상황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터라 딱히 의견이나 질문은 없었다.
난 마음에 조금 걸리는 게 있어 학생 어머니에게 덧붙이며 말했다.
"동해에 지인이 있으신가 봐요. 빨리 가면 좋겠지만 상황이 이러니 조금 지켜보죠"
아주머니는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학생이 입을 열었다.
"외삼촌이 계세요"
다들 학생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 속에는 조금의 의문과 대부분의 안쓰러움이 묻어있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고 생존자는 많지 않다.
"동해시 어디에 계셔?"
그래도 난 추측을 자제하고 물었다.
"요양병원에요"
지붕의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건장한 사람이라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하물며 요양병원이라니
난 아까 국도변 카페 너머에 있던 까마귀가 가득한 작은 요양병원 옥상을 떠올렸다.
"원장님이세요."
그런데 이어서 말한 학생의 말 한마디로 나와 사람들의 선입견이 단번에 깨졌다.
"외삼촌이···."
아이의 말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자 아주머니가 녀석의 팔을 잡아끌었다. 가족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게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성희가 잠시 지붕의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다시 버스 아래로 내려가 쟁반에 뭘 가득 담아서 올라왔다.
"좀 드시면서 쉬고 계세요"
그녀가 테이블에 내려놓은 쟁반에는 캔 커피와 캔맥주 그리고 오렌지주스 등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비스킷 상자도 있다. 아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챙겨놓은 것이리라
"감사합니다."
준호씨가 과자를 하나 집어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진주씨는 캔맥주를 하나 집어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머 너무 시원해요!"
나라는 캔 커피를 하나 들고 다시 구석으로 걸어가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난간에 등을 기대고 커피를 홀짝였다.
"콜록···. 으허어···."
할아버지의 기침이 더 심해진 것 같다. 그동안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상태가 괜찮은 거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겨드랑이는 땀으로 젖어 흥건했고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괜찮으세요?"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무표정한 얼굴로 일어서더니 테이블의 생수병을 집으려 했다.
"윽!"
그런데 순간 갑자기 휘청이며 옆으로 쓰러졌다. 내가 뛰어가서 부축하려 하자 그는 내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그는 바닥에 앉아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생수병을 집어 들고 순식간에 한 병을 다 비웠다.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살피자 생각보다 상태가 더 나빠 보였다.
두 눈은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고 숨소리는 거칠었다. 땀은 그의 이마와 얼굴에서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고 목에서는 붉은 반점까지 보였다.
감기 정도의 증상 같진 않았다. 문득 그가 괴물에게 발가락을 뜯겼던 일이 떠올랐다.
'좀 찝찝하긴 했는데···. 설마?'
일반인이 괴물에게 물리면 대부분 변이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각성자가 물려서 변이되는 건 아직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도 인간형에 상처를 입은 적이 여러 번 있다. 만약 괴물에게 상처로 감염이 된다고 하면 나와 성희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직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표본이 너무 적다.
난 여전히 기침하며 힘들어하는 할아버지를 유심히 살폈다.
1차 변이는 녹색 젤리를 지나지 않고 바로 일어난다. 그리고 녹색 젤리 상태가 되면 2차 변이가 된다.
"침대로 모셔야지?"
연신 기침하며 힘들어하는 할아버지를 보던 성희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을 바꿨다.
그는 이미 지난 밤에 침대에서 치료받은 상태다. 상처는 치유되었지만, 기침과 고열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하고 있었다. 저 증상은 침대로 해결이 안 된다는 거다.
게다가 김씨 할아버지가 정말 감염자고 변이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그가 만약 버스 내부에 타고 있는 상태에서 변이한다면 어떻게 될까?
버스의 접촉 파괴는 계속 켜져 있는 상태지만 버스 안에서도 동작할까? 그건 알 수 없다.
지금은 그가 버스 외벽에 접촉된 상태로 유지되는 게 차라리 모두에게 안전할 것 같다.
"여기 있을게."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할아버지의 음성이 무심하게 들려왔다.
난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네"
나의 짧은 대답이 뭘 의미하는 지 할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난 성희에게 눈짓한 후 버스 안으로 내려왔다.
난 거실 테이블에 앉아 생수를 하나 꺼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왜?"
성희가 내 앞에 앉으며 물었다.
"감염일지도 몰라"
내 말에 놀란 성희가 잠시 기억에서 할아버지의 상태를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많이 물리시긴 했었어."
그녀는 내가 마시던 생수병에 남은 물을 전부 들이켜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문득 바닥에 놓여있는 희성이의 나무 창이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깎아서 만든 창이었다. 생각해보니 녀석은 어렸을 때도 시골에서 나뭇조각으로 장난감 같은 걸 곧잘 만들었다.
"희성이 솜씨는 여전하네"
내가 침묵을 깨고 말하자 성희가 창을 집어 들어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살피기 시작했다.
"직접 만든 거 맞네, 여기 끝에 Z 새겨놨어."
성희가 손잡이 부근에 새겨진 글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알파벳 Z다.
어렸을 때도 녀석은 자기가 만든 모든 장난감에 저 Z를 새겨놓았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냥 멋있어서란다. Z가 멋있는 글자였나?
아직 그 습관은 그대로인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짠했다.
"거기는 대체 어딜까?"
성희가 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난 그동안 혼자서 생각하고 추측했던 내용을 말했다.
"괴물이 있던 곳이지 않을까 싶어"
성희가 고개를 들어 말없이 날 빤히 바라봤다. 시선은 나에게 있었지만, 그녀도 자기 생각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어 간 듯 그렇게 의미 없는 시선만 나에게 머물고 있었다.
"마트 사람들은 어떻게 거기로···."
성희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정도 이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대해 조금은 파악이 되는 것 같았다. 그저 인정과 납득이 안될 뿐
그날 셀 수 없이 많은 불덩어리 같은 게 하늘에서 떨어졌다. 실제로 운석이나 불덩어리는 아니었지만, 그 이후에 지구에서 여태껏 전혀 보지 못한 생명체가 대량으로 나타났다.
마트에서는 그때와 비슷한 형상에 크기만 작았던 기이한 붉은 빛이 날아오고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었다.
아까 터널에 나타났던 초록 젤리 방벽에서도 붉은 영역에서는 생명체건 물건이건 이동할 수 있었다.
거기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여기가 아닌 곳이라는 건 확실했다.
붉은빛은 일종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통로인 것 같다. 현재로서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질문이 우릴 괴롭히고 있었다.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지구의 생명체가 죽어 나가고
어쩌면 생명체 대부분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이 사태는 왜 일어난 걸까?
알량한 지구의 자원이나 환경이 탐나서 외계인이 쳐들어온 건가? 그러기엔 너무 무계획인데?
괴물 대부분은 마치 본능뿐인 짐승처럼 지능이 낮았다. 게다가 괴물끼리도 모두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계획 따위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성희가 맥락 없는 내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재난이야"
그녀가 한마디로 정리했다. 사실 나도 생각의 결론이 거기로 향하고 있었다.
우주에 어떤 재난이 일어났다. 재난이라고 칭하는 건 그 사건의 영향을 받은 생명체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생명이 위태로워졌다는 의미다.
그건 우리 지구의 생명체에게도 그랬고 우리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저 미지의 생명체에게도 동일했다.
우주에 비하면 먼지보다 작은 이 지구가 뭐가 대단하다고 힘들게 목숨 걸고 쳐들어올까?
이건 그저 재난이다.
괴물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괴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괴물이나 우리나 모두 간절히 살고 싶어 한다. 그게 생명의 기본이니까
그런데 모두 그럴 수 없다면 지구에서 죽어야 하는 건 놈들이 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재난이기보다는 적어도
놈들에게만 재난이어야 한다.
난 희성이가 만든 창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일전에 교회에서 자라났던 덩굴 식물이 떠올랐다.
물론 그 덩굴은 창 따위를 만들 수 없는 형태이긴 했지만, 이상하게 이질적인 특이한 질감은 그때와 비슷했다.
만졌을 때 이상한 느낌, 하나는 조금 질기면서도 말랑했고 다른 하나는 단단하면서도 묘하게 부드러웠다.
창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말이 없자 성희가 물었다.
"이제 어쩔까?"
짧지만 너무 방대한 질문이다.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게 최선이야."
"아니, 저 사람들"
나도 그 질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이미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무리하지만 말자고"
복잡해질 땐 스스로 단순해져야 한다. 더불어 생존하되 버스와 우리가 위험할 때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난 창문을 조금 열었다. 그러자 축축한 바람이 버스로 들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버스의 방어막은 자연의 순리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지붕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나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우야, 올라 와봐야겠는데?"
다급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무슨 일이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설마 할아버지가 벌써?'
난 등에 메고 있던 검집에서 검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액정의 숫자도 살폈다.
그가 정말 변이했다면 이미 접촉 파괴로 터졌을 테니 사실 액정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그저 습관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일이라면 웅성거림이 아니라 생존자들의 비명이 들려왔어야 한다.
나와 성희는 뒤쪽 계단을 이용해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무슨 일이야?"
난 할아버지부터 살폈다. 그런데 그는 아까와 상태가 비슷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버스 밖 멀리 읍내의 높은 건물로 향해 있었다.
"옥상에 사람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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