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J1. 제물
기력이 거의 없어 보이던 사내는 마녀 아줌마를 보자마자 눈을 부릅뜨더니 소리쳤다.
"버티면 된다며!"
"닥쳐! 다 말할까?"
사내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 말고 부들부들 떨더니 우리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저놈도 뭔가 파렴치한 짓을 한 게 분명했다. 난 굳이 묻지 않고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마녀는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우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저 버스는 대체 뭐야?"
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신비한 버스"
마녀 아줌마는 인상을 찡그리며 날 노려봤다.
"마시울이 말하던 게 네놈이었나?"
"마시울?"
특이한 이름이다. 처음 들었지만 이름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만나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계집애처럼 긴 머리에 염색까지 하고 다니는 능구렁이 모르나?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파란 머리?"
그녀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정말 화병 각성자가 맞는 듯했다.
"만나긴 했나 보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뭔 소리여? 쿨럭 끄억"
그녀는 할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헐, 감염자?"
"뭐라?"
"능력자라 아직 버티시는 모양인데 그리 오래 가진 못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있어"
그녀는 시선을 다시 나에게 옮기며 아까보다는 조금 낮아진 어조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부 감염된 거 아직도 모르나 본데"
"전부?"
"어차피 다 죽는다고, 이쪽이나 저쪽이나"
저 마녀 아줌마가 말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을까?
"거미 넘어갔지?"
그녀는 초록 방벽과 붉은 눈 거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시체 쌓아 놓은 게 붉은 눈 거미 유인하려고?"
마녀는 비릿한 미소만 지을 뿐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내가 더 궁금해하고 간절해 보이면 안 된다. 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나는 관심 없는 듯 화제를 돌렸다.
"됐고, 물놀이 좋아하시나?"
그녀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물놀이?"
"저기 물속에 배고픈 놈들이 많더라고"
그녀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다.
"여기 괴물이 잘 안 오는 이유를 잠시 생각해봤거든."
내 말에 다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물 근처에는 육지 괴물이 잘 안 오더라고, 여기는 물이 돌아가는 자리라 주변이 하천으로 둘려 있어"
"그런 데가 한두 군데도 아니고···."
옆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매달려있던 사내놈이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내 말이···. 그래서 더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지하 주차장에 시체들이 많긴 했는데 좀 이상하더라고···. 단지 규모에 비해서 많이 적어"
사내의 눈이 커지는 게 느껴졌다.
"제물 같은 건가? 물에 사는 괴물 더 모으려고?"
이곳으로 오면서 다른 데 보다 여기 근처 하천에만 수중 괴물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난 홍수 때문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듯했다.
내 말에 사내는 아예 고개를 돌렸고 마녀 아줌마는 거칠어지는 숨을 애써 가다듬으며 차분한 척 입을 열었다.
"나도 와서 이유를 알았지, 괴물이 잘 안 오는 데가 있다고 해서"
"누가?"
내가 묻자 그녀는 순순히 설명을 시작했다.
"천반장이 이리로 우리를 끌어들인 거야, 축복받은 장소라고 떠들면서 말이지, 근데 와보니까 동네 고양이랑 개들을 하천에 던지더라고"
아까 어느 집 거실의 난자당한 개 사체가 떠올랐다.
"근데 던질 동물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었거든."
그 이후는 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사람들, 쓸모나 있어야지"
그 순간 내 뒤에서 참고 참았던 나라의 욕설이 들려왔다.
"하 이런 씨발"
마녀가 아니라 악마였다. 할아버지와 나라가 순간 움직이려던 걸 간신히 말렸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버스 지붕에서 뭔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건 주스 병이었다.
"죽어!!"
유리병이 깨지며 오렌지주스가 마녀의 얼굴 전체를 덮었다. 그리고 오렌지색 사이로 붉은 피가 조금씩 번지기 시작했다. 지붕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더는 참지 못하고 던진 거다.
"사람들을 다 죽여놓고 그게 할 소리야!"
그녀들은 어느새 전부 내려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높이 매달려있어 손이 닿지 않자 근처의 돌멩이와 잡동사니를 주워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생존자들의 분노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도 마녀는 조금의 신음도 흘리지 않고 가만히 있더니 혼자 중얼거렸다.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돌을 던지던 여성이 마녀에게 소리쳤다.
"뭐라는 거야!"
악마 같은 마녀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주변을 둘러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스무 명 정도라도 다시 구하면···."
그녀는 아직 거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녀의 어이없는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생존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붕 위에 남아있던 아이들도 엄마를 외치며 따라 울었다.
성희가 그녀들을 다시 지붕으로 데리고 올라갔고 난 마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속삭였다.
"내가 구해드리면?"
그녀의 눈이 번쩍 뜨이는 걸 목격했다. 난 계속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데?"
내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고 나라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저···. 정말이냐??"
갑자기 그녀는 마약 중독자 같은 찐득한 에너지를 강하게 풍기며 관심을 보였다. 난 계속 그녀를 자극했다.
"그러면 뭐 해주실 건데?"
내 말에 마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게 필요한 게 뭔지 그리고 본인이 어떤 사기를 칠 수 있는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거미 괴물이 방벽을 소환하고 나면 넘어가거든, 그때뿐이야 기회는"
그건 이미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넘어갈 기회라고?"
내 말에 그녀는 날 똑바로 보며 말했다.
"거길 왜 넘어가? 그거 말고 방법이 있어, 살아남을 방법이"
"그래서 그게 뭐냐고?"
마녀는 다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신선한 거 스무 명만 구해주면 알게 될 거야"
섬뜩한 말이었다. 나는 손발이 부들거리는 걸 애써 참았다. 할아버지와 나라의 살기가 점점 더 강렬해지는 게 느껴졌다.
"파란 머리 새끼가 말해준 건가?"
난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고 싶어 간신히 끓어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태연한 척 물었다.
"마시울? 어 맞아. 여기서 더 내려가면 의료원이 하나 있어, 거기서 놈이 거미를 쓰는 걸 보여줬지"
"환자들을?"
내 주변을 가득 채우는 분노의 살기를 나는 더 이상 말릴 수 없을 듯싶었다.
"어차피···."
그녀는 말을 마저 할 수 없었다. 참지 못한 할아버지가 마녀에게 뛰어올라 강력한 발차기로 그녀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쇠사슬에 매달린 마녀는 공중으로 높이 떠오르더니 아파트 외벽에 부딪힌 후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바로 의식을 잃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내가 기절한 척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이층으로 뛰어 올라가 기둥에 묶인 쇠사슬 두 개를 모두 풀었다.
"악!"
사내의 비명이 들렸다. 마녀는 바닥으로 떨어졌으나 조금 꿈틀거렸을 뿐 아직 깨지 않았다.
나는 다시 내려가 버스 뒤에 쇠사슬을 묶었다.
"타세요."
할아버지와 나라가 버스에 올랐다. 성희는 아직 지붕에서 생존자들을 살피고 있었고 나는 운전석에 앉아 악셀을 밟았다.
"으헉"
"컥! 억!"
쇠사슬에 매달려 끌려오는 악마와 졸개가 사이드미러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다리 가운데 도착하자마자 난 바로 버스에서 내려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둘을 그대로 다리 아래로 걷어찼다.
퀘에에에엑!
물속에서 기다렸다는 듯 중형 수룡 몇 마리가 이빨을 번뜩거리며 튀어 올랐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으어어"
사내가 울부짖었고 마녀는 그제야 조금 의식이 돌아온 듯 꿈틀거리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끄응, 뭐···. 뭐야 이게?"
난 다리 난간으로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제물"
내가 쇠사슬을 손으로 잡자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위로 쳐들고 간절하게 소리쳤다.
"아···. 잠깐만! 마시울이 네놈에 대해 한 말이 있다고!"
흰자위가 번뜩거리며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 악을 쓰고 있는 마녀의 모습은 정말 역겨웠다.
"안 궁금하거든."
"그. 그게!"
그때 뒤에서 나라의 음성이 들렸다.
"버스에 묶은 거 풀면 되지?"
그때 마침 기다렸다는 듯 다시 수룡 서너 마리가 물 위쪽으로 튀어 올라왔다.
"아아악!"
그중 한 놈의 이빨이 마녀의 종아리에 닿았다. 그러더니 붉은 피가 하천으로 뚝뚝 떨어졌다.
"나라야 빨리 풀어라! 우리 갈 길도 바쁘고"
그때 찢어질 듯한 마녀의 고함이 거센 물살 속에서도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너 할아버지 찾는다며!"
그 순간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주변의 소음과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모두 멈춘 거 같았다.
거세게 흐르는 물살 속에서 수룡이 지르는 괴성만 이따금 들려왔다.
"마시울이 꼬마들 잡았으니 서울로 간다고 했다고!"
'꼬마들이라면···.'
난 쇠사슬을 잡고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멱살을 한 손으로 틀어쥐고 역겨운 얼굴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피와 침과 눈물이 뒤범벅되어있는 마녀의 얼굴이 내 코앞에 다가왔지만 내게 그런 역겨움 따위는 지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 그리고 꼬마들? 똑바로 말해라, 조각내서 물고기 밥으로 주기 전에"
그녀는 침을 질질 흘리며 게슴츠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특이한 놈 만나면 조심하라고···. 그놈 할아버지 만나면 안 된다고···. 꼬마들이 있어야 성공한다···."
그때 내 얼굴에 피가 튀었다. 마녀의 벌린 입에서 붉은 피가 솟구쳐 내 얼굴과 상반신을 적셨다.
멱살을 잡은 손이 갑자기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수룡 한 마리가 그녀의 하반신을 물어뜯고 지나갔다. 그녀는 짧은 경련을 잠시 일으키고는 눈에서 총기가 사라졌다.
난 그대로 이미 반토막이 되어버린 마녀의 멱살을 놓았다. 그러자 그녀는 바로 하천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퀘에에에!
나머지 반토막을 원하던 수룡이 다시 튀어 올랐다. 그리고 놈은 바로 마녀를 물었다. 그러자 버스에 묶여있던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올려라 쿨럭"
나라가 쇠사슬을 힘껏 잡아당기자 거대한 중형 수룡이 다리 위로 끌려 올라와 펄떡이기 시작했다.
퍽! 퍽!
나라와 할아버지가 참았던 살기를 괴물에게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내 수룡 괴물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열 개가 넘는 코르카가 나타나더니 버스로 흡수되었다.
"윽!"
하지만 아직 소화되지 않았던 녀석의 간식이 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마녀는 그렇게 끝까지 역겨움의 극치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젊은 엄마들의 공포에 질린 눈빛이 보였다. 그런데 공포감과 더불어 느껴지는 건 후련함인 것 같았다. 모두 살짝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우선 아파트로 돌아가죠"
내가 말하며 버스에 오르려는데 다리 난간 아래에서 누군가의 소심한 외침이 들렸다.
"저···저기···. 잊으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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