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J1. 만차와 길막
우리는 남은 십여 명의 사람들의 입에 약물을 부어 넣었다.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뭔가 먹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지금 한 숟가락씩 조심스럽게 흘려 넣을 여유 따윈 없었다.
강제로 입을 벌리고 급하게 붓는 탓에 기도로 흘러 들어가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찐득이의 먹이가 될 예정인 사람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할 거다.
난 주변의 서랍장을 철문으로 밀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도록 했다. 유민이와 반장도 무거운 가구들을 모두 철문 앞에 쌓았다. 난 나머지 잡동사니까지 철문 앞에 던져 놓고 외쳤다.
"이제 나가자!"
유민이는 성운이네 엄마를 업었고 반장도 자기 엄마를 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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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도 올라왔네'
난 바로 창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두 엄마를 위에서 받아 올렸다. 아이들까지 다 올라오자 성운이 엄마만 내가 둘러업고 뛰었다. 반장과 유민이는 같이 반장 엄마를 들고 내 뒤를 따라왔다.
건물 모퉁이를 돌자 성희가 문을 열어놓고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든든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난 바로 버스 문으로 성운이네 엄마를 안고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버스의 보이지 않는 방어막의 힘에 하마터면 그녀를 떨어트릴 뻔했다.
난 팔의 액정을 확인했다.
<이민희를 탑승객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어? 이젠 이름이 나오네?'
난 급하게 [예]를 눌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의 육중한 힘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바람에 반쯤 버스 안으로 기울어져 있던 내 몸이 버스 거실 바닥으로 넘어질 뻔했다. 성희가 급하게 우리를 잡았다.
"누군데?"
"잠깐만"
난 침대에 그녀를 눕히고 바로 버스 밖으로 나가서 반장의 어머니를 안아 올렸다. 반쯤 버스에 걸쳐져 있던 내 몸이 반장 어머니를 안은 순간 다시 메시지가 액정에 떴다.
<김지은을 탑승객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탑승객으로 등록한 후 그녀도 다른 이층 침대의 아래층에 눕혔다. 눈만 뜬 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그녀는 조금씩 그 눈을 움직이며 날 바라봤다.
난 버스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탑승객 제한으로 너희는 못 타! 둘은 지붕으로!"
유민이는 어리둥절한 반장의 손을 잡더니 뒤쪽 사다리를 타고 버스 지붕으로 올라갔다.
난 바로 문을 닫고 휴대 액정을 거실 벽 면에 다시 꼽았다. 그리고 운전석으로 가서 계기판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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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버스 기준으로는 좀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난 옆으로 우리가 빠져나온 건물을 잠시 바라봤다. 멀리서 창고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엄···. 마?"
난 거실 쪽을 돌아봤다. 급하게 두 명을 버스로 옮기느라 설명하는 걸 깜박했다.
성희가 두 여성에게 옷을 입혀주고 있었다. 마트에서 챙겨놨던 바지와 티셔츠 여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성운이네 엄마 곁에 작은 성희가 서 있었다. 그런데 정작 성운이는 거실 의자에 앉아 거리를 두고 그저 말없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엄마 맞아"
내 말에 성희도 놀란 표정으로 성운이네 엄마 얼굴을 들여다봤다.
"걱정하지 마! 침대가 치료해줄 테니까"
작은 성희는 무릎을 꿇고 앉아 엄마를 흔들며 말했다.
"엄마 엄···. 마···."
살짝 울먹이는 소리에 마음이 시큰했다. 성운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난 버스를 건물과 떨어진 곳으로 조금 이동시켰다. 그리고 우리가 빠져나왔던 건물을 응시했다.
괴물들이 건물에서 나오면 포탑으로 전부 쓸어버리면 된다. 코르카야 최소한 본전 이상은 될 테니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혹시라도 살아서 빠져나올 수도 있는 각성자 때문이다.
그들을 깨워서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을 높여준 건 우리지만 정작 그들이 버스를 발견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지붕 위에서 방어막도 없이 있는 아이들도 생각해야 했다. 물론 포탑과 다를 바 없는 무기 같은 아이들이긴 하지만
"왜 출발 안 하고?"
성희도 같은 생각인 것 같다. 우리의 안전이 우선이다. 난 바로 악셀을 힘껏 밟아 버스를 출발시켰다.
버스는 박물관 주차장 입구를 지나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쿵!
버스 앞에 뭔가 거대한 형체가 쓰러지는 게 보였다.
끼이이이익
난 발에 온 힘을 담아 브레이크를 밟았다.
"뭐야!"
다행히 지붕 위에 있던 아이들이 떨어지진 않았다. 버스 안의 식구들도 조금 놀랐을 뿐 괜찮았다.
난 다시 앞을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거대한 형체가 시야를 전부 가려서 앞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크기가 너무 거대한 탓에 그 형체의 전체 모습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난 운전석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유민아! 저거 뭐야?"
그런데 지붕에서 대답이 없다.
"잘 안 보여?"
난 버스의 전조등을 이제서야 켰다. 그제야 유민이의 음성이 지붕에서 들려왔다.
"처음 보는 괴물인데 죽은 거 같아요."
난 사이드미러로 박물관 쪽을 먼저 살폈다. 아직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난 버스 뒤쪽 계단으로 가서 지붕 출입구를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너희들 괜찮아?"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거대한 형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 시선이 향한 쪽을 바라보며 지붕 위로 올라갔다.
'거대 이구아나인가? 이렇게 컸나?'
그런데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길기만 하다.
"뱀인데요?"
반장의 음성이다. 전조등에 비친 놈의 비늘이 눈에 들어왔다.
초거대 뱀 괴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뱀의 느낌과는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달랐다.
머리와 꼬리는 어둠 속에 가려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추측하기에 길이가 적어도 대략 백 미터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렸을 때 운동장 달리기의 기준이 백 미터라 야외의 거리감은 항상 그때의 기억에 맞춰지는 것 같다.
"죽은 거 같아요."
유민이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놈이 여길 벗어나는 유일한 길을 막고 있다는 거다.
각성자에게 죽었다면 연기로 사라져 엄청난 코르카를 남겼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길을 막고 있는 괴물 사체 장애물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숨이 붙어있었다면 우리 손으로 죽여 길막도 해결하고 코르카까지 엄청나게 얻을 수 있었을 거다.
난 지붕 테이블 옆에 있는 액정으로 시선을 옮겼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동 포격] 버튼을 눌렀다.
'이거 한 번 더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실수로 누를 수도 있을 텐데?'
그 버튼을 누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아무리 나만 쓸 수 있는 기능이라 해도 뭔가 의도치 않은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은 있었다.
물론 한 단계가 더 생기면 정말 위급할 때 타이밍을 놓칠 위험성도 존재한다. 둘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버튼을 누르자 지붕 위에서 포탑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정거리 내에 괴물들을 찾는 듯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지붕에 있는 우리는 포탑의 발사 각도의 사각에 있어서 크게 위험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포탑이 있는 쪽 가까이는 다가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포탑은 눈앞의 거대한 뱀에게 포탄을 쏘지 않았다. 뱀 괴물은 이미 죽은 거다. 역시나 막타는 힘들 것 같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저 초거대 뱀 괴물은 이미 죽어 있었던 거다.
'누가 저 거대한 뱀을 저렇게?'
난 갑자기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그쪽에는 박물관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높은 산이 있다. 찐득이가 내려왔던 그 산이다.
그런데 지금은 산이 아까보다 더 높아 보였다.
"어?"
아니 그건 산이 아니었다. 산에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저···. 저게?"
"뭐죠?"
지붕 위에서 아이들과 난 그쪽을 바라보면서도 그게 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포탑은 아직 반응이 없었다.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 같다. 포탑의 사정거리는 50미터다. 그리고 저 알 수 없는 존재는 못해도 500미터 이상은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난 다시 뒤를 돌아 길을 막고 있는 거대 뱀의 몸통을 확인했다. 저 몸통을 자르기만 하면 버스로 밀어버리며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름이 못해도 5미터는 넘어 보였다.
괴물 사체를 코르카로 변환시켜 버리는 기능 같은 건 없을까? 그러면 정말 유용할 거 같다.
'사체 수습 포탄 같은 거면 좋겠는데'
결핍을 떠올리며 마치 그게 해결될 거 같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다음번 진화 때 조금이라도 반영이 될까 싶은 마음 때문이다. 되면 좋고 안돼도 그만이긴 하지만 어떤 패턴을 알아내고 싶었다.
"유민아, 저거 뜯어볼까?"
내가 거대 뱀 사체를 보며 말하자 유민이가 바로 버스에서 뛰어 내려갔다. 나도 등에서 검을 뽑고 아래로 내려갔다.
내 검이 미처 뱀에게 닿기도 전에 유민이가 그 무시무시한 손으로 뱀의 살점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형 너무 질겨요."
이건 힘으로 되는 일은 아닌 거 같다. 유민이의 가공할만한 힘에도 저 뱀 괴물의 살점을 뜯어내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옆에서 내가 검으로 찔러봤다. 단단하고 질긴 고무를 찌르는 느낌이다.
"이거 사체라서 그런 거 같기도 해"
평소에 괴물을 찌르고 밸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만약 아직 살아있는 괴물이었다면 이렇게 찌르고 뜯어내는 게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죽은 괴물 처리가 쉽지 않겠는걸?"
내가 중얼거리자 유민이의 손이 더욱더 세차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 뜯겨 나온 괴물의 살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렇게 뜯어내다가는 일 년은 걸릴 거 같다.
"안 되겠다. 일단 버스로 올라가자"
난 유민이와 다시 버스 지붕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 산 쪽을 살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형체는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느낌이다. 너무 거대해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가까이 다가가서 포탑으로 처리할까? 코르카 엄청나게 나올 거 같은데?
그런데 지금 보고 있는 저게 정말 괴물일까? 만약 우리가 그동안 만난 적이 없는 또 다른 존재라면?
우리 포탑이 만능이 아닐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콰아앙!
그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쿵! 쿠구구구구!
그 굉음은 끊임없이 들려오며 땅을 뒤흔들었다. 그때 우리가 빠져나왔던 작은 건물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는 게 어둠 속에서도 눈에 들어왔다.
난 액정의 버튼을 터치해서 버스 뒤쪽의 조명을 켰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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