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J1. 찐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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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아이들만 두고 온 게 신경 쓰이긴 했지만, 버스와 애들의 능력을 믿고 건물로 향했었다.
아까 코트의 사내가 건물 쪽으로 접근했을 때 버스에 있던 아이들은 그자와 뒤따라온 괴물을 목격했을 거다. 그런데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성운이도 그 정도는 위험 요소는 안될 거라 나름대로 판단을 한 것 같다.
괜히 경적을 울렸다가 오히려 이목만 끌 수 있다는 걸 아이도 알았던 거다.
그런 아이가 지금 경적을 울렸다면 뭔가 다른 상황이 발생했다는 거다. 뭔가 이목을 끌어서라도 우리에게 알려야 할 게 있다는 뜻이다.
"여기 방패"
성희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방패를 찾아 건넸다.
"나가자"
난 성희와 함께 아까 들어왔던 창문 쪽으로 뛰어갔다.
반장이라는 여고생도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린 것 같고 그 옆에 유민이가 있으니 우리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 듯싶었다.
깨진 창문 밖으로 뜯긴 쇠창살이 널브러져 있는 시멘트 바닥이 눈앞에 바로 보였다. 여기가 지하라 시선의 높이가 밖의 바닥이다.
'별일 없겠지?'
그때 계속 다급하게 울리던 경적 소리가 멈췄다.
창문 근처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 방패로 아직 남아있던 유리 조각을 더 쓸어내고 밖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뒤 따라 올라오는 성희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손을 잡는다.
'이렇게 손이 작았나?'
괴물을 뜯어버리던 손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놓지?"
다 올라온 그녀의 손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긴 날 그녀는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손이 차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날 지나쳐 건물의 벽으로 붙으며 주변을 살폈다.
난 문득 묘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를 따라 벽에 붙었다. 이미 밤은 깊어 칠흑같이 어두웠고 하늘에는 별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모퉁이를 돌면 바로 버스가 있다. 아직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 모퉁이까지 빠르게 이동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가?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건물 모퉁이를 돌자 내 걱정이 무색하게 버스는 있던 자리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렇게 그대로 있었다.
테이블 조명만 켜 놓아서 버스 내부가 어둡긴 했지만 그래도 창문 너머로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자 안심이 되었다. 아이들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쪽이 아니라 반대편 창문이다.
버스에 가려 그 너머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쪽에는 박물관 주 건물이 있다. 그리고 더 멀리에는 깊은 산이 있다.
우리는 서둘러 버스로 들어갔다.
"오래 걸려서 걱정했어요. 유민이 형은요?"
성운이가 날 보자마자 물었다. 오랜만에 길게 이야기하는 녀석을 보니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괜찮아. 건물에 잘 있어"
내 말을 들은 성운이는 우리가 들어온 버스 문밖을 살폈다.
"이따 올 거야 걱정마, 그런데 무슨 일이야?"
성운이는 다시 아까 바라보던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작은 성희가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밖에 멀리 뭐가 있어요."
우리도 아이들이 바라보는 곳을 살폈지만, 너무 어두워 시야에 바로 들어오는 건 없었다.
내가 약하게 켜져 있던 테이블 조명을 끄자 버스 안이 완전히 캄캄해졌고 그제야 밖의 모습이 조금 더 시야에 들어왔다.
주 건물 너머 멀리 산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 아래로 무언가 연이어 지나가는 듯 가지가 불규칙적으로 흔들렸고 사이사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수풀 위로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동안 만났던 괴물의 느낌은 아니었다. 뭔가 특이한 움직임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조직적이었다. 개체 수도 적지 않은 것 같다.
크기는 인간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놈들은 허리를 숙이고 땅을 기어가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형? 아니면 또 다른 종인가?"
하지만 인간형의 움직임으로도 보이진 않았다. 모든 인간형이 다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인간형 괴물은 터널을 제외하곤 대부분 혼자 움직였다.
외부 조명을 켤까도 생각해 봤지만, 저 산까지 빛이 닿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또 저놈들의 특성을 아직 모르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타났다."
성희가 먼저 발견했다. 산기슭을 따라 이어진 박물관 벽을 넘어오는 놈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데?"
사람 정도의 키에 형태도 마치 사람 같았다. 그런데 네발로 기고 있었다. 난 놈이 아직 멀리 있을 때 확인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똑같이 조명이 반응이 없으려나?'
난 버스의 좌측 조명을 켰다. 그리고 벽을 넘어오는 놈들의 반응을 살폈다.
벽을 내려와서 주 건물 쪽으로 기어가던 놈들의 주변이 버스의 조명으로 인해 밝아졌다. 거리가 좀 있어서 훤히 밝히진 못했지만, 만약 빛에 민감한 놈들이라면 저 정도에도 반응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조명을 켜자마자 놈들은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커다란 흉측한 두 개의 붉은 눈이 버스 쪽으로 향했다. 난 바로 조명을 껐다.
조명을 껐는데도 놈들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버스 쪽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난 거실에 있던 액정화면을 살폈다.
[ 0 < 7 < 78 ]
벽을 내려오는 놈들이 더 있었다. 이미 내려와 버스의 빛에 반응한 놈들은 세 마리였다. 그리고 그놈들은 아직 버스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벽을 다 내려온 놈들은 주 건물 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멈췄던 놈들도 주변에 다른 놈들이 나타나니 원래의 목적지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어가는 모습이 못난이의 그것과도 닮았지만 조금 더 징그러웠다. 아마 저 주름진 피부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못난이와 다르게 날카로운 발톱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이 엄청나게 커서 머리가 마치 거대한 잠자리 대가리같이 보였다. 멀리서도 눈만 보이는 것 같다.
"징그러워"
작은 성희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징그럽게 모여드는 놈들을 계속 보고 있으니 허기가 진 와중에도 입맛이 싹 가셨다.
"뭐 좀 먹었니?"
내가 아이들에게 묻자 성운이가 고개를 저었다.
[ 0 < 23 < 124 ]
산에서 놈들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 박물관 앞마당으로 내려온 놈들은 그대로 주 건물로 속속 향하고 있었고 처음에 내려왔던 놈들은 이미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왜 저기로 들어가지?"
그러고 보니 주 건물의 정문이 활짝 열려있다. 부서진 게 아니라 닫힌 적이 없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가 있던 지하는 박물관 입구 옆에 따로 있는 작은 부속 건물이었고 주 건물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유민이와 생존자들은 아직 괜찮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 작은 건물의 원래 용도가 뭔지 모르겠다. 지하에 철문이 달린 방들이 여러 개가 있을 이유가 뭘까? 창문에 두꺼운 쇠창살까지 달아놓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 뭐였을까?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답답했다.
[ 0 < 159 < 34 ]
원거리에 측정되는 놈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고 있다. 산에서 내려올 만한 놈들은 다 내려온 듯 보인다. 전부 대략 이백여 마리 정도 될 거 같다.
"그냥 포탑으로 날리면 어때?"
성희의 의견이다.
"그건 언제든 할 수 있지, 우선 놈들이 왜 저기 모이는지 알아야겠어, 잠시 지켜보자"
[ 0 < 189 / 4 ]
난 운전석으로 가 메인 계기판을 계속 살폈다.
[ 0 < 193 < 0]
난 버스를 천천히 움직였다. 주 건물 방향이다. 어두워서 장애물이 잘 보이지 않아 조심스럽게 버스를 몰았다.
[ 6 < 187 < 0 ]
버스 앞으로 뒤에 쳐진 놈들이 기어가고 있다. 난 버스를 멈추고 놈들의 움직임을 바로 앞에서 살폈다.
털가죽이 모두 벗겨진 느낌의 주름진 징그러운 피부에서 뭔가 점액질 같은 게 흘러나오는지 바닥에는 놈들의 흉측한 발자국이 수없이 나 있었다. 발톱은 거의 없어 보였고 발의 모양이 정말 특이했다.
가장 뒤에 있는 놈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주 건물 쪽으로 버스를 움직였다.
놈의 발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마치 얇게 뜬 수제비 반죽 같이 흐물거린다. 그리고 거기서 찐득한 점액질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 같다. 어딘가에 잘 달라붙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특이한 발에서 찐득하게 질척이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계속 듣고 있기 힘든 소리다.
"으웩"
성희가 그 모습에 갑자기 헛구역질하더니 말한다.
"못난이는 그래도 밥맛은 떨어지지 않았는데"
그러자 작은 성희도 한마디 보탰다.
"어휴! 썩은 냄새"
실제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놈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있으니, 마치 눈으로 냄새를 맡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0 < 193 < 0 ]
마침내 놈들이 전부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정면에서 바라보는 박물관의 주 건물은 어렸을 때의 기억보다는 작아 보였지만 외형은 거의 그대로였다.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세월의 흔적을 고려해도 너무 낡아 있었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주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저놈들이 오늘 처음 온 게 아닌 거 같은데?"
건물이 무너진 곳은 보이지 않았으나 너무 더러웠다.
저 찐득이 같은 괴물은 지금 처음 여기에 나타난 게 아닌가? 오히려 여기에 자리를 잡고 어딘가 다녀오는 길인가?
여기가 혹시 저놈들의 임시 본거지? 물론 그저 근거 없는 내 추측일 뿐이다.
우리는 주 건물 앞에 버스를 세워놓고 주변을 관찰하며 기다렸다.
고요했다.
좀 전까지 놈들에게서 들려오던 질척이는 발소리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만 작게 들려왔다.
꼬르륵
질척거리는 괴물을 목격한 우리는 심한 허기가 몰려왔음에도 누구도 밥 먹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난 거실 쪽으로 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 벤치 시트에 앉았다.
"소시지나 돌릴까?"
아이들도 대답이 없다. 소시지에 반응하지 않는 아이들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릎식신도 창밖만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애들을 굶길 수는 없어서 즉석밥과 김 등을 꺼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전부 꺼냈다.
"굶진 말자"
내 말에 모두 테이블에 앉아 식구들의 반찬과 함께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오빠도 배고프겠다."
작은 성희의 말이다.
"내가 나중에 챙겨 줄게, 우선 우리부터"
난 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로 밥을 먹으며 남은 맥주를 들이켰다. 이런 상황에서 음식도 떨어지지 않고 심지어 맥주까지 마실 수 있는 버스가 아직도 신기하고 고마웠다.
그때 성운이가 테이블 옆의 작은 액정을 보며 말했다.
"가까이에 뭐가 있어요."
순간 목으로 넘어가던 맥주가 도로 튀어나올 뻔했다.
[ 1 < 192 < 0 ]
옆에 한 마리가 있다고? 좀 전에 전부 건물로 들어가서 193까지 확인했었는데?
난 급히 일어나 버스의 앞뒤와 양옆 창밖을 살폈다. 그런데 시야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혹시?'
버스 지붕에 붙어 있을 수도 있었다. 지붕의 문을 열고 고개만 내밀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괜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테이블 옆 작은 액정에서 [자동 접촉 파괴] 버튼을 눌렀다.
'어?'
어떤 진동음이 들리면서 마지막엔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고요했다.
'뭐지?'
[ 3 < 190 < 0 ]
그때 근접 괴물 탐지 숫자가 오히려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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