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폭포 너머
난 바로 운전석으로 뛰어 들어가 악셀을 힘껏 밟았다.
버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이드미러에서 버스 옆면 따라 작은 물보라가 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뭐 보이는 거 있어?"
난 전방만 주시한 채 성희에게 물었다.
"아니 아직"
성희는 거실 창밖을 살피다 말했다. 그때 갑자기 약간의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파도?'
버스가 위아래로 조금씩 요동치고 있었다. 그 순간 시커먼 지느러미가 버스 뒤쪽으로 지나가는 게 사이드미러를 통해 눈에 들어왔다.
"뒤에 있다."
내 말에 성희는 버스 뒤쪽으로 뛰어가 작은 창문으로 밖을 살피기 시작했다.
"보여?"
그녀는 어두운 창밖을 잠시 살피더니 대답했다.
"안 보이는데?"
그때 갑자기 전방에 울창한 숲이 나타나 난 황급히 핸들을 꺾었다. 급격한 곡선 구간이다.
버스가 우측으로 갑작스럽게 회전하자 지붕에서 두 사람의 희미한 비명이 들려왔다. 난 창문을 조금 내리고 소리쳤다.
"꽉 잡아!"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오른쪽 조수석 창밖에서 누군가가 날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지?'
고개를 살짝 돌리자마자 난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깜짝이야!"
그건 거대한 눈이었다.
악어 같기도 하고 뱀의 눈 같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형태의 눈알이다. 공룡의 눈이 저럴까?
묘하게 섬뜩한 붉은 기운이 감도는 거대한 눈망울은 날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거센 물보라가 조수석 창문에 튀었다. 그 너머에 수면으로 머리만 나와 있는 그 생명체는 버스와 비슷한 속도로 바로 옆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머리만 한 거대한 눈동자는 조금씩 움직이며 버스 안의 구조를 살피더니 다시 천천히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다시 급격한 커브 구간이 나타나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으아"
반쯤 열려있는 운전석 창문 너머로 지붕에 있는 두 남녀의 처절한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버스를 잘 붙들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언제 사라졌는지 그 거대한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우측 사이드미러 너머로 조금씩 멀어지는 놈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큰 머리에 달린 붉은 눈은 여전히 버스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달려들지는 않고 있었다.
'왜?'
어미는 버스를 공격하지도 않았고 지금은 쫓아오는 것조차 포기한 거 같았다.
좀 전에 봤던 그 눈망울에서도 살기는 느끼지 못했다.
그저 신기한 걸 발견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사이드미러로 점점 멀어지는 거대 장어를 뒤로하고 난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심하게 구불구불하던 강의 곡선은 서서히 완만해지고 있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폭포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와 난 통신으로 지붕에 물었다.
"다 온 거 같은데?"
시끄러운 폭포수 소리에 내 말을 못 들었는지 통신으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폭포 소리가 너무 커서 난 운전석 창문을 완전히 닫았다. 소음 차단 버튼은 굳이 누르지 않았다. 아예 모든 소리를 차단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
"내가 올라가 볼게."
버스 뒤편 계단에 앉아있던 성희가 지붕 문을 열고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잠시 조용했던 폭포 소리가 열린 지붕 문 사이로 엄청나게 크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폭포가 앞 유리 너머에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 조명이 비출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어 크기가 가늠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물보라와 소음으로 대략적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폭풍우처럼 날려 쏟아지는 물 때문에 사방의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폭포 때문에 생긴 거센 물살은 버스의 보트 모드가 상쇄시키는 듯 버스의 흔들림은 거의 없었다.
난 악셀에서 발을 떼고 액정을 살폈다. 탐지 숫자는 0이다. 창밖으론 어둠 속에서 공포스럽게 쏟아지고 있는 폭포수와 물보라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 폭포 아래로 지나가야 할 거 같아
통신으로 성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런데 준수와 은정이 저 엄청난 폭포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 애들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파라솔 펼치고 내가 여기 같이 있을게.
내가 바로 대답이 없자 성희가 내 고민을 아는 것처럼 통신으로 덧붙였다. 난 그녀의 말에 조금 안심하며 대답했다.
"너도 조심하고"
악셀을 밟자, 버스는 살짝 기우뚱거리더니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얼굴을 앞 유리에 바짝 붙이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폭포의 높이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한없이 떨어지는 거대한 물줄기의 시작점은 이 어둠 속에서는 확인 할 수 없을 것 같다.
쏴아아아
폭포 가까이 다가가자 더 심한 물보라와 파도가 느껴졌다. 그리고 창문을 닫았음에도 엄청난 소음이 버스 안까지 들려왔다.
"꽉 잡아"
내가 통신으로 말했으나 아마도 듣지 못했을 거다. 엄청난 폭포수의 소음은 마치 하늘에 큰 구멍으로 거대한 홍수가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콰아아아아
버스가 마침내 폭포수 아래로 진입했다. 그러자 창문으로는 물살 이외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동 세차장 같네'
마치 버스를 부숴버릴 것 같은 거센 물살이 끊임없이 버스를 두드렸다. 지붕의 파라솔은 괴물도 버티는 놈이니 괜찮겠지만 옆으로 넘쳐흐르는 물살이 걱정이었다.
버스가 물살에 산산이 분해될 것 같은 소음은 어느 순간 갑자기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여전히 폭포수의 소리는 시끄러웠지만 좀 전과 비교하면 마치 적막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두두둑
지붕에 두꺼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잠시 들렸다.
"다들 괜찮아?"
한동안 대답이 없어 불안한 마음이 들 때쯤 통신으로 성희의 음성이 들렸다.
- 괜찮아
난 그녀의 음성에 한숨 돌리고 전방을 살폈다. 절벽 따위가 바로 보일 줄 알았는데 전조등의 빛이 닿는 곳에서는 절벽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전방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으며 그 너머는 마치 동굴의 입구 같아 보였다. 바닥은 평평한 돌바닥이다.
'절벽이 아니고 동굴?'
예상하지 못한 눈앞의 광경에 잠시 적응하고 있을 때 성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 애들이 사라졌어.
난 버스를 조금 더 전진시켜 돌바닥 위로 올라섰다.
위이이잉
버스의 보트 모드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버스가 지상에 오르자마자 멈추고 지붕으로 뛰어 올라갔다. 성희는 지붕을 돌며 그들을 찾고 있었다.
"테이블 아래에 두 명 다 엎드려 있었거든, 밖으로 쓸려나가는 것도 못 봐서 그대로 있는 줄 알았더니"
나도 지붕 난간을 돌며 주변을 살폈다. 버스의 사방 조명이 모두 켜져 있어서 가까운 곳은 아주 잘 보였으나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준수야!"
하지만 폭포수의 소리가 여전히 시끄러워 내 외침은 멀리 가지 못했다.
"물에 빠졌을지도 몰라, 다시 돌아가자"
우리는 바로 버스 안으로 내려왔고 난 바로 운전석으로 뛰어가 앉자마자 기어를 후진으로 넣었다. 그런데 그때 동굴 안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아저씨!"
난 다시 창밖으로 귀를 기울이며 성희에게 물었다.
"들었어?"
성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수석에 앉았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떻게 갑자기 동굴 안에?"
난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세상이다. 그리고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난 후진으로 당긴 기어를 다시 전진으로 바꾸고 악셀을 밟았다.
위잉
돌바닥이 고르지 않아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버스를 몰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바닥이 평평한 편이라 버스가 들어갈 수 있다는 거다.
"무슨 광산 같기도 한데?"
준수가 말한 폭포 뒤편의 모습과 눈앞의 광경이 전혀 달라 그가 말한 모든 이야기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녀석들이 말한 바에 따르면 동굴은 높은 곳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버스는 조금씩 아래로 향하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그런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난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악셀에서 발을 떼지는 않았다. 저 너머에 뭐가 있는지 꼭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준수야! 은정아!"
성희가 창문을 조금 열고 소리쳤다. 폭포와 조금 멀어지니 그녀의 외침이 메아리치며 동굴 사방을 울렸다.
그러고 조금 더 전진하자 동굴 깊은 쪽에서 다시 아득하게 외침이 들려왔다.
"언니!"
그런데 동굴 깊이 들어왔는데도 녀석들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는 전혀 가까워지지 않고 있었다.
"환청인가?"
처음부터 무슨 확신을 두고 동굴 안으로 향한 건 아니다. 녀석들의 외침이 진짜든 아니면 어떤 위험으로 내가 스스로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말 어떤 함정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다르게 생각하면 무언가가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고 뭔가 바라는 게 있어서이지 않을까? 그게 우리의 죽음이든 아니면 또 다른 것이든
난 그 의도와 그 무언가를 꼭 알아내고 싶었다.
"아까랑 느낌이 비슷해"
성희가 겪었던 물속의 환영 이야기인 듯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그녀와 같은 소리를 듣고 있다. 환청이 그럴 수 있을까?
"어?"
전방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난 순간 섬뜩함을 느끼고 온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다. 급격하게 버스를 멈추는 바람에 목에서 작은 통증이 일었다.
눈을 비비고 살펴보니 버스 바로 앞에 학교 운동장만 한 거대한 구멍이 있었다.
순간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튀어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휴, 하마터면···."
난 사이드 브레이크를 단단히 걸고 앞 유리 너머 아래를 살폈다.
하지만 깊은 곳까지 버스의 조명이 닿지 않아 그 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난 일어나 버스 뒤편 계단으로 향하며 성희에게 말했다.
"잠시 올라갔다 올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석으로 옮겨 앉았다.
지붕에 오르자 엄청난 한기가 느껴졌다.
"으허"
입에서 하얀 김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차가운 겨울이 온 느낌이다. 얇은 셔츠 한 장만 입고 있어서 갑작스러운 추위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버스 조명만으로 밝히기 어려운 만큼 동굴은 거대해서 크기가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입구는 작은 터널 같더니만'
난 버스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거대한 구멍을 내려다봤다.
'안 보이네'
난 등에서 활을 꺼내 화살을 걸고 정신을 집중했다.
화르륵
이내 푸른 불꽃이 화살촉에서 일었다.
휙!
그리고 내 손을 떠난 화살은 거대한 구멍으로 날아갔다.
화살촉의 불빛은 주변을 아련하게 밝히며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 아래로 끊임없이 내려갔다.
"으어"
그리고 순식간에 파란 점으로 변하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화살이 바닥에 닿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 불빛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내가 중얼거리자, 팔의 액정에서 성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 숫자 올라간다.
그리고 내 눈에도 이미 액정의 숫자가 보이고 있었다.
[ 0 < 343 < 23123 ]
탐지 숫자가 또 어이없는 숫자를 표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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