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J1. 황지 공원
노인의 갑작스러운 말에 난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이 버스를 언제 봤더라?'
생각해보니 그 버스는 내가 할아버지 댁에 올 때부터 창고에 있었던 거 같다. 그러면 저 노인이 고물 버스를 판 건 적어도 이십 년이 넘는다는 얘기다.
"그래서요?"
그는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한씨 손재주가 좋긴 좋아, 어떻게 버스를 이렇게 개조했지?"
난 다시 운전석으로 가서 앉은 후 버스 조수석 창문을 열었다. 어차피 탑승객 이외에는 방어막을 통과하지 못한다.
"별 용건 없으시면 이만"
문 옆에 서 있던 노인은 조수석 창가 쪽으로 다급하게 다가오며 말했다.
"삼십 년 전에 팔았어! 이 버스"
난 악셀에 올려놓은 발을 떼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겼다.
"우리 핏덩이와 집사람이 이 버스에 마지막으로 탔었는데···."
그는 이미 우리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의 신파에 현혹되었다가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난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없이 악셀을 밟았다.
"자···. 잠깐만!"
난 못 들은 척 악셀을 밟고 반쯤 걸쳐진 바리케이드를 완전히 밀어버리며 출발했다.
더 들을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가 말하는 오래전 이야기가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중요한 건 노인의 속내다.
'그래서 어쩌라고'
쿵!
그때 버스 지붕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강릉으로 가"
"서울로 갑니다. 내리세요."
"강릉"
"서울"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던 성희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지붕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올라가지마, 위험해"
"내가? 아니면 할아버지가?"
성희는 씩 웃으며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버스 옆으로 날아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난 바로 버스의 속도를 높였다. 그때 문득 사이드미러에 비친 노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헐! 무슨 티라노도 아니고"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미러에 실제로 그런 말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난 골목을 벗어나 넓은 차도로 들어섰다. 하지만 길에 버려진 차들이 많아 속도를 내며 달리기가 쉽지 않았다.
쾅!
난 앞의 차들을 그대로 강하게 밀어붙이며 버스를 몰았다. 쉴드 수치는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훅~ 턱!
그때 할아버지는 버스 바로 옆까지 따라잡더니 사이드미러에 매달렸다.
"거참 끈질기시네!"
"강릉 가자고"
"싫다니깐요."
"가자"
"싫어요."
난 버스를 정면에 다가오는 중형 트럭 가까이 몰았다.
"윽!"
우측 사이드미러에 매달려 있던 노인은 그대로 트럭의 짐칸에 부딪힌 후 튕겨 날아갔다. 그때 성희가 다시 버스 안으로 내려오며 말했다.
"꺽다리야!"
난 액정을 살폈다. 노인만 신경 쓰다 탐지 숫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0 < 2 < 47 ]
난 버스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괴물을 찾았으나 아직 내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옥상에서 놈의 머리를 본 거 같아"
버스 지붕에 있던 성희의 눈에는 띄었던 모양이다.
지이이잉
그때 지붕에서 포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삑! 텅! 삑! 텅!
두 발의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직! 파직!
눈앞 건물 옥상에서 괴물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옥상 안쪽이라 보이진 않았다.
난 액정의 [자동 포탑] 버튼을 눌러서 껐다.
"왜?"
성희의 질문에 뭐라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엔 좀 꺼림칙한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더니 딱히 더 물어보지 않았다.
밖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성자 할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꺽다리가 모여들고 있다.
난 [투명] 버튼도 눌렀다. 오랜만이다.
투명 모드라 해도 각성자나 인간형 괴물에겐 소용이 없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버스가 보일 테지만 상관없었다. 괴물에게만 안 보이면 그만이다.
[ 3 < 14 < 32 ]
거실의 액정을 살피던 성희가 말했다.
"이게 다 꺽다리면 좀 많은데? 할아버지 혼자서 감당이 될까?"
난 창밖을 응시하며 잠시 고민한 후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내 말에 성희가 조수석에 앉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창밖을 번갈아 살폈다.
"빌라촌에서 간밤에 그 난리가 났는데도 저 노인은 마을 사람들을 돕지도 않았어. 좀 전에 들키지 않았으면 아마도 계속 각성자인 걸 숨겼겠지"
그때였다. 내가 바라보던 성희의 얼굴 너머 조수석 창문에 주름이 가득한 괴물 같은 인간이 나타났다.
"강릉···."
그런데 그 순간 노인의 옆으로 검은 형체가 보였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움직임, 꺽다리다.
괴물의 칼날 같은 발톱 여러 개가 노인의 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물의 공격을 눈치챈 노인은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 바람에 노인에게 달려들던 꺽다리는 그대로 버스와 부딪혔다.
파직!
아직 [자동 접촉 파괴]는 켜 놓은 상태였다.
"이것도 꺼야겠어."
난 액정을 터치해서 꺼버렸다. 그때 탐지 숫자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 9 < 13 < 27 ]
창밖을 살피니 주변의 낮은 건물 옥상에 시커먼 형체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수가 적지 않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드니 버스 바로 옆 건물 위에 두 마리의 꺽다리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좀 전에 버스에 닿아 터지는 동료의 모습을 목격한 모양이다. 하지만 놈들은 버스를 보지 못한다.
'영문을 모르겠지.'
파직!
그 순간 두 마리의 꺽다리 머리가 몸과 분리되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오!"
머리가 뜯긴 꺽다리의 시체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이내 연기로 흩날렸다. 그리고 생겨난 코르카는 버스가 감사히 받아먹었다.
뀌이이이이이이
그때 공중에서 들려오는 괴성에 난 앞 유리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하늘을 살폈다.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은 날괴물 떼가 보였다.
[ 19 < 32 < 124 ]
'왜 갑자기 모여드는 거지?'
그런데 이 근처로 모여드는 놈들이 딱히 우리 버스나 저 노인을 노리고 모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놈들의 움직임을 계속 살피던 내 시선에 천천히 활공하던 날괴물 수십 마리가 갑자기 지상으로 빠르게 내려오는 게 들어왔다. 처음엔 옥상의 노인에게 달려드는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황지 공원으로 가는데?"
괴물들은 모두 공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저기에 왜?"
괴물 떼와 할아버지의 싸움을 내심 기다렸는데 놈들은 그저 지나가는 길에 할아버지와 마주쳤을 뿐이었다.
그때 운전석 창문에 주름골이 가득한 얼굴이 다니 나타났다.
"강릉···."
난 검을 들었다. 그러자 그는 순식간에 검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뒤로 물러나더니 입을 움직였다.
"강···."
난 활에 화살을 하나 걸었다. 그러자 그는 버스 지붕으로 점프했다.
쿵!
"강릉 가자고"
지붕에서 지긋지긋한 쉰 목소리가 또 들려오자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씨···."
내가 검과 방패를 들고 벌떡 일어서자 성희가 내 팔을 잡았다.
"참아"
"하아"
난 잠시 심호흡을 크게 하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는 살짝 웃고 있었다.
'자주 웃으니 인상이 달라'
한 달여 언덕 동네에서 지내면서 그녀의 얼굴에 있던 어두운 그림자가 많이 사라진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자주 봤던 그 따뜻한 표정을 다시 만나니 속에서 올라오던 분노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난 활과 검을 옆에 내려놓고 악셀을 밟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알았어요. 갑시다."
"허허허 진작 그럴 것이지"
"공원으로"
"..."
나는 바로 공원 입구로 향했다. 그때 버스 옆으로 번쩍거리며 공간을 순식간에 이동하는 꺽다리 십여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놈들은 흉측한 공중 부양 할아버지를 발견한 듯 갑자기 버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투명한 버스가 보이질 않으니 허공에 떠서 이동하는 인간의 모습이 괴물에게도 기이하게 보였을 거다.
"이놈이!"
나에게 말한 건가? 아니면 수많은 칼날 같은 발톱을 향해 한 말일까?
파직 파직!
지붕에서 무언가가 뜯기고 터져나가는 소리가 연이어서 들려왔다. 나는 아까 꺼둔 [자동 접촉 파괴] 버튼을 잠시 바라보다 말았다.
그때 꺽다리 머리가 운전석 옆으로 떨어졌다.
"깜짝이야!"
떨어지는 괴물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내가 안 보일 텐데?'
버스는 투명이다. 놈은 나를 보지 못했을 테지만 난 놈의 영문을 모르는 듯한 그 붉은 눈을 코앞에서 똑똑히 봤다.
버스 앞과 옆으로 계속해서 꺽다리의 조각이 떨어져 내렸고 아이러니하게도 저 노인은 버스의 방어와 더불어 코르카 수급까지 도와주고 있었다.
난 버스로 날아오는 수많은 코르카를 바라보며 창밖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까지 버스비는 잘 받을게요!"
"크윽!"
그때 노인의 짤막한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창 옆으로 다시 날아오르는 날괴물이 보였다.
노인은 비틀거리며 지붕에서 내려오더니 겨우 다시 중심을 잡고 버스 옆 건물 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날괴물엔 약하신가?'
방해꾼의 등장으로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은 꺽다리 무리가 할아버지가 피신한 건물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십 마리는 넘어 보이는데?"
작은 이 층 건물이다. 창문과 문 따위는 부서진 지 오래고 거의 뼈대만 남은 건물이었다. 날괴물의 갑작스러운 공격 정도만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난 버스를 멈추고 그 건물을 응시했다.
처음에 줄지어 들어간 꺽다리 놈들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나며 밖으로 던져졌다. 그렇게 열 마리 정도의 꺽다리가 순식간에 조각났다.
얼마 후 꺽다리들은 더 이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머뭇거리더니 원래 향하던 공원 쪽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버스를 공원 입구 쪽으로 몰았다.
공원 앞 2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는데 아까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디로 숨어버렸나?"
난 꺽다리와 날괴물이 모여드는 방향을 살폈다. 놈들은 전부 연못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버스는 공원 안쪽으로 진입할 수가 없어서 난 공원 바로 옆의 연못과 붙어있는 골목길로 버스를 몰았다. 골목 중간쯤에 다다르자 버스 왼쪽 창문 너머로 연못의 전체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난 버스를 멈추고 창밖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뭐야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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