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J1. 두 단지
나는 블루건으로 걸어가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방어막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블루건을 발사할 수 있을까?
나를 공격했던 사람은 단 두 번의 시도로 총이 소용없다는 걸 인지했을 거다. 그들은 광역 방어막이 뭔지 모를 거고 그게 계속 유지되는지도 당연히 알 수가 없다.
난 블루건의 의자에 앉아 스위치를 잠시 살핀 후 나라에게 말했다.
"내려가 있어"
그녀는 나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 내 눈을 보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지붕 문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 총성 때는 발사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대략 우측의 건물 정도만 추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사람들에게 외치면서도 계속 그쪽 건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을 정확하게 봤다.
'세 번째 건물 12층 반쯤 열린 창문'
난 블루건을 그쪽으로 겨누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지만 광역 방어막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첫 번째 총알에 맞아 죽었을 거다.
날 죽이려고 두 번이나 시도했다.
이건 정당방위다.
난 광역 방어막을 끄자마자 바로 그 창문을 향해 블루건 발사 버튼을 눌렀다.
퉁
그리고 재빨리 광역 방어막을 켰다.
영롱한 푸른 불빛의 작은 구체는 쏜살같이 그 창문으로 날아갔다.
콰쾅!
'헉!'
그 집 창문과 외벽이 모두 부서졌다. 그리고 벽 뒤에 숨어있던 사람은 그 충격에 총을 건물 아래로 떨어트리더니 간신히 외벽에 매달렸다.
블루건 한 발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력했다.
"으아아아 살려줘!"
부서진 외벽 바닥의 구조물을 간신히 붙잡고 매달린 사람은 젊은 남성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반대편 벽에 바짝 붙어 숨어있는 다른 사람이 보였다.
난 스틱을 왼쪽으로 살짝 밀었다. 그러자 의자를 포함한 블루건은 천천히 왼쪽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어디든 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잠시 정적이 감돌더니 다시 조금씩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웅성거림 사이로 다시 애타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씨발! 살려줘! 올려달라고!"
그가 울부짖었지만, 그 집 안쪽에서 힐끗 보이는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난 매달려 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소리쳤다.
"안 쏠 테니 올려주세요!"
하지만 안쪽에 숨어있는 사람들은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난 블루건의 의자에서 일어나 옆으로 걸어 나왔다.
"죽겠네요. 저 사람"
그때 집 안쪽에서 세 명의 사람이 조심스럽게 나타나 간신히 벽에 붙어서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사람의 손을 잡았다.
"쏘지 마세요!"
그중 한 젊은 여성이 소리쳤다. 난 대답하지 않고 테이블 자리에 앉아 성희가 가져왔던 맥주를 하나 꺼냈다.
보이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맥주캔을 따자 그 작은 소리가 마치 아파트 전체를 울릴 것 같이 퍼져나갔다.
난 천천히 캔을 들어 올려 입에 가져다 댔다.
입술에 차가운 캔이 닿았다. 그리고 이내 청량하고 쌉싸름한 맥주가 내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꿀꺽꿀꺽
"캬아아아!"
난 일부러 더 크게 소리를 냈다. 그리고 곁눈질로 힐끗 저격수를 살폈다.
그는 간신히 위로 올라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는 뭔가 혼자 욕지거리하고 있는지 연신 씩씩거렸다. 죽을뻔한 걸 벌써 잊은 것처럼
난 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자, 이제 거미 행방만 알려주시면 박스 내려두고 가겠습니다."
그때 왼쪽 아파트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그 버스 뭐요?"
내가 기대하던 말이 아니다.
"당신 대체 누구야?"
이번에는 오른쪽 단지에서 들려왔다.
난 잠시 말없이 두 아파트 단지를 살펴봤다.
그러고 보니 두 아파트 단지의 건물들이 멀쩡했다. 유일한 피해는 방금 내가 부순 어느 집의 외벽뿐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웅성거림으로 추측해볼 때 생존자들이 꽤 많아 보였다.
'어떻게 그동안 살아남았지?'
갑자기 여기가 궁금해졌다. 그 난리 통에 여태껏 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운이 좋아 괴물의 공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물과 음식은 이미 떨어졌을 텐데
세상이 멸망할 거라고 미리 알고 있어서 잔뜩 마트 식품을 사재기한 것도 아닐 테고, 원래 집에 있던 음식들로는 버티기 힘들었을 거다.
그때 왼쪽 어딘가에서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제대로 봤소!"
중년 남성의 음색이다. 난 그쪽을 향해 말했다.
"단, 허위 제보 시에는 회수하러 옵니다."
그때 그 위치에서 다른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맞는 말이다. 그냥 의미 없는 경고일 뿐이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판단합니다."
너무 막무가내였을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중년 여성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싫으면 말고요. 다른 분 없나요?"
그때 성희가 지붕으로 올라오며 말했다.
"화났어?"
난 살짝 웃어주며 말했다.
"두려움이 필요해, 모두가 살려면"
"그게 무슨 말이야?"
"저들이 우릴 넘볼 생각도 못 하게 해야 해"
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알 수 없어서 좀 알아보는 중이야. 어차피 시간이 너무 흘러서 거미는 당장 찾기도 힘들 거 같고"
성희는 잠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더니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조심해"
그녀는 다시 버스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우측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들은 양손을 들고 천천히 버스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옆에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틈이 있었는지 좁은 틈을 비집고 한 사람씩 빠져나오더니 버스 앞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중년의 사내와 청년, 그리고 젊은 여성이었다.
이 난리 통에도 깔끔한 복장을 한 그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이질적이었다. 아직 새로 생긴 세탁기를 돌리지 못해 캠핑카가 있음에도 거지꼴인 우리와 너무 상반된 모습이다.
"미안하게 됐소"
앞에 서 있던 중년의 사내가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뭔가 대표하는 듯한 말투다.
난 버스 지붕 테이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총에 맞아 죽었으면요?"
난 그들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똑똑히 목격했다. 그들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당신들은 이 버스를 약탈했겠죠?"
그때 뒤에 서 있던 젊은 여성이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무슨 사람을 강도 취급이야!"
그때 옆에 있던 청년이 그녀를 말렸다.
"좀 그만하라고!"
가만히 보아하니 저들은 가족이다.
"아파트 입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제 조치였습니다."
젊은 청년이 날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난 그들을 말없이 내려다보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본론만 이야기했다.
"계속 주변 감시 중이었을 테니 거미를 목격하셨겠네요?"
"그렇습니다."
중년의 사내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어디로 갔죠?"
내가 질문하자 왼쪽에서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오며 소리쳤다.
"내가 먼저 이야기했잖아요!"
6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다. 남성은 새마을운동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 뒤로 살벌한 표정의 아주머니가 날 노려보며 따라오고 있었다.
이 동네 대체 뭐지?
"천 반장, 천박하게 이게 무슨 짓인가?"
깔끔한 중년인이 그를 보며 묵직하게 말하자 새마을 모자 남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노려봤다.
"이 대표야 내가 아까 먼저 얘기했잖아"
난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자 두 분 다 똑같이 드릴 테니 본 거나 자세히 말씀하세요."
어차피 분란 없게 넉넉히 나눠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슬슬 그러고 싶지 않아지는 중이었다.
"이 대표는 안 받아도 되잖아!"
새마을 모자 아저씨가 버럭 화를 냈다. 이들에게는 또 어떤 사연이 있길래 내가 이해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
거미는 이미 멀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거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보내 짜증이 올라왔지만, 그보다 점점 이들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생존자다. 그동안 만났던 그룹보다 더 많은 생존자가 있는 거 같다.
이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정보가 거미의 행방 하나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천 반장님, 또 사고 치시려고?"
차분하던 중년인의 표정이 살벌하게 변했다.
내가 괜히 먹을 거로 이 사람들을 자극한 건 아닐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냥 평범한 버스를 타고 평범한 생존자로 그들에게 접근했다면 아마도 총에 맞아 뒈지고 가진 거 다 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섬뜩하고 또 분노가 올라왔다.
그래서 내 감각이 더 예민해진 걸까?
아파트 단지 너머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생존자가 있다면 아이들도 있을 거고 그럼 아이의 울음소리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울음이 너무 처절하게 들렸다는 거고 잠시 들리다 누군가가 강하게 그걸 저지한 듯 소리가 뚝 끊겼다는 거다.
'뭔가 좀 수상한데?'
다시금 거미의 행방보다 여기가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에게 총을 쏜 이들에게 너무 나약하게 대한 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이들에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나보다.
"이 대표님?"
나는 여전히 으르렁거리는 그들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가 살벌하게 들렸나? 그들은 갑자기 대화를 멈추고 날 바라봤다.
"어디 대표님이신가요?"
내가 묻자 그는 갑자기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표정 변화가 예술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 이대한이라고 해요"
"아···. 네"
난 왼편의 새마을 모자 아저씨에게 물었다.
"천 반장님은 아파트 반장이시고요?"
그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
전형적인 시골 반말이다.
"근데 이 버스는 뭐야 대체?"
새마을 아저씨는 계속 버스를 살피며 물었다. 그런데 그 눈빛에서 묘하게 탐욕이 흘러넘치는 느낌이 들었다.
"뭘 그리 살펴?"
그때 할아버지의 걸걸한 음성이 지붕 문에서 들려왔다. 그는 천천히 지붕으로 올라오더니 난간으로 다가가서 사람들을 하나하나 노려봤다.
"어르신은 누구···?"
말끔한 중년인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전직 여기 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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