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절벽
난 우리를 바라보는 어미에게 손을 들어 감사를 표했다.
"아까 우리가 새끼들 여럿 죽였는데 대체 왜?"
성희가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그 점이 의아했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어미의 지느러미 사이에서 파란 두 마리의 새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까 내가 검으로 해치운 놈들과 크기는 비슷했지만,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특히 저 푸른 빛은 마치 블루건의 탄환 색상 같은 영롱한 느낌이다.
그 순간 성희도 작은 탄성을 질렀다. 난 신비하게 헤엄치는 파란색의 새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 내가 잡은 놈들은 아마도 다른 종인 거 같아. 야생에서는 새끼를 노리는 놈들이 흔하거든, 어미와 다른 형제들이 둥지를 비운 사이에 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왔었겠지, 하필 그때 우리 버스가 나타난 거고"
어떻게 보면 내 편의대로 추정할 거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날 가만히 바라보는 어미의 눈빛은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거 같았다.
난 싱긋 웃어 보였다. 어미의 근처로 크고 작은 다른 녀석들이 장난치듯 헤엄쳤고 귀여운 파란 새끼 두 마리는 부끄러운 듯 어미의 지느러미 속을 파고들었다.
난 수평 레버를 위로 끝까지 올렸다. 그러자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버스 옆 창문으로 작은 공기 방울이 흘러나오며 버스는 다시 수면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촤아아!
버스가 수면으로 떠 오르자, 사방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났다. 창밖으로 지붕에서 물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니 샤워라도 한 듯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버스를 따라 어미와 다른 녀석들도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휴, 그런데 이제 어떡하지?"
성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어미의 몸짓을 유심히 관찰하다 입을 열었다.
"따라오라는 거 같은데?"
지능이 있고 여기에 계속 살고 있었으며 사람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 생명체라면 이 부근에 살고 있던 생존자들의 위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몸짓은 분명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하는 거다.
어미가 상류 쪽으로 조금 가다가 멈추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앞장서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크고 작은 녀석들도 따라갔다.
난 핸들에 손을 올리고 악셀을 밟았다.
우우우웅
버스는 다시 강을 거슬러 그렇게 상류로 향했다.
"사람보다 믿음직하네"
성희가 듬직한 어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까 사라진 준수와 은정, 두 남녀가 떠올랐다. 녀석들은 우리가 그 폭포 뒤쪽, 그러니까 동굴을 통해 그 구멍 가까이 들어가길 바랐던 거 같다.
녀석들은 폭포수에 휩쓸려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의도를 가지고 어딘가로 숨어든 거다.
"왜 그랬을까?"
성희의 질문에 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녀석들을 만나고부터 계속 들었던 이상한 느낌이 떠올랐다.
'아저씨라니'
그때 익숙한 곡선 구간이 나타났다. 여기만 지나면 완만하게 폭포까지 이어진다.
"어?"
그런데 아까 우리가 틀었던 오른쪽이 아니라 어미는 좌측 구석으로 향했다.
"저기에 물길이?"
거대한 어미의 덩치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물길이 좌측 구석에 숨겨져 있었다. 그 위로 울창한 나뭇가지가 드리워져 있어서 아까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우우웅
버스 핸들을 돌리며 계속 어미를 따라 작은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좁았던 강폭이 다시 넓어지기 시작하더니 폭포수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보다는 작은데"
성희가 버스 조명에 비친 전방의 폭포를 바라보며 말했다. 높이는 여전히 가늠되지 않았지만, 이 폭포는 아까보다는 가늘었다. 폭이 대략 오 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건 폭포수 뒤쪽의 절벽에 붙어있는 덩굴 사다리였다.
그때 어미가 폭포수 근처에 멈추더니 뒤돌아 우리를 잠시 바라봤다.
"고마워"
내가 손을 흔들자, 거대한 몸집은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 바람에 물보라가 일었고 물방울이 유리창에 튀었다.
난 사이드미러로 울렁이는 파도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악셀을 천천히 밟았다. 폭포 우측에 있는 바위는 평평했고 그 너머에 덩굴 사다리가 있었다.
우우웅
바닥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리며 버스는 지면으로 올라섰다.
나는 그대로 사다리 바로 앞까지 버스로 다가가 천천히 멈췄다.
고개를 들어 절벽 위를 살피니 사다리는 까마득한 어둠 속까지 한참 이어져 있었다. 버스 조명이 위로는 향하지 못해 끝까지 보이진 않았다.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네"
성희가 고개를 들고 사다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가까이 있는 덩굴 사다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너무 낡았는데?"
아주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당기면 끊어질 것 같은 모습이다. 썩어버린 동아줄이 이런 모습일까?
여기 식물의 생태 환경을 알지는 못한다. 그런데 지금 보는 이 덩굴의 모습은 마치 수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썩어 문드러진 모습이었다. 이건 그냥 눈으로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어쩌지?"
저 위에 동굴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저 부실한 썩은 덩굴 사다리로 올라가다가는 그대로 바위에 떨어져 곤죽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잠시만"
난 버스 지붕으로 올라가 절벽 위를 다시 살폈다. 하지만 위를 비추는 조명이 없어 지붕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팔에 붙어있는 간이조명을 켜고 위를 비춰봤지만, 이정도 작은 조명으로 보일 거리가 아니었다.
생존자가 있다면 응답할지도 모르니 소리를 질러볼까, 했으나 폭포수의 시끄러운 소리에 내 음성이 들릴 리 없었다.
난 등에서 활을 꺼내 화살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화살촉에 불을 일으켰다.
휙!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빠르게 높이 날아갔다. 하지만 맞출 대상이 없는 탓에 화살은 얼마 올라가지 못하고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전방으로 각도를 줘서 발사한 덕분에 화살은 버스로 떨어지진 않았다.
난 폭포 아래로 떨어져 강물에 흘러가는 화살을 바라보며 블루건에 앉았다.
블루건의 각도를 최대한 위로 올리려 했으나 직각으로 세워지진 않았다. 대략 70도 정도까지가 한계였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나은데?'
진화 전에는 이것보다 더 상하 각도가 좁았었다.
난 폭포수와 절벽 사이를 조준하고 발사 버튼을 눌렀다.
퉁!
블루건의 푸른 탄환은 그대로 절벽을 따라 날아갔다. 그리고 그 빛에 희미하게 절벽의 윤곽이 드러났다.
푸른 탄환은 화살보다는 더 높이 올라가더니 잠시 공중에서 멈췄다. 목표가 없는 탓에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 한 번 그리고 다시 떨어질 때 한번, 총 두 번을 보고 나니 멀고 어두웠지만 대략적인 동굴 위치와 지형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폭포의 높이는 대략 오십 미터 정도, 동굴은 대략 삼십 미터 정도, 어림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버스가 절벽 가까이 붙어있어 광역 방어막 내에 덩굴 사다리가 있었다. 난 지붕 앞쪽으로 걸어가 부실한 덩굴을 만졌다.
부스스
손으로 만진 부분이 그대로 바스러지며 버스 지붕 위로 떨어졌다. 사방으로 퍼지는 폭포수의 물방울 때문에 축축할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젖어있지는 않았다.
"이건 안 되겠는걸"
사다리의 상태가 이런데도 이곳으로 오자고 한 준수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도 녀석들이 이전에 했던 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진실과 거짓이 의도를 알 수 없게 뒤섞여 있었다.
녀석의 얼굴을 잠시 떠올리다 보니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인의 평균 얼굴이어서 그런 건가?
- 어때?
통신으로 성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다리는 못 쓸 거 같아"
난 절벽 주변과 숲을 살폈다. 버스가 올라가 있는 평평한 바위를 제외하고는 주변이 전부 절벽이었다. 아니면 아예 크게 돌아서 반대편 어딘가로 가야 할 것 같은데 그 방향은 짙은 정글 숲이다.
'이래서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건가?'
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좀 전에 봤던 절벽의 윤곽을 머리에 떠올렸다. 암벽을 타고 기어오르기에도 쉽지 않은 지형이다. 게다가 장비도 없다.
"할 수 없네"
이 방법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다를 수가 없을 것 같다.
난 블루건에 앉아서 성희에게 통신으로 말했다.
"버스 후진 부탁해, 바위 끝까지"
- 뭐? 왜?
"이 방법뿐이다."
잠시 통신으로 그녀의 음성이 들리지 않더니 이내 그녀가 대답했다.
"알았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스는 천천히 후진하기 시작했다. 난 아까 봤던 동굴의 위치를 다시 떠올리며 블루건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잡았다.
- 여기가 한계야, 더 멀어지려면 왼쪽 강물로 다시 들어가야 해
"이 정도면 됐어, 폭포에 절벽이 가리면 안 되니까"
각도가 바뀌면 내 기억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여기 위치가 현재로선 최선이다.
난 블루건으로 바닥에서 사람 키의 반 정도의 높이를 겨눈 후 블루건을 쐈다.
퉁!
그리고 푸른 탄환은 절벽을 향해 순식간에 날아갔다.
콰쾅!
돌의 파편이 버스까지 날아왔다. 내 얼굴 앞으로 날아오는 머리만 한 파편을 피하며 부서진 절벽을 확인했다.
사람 두 명 정도 올라갈 수 있는 깊이의 구멍이 생겼다.
- 설마?
"어"
구멍의 깊이는 적절해 보였다. 이제 계산한 대로 쏘면 된다.
난 연이어 눈으로 짐작해 둔 위치로 블루건을 발사했다.
퉁 퉁 퉁 퉁 콰쾅! 쾅!
사람 크기만 한 구멍이 절벽 위로 지그재그 계단 모양으로 뚫렸다.
높이가 높아질수록 각도가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내가 원했던 모양과 거의 비슷하게 동굴 근처까지 절벽에 구멍을 만들었다.
계속되는 블루건의 푸른 빛 덕분에 그나마 지형을 다시 확인하며 발사할 수 있어서 생각보다 작업은 어렵지 않았다.
- 하아
성희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뭐 이정도 공사를 한다고 누가 자연 훼손으로 여기서 잡아갈 것도 아니고, 그저 시끄러운 소리로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주변에 알리는 꼴이라 그게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다.
아까처럼 숲을 태워버릴 때 일었던 감정 과잉이 떠올랐지만, 그때는 나도 사실 숲에 잠시 홀렸던 거고, 어차피 우리는 숲을 떠날 생각이었으니까
"다가가자"
절벽의 파편이 여전히 조금씩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저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버스가 다시 절벽 가까이 접근하는 순간 주먹만 한 돌덩이가 내 발등 위로 떨어지는 게 보여 급하게 피했다.
쿵!
버스 지붕에 떨어진 파편은 다시 튕겨 올라왔다.
깡!
난 검을 뽑아 바로 돌덩이를 쳐냈다. 그런데 내가 언제 등의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는지 그 순간이 기억나질 않았다.
'음?'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다. 난 고개를 들고 절벽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때 지붕 문으로 성희가 올라왔다.
"내가 올라갈게. 넌 여기 있어"
난 그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같이 가자, 혼자 위험해"
하지만 그녀는 대답 없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잠시 날 바라봤다. 그 거부할 수 없는 눈빛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넌 버스를 지켜야지"
그녀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절벽의 구멍으로 뛰어 올라갔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