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J1. 진화된 버스
난 그녀의 입술을 계속 바라봤다. 그녀는 계속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진공의 공간에 갇혀 있는 듯한 먹먹함이 느껴졌다.
"진우야"
성희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초점 없던 내 시선은 그제야 그녀의 눈을 발견했다.
그녀의 속눈썹 너머 맑은 갈색 눈이 걱정을 가득 담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망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정신 차려"
뒤에서 나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의 소음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디 아프냐? 콜록"
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미안···. 잠시 딴생각에···."
그때 내 시선에 버스 내부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맞다! 진화!'
버스의 크기는 이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두 개의 이층 침대 구성도 같았고 지붕으로 향하는 계단의 위치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테이블의 모양이 조금 달라졌다.
'변환 테이블인가?'
그때 성희의 음성이 들렸다.
"세탁기?"
성희는 조수석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 쪽으로 뛰어갔다. 싱크대 아래에 드럼세탁기가 생겼다.
"버튼이 한 개야"
나라의 말에 성희가 대답했다.
"세탁물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나 봐, 건조도 될까?"
성희가 세탁기의 문을 열어보며 말했다. 마치 새로운 가전제품을 들인 분위기다.
"싱크대도 넓어졌어, 전자레인지가 광파오븐으로 바뀌었네?"
"욕실도 더 넓어졌어!"
성희와 나라는 진화된 버스의 내부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난 운전석의 대시 보드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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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카 [5/10000] [0.08/H]
방어막 [300/300] [1 Kc]
광역 방어막 5m [OFF]
탐지 [ 0 < 0 < 0 ]
자동 접촉 파괴 [ON]
탄약 [50/50] [1 Kc]
전체 투명 [OFF]
승차정원 [6/8]
차주 [한진우]
승객 [장성희] [추방]
승객 [최성운] [추방]
승객 [최성희] [추방]
승객 [나라] [추방]
승객 [김준배]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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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경된 항목보다 아직 남아있는 성운이 남매의 이름을 잠시 바라봤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운한 감정이 사라지자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말 못 할 어떤 사연이 있을 거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도 남이었으나 또 한때 우리는 가족이었으니까
이번에도 난 [추방]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승차정원은 늘었다. 그런데 침대에 누울 수 있는 인원은 6명이다. 운전석 위 나 혼자 쓰고 있는 벙커 침대도 두 명은 잘 수 있었다.
'그런데 8명이면 나머지 두 명은?'
인원을 꽉 채울 생각은 없었지만, 그저 승차정원이 궁금해서 잠시 뒤돌아봤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테이블이었다.
'변환 침대군.'
언젠가 동영상으로 본 기억이 났다.
그때 액정의 다른 항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방어막 [300/300] [1 Kc]
'오! 이전에 100이었던 거 같은데? 코르카 한 개로 300이나?'
효율이 정말 높아졌다. 역시 업그레이드는 쓸데없는 기능만 늘어나는 것보다 효율이 우선이다.
'그런데 광역 방어막?'
난 잠시 그 부분을 바라봤다.
'5미터라···.'
그리고 이내 난 그 기능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반지름인지 지름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버스를 기준으로 주변 5m까지는 방어막을 확장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지붕까지 커버가 될 거다.
광역 방어막의 수치는 따로 없는 걸 봐서는 기본과 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그리고 켜고 끌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타···. 탄약?'
난 그 부분에서 시선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전에 있던 자동 포탑은 보트 모드를 위해 희생해서 사라졌다. 아깝긴 했지만, 보트 모드도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버스에서 공격할 수 있는 기능이 사라져 내가 활을 쏘는 것 말고는 원거리 공격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포탄이 아니라 탄약이라고?'
이건 지붕에 올라가서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 난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전체 투명?'
이전에는 그냥 [투명] 버튼이었다. 그런데 전체?
생각해보면 버스는 원래 기본으로 투명 상태였다. 물론 모든 생명체에게 투명은 아니었다. 각성자와 인간형 괴물은 버스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버스를 볼 수 있는 것으로 각성자인지 판별도 했었다.
그런데 각성자와 인간형을 제외하면 항상 투명이 유지되는 바람에 일반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두려움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괴물에게 보여서 어그로도 끌어야 했는데 투명 상태가 유지되어 불편한 점도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 진화 후에 그 투명 기능을 켜고 끌 수 있는 버튼이 생겼다. 그런데 버튼이 생기고 나서는 가끔 혼동한 적이 있다.
마치 각성자와 인간형에도 투명이 될 거 같은 착각이다.
지금은 정말 모든 생명체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 기능이 적용된 거 같다. 테스트를 해봐야 확실하겠지만 아마 그럴 거다. 그래야 [전체 투명]이라는 이름이 설명된다.
난 [전체 투명] 버튼을 누르고 버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디가?"
내부를 설레는 표정으로 살피던 성희가 물었다.
"밖에 살피러"
난 버스 밖으로 나가서 버스를 바라봤다.
"오오."
그냥 전체 투명이 아니었다. 나조차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투명이다.
적어도 차주인 나, 조금 더 해서 승객인 다른 사람들에게는 투명이라 해도 다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열린 옆문을 제외하고는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
성희와 나라가 날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들도 나와 같은 표정이 되었다.
"콜록, 뭔데 그러냐?"
할아버지도 버스에서 내리더니 기지개를 켜며 뒤를 돌아봤다.
"어? 이게 뭐야?"
"이제 완전한 투명이 되네요"
난 설레는 음성으로 말했다.
다들 버스 주변을 돌며 열린 문을 제외한 다른 곳을 살폈다. 투명한 버스에 손을 뻗어 보기도 하고 버스 아래와 위쪽을 살폈다.
그때 성희가 손으로 버스를 더듬으며 버스 뒤쪽 사다리를 어림해 잡더니 지붕으로 올라갔다.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아"
아래에서 바라보는 우리도 그 모습이 정말 기이하게 보였다.
그때 왼팔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물감이 느껴져 소매를 걷었다.
"어?"
난 테이블 액정을 분리해서 팔에 끼우지 않았다. 그리고 이전에는 분리 액정을 팔에 끼우면 좀 불편한 감이 있었다. 특히나 싸울 때 엄청나게 걸리적거렸다.
그런데 마치 팔목에 딱 맞는 크기로 기다란 스마트 워치같이 내 왼쪽 손목부터 팔꿈치 직전까지 휘어진 액정이 채워져 있었다.
난 팔에서 액정을 빼보려고 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아예 고정인가? 충전도 필요 없나?"
뭐 상관없었다. 이물감은 익숙해지면 사라질 거다. 테이블 액정 빼는 걸 깜박하는 것 보다 이렇게 팔에 딱 맞게 항상 채워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에너지는 내 생체 에너지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액정에서 [전체 투명]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액정의 버튼에서 '전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투명] 버튼으로 바뀌며 [OFF] 되었다. 그리고 버스는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어? 고장인가?'
내가 다시 [투명] 버튼을 누르자 버스는 다시 투명 상태가 되었다.
'아하'
단지 내가 그 기능을 인지할 때까지만 표시되던 글자였나보다, 굳이 계속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버튼 명칭이야 어떻든 상관없다. 이제 깔끔하게 모든 생명체에게 투명이 될 테니 제대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다.
물론 인간형 괴물까지 테스트해본 건 아니지만 차주나 각성자도 안 보이는 데 인간형 괴물이 보일 리가 없을 거다. 뭐 보여도 할 수 없고
난 다시 투명을 껐다. 그제야 버스 외관이 아주 깨끗하다는 걸 발견했다.
검은 눈의 터진 사체와 피로 엉망이 되었던 버스는 진화로 다시 깨끗한 새 차로 변해 있었다.
'녀석의 자취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난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며 버스 지붕으로 올라갔다.
'음···. 이건 무장 험비?'
내가 무장 험비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보고 기관총을 쏴 본 적은 있다. 현실? 아니 게임에서
액정에서 봤던 탄약은 여기서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자동이라는 말은 없었으니 직접 쏴야 하는 거 같은데···.'
기관포같이 생긴 총 뒤에는 의자도 있었다.
난 바로 의자에 앉아 위의 레버들을 살폈다. 기관총 같다고 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총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방아쇠 같은 건 없었고 기다란 모양에 팔을 올리고 버튼을 누르는 식이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조이스틱 같은 게 있었다.
난 바로 좌측으로 스틱을 조정했다.
위이이이잉
의자를 포함한 기관총은 빠른 속도로 왼쪽으로 회전하다 멈췄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옆으로 튕겨 나갈 뻔했다.
난 천천히 조이스틱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속도도 조절할 수 있었고 좌우 포함 180도 정도로 회전할 수 있는 것 같다. 위로는 40~50도 정도의 높이로 기울어졌다.
뀌이이이이
그때 아주 멀리 날괴물 몇 마리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타이밍 기가 막히는군.'
난 바로 조준경으로 놈들을 조준하고 발사 버튼을 눌렀다.
퉁 퉁 퉁 퉁 퉁 퉁
동시에 여러 발의 파란 색 불빛 탄환이 날아갔다.
"음?"
이전의 자동 포탑처럼 목표물을 따라가서 정확히 타격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뀌익!
그리고 한 놈이 한 발을 맞는다고 바로 죽는 것 같지도 않았다.
'코르카 1개에 50발이나 주는 이유가 있었네'
이건 좀 더 연습이 필요해 보였다. 난 날개가 찢어져 아래로 떨어지는 놈에게 추가로 몇 발을 더 발사했다. 아주 멀리서도 맞는 걸 보니 사정거리는 꽤 길어 보였다.
몇 마리가 회색의 연기로 변했다. 그런데 코르카는 날아오지 않았다.
'너무 먼가?'
난 의자에서 일어나 팔의 액정을 살폈다.
탄약 [39/50]
그런데 탄약 수치보다 다른 부분이 그제야 내 눈에 들어왔다.
코르카 [5/10000]
진화로 코르카 다 쓰고 이제 5개 남았다. 기능이 많아지고 승객도 많아서 안심할 수 없는 숫자다. 자칫 잘못하면 다시 방전될 수 있었다.
그리고 10,000개?
다음 진화는 만개다. 까마득한 양이다.
난 지붕에서 추가로 바뀐 부분이 없는지 살폈다. 지붕의 테이블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테이블 옆에 있던 작은 액정도 표시되는 내용만 조금 바뀌었을 뿐 크기나 위치도 그대로다.
난 무심코 지나쳐 다시 지붕 문으로 향하는데 내 팔의 액정에는 없던 버튼이 보인 것 같아 멈추고 돌아봤다.
"파라솔?"
난 테이블 자리에 앉아 [파라솔] 버튼을 누른 후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살짝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생각하던 우산형 파라솔은 아니었다. 머리 위 대략 2미터쯤 높이에 동그란 원형의 막이 생겼다. 파란 반투명의 막이다. 그리고 마치 태양의 위치를 알고 움직이는 듯 테이블 자리에 그늘을 만들어 줬다.
'허허···.'
이전에 커다란 우산 덕분에 지붕 위의 생존자들이 도움을 받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난 파라솔을 다시 끄고 버스 아래로 내려가 운전석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버스에 들어와 있었다.
난 악셀을 밟았다.
'코르카 수거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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