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J1. 거머리 괴물
입밖에 없는 놈들이 냄새는 또 어떻게 맡았을까? 냄새를 맛으로 여기는 혀를 가지고 있나?
하긴 내 얄팍한 상식으로 놈들을 이해하려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어쨌든 할아버지의 발이 놈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있던 십여 마리의 괴물이 할아버지에게 껑충거리며 다가가기 시작했다.
등의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소주병과 같이 있던 탓에 검의 손잡이가 시원했다.
난 바로 할아버지에게 접근하는 놈들을 검으로 내려찍었다.
뀌익!
놈이 괴성을 질렀다. 그런데 몸은 뚫리지 않았다. 질긴 고무 같은 느낌이다. 난 검으로 잘라보려 했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찌르고 베어도 움직임만 조금 느려질 뿐 목적한 대상으로 향하는 몸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무슨 거대 거머리 같다. 인간 거머리가 아니라 진짜 괴물 거머리다.
피가 여전히 흐르고 있던 할아버지의 발가락을 다른 놈이 또 덥석 물었다.
"으악!"
할아버지의 엄지발가락이 아예 뜯어먹히고 있었고 나라와 성희가 뛰쳐나와 근처의 놈들을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찍! 뀌익!
하지만 놈들은 죽지 않았다. 찌그러지고 납작해져도 다시 금세 몸을 복원시키고 대상으로 기어갔다. 깡충깡충 뛰어가는 놈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안으로 내려가세요! 그리고 다들 버스 밖으로 던지거나 차버려!"
난 근처에 있는 거머리 괴물을 발로 걷어찼다. 죽이기 힘들면 우선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발에 차인 놈들이 날아가다 높은 난간에 부딪혀 다시 안으로 떨어졌다.
"젠장!"
할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발을 물고 있는 괴물을 뜯어내려 했지만 여의찮았다. 놈은 오른 엄지발가락을 거의 다 뜯어먹고도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놈을 때어내려던 할아버지의 손에 피가 튀었다. 그러자 그 손을 향해 두 마리가 동시에 튀어 올라왔다.
난 뛰쳐나가 검을 휘둘렀다.
뀌익!
검에 맞은 놈이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나머지 한 놈이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물었다.
"윽!"
뒤이어 팔과 종아리까지 괴물이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 씨!"
성희와 나라는 놈들을 밖으로 걷어차거나 집어서 던지기 바빠서 이쪽으로 다가올 수 없었다. 겁에 질린 네 명의 일반인은 테이블 위로 올라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또 다른 놈들이 달려들었다. 이젠 모든 팔다리에 괴물들이 달라붙어 살점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놈들은 얇은 셔츠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는 듯 살점과 같이 사정없이 씹어먹었다. 그사이 몸집이 더 커진 것 같았다.
"끄아악!"
할아버지는 더는 저항하지 못한 채 연신 고통의 비명만 질러댔다.
'위험한데'
이대로라면 할아버지는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달라붙어 버린 놈들을 뜯어내면 출혈은 더 심해질 거고 더 많은 놈들이 달려들 거다.
'결국 이렇게 되나?'
난 이후를 고민했다. 결국 그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테니까, 적어도 우리라도 살아남아야 하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버스 앞쪽에서 푸른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예전에 봤던 그 불빛이다.
메뚜기가 양손에 푸른 빛을 휘감고는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눈이 반쯤 뒤집힌 채 고통의 비명을 지르던 할아버지는 메뚜기가 자신을 죽일뻔한 그 빛을 또 발산하며 다가오자 경기를 일으켰다.
"저···. 저리 가!"
메뚜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할아버지 앞에 멈춰 섰다.
그의 양손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푸른빛은 그와 할아버지, 그리고 나의 얼굴까지 시퍼렇게 비췄다.
나라와 성희가 고개를 돌려 빛에 물든 우리를 바라봤다.
"뭐야?"
그때 메뚜기는 그 두 손을 할아버지에게 뻗었다.
"으아악!"
할아버지는 이전의 고통과 현재의 고통, 그리고 미래의 고통까지 동시에 느끼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하라바이 움직이지 마시라요"
"네···. 네놈이!"
치이이익!
녀석의 푸른 빛을 휘감은 손이 할아버지 발을 끈질기게 뜯어먹고 있던 괴물에게 닿았다.
그 순간 놈은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하더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흩어졌다. 코르카는 나오지 않았다.
"오!"
난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치이익! 치이이익!
메뚜기는 할아버지 몸에 붙어있는 모든 놈들을 그렇게 괴이한 푸른 빛의 손으로 다 태워버렸다. 하지만 그를 뜯어먹던 괴물이 사라졌다 해도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그 피 냄새를 거부하지 못한 괴물들은 여전히 그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버스 안으로!"
내가 외치자 성희와 나라가 뛰어와 할아버지를 부축해 지붕 입구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 성희의 종아리를 향해 괴물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그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내 목숨이 위험한 게 아닌데도 이 상태로 진입을?
난 성희에게 달려들던 괴물을 손으로 잡아 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뒤돌아 여전히 근처에 있는 놈들을 하나하나 잡아서 밖으로 집어 던졌다.
그런데도 아직 수십 마리가 보였다. 일부는 기어가고 있었고 어떤 놈들은 징그럽게 점프하며 뛰어다녔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라 해도 나 혼자 놈들을 전부 밖으로 던지는 건 힘든 일이다.
그때 메뚜기의 손에서 번개 같은 섬광이 얇고 가늘게 주변으로 퍼지는 게 보였다.
그 섬광을 맞은 놈들은 바로 시커멓게 타들어 가 연기로 사라졌다.
시간의 흐름이 다시 풀렸다.
할아버지는 무사히 버스 안으로 피신했고 성희와 나라는 다시 합류했다.
"성희야 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달려들던 괴물의 몸통을 순식간에 잡아채더니 사정없이 밖으로 내던졌다. 날아가는 놈의 몸에 메뚜기의 섬광이 번쩍였다.
섬광에 맞은 괴물은 괴성도 지르지 못하고 그렇게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십여 마리
한 마리가 테이블의 사람들에게 점프하며 다가갔다.
"으어어!"
부부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아이는 눈을 감고 엄마 품에 안겨 있었지만, 그 엄마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런데 갑자기 메뚜기의 섬광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녀석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녀석의 체력이 바닥난 것 같다. 저런 능력을 무제한으로 쓸 수는 없었을 거다. 이제 십여 마리의 괴물은 우리가 상대해야 한다.
"일단 던지자!"
난 테이블 위로 뛰어오르던 놈의 모가지를 움켜쥐었다.
뀌이이
내가 강하게 잡고 있자 놈은 날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강하게 몸부림쳤다.
저 작은 입에서 나오는 괴성도 다른 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작은 입에 달린 수많은 가시 같은 이빨을 바라보고 있으니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빨려 들어가고 싶다는 이상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뭐···. 뭐지?'
내가 놈을 움켜쥔 채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 나라가 소리쳤다.
"뭐해? 던져버려!"
난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봤다. 성희와 나라가 지붕에서 날뛰는 놈들을 붙잡으러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점프하거나 기어 다니는 게 아니라 놈들은 이제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너무 빨랐다.
뀌이이이!
그때 내 손에 잡혀있던 놈이 더욱더 거세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달라졌다.
어느새 놈의 몸집이 불어나 있어 하마터면 손에서 놓칠뻔했다. 난 다시 양손으로 거세게 놈을 움켜쥐었다.
'어라?'
놈의 몸통에서 뭔가가 튀어나와 있는 게 느껴졌다.
'다리?'
여섯 개의 작은 다리가 점점 더 길어지더니 마구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뭔 이런 놈이!"
난 조금 커진 놈을 강하게 잡아 뜯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엇!"
순간 놈을 놓쳤다. 온몸으로 저항하던 놈은 마침내 내 손에서 벗어나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난 본능적으로 검을 뽑아 정확히 놈의 몸통 가운데를 겨누고 휘둘렀다.
뀌익!
놈의 몸통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초록의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두 개의 덩어리로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진 놈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고 난 사정없이 검으로 놈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러자 놈의 움직임이 천천히 멈췄다. 몸의 뒷부분도 사후 경련을 일으키듯 파르르 떨더니 이내 멈췄다.
그리고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조심해!"
그때 내 뒤에서 바람이 느껴졌다. 어떤 형체가 공기를 가르며 달려드는 느낌이다.
난 눈을 감고 그 흐름을 느꼈다. 괴물의 흉측한 입에서 불쾌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놈의 뭉텅한 몸뚱이가 공기를 불규칙하게 가르며 혼란스러운 흐름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괴물의 몸통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난 눈을 뜨지 않은 채 검을 뒤쪽으로 휘둘렀다. 힘은 크게 들어가지 않았다. 질긴 놈의 가죽은 힘으로 자를 수 없었다. 좀 전에 본능적으로 반으로 갈라버린 감각을 다시 상기했다.
놈의 흐름을 잘라 놓아야 한다. 난 그 느낌으로 검을 휘둘렀다.
마치 이미 몸에 체득되어 있던 어떤 동작이 현재 기억의 벽을 뚫고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뀌익!
반으로 잘린 놈의 머리가 내 왼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남은 반쪽은 내 오른쪽으로 날아갔다. 중앙으로는 놈의 초록 피가 흩날렸다. 난 고개를 숙여 그 끈적한 액체를 피했다.
시커먼 연기가 사라지자 바닥에는 초록의 코르카 두 개가 놓여있었다. 좀 전에 잡은 놈과 방금 잡은 놈이 떨군 것이다.
"좀 크니까 잡히네!"
난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건 지붕 위에 아직 남아있던 팔뚝만 하게 커져 버린 놈들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조용하다 싶더라니'
지금까지 본 녀석들의 모양과 거의 비슷했다.
단, 크기가 버스보다 크다는 점만 빼고는
거대한 괴물의 흉측한 입이 우리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없으니 보고 있는 거는 아닌가?'
그때 나라가 소리쳤다.
"어···. 어미다!"
거대한 머리에 유일하게 달린 놈의 징그러운 입 안에는 좀 전에 잡아먹은 걸로 보이는 어떤 형체의 꼬리가 보였다.
"장어 먹었냐?"
지붕 위에 있던 조금 더 자란 새끼 괴물들은 이미 나라와 성희가 대부분 찢어발겼고 그 덕에 생긴 코르카는 버스가 바로 흡수했다.
새끼는 이제 한 마리 남았다. 그런데 그사이 놈은 작은 돼지만큼 자라있었다.
난 고개를 들어 어미로 보이는 거대한 괴물을 관찰했다. 놈의 몸통은 물에 반 정도 잠겨 있는 것 같았고 머리와 두 개의 다리만 수면 위로 올라와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뀌이이이이이이이!
어미 괴물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부근에 다른 괴물이 있다면 전부 듣고 이리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그 소리와 함께 놈의 입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 정도면 괜찮았겠지만, 그 바람에 실린 놈의 입 냄새는 상상을 초월했다.
"으웩!"
모두 헛구역질을 해댔다. 테이블 위에 있던 아주머니는 그 소리에 기절해 쓰러졌고 아들이 간신히 엄마를 부여잡고 있었다.
젊은 부부의 남편은 거의 실신하듯 눈이 풀려있었고 그를 안간힘을 쓰며 안고 있는 건 부인이었다. 그녀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괴물을 노려보고 있었다.
난 바람을 가르며 새끼 괴물을 향해 뛰어갔다.
"뭐해?"
성희가 물었다. 난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아니 숨을 참고 있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냄새가 너무 지독했다.
난 우리를 경계하고 있던 새끼 괴물의 뒤로 접근해 팔로 놈의 목을 감아 강하게 틀어잡았다. 그리고 검을 새끼 괴물의 입에 반쯤 집어넣고는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조금만 더 검을 밀어 넣으면 놈의 숨통은 끊어진다.'
꾸이이
새끼 괴물이 고통의 괴성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어미 괴물도 고막이 터질듯한 큰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우리를 공격하지는 못했다. 갑작스러운 거친 물결에 버스가 심하게 흔들렸다.
"닥치라고!"
난 괴물에게 소리를 지르며 새끼 괴물을 더더욱 압박했다. 내 말이 들릴지는 모르겠다. 혹 들리더라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
어미 괴물도 입밖에 없다.
내가 인질로 틀어잡고 있는 새끼의 상태를 볼 수는 없을 거다.
새끼 괴물의 괴성을 듣고 반응한 걸 보니 그 음파는 느낄 수 있어 보였다.
난 틀어잡고 있는 새끼 괴물에게 속삭였다.
"살려달라고 외쳐봐,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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