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날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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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지에 걸리는 괴물이라면 광역 방어막을 뚫을 수는 없겠지만 숫자가 너무 많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벌레일 가능성이 크다.
- 안으로 들어오지?
성희의 걱정스러운 음성이 통신으로 들려왔다.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
"광역 방어막을 넘진 못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버스만 돌려놓자"
잠시 후 버스가 천천히 왼쪽으로 후진하더니 우측으로 조금 전진한 후 멈췄다. 악셀만 밟으면 바로 동굴 출구 쪽으로 달려갈 수 있다.
- 낌새 이상하면 바로 내려와
"그래"
그녀는 여전히 내가 지붕에 있는 게 걱정스러운지 못마땅한 음성으로 말했다.
난 블루건으로 걸어가 앉았다. 블루건의 탄환은 방어막을 넘을 수 있다.
쉬이이이이이익
거대한 구멍 안쪽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날파리? 모기?'
위이이잉
그리고 이내 버스 후방 조명에 비친 놈들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났다. 처음에는 무슨 연기 같은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놈들은 벌레였다.
우우우웅 위이이이잉 쉬이이이이
시커먼 연기 같은 벌레들이 순식간에 버스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놈들은 광역 방어막을 넘어오지 못했다.
난 끊임없이 벌레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구멍을 향해 블루건을 조준한 후 짧게 버튼을 눌렀다.
퉁! 쉭! 파사삭!
영롱한 푸른 탄환은 구멍까지 날아가지도 못하고 방어막에 달라붙은 벌레들에게 닿으며 순식간에 푸른 불꽃을 일으켰고 그 주변 벌레들은 모두 시커먼 재로 변해 날아갔다.
블루건에 타버린 놈들이 있던 부분에 다시 새로운 벌레들이 달라붙었다. 방어막 전체에 달라붙은 벌레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모기장 같아 보였다.
우우웅 우웅 쉬이이이이
귀를 간지럽히던 놈들의 날갯짓 소리가 지속해서 뇌까지 전달되자 조금씩 어지럽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이 위이잉
엄청난 수의 벌레들은 방어막 전체에 겹겹이 계속 쌓였고 마침내 그 너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어막 안은 조명 덕분에 환하게 밝았지만, 시커먼 반구형 안에 그대로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버스 뒤편으로 블루건을 조준하고 버튼을 눌렀다.
퉁 퉁 퉁 파삭 파삭 파사삭!
광역 방어막에 붙어있던 놈들이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그리고 그 영역 너머로 거대 구멍이 아주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너무 많네"
그때 팔의 액정에서 가파르게 변하고 있는 다른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괴물 탐지 숫자 때문에 잠시 간과했던 숫자다.
코르카 [7317] [353.83/H]
시간당 300개가 넘게 사라진다고? 이건 광역 방어막 유지 때문일 거다. 그런데 그 순간 벌레 한 마리가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크기가 잠자리만 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놈도 영락없는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붉은 두 개의 눈 아래에 달린 흉측한 작은 입에서 가시 같은 이빨이 빠른 진동으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쉭!
난 바로 검을 꺼내 휘둘렀다.
파식!
괴물 벌레는 검에 닿자마자 시커먼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좀 전에 방어막에서 타버릴 땐 블루건의 탄환 때문인 줄 알았는데 원래 이렇게 소멸하는 놈들인 것 같다.
"어떻게 들어왔지?"
- 뭐가?
"방금 한 마리가 광역 넘어서 들어왔어."
- 뭐?
방어막 [0003/1000] [1 Kc]
그리고 바로 그 이유를 발견했다. 저 방어막 수치는 예전부터 버스의 기본 방어막 수치여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광역 방어막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방어막의 충전은 시간은 눈으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다. 아주 오래전 버스 진화 초기 때는 충전 시간에 지연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충전이 된다고 해도 찰나의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그 틈을 비집고 한 마리가 들어온 것 같다.
코르카 [7256] [367.15/H]
그리고 코르카는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난 놈들에게 블루건을 난사하며 성희에게 소리쳤다.
"다시 강으로 가자!"
쉬이익 위잉 쉭쉭
놈들은 여전히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광역 방어막을 갉아먹고 있었고 코르카 수치는 계속 내려갔다.
난 블루건으로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광역 방어막을 사수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 32159 < 726 < 451 ]
방어막에 붙어있는 놈들 이외에 여전히 구멍에서 나와서 따라오는 놈들도 많았다. 블루건의 탄환으로 붙어있는 놈들을 태워버려도 그 자리엔 바로 새로운 놈들로 채워졌다.
쏴아아!
드디어 폭포수 소리가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난 바로 버스 안으로 내려갔다.
"바로 들어가자!"
그리고 바로 버스는 그 속도 그대로 강물로 들어갔다.
첨벙! 쏴아아아아!
버스의 보트 모드가 활성화되는 소리가 들렸다. 난 운전대를 넘겨받고 액정을 확인했다.
코르카 [7116] [397.15/H]
그리고 우측의 수평 레버를 힘껏 끝까지 내렸다.
위이잉 우우웅
그러자 조금 열려있던 운전석 창문이 자동으로 완전히 올라가 닫히더니 버스는 천천히 물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버스 위로 폭포수가 떨어져 하얀 물보라가 연신 일어나고 있는 게 보였다.
수심은 깊었다. 물보라 거품 때문에 처음엔 밖을 전혀 볼 수 없었지만, 더 내려갈수록 버스 조명에 비친 주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벌레 새끼들 다 죽었겠···."
하지만 그때 광역 방어막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형태가 보인다는 건 여전히 놈들이 붙어있다는 뜻이다.
거센 폭포수에 잠시 진형이 흐트러졌던 놈들은 다시 아까와 다를 바 없는 형태로 광역 방어막에 달라붙고 있었다.
"물속에서도 살아남는다고?"
성희도 창밖을 살피더니 소리쳤다.
[ 32842 < 367 < 0 ]
난 액정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하류로 다시 내려가야겠어."
하지만 물속은 어두웠고 그나마 보이는 곳도 광역 방어막에 달라붙은 벌레 새끼들 때문에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난 다시 수평 레버를 올렸다. 그리고 쏟아지는 폭포수의 소리에만 의지한 채 그쪽으로 버스를 몰았다.
쏴아아아아!
버스가 수면으로 오르자, 지붕에 어마어마한 폭포수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보라 때문에 창밖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폭포수 덕분에 하류 쪽 방향을 대략 잡을 수 있었다.
난 아까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버스의 핸들을 돌렸다.
"가자!"
악셀을 힘껏 밟자, 버스는 마치 쾌속정같이 훅~ 하고 튀어 나갔다. 아까 올라올 때는 강을 역류해서 올라오느라 힘겨웠지만 지금은 물살을 타고 내려간다.
폭포수의 물보라가 조금 잠잠해지자 다시 밖이 보이기 시작했다. 폭포수 때문에 광역 방어막에 달라붙은 놈들이 조금 흩어진 상태였다. 그 덕에 버스 조명에 주변의 지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 27143 < 641 < 48 ]
하지만 여전히 방어막에 달라붙어 있는 놈들은 많았다.
우우우웅
버스의 엔진 소리와 함께 거센 물살이 버스의 사방으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전방에 버스 전조등에 비친 숲이 갑자기 나타났다. 곡선 구간의 시작이다. 난 바로 핸들을 돌렸다.
"장어의 영역이군."
거대 장어들이 이 날벌레를 먹이로 좋아해야 할 텐데
쉬이이이익!
그 생각과 동시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창밖으로 크고 작은 지느러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들은 여전히 버스 방어막을 넘나들었다.
"먹으려나?"
난 버스의 속도를 조금 줄이고 물살과 비슷한 속도를 맞추며 수평 레버를 다시 아래로 내렸다.
촤아!
버스는 다시 물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했고 덩달아 방어막에 달라붙어 있던 벌레들도 물속으로 딸려 들어왔다.
광역 방어막의 전부가 완전히 물에 잠길 때쯤 난 잠수를 멈추고 기다렸다.
물속에서는 벌레들이 광역 방어막을 공격하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버스의 잠수 모드 또한 코르카를 많이 소모하는 탓에 상황이 크게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안···. 오나? 이거 안 먹나?"
어두운 창밖에는 여전히 방어막에 달라붙어 있는 벌레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놈들이 나타났었는데"
내가 중얼거릴 때쯤 갑자기 운전석 창문 너머로 뭔가가 소리 없이 지나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어떤 미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왔다."
성희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 유리 너머와 조수석 창문 너머로도 기다란 여러 개의 지느러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기다란 몸통에 지느러미가 달려있긴 했지만, 장어라고 하기에도 완전히 닮지 않은 형태였다.
"아까 그놈들이랑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성희의 말에 나도 버스 바로 옆으로 지나는 놈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우리에게 달려들다 내 검에 반토막이 난 놈들과 정말 모양이 조금 달랐다. 아까는 그저 갈색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푸른 색상이 감돌았다. 그리고 지느러미의 위치도 아예 달랐다. 비슷한 건 길쭉한 장어 같은 몸의 형태뿐
놈들이 향하는 곳은 광역 방어막이었다.
쉬이이익
그리고 물속에서 놈들의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난 창밖과 액정의 숫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결과를 기다렸다.
"안 먹는데?"
크고 작은놈들 수십 마리가 광역 방어막 부근을 돌며 벌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마리도 달려드는 놈은 없었다.
"젠장, 안 먹나 본데? 피라냐 쪽으로 내려가자"
난 악셀을 밟고 물살을 따라 다시 버스를 하류로 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바로 눈앞에 거대한 머리가 나타났다.
어미다.
아까 눈을 마주쳤던 아는 사이다.
놈은 거대한 몸으로 버스 앞을 가로막았다. 마치 나에게 뭐라고 신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멈추라는 거 같은데?"
난 녀석의 눈빛을 확인하고 바로 버스를 멈추고 [위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버스는 뒤에서 밀려오는 물살을 버티며 수중 그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그 순간 어미는 물속에서 거대한 입을 벌리며 버스 주변을 향해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꾸우우우우!
물속에서 탁하게 들려오는 놈의 괴성은 일종의 신호 같아 보였다.
"뭐 하는 거지?"
성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놈들에게서 일종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구형으로 형태를 맞춰서 모이고 있는 느낌이다.
꾸우우우!
어미가 다시 한번 괴성을 지르자 갑자기 물속이 환해졌다.
파파파팍!
"뭐···. 뭐야!"
물속에서 엄청난 번개가 연속해서 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깊은 강바닥까지 물속 전체가 번쩍이는 빛에 훤히 보였다.
파르르 파직! 파파파파팟!
그리고 광역 방어막은 그 원형 모양 그대로 무슨 빛의 축제를 하는 것처럼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시커먼 벌레들은 그대로 하얀 액체로 변해 물속에서 흐리게 번지며 사라져갔다.
파랗고 하얀 무시무시한 번개 불빛이 연신 번쩍거렸고 그 사이로 터져버린 벌레들의 진액이 끊임없이 우유처럼 번지고 있었다.
난 액정을 확인했다.
[ 0 < 12 < 3 ]
코르카 [6998] [84.56/H]
수만 마리의 벌레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전기 뱀장어의 스파크에 대부분 녹아내려 버렸다.
"와"
우리는 둘 다 입만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버스 앞 유리에 두 개의 붉은 눈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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