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J1. 스위트 홈
청년의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성운이가 갑자기 우리를 밀치고 자기 집 현관문으로 뛰어가더니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작동될 리 없었다.
아이는 몇 번 다시 시도하더니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나왔어!"
그 모습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성운아, 집에 아무도 없어"
그때 작은 성희가 다가와 그 자그마한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울기 시작했다.
"엄마! 어디 갔어! 엄마!"
그동안 감정을 누르고 눌렀던 아이들은 자기 집 현관 앞에 도착하자 끝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지난 며칠간 너무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여서 내가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 간과했다.
난 그저 내 처지에서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 같다.
아이들이 참았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자 정작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옆집 아주머니건 동네 형이건 결국 남이다. 남의 마음은 추정만 할 수 있을 뿐 그 마음의 일부조차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그건 당연한 거다.
그리고 모든 건 나의 몸과 마음이 편한 쪽으로 해석되고 의도된다.
며칠 동안 식구라고 생각했던 성희나 아이들을 그저 나 편한 대로만 생각하고 이용한 건 아니었을까?
갑자기 엄청난 자괴감이 몰려왔다.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했다.
청년이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성운아"
"형아, 엄마 좀 찾아줘! 엄마 어디 갔어?"
과묵하고 차분해서 마음도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저 아이였다.
"내가 문 열어줄까?"
청년의 말에 성운이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뒤로 물러서 있어"
그러더니 민머리 청년은 손으로 잠금장치를 거머쥐었다.
"끄응"
우두둑 파삭!
그의 작은 신음과 함께 잠금장치가 산산이 조각나며 부서졌다. 그는 손으로 안쪽의 부품들을 모두 뜯어냈다.
그러고는 아래 동그란 구형 열쇠 손잡이를 돌렸다. 잠기지 않았었는지 쉽게 돌아갔다.
끼이익
그가 천천히 문을 여는데 작은 성희가 비집고 들어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엄마!"
안은 어두웠다. 옆집 아주머니가 촛불을 하나 들고나와서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청년이 촛불을 들고 들어가자 어른거리는 약한 불빛에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촛불 하나로는 집 안을 밝히기에 턱없이 부족했지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살림이 별로 없었다. 흔한 식탁 하나가 없다. 작은 밥상 하나 펼쳐져 있고 그 위에는 소주병이 뒹굴고 있다.
벽에는 어린이 한글 학습 같은 게 붙어있다. 그리고 낡은 달력은 몇 달이나 지난 페이지가 그대로 있었다.
"윽!"
냉장고 쪽에서 음식 썩은 냄새가 풍겨왔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작은 성희가 방문을 열었다.
"엄마!"
하지만 의미 없는 외침이었다. 성운이가 다른 방의 문을 열었다. 남매의 방이었던 듯 어린이 동화책과 장난감이 보였다. 침대 같은 건 없었다.
청년이 욕실 문도 열어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이 집안에는 사람이건 괴물이건 보이지 않았다.
집 안에는 단서가 될만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집의 상태로 볼 때 오래도록 집에 아무도 오지 않았던 거 같다.
"여기 분들 언제 봤어?"
청년에게 물었다. 촛불로 살피던 청년은 아이들이 들을까 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애들도 오랜만에 봐요. 이 집 식구들 기척이라도 들린 지 오래됐어요."
그래서 아주머니도 집에 아무도 없다고 확신했구나
"성운아. 성희야.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성운이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고 작은 성희는 다시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었다.
"나가시죠"
청년과 나도 그 집에서 나왔다. 음식 썩는 냄새도 그랬지만 집 안의 무거운 분위기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현관문을 나와 옆집으로 들어가려다 밖의 버스를 잠깐 살폈다. 아까 청년이 뛰어 들어올 때 성희가 급히 우측 조명을 꺼서 밖은 어두웠다.
운전석 쪽에 앉아있는 성희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반대편 거리 쪽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난 아주머니와 아이들을 따라 청년의 집으로 들어갔다.
옆집도 성운이네 집과 거의 같은 구조였다.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 그대로다. 방 두 개에 거실과 부엌이 있었다. 그런데 집 안이 너무 깔끔했다.
촛불이 거실에 하나뿐이다. 청년이 손에 들고 있던 촛불을 식탁에 내려놓자 그나마 조금 더 밝아졌다.
안방에는 청년의 아버지가 바닥 이불에 누워있는 게 문틈으로 살짝 보였다.
거실에는 큰 생수통 여러 개가 쌓여있었다. 어디 생수 트럭이라도 발견한 듯 뜯지 않은 생수통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하얀 말통도 여러 개 보였는데 부엌과 화장실에서 쓰는 걸로 보인다.
부엌 찬장에는 각종 라면류와 건식품이 쌓여있었고 부탄가스도 많이 보였다.
전기가 없어도 이 집은 일상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며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애들 친척이신가?"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뭔가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아뇨, 시골에서 만났습니다."
난 거실 바닥에 앉으며 대답했다. 촛불을 계속 켜놔서 그런지 실내 공기가 탁했다.
아주머니가 접시에 과자를 담아 들고 애들 앞에 내려놓았다.
"밥은 먹었니?"
성운이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성희는 대답 없이 과자를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다.
"애들 부모님 소식은 모르시죠?"
"못 본 지 오래돼서 어디 이사 간 줄 알았다니까"
아이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오래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지냈나 보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세상이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도 아이들을 만나러 시골에 가지 않았을 거 같다는 그런 느낌? 아니면 갈 수 없었을 수도 있고
텔레비전에서 봤던 끔찍한 뉴스들이 갑자기 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난 부정적인 생각을 덜어내려 애썼다.
아이들 생각에 잠시 잊고 있었던 게 떠올라 물었다.
"괴물에 물리셨다고 들었는데"
내가 묻자 아주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자기 방에서 윗옷을 입고 나오던 청년을 바라봤다. 바지도 어느새 갈아입은 상태였다.
"아! 제가 아까 사거리에서 만났을 때 얘기했어요."
민머리 청년은 당황한 듯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운동복 바지를 건넸다.
"잘 입었어요. 형"
난 그가 갈아입은 옷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 체육복이었다.
"어? 고등학생이었어?"
"예. 고1이에요"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봤는데 고등학생이었다.
"아까 부모님이 아침에 물리셨다고 들은 거 같은데"
그는 기억을 되새기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대답했다.
"아침에 물리신 게 아니고요. 아빠는 며칠 전에 아래 슈퍼에 먹을 거 구하러 저랑 가셨다가 놈한테 팔을 물리셔서···. 그놈은 제가 찢어 죽였고요."
학생이 그 부분을 이야기할 때 그의 어머니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부터 몸이 안 좋으셨어요. 어머니는 그때 집에 계셨고"
그는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 혼자 약이랑 먹을 거 구하러 나가요. 오늘 아침에도 그래서 나간 거고"
나 혼자 상황을 너무 상상했었나 보다. 그가 아까 두서없이 말한 것도 있지만 나도 그의 말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결론까지 내려버린 거였다.
"사람처럼 생긴 괴물이라고?"
"예. 처음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말을 걸어서"
"말을?"
"식자재 마트였는데 저보고 직원이냐고 그러더라고요."
"뭐?"
"저는 정신 나간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눈 색깔이 변했어요."
변이하기 직전의 감염자로 보인다. 그럼 물려도 바로 감염자가 되는 건 아닌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의식이 있으셔?"
학생과 어머니의 표정이 동시에 어둡게 변했다.
"저···. 그게···."
그때 안방에서 괴성이 들렸다.
크으으으으!
인간의 음성이라기에는 소리가 정말 흉측했고, 괴물이라기에는 또 너무 인간적인 소리였다.
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자 아이들도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내 뒤에 숨었다.
"뭐···. 뭐야!"
하지만 학생과 아주머니는 여전히 거실 바닥에 앉아있었고 무덤덤한 청년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무시다가 가끔 저래요. 약만 제때 드시면 괜찮아요. 그런데 저번에 한 번 늦게 드시는 바람에"
그가 다급하게 약을 들고 집안으로 뛰어 들어간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라도 이런 상황이면 밖의 버스나 옆집 애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다.
그들이 익숙한 상황인 듯 무덤덤하게 말하자 나도 머쓱해져서 다시 바닥에 앉으며 물었다.
"무슨 약이지?"
"항생제에요. 이름이 뭐더라···."
"약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변하시겠죠"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학생의 답변이다.
"그런데 밖의 버스는 뭐에요?"
이제 그가 질문할 차례인가?
"이야기가 길다."
"밤도 길어요."
고등학생답지 않은 말투다.
난 다시 생각에 빠졌다.
이 가족들이 버스를 어떻게 생각할지
버스에 대해서 다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의 마음에 또 어떤 게 피어날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잘살고 있는 가족이 버스의 등장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내심 두려웠다.
난 우선 그들에 대해 조금만 더 알아보고 싶었다.
"넌 언제 각성했어?"
"각성이 뭐죠?"
그래 누구나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단어는 아니지
"갑자기 힘이 세진 거? 특별한 능력 같은 게 생긴"
"아···. 그거요. 아빠 물렸던 날에요."
각성의 조건이 다 같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저런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발현되는 거 같다. 아이들도 버스 지붕 위에서 그랬다.
"어머님은?"
"엄마 아빠는 평소 같으세요. 아빠는 지금 저 상태라···. 물리기 전에도 각성 같은 건 없었어요."
이 집안은 이 학생이 지켜야 하는 상태다. 그리고 이들 부모는 버스를 보지도 타지도 못한다.
버스를 탈취해서 어떻게 해보려는 불순한 생각의 씨앗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건 부모님의 안전과 아빠의 약이다. 버스는 그걸 줄 수 없다.
난 버스에 대해 요약해서 간단하게만 설명했다. 그들은 역시나 무덤덤하게 듣고만 있었다. 그리 놀라는 눈치도 아니다. 이런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에 계속 놀라면 아마도 심장이 버티지 못할 거다.
"그랬구나. 성운이랑 성희도 다행이다. 좋은 분 만나서"
그렇게 버스의 존재는 내 걱정과 달리 시시해졌다. 내가 버스 무한 냉장고나 침대의 치료 따위는 빼고 이야기해서 그런가?
"아까 그 누나는 버스에 있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빠아아아앙! 빵!
자동차의 경적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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