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J1. 떠날 준비
괴물 탐지 숫자가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 0 < 0 < 4 ]
"인간형이 다시 오는 건가?"
종류를 파악할 수 없는 게 단점이었다.
[ 0 < 1 < 12 ]
"중거리면 시야에 보일 거 같은데?"
삐이이이 삑 텅!
그때 포탑의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소리다.
슈욱~ 파직!
[ 0 < 3 < 19 ]
삑 텅! 삑 텅! 삑 텅!
포탄이 연이어 발사되는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들린다. 붉은빛을 발하며 날아가는 포탄에 의해 어둠 속에서도 터지기 직전의 괴물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
인간형이다.
비가 그치고 나니 포탑이 다시 작동되는 것 같다. 아마도 폭우 때문에 탐지나 조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거나 혹은 빗물 속에서는 포탄의 효과가 떨어져 포탑이 일부러 발사를 멈춘 거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확실하게 알게 된 건 비가 오면 포탑을 쓰지 못한다는 거다.
파직! 파직! 파직!
우리는 그렇게 어둠 속에서 번쩍거리는 포탄의 불빛을 바라보며 거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코르카는 많을 때는 한 놈당 세 개도 있었다.
"이렇게 편한걸"
"그러게"
성희는 어둠 속을 응시하며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다. 그런데 괴물이 터져나가는 방향이 아니라 성운이네 가족이 사라진 방향이다.
슈욱~ 파직! 슈욱~ 파직!
계속 포탄이 발사되고 괴물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어느새 우리는 이 상황에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이 괴물들 다 정리되면 괜찮을까?"
성희가 이어서 계속 중얼거렸다.
"시장이 왜 사람들을 일부러 감염시킨 걸까?"
나도 그 점이 계속 의문이었다. 시청에서 계속 살아남으려면 별관 사람들이 필요할 텐데 왜 깡그리 감염시킨 걸까?
박물관 지하 물약 제조시설이 모두 박살 난 것과 연관이 있을까?
김 사장은 왜 어이없게 본관 사람들에게 물약을 다 빼앗긴 걸까? 처음부터 본관의 시장 패거리들과 한통속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파란 긴 머리의 사내가 거머리 아줌마가 언급한 그가 맞는다면 그는 또 여기에 왜 온 것일까? 시설이 파괴되어 복수하러? 아니면 성운이와 작은 성희의 능력이 필요해서?
여전히 의문만 가득했다.
파직! 파직!
한때는 시청 별관 사람들이었던 인간형 괴물들은 여전히 연이어 터져나가고 있었고 자동 수집되는 코르카는 계속 모였다.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대략 추정하기에 포탄 한 발에 저 인간형들은 코르카를 한 개에서 세 개 정도까지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그때 창밖에서 유민이의 음성이 들렸다.
"괴물들이 다시 오네요."
난 손짓으로 위를 가리키고 버스 지붕으로 올라갔다. 유민이도 버스 옆의 손잡이를 잡고 단숨에 지붕으로 올랐다. 언젠가부터 유민이는 버스 뒤편 사다리를 잘 쓰지 않았다.
우리는 지붕 테이블에 앉아 멀리서 연이어 터져나가는 인간형 괴물들을 관찰했다. 붉은빛의 포탄이 계속 날아가니 아주 밝지는 않아도 괴물들이 접근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놈들이 엄청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멀쩡해 보이네요."
그 정도 높이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면 그대로 온몸이 박살 나고 피떡이 되어 죽었을 거다. 하지만 놈들은 괴물이다.
서서히 눈이 어둠에 적응되자 멀리서 접근하고 있는 괴물들의 모습이 조금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멀쩡하진 않은데?"
놈들은 비틀거리며 느리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팔이 덜렁거리는 놈도 있었고 다리가 아예 기이하게 꺾여서 버둥거리며 기어 오고 있는 놈도 있었다.
"끈질기네"
파직! 파직!
그리고 이내 초록색 피떡이 되어 터져나갔다.
"무슨 좀비 같아요."
"물리면 변하니 좀비와 다를 게 없지"
유민이는 잠시 그렇게 말없이 나와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저는 이만 들어갈게요. 위험해 보여서 나왔는데 괜찮겠네요."
"그래, 밤이 늦었다. 좀 자라"
"네, 형도 주무세요"
"그래"
그렇게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헤어졌다. 유민이는 빌라 건물 안쪽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붉은 눈 두 개가 번뜩이는 모습이 보였다.
유민이 형은 여전히 빌라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든든했다. 혹시나 포탑이 발견하지 못하는 놈들이 있더라도 유민이 형이 버티고 있으니 괜찮을 거다.
난 다시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성희가 테이블에서 졸고 있었다.
"침대 들어가서 자, 난 잠이 안 오네"
"아···. 아냐 괜찮아"
난 그녀를 일으켜 세워서 침대로 강제로 밀어 넣었다.
"그러면 조금만 자고 교대하자"
"그래"
그녀는 이내 잠들었다. 난 생수 한 병을 꺼내 테이블에 앉았다.
[ 0 < 4 < 1 ]
'거의 정리가 되어가는군.'
파직! 파직! 파직!
[ 0 < 2 < 0 ]
난 어둠 속을 응시하며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벌써 겨울이 오고 있는지 한기가 몰려왔다.
'이제 데워서 마셔야겠는걸'
버스에서 처음 맞이하는 추위가 오고 있었다.
'달력도 시계도 없으니 원'
지금의 날짜를 알 수가 없었다. 대충 그날 이후 한 달 반 정도 지난 거 같다. 유민이네도 언젠가부터 달력에 표시하는 걸 멈췄고 동네 사람들도 이제 서로 다른 날짜를 이야기하며 다투기도 했다.
사실 사람들에게 날짜와 시간의 변화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지금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당연히 생필품 조달 문제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식량이다.
시내의 마트 같은 곳은 이제 대부분 비었을 거다. 사람들이 가져오는 약품이나 식료품의 수가 확연히 줄어든 게 느껴졌다.
'우리가 코르카를 음식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가 코르카를 받고 바꿔주는 식량에 점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각성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괴물을 잡고 코르카를 구해오는 건 위험한 일이다. 지금은 대부분 유민이와 반장이 그 일을 하고 있었고 같이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떨어진 코르카만 주워 담고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젠 줄어들고 있다. 최근 태백시에 만만한 괴물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느낌이다. 거대 이구아나 괴물이나 촉수 거미, 날괴물 정도만 가끔 보이고 그나마 만만한 멧돼지 괴물이나 못난이, 꺽다리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코르카가 안 나와서 관심에서 멀어졌던 악마쥐도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겼는지 아예 사라졌다.
코르카를 어렵게 구해오더라도 그들은 우리가 없으면 코르카를 활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던 건데'
하지만 평생 여기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러다가는 버스조차 코르카 수급이 끊겨 언젠가는 제 기능을 못 하게 될 테고 그러면 버스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이젠 떠나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동네 사람들의 운명은 이제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여기를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서울?'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그곳에는 여기보다 더 많은 단서가 있지 않을까?
시청의 인간형 괴물은 대부분 제거되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유민이와 반장, 그리고 밤을 지키는 유민이 형도 있다.
내가 오기 전에도 잘 돌아간 동네였다. 사람들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우리는 할 만큼 했다.
게다가 한때는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성운이와 작은 성희도 이젠 여기 없다.
난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술을 자제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잠이 오지 않는다.
창밖에 보이는 가느다란 초승달 때문인가, 이상하게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
고개를 돌려 곤히 자는 성희에게 시선을 옮겼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그녀에게 의지를 많이 하고 있다. 이 버스에서 계속 나 혼자 지냈다면 어땠을까? 초반에 무모하고 멍청하게 움직였을 때 이미 난 죽었을 거다.
그녀가 그날 내 눈앞에 나타난 건 오히려 나에게 행운이었다.
어느새 맥주 한 캔을 다 비웠다. 창밖에서는 이름 모를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액정의 탐지 램프는 평온하게 0을 표시하고 있었다.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훅하고 불어왔다.
'춥다.'
다시 창문을 닫은 후 운전석 위쪽의 더블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언젠가부터 여기가 편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묵직한 피로가 급격하게 몰려왔다.
* * *
인기척에 눈을 떴다.
"부탁하네."
노인의 음성이다.
"저···. 그게"
난감해하는 성희의 목소리도 들렸다. 난 침대에서 내려갔다.
버스 문 앞에 한 노인이 보였다. 김씨 할아버지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다.
그는 코르카를 직접 구해오기 어려운 노인이라 다른 동네 사람들과는 달리 식량을 그냥 드리고 있었다.
"음식 떨어지셨어요?"
내가 버스에서 나오며 묻자 노인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말했다.
"아니···. 저번에 넉넉하게 줘서 아직 남았어···. 항상 고마워"
"그럼 어쩐 일이세요?"
그때 성희가 입을 열었다.
"태워달라셔"
"뭐?"
갑작스러운 요구다. 일전에 동네 사람들에게 버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적이 있다. 사실 코르카를 음식으로 바꿔준다는 설명이 주였지만 경고의 의미도 있었다. 신기한 버스에 다른 마음을 먹지 말라는 경고였다. 특히 버스에 탈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게 했었다.
"혹시 강릉 쪽으로 가게 되면 말이네···. 거기에 아들네가 있어서···."
"강릉요?"
난 오늘 서울 쪽으로 출발할까 생각했었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뭔가 서울로 가면 수많은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상하게 성운이네가 서울로 간 거 같기도 하고'
우리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사람들이다. 이젠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사람 마음이 꼭 그렇게 칼로 자르듯 정리되지는 않았다.
"조금 돌아가지 뭐"
서울에 약속 시간을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우리는 도로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뭐?"
내 말에 성희가 놀란 듯 난 바라본다.
"오늘쯤 서울로 출발할까 했어."
"서울?"
"이제 여길 떠날 때가 된 거 같아서···. 어디로 갈까 밤새 생각해봤는데 우선 서울로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싶어서"
성희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성희가 살던 곳이다. 그리고 끔찍한 상황을 눈앞에서 처음 목격한 곳이기도 하다.
"고속도로 상황을 모르니 국도로 천천히 이동하려고, 가드레일로 막힌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상황에 대처하긴 좋을 것 같아"
"..."
"급할 건 없으니 김씨 할아버지 강릉에 모셔다드리지 뭐"
성희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할머니가 아들네 가셨다고 하셨죠?"
일전에 할머니는 강릉에 사는 아들 집에 가셨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죽기 전에 가족들 생사라도 알고 싶어"
난 여전히 내 손을 잡은 할아버지의 손을 버스에 가져다 대고 말했다.
"이대로 가만히 계세요"
난 바로 버스에 올라 액정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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