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J1. 걸림돌
난 잠시 액정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버스 밖으로 나왔다.
"승객 추가가 안 되네요. 지붕에 타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할아버지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 버스 지붕을 바라보다 말했다.
"그럼 그럼 괜찮고말고"
"짐 챙기셔서 나오세요. 아침 먹고 출발할게요."
할아버지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할아버지는 빌라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괜찮겠어?"
성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할아버지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포탑도 있고···. 그리 위험하진 않을 거야."
성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난 그녀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승객 추가 메시지가 뜨긴 떴어"
"뭐?"
난 성희의 등을 두드리며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서 지붕으로 올라갔다. 난간도 높고 고정형 테이블과 의자도 있어서 지붕의 상황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형! 오늘은 지붕에서 아침 먹어요?"
유민이가 빌라 건물을 나오며 우리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너도 올라와"
유민이는 한 번에 버스 지붕으로 뛰어오르며 의자에 앉았다.
"저 아침 먹었어요."
"말할 게 있어서"
"네?"
난 대략적인 계획을 이야기했다. 유민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말을 묵묵히 끝까지 다 들었다.
"나중에 다시 꼭 오세요."
"그래. 좀 있다 식량 좀 너희 집으로 옮겨라, 사람들 공평하게 나눠드리고"
"네"
그리고 난 유민이에게 몇 가지 궁금한 걸 더 물었고 유민이는 자신이 아는 데로 전부 말해줬다. 그때 할아버지가 작은 가방을 하나 메고 버스로 다가왔다.
"손잡으세요."
유민이가 할아버지 가방을 받아서 들고 지붕으로 옮겼고 내 손을 잡고 김씨 할아버지는 힘겹게 버스 지붕 위로 올랐다.
"우리는 다 먹었어요. 천천히 드세요."
나와 성희는 냉장고와 음식 창고에서 음식들을 계속 꺼내다 버스 옆에 내려와 있는 유민이에게 물었다.
"집에 박스 있어?"
"잠시만요"
잠시 후 유민이는 라면 박스 여러 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박스를 모두 채운 후 밖의 유민이에게 전달했다.
"이게 다 뭐야?"
그때 유민이 엄마가 빌라 입구로 걸어 나오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유민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불 두 채를 들고나왔다.
"이제 곧 겨울인데 따뜻하게 덮어야지"
버스에는 얇은 이불만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버스의 냉난방 기능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문득 어젯밤에 느꼈던 찬 바람이 떠올랐다.
"와! 정말 감사드려요!"
난 한 아름 크기의 이불을 받았다. 성희도 버스에서 나오며 이불 한 채를 받아서 들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뽀송뽀송하네!"
성희가 이불에 볼을 가져다 데며 말했다.
"며칠 전에 빨아서 햇빛에 잘 말려놨어, 어제 비에 조금 눅눅해지지 않았을까 걱정이네"
성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직 뽀송해요."
그때 유민이 엄마가 지붕의 할아버지를 바라보더니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김씨 할아버지가 왜?"
난 아주머니와 잠시 이야길 나누었다. 그때 빌라에서 사람들이 한둘씩 내려왔다.
우리의 계획과 비축 식량에 대해 잠시 설명한 후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늘 강릉에 도착할 수 있을까?"
성희의 걱정스러운 말이다.
"멀쩡한 도로면 두 시간도 안 걸릴 텐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니 가봐야 알겠지."
난 창밖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버스를 출발시켰다. 그때 빌라 2층 창문에서 반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가만히 무표정하게 서서 그저 우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시죠?"
난 창문을 열고 지붕을 향해 소리쳤다.
"괜찮아! 고마워!"
난 다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액정을 살폈다.
[829/3000] [0.02/H]
코르카는 넉넉하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한 개 이상 코르카 떨어지는 괴물만 나타나 준다면 코르카는 더 모일 거다. [자동 포격]과 [자동 접촉 파괴]는 항상 켜 놓은 상태다.
언덕을 내려오니 원형으로 파괴된 사거리가 나타났다. 반쯤 사라진 떡볶이 가게도 보였다.
'작은 성희가 이렇게 만들었는데'
한때는 나의 가족이기도 했던 그들의 진짜 정체가 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괴물이 안 보이네"
성희가 중얼거린다. 나도 최근 들어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거다. 여기까지만 내려와도 흔하게 못난이나 멧돼지 괴물은 돌아다녔다. 그래서 그동안 유민이와 마을 사람들이 코르카를 모을 수 있었다.
"정말 이렇게 다 사라진 거면 좋겠다."
그녀의 말에 난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갑자기 괴물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버스의 코르카도 언젠가는 다 떨어지겠지.'
이런 세상에서 그나마 내가 특별할 수 있는 건 버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버스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괴물이다.
'뭐지? 이런 마음은?'
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진심은 대체 뭘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버스를 모는데 멀리 시청 건물이 보였다.
"별관 지붕에 아무도 없네"
시청 주변에서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시장과 본관 사람들 생각에 조금 찝찝함이 느껴졌지만, 그들이 유민이네 동네로 쳐들어간다고 해도 살아남긴 힘들 거다.
'그래서 별관 사람들을 감염자로? 우리 때문에?'
정말 그랬다면 그 계획은 실패한 거다. 그리고 본관 사람 중에 각성자가 없다면 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겠지.
그때 성희가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황지 연못에 사람들이 있어"
황지 공원 중앙에는 신비로운 연못이 있다. 여기가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물이 수심 깊은 안쪽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느낌이 묘했었다.
[ 0 < 0 < 0 ]
난 혹시나 해서 액정을 살폈지만 멀리 보이는 저들은 사람이 맞았다.
우리는 버스의 투명을 끈 상태다. 지붕에 할아버지가 타고 있어서 투명을 키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거다.
난 버스의 핸들을 돌렸다. 공원 바로 옆길로 지나가면 저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연못의 상황이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난 공원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이면도로로 버스를 몰았다. 좁은 골목길이다.
탕!
"뭐야!"
갑자기 울린 총성에 난 급하게 버스를 멈추고 창밖을 살폈다.
수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성희의 외침에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왼쪽 뒤편의 건물 2층 창문에 누군가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난 운전석 창문을 조금만 내리고 지붕으로 소리쳤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끄으···."
지붕 쪽에서는 희미하게 신음만 들려올 뿐 대답이 없었다.
"우선 여길 벗어나자"
난 급하게 악셀을 밟으려고 했다.
"저거 뭐야!"
그런데 눈앞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기다란 바리케이드를 밀며 나타났다. 순식간에 전방을 바리케이드가 여러 겹으로 막아버렸다. 난 기어를 후진으로 바꾸고 사이드미러를 살폈다.
"젠장"
이미 그쪽도 두 개의 바리케이드와 다섯 명의 사람이 진을 치고 있었다.
"함정인가? 여기로 올 걸 어떻게 알고?"
그때 정면의 무리에서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버스만 넘겨라, 그럼 살려서 보내줄 테니"
'뭐지? 저 뻔해 보이는 악당은?'
난 창문을 완전히 열었다. 어차피 총탄 따위가 버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뚫을 순 없을 거다.
"비켜라, 다 밀어버리기 전에"
내가 열린 창문으로 소리치자 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반쯤 벗겨진 대머리가 햇살이 비쳐 번들거렸다. 그는 늘어진 뱃살을 흔들거리며 다시 뒤로 물러났다.
"뭐? 정말 바로 물러난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그가 무리에 다시 합류하자마자 뒤에 있던 두 사람이 총을 들고 날 겨눴다. 아까 총성이 생각보다 가벼운 것 같더니 오래되어 보이는 공기총이다.
난 할아버지에게 엎드리라고 소리치려다 말았다. 지붕에 사람이 있는 걸 대놓고 말할 순 없었다.
'좀 전에 들었을까?'
난 버스의 악셀을 밟고 앞으로 그대로 전진했다.
탕! 탕!
두 번의 가벼운 총성이 다시 울렸다. 하지만 총알은 버스의 창문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심지어 총알이 닿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공기총의 레버를 당겼다. 다시 공기를 압축하는 거 같다.
'저런 게 요즘도 있었나?'
하지만 그들이 장전을 끝내기 전에 버스가 그들 앞에 도착했다. 난 그대로 그들을 밀어붙였다. 첫 번째 바리케이드가 밀려나며 사람들이 급하게 옆으로 피했다.
"이 새끼가!"
뱃살 대머리가 욕설을 내뱉으며 손도끼로 버스를 내리찍었다.
"악!"
하지만 그는 버스의 방어막이 역으로 그 힘을 뱉어내는 바람에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마치 손목이 부러진 듯 비명을 계속 지르며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난 계속 전진했다. 두 번째 바리케이드를 밀어버릴 때 버스로 화염병 하나가 날아와 깨졌다. 하지만 버스에 어떤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기름이 옆으로 튀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불이 옮겨붙었다.
세 번째 바리케이드에 당도했을 때 열린 운전석 창문에 식칼이 나타났다. 하지만 방어막에 식칼이 닿자 칼을 쥐고 있던 놈의 손목이 90도로 꺾였다.
"끄윽"
이번에도 부러졌을 거다. 난 세 번째 바리케이드를 밀다 말고 창문 밖으로 조용히 말했다.
"네놈들 뭐냐?"
그때 바닥을 뒹굴던 뱃살 대머리가 간신히 다시 일어서며 소리쳤다.
"지붕에 누가 있다! 잡아!"
그는 덜렁거리는 오른손을 가슴팍에 붙이고 왼손으로 다시 손도끼를 집어 들고 날 노려봤다.
쿵! 쿵!
버스 지붕 위로 여러 사람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버스 앞 유리로 사람이 떨어졌다. 김씨 할아버지다.
"이 새끼들이!"
김씨 할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내가 소리쳤으나 그는 말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옆구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까 총에?'
뱃살 대머리가 쓰러진 할아버지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렸다.
"으···."
할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신음을 흘렸다.
"이분 편히 보내드릴까?"
걸걸한 뱃살 대머리의 목소리다. 난 잠시 놈을 노려보다 입을 열었다.
"그러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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