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J1. 우리 형
"형 울어요?"
"아···. 아니, 눈에 연기가 들어가서"
난 살짝 눈을 비비며 딴청을 피웠다. 유민이는 조금만 열려있던 거실의 창문을 활짝 열고는 다시 구워지는 고기에 집중했다.
성희가 슬쩍 날 보더니 말했다.
"더 먹어라. 많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다가가서 소주를 한 잔 더 따랐다.
성운이가 마음이 조금은 풀렸는지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서 내민다. 난 머리를 쓰다듬으며 받아서 한 입 베어 물었다.
"이 동네에는 괴물이 안 보이던데?"
정신없이 먹고 있는 유민이에게 물었다.
"네, 여기 언덕 위에는 괴물이 안 와요."
"뭐? 어떻게?"
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그 이유를 얘가 알 수는 없지,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그냥 탄성이었다.
"이 동네에 특별한 게 있나?"
그는 고기를 우물거리며 생각에 잠시 잠긴 듯하다가 말했다.
"뒷산에 사당이 하나 있고요. 옆에 큰 교회도 있고, 뭐 교회야 다른 곳에도 많으니, 그리고 사실···."
아주머니가 굳은 표정으로 유민이를 바라보고 있다. 혼자 주절거리다 엄마의 표정을 보고 잠시 멈칫한 그는 말을 멈추고 다시 어색하게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들었다.
대놓고 수상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그것보다 난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약 기운 떨어진 감염자들 말이야."
"네?"
"식구들은 괜찮나? 가장 먼저 물릴 거 같은데"
"그게요."
유민이는 잠시 엄마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 다들 알아서 하겠죠. 제가 알 바는 아니지만 빈집에 따로 격리한다는 얘기도 듣긴 했어요. 그날 이후에 떠난 사람들이 좀 있어서 빈집이 많거든요."
"너희 집은···."
유민이는 살짝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야 뭐···."
"네가 약을 구해주기도 하나?"
"그럴 리가요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죠. 저는 그냥 뒤처리 정도 하는 거예요."
"그럼 가끔 변이한 사람들도 나오긴 하겠네?"
"뭐 그렇죠."
그에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만약 그가 혼자 약을 구하러 갔을 때 그의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하면?
"너 없을 때 어머니 위험하지 않겠어?"
갑자기 모자의 표정이 굳었다. 불판 위의 삼겹살이 타고 있다. 그 연기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얼굴이 갑자기 낯설다.
"엄마는 괜찮아요."
무슨 의미일까?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선을 넘게 될 것 같다.
난 거실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뿌연 연기가 어두운 창밖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연기 사이로 시뻘건 두 눈···?
"헉!"
내가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창문에!"
성희는 아이들을 등 뒤로 숨기며 천천히 일어섰다.
"괜찮아요."
아 시발 그만 좀 괜찮다고 해, 창문에 괴물이 있는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유민이는 여전히 덤덤한 음성으로 한 면이 까맣게 타버린 고기를 쌈장에 찍더니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혼자서 동네 정리하냐고 물으셨죠?"
아까 밖에서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 형이에요."
"뭐?"
"고치로 좀 있다가 저렇게 변했어요."
변이된 인간형이라고? 그런데 저렇게 가만히 있다고?
"지금은 괴물이잖아! 공격을 안 해?"
유민이는 입을 닦으며 일어서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우리 형 삼겹살 좋아했는데, 고기 굽는 냄새는 기억나나 봐요. 그런데 못 먹어요."
우리는 그 이질적이고 충격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혼자 계셔도 되는 이유를 아셨죠?"
그녀의 표정이 왜 어색하게 굳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며 흉측한 눈알을 굴리고 있는 저 괴물도 아주머니에게는 여전히 아들이고 유민이에게는 여전히 형이었다.
우리를 공격하려는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정신 나간 사람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그런데 저 얼굴은 계속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크으으으으으
그때 또 하필 안방에서 아저씨의 괴성이 들려왔다.
'이 집 뭐지?'
괴물로 변하는 걸 미루는 사람과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인간, 그리고 그 속에서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는 아들과 엄마
작은 성희가 울려고 하자 성운이가 안아줬다. 큰 성희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려운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도 공격하지 않을까?"
나는 식구들의 안전만 확인하면 된다.
"우리 형은 사람들 공격 안 해요. 왜 동네에 괴물이 없는지 궁금하셨죠?"
난 그의 다음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형이 근처에 오지 못하게 언덕 아래에서 다 쓸어버려서 그래요. 물론 떼로 몰려오면 형이랑 저랑 둘이 감당하긴 힘들겠지만, 아직 운이 좋네요."
그런데 어떻게 인간형 괴물이 이럴 수 있을까? 이건 정말 원인을 알고 싶었다.
"형이 변이하기 전에 특이한 점이 있었어? 어떻게 이런 거지?"
"아, 제가 항생제를 착각해서 다른 약을 줬거든요. 그거 뭐더라.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난 의문이 계속 생겼다.
"그럼 다른 감염자도 그 약을 주면 안 되나? 어차피 사람으로 연장하는 게 얼마나 의미 있을까 싶은데"
유민이는 살짝 인상을 쓰더니 이내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대답했다.
"그 약 제가 병원에서 가져온 건데 이제 못 구해요.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멀리 다른 병원까지 다녀올 상황도 안되고"
"그 약 이름이 뭔데?"
그가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때 그 약병 버렸어요?"
아주머니는 구석에 쌓여있는 작은 상자들을 뒤지더니 작은 병 하나를 들고나왔다.
<텍사코민>
내가 약 이름을 본다고 알아볼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뭔가 인류의 종말을 막을 어떤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약병에 적혀있는 단어들은 정말 알아볼 수가 없었다. 불친절한 약이었다.
"이거 항생제랑 같이 섞여 있어서 제가 발견을 못 했어요. 그 덕에 형이 저렇게 됐죠. 고치화 이후에 제가 하마터면 형 죽일 뻔했다니까요"
유민이가 이렇게 수다쟁이였다. 그동안 이런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갑자기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거 병원 안에 열쇠가 달린 금고 같은 곳에 들어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문 뜯어버리고 가져왔죠. 금고 안에 있는 거면 좋은 약 아니겠어요?"
그때 난 구석에 쌓여있는 의문의 작은 병들과 주사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왜 무덤덤하면서도 묘한 감정의 기복이 있는지 조금은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이 동네는 어쨌든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저 정체불명의 약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보를 얻었다.
사실 그 정보로 딱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또 다른 방향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 같은 일반인의 머리에서 나오기 힘든 거라도 그걸 알아채고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만 만난다면 우리가 모은 정보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세상 전부를 구원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우리만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세상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정보의 단절이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통신이 되지 않는다.
지역 안에서 발견된 귀한 정보들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 못하고 한정된 곳 안에서만 머무니 정보의 가치가 제대로 발현되지도 못하고 그냥 그대로 소멸하는 것 같다.
우리 캠핑카가 노아의 방주는 될 수 없어도, 소통이 단절된 세상에서 미약하게나마 정보 전달의 수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요 형"
"응?"
"우리 아빠와 형, 치료할 수는 없을까요?"
현실적인 질문이다. 그런데 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희망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 미국이나 독일 같은 데는 있지 않을까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아직 우리나라 상황도 다 돌아보지 못했지만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단서를 찾았을 수도 있다.
혹은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을 수도 있고
난 말없이 앉아있는 우리 식구들을 바라봤다. 아이들은 이제 사과를 먹고 있다.
아삭아삭
사과 씹는 소리가 오늘은 참 크게 들린다. 세상에서 인간의 소음이 대부분 사라져서 그런가, 괴물의 괴성도 유난히 또렷하고 크게 들렸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가 내는 소음도 참 크게 들린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공해가 지구를 병들게 했지만 난 그중에서 소음이 차지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내가 10년 동안 몰던 오래된 디젤 트럭의 소음은 정말 심했다.
자취방에서 텔레비전을 볼 때도 밖에서 들려오는 각종 소음 때문에 볼륨을 더 높일 때가 많았고 거리를 걸으면서도 수많은 소음 속에서 나는 하나의 소리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고작 사과 씹는 소리에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아함"
아까는 막 울음을 터트릴 것 같던 작은 성희의 하품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애들은 여기서 재워도 되는데"
성운이가 긴장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아닙니다. 버스에 애들 침대 있어요."
아주머니는 놀라지도 더 묻지도 않았다. 표정에 안도감이 묻어있다. 아마도 예의상 한 말인 듯싶었다.
나도 괴물이 드나드는 곳에 애들을 둘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괴물 직전인 사람이 안방에 버티고 있다. 아무리 유민이가 강한 놈이라고 해도 그들은 모두 이 집의 가족이다. 우리는 남이고
"잘 먹었어요. 형"
유민이의 인사에 우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아니야, 덕분에 귀한 음식들 너무 잘 먹었어, 고마워 총각"
우리는 그렇게 도망치듯 그 집을 나왔다. 성운이가 빠른 걸음으로 버스로 다가가 문을 열려고 했다.
"안 열려요."
"아 잠시만"
내가 가서 잠금을 해제했다. 그 모습을 성운이가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는 못 해요?"
"응, 아직은 그런 거 같아"
성희가 애들을 욕실로 집어넣었다.
"세수, 양치하고 자라. 작은 성희도 혼자 할 수 있지?"
"제가 조금 도와주면 돼요."
성운이가 씩씩하게 말했다. 녀석의 속마음을 내가 알 방도는 없으나 다시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느낌이다.
난 냉장고에서 맥주를 하나 꺼내서 앉았다.
"더 마시게?"
"너는?"
"나도"
우리는 그렇게 같이 맥주를 마시며 특이한 동네의 어두운 풍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맥주 맛이 씁쓸했다.
그때 창문으로 한번 봤던 붉은 눈이 나타났다.
"아 씨 깜짝이야"
누군지 알면서도 도저히 적응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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