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물귀신
비명은 두어 번 더 들리다 말았다. 그녀의 옆에는 준수가 있고 광역 방어막이 버스 전체를 덮고 있어서 위험한 일은 없을 거다.
"성희야 괜찮겠어?"
그녀는 여전히 두 눈을 꼭 감은 채 고개만 들었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올라가 봐"
난 그녀의 상태를 잠시 살핀 후 등을 살짝 두드려 주고 다시 지붕에 올랐다.
준수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은정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내가 올라오는 걸 보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혀···. 형···. 저는 안 보이는데"
"어디 보다가 그랬어?"
그러자 준수가 테이블 옆 난간으로 다가가서 아래를 가리켰다.
"저기요. 저는 아무리 봐도···."
그런데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뚫어지게 강물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야! 왜 그래? 뭐가 보여?"
순간 그가 점점 난간 너머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강물에 그대로 빠져들어 갈 것처럼
"정신 차려!"
난 뛰어가 그의 목덜미를 부여잡고 뒤로 힘껏 당겼다.
"으···. 으···."
그의 눈은 이미 풀려있었다. 뭔가를 보긴 본 것 같다. 난 우선 그가 바라보던 난간 아래 강물을 살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 삼촌이···. 돌아가신···. 삼촌이···."
준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바닥에 누운 채로 끊임없이 중얼거렸고 입에서는 침까지 흐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난 다시 버스 아래로 내려가 운전석에 앉았다. 최대한 빨리 여길 벗어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내 눈에는 안 보이고 그들에게만 보이는, 게다가 자신과 관련된 사람의 형상이라면 그건 환영이다.
난 강하게 악셀을 밟았다. 그러자 액정의 [위치] 표시가 흰색으로 변했다.
우웅
풀 악셀인데도 강한 진동음만 버스 뒤쪽에서 들려올 뿐 속도는 여전히 느렸다.
그 묵직한 진동음은 버스 안을 공명하며 내 머릿속까지 울렸다.
나라도 상태가 정상인 게 다행이긴 했지만, 기분은 착잡해졌다.
'나는 굳이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난 씁쓸한 표정으로 액정과 전방을 번갈아 살피며 계속 보트 모드의 버스를 몰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버스 진동음에 고막이 적응했을 때쯤 문득 옆 유리 너머 멀리 뭔가가 아른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건···.'
예전에 봤던 초거대 형상이다.
박물관에서 멀리 어두운 산 위에 있던, 그리고 그동안 두어 번 더 멀리서 목격했던 그 거대한 형상
너무 어두워 이전처럼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같은 거다.
괴물도 아니고 연기 같은 것도 아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저 존재는 날 해치려는 것도 아닌 듯했다.
'저것도 환상인가?'
내가 눈을 비비고 다시 자세히 살피려 했을 때 고요한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전방이다.
촤아아!
버스 앞쪽에서 뭔가가 튀어 오르더니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 1 < 3 < 0 ]
강물의 또 다른 지역으로 진입한 모양이다. 좌우를 살피니 강폭이 아까보다 많이 좁아졌다. 상류로 많이 올라온 것 같다.
퉁!
그때 버스 앞 유리에 뭔가가 튀어 올라 달라붙었다. 광역 방어막을 통과할 수 있는 놈이다.
'개구리?'
형상이 비슷해 보였고 크기는 황소개구리 정도로 컸다.
"저거 뭐야?"
성희가 정신을 좀 차렸는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리니 게슴츠레한 눈으로 앞을 보고 있는 성희가 보였다. 머리는 헝클어져 엉망이었고 얼굴에는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있었다.
"왕 개구리"
내가 말하자 그녀는 테이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때 옆에 있던 거실의 작은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곤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싱크대 물을 틀었다.
싱크대에서 간단하게 얼굴을 씻은 그녀는 소매로 물기를 닦으며 조수석에 앉았다.
"웬 개구리가"
성희는 앞 유리에 달라붙어 있는 개구리 형상의 생명체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너 괜찮아?"
내가 묻자,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어,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는 아닐 텐데 계속 눈에 보이니까···."
난 그녀의 팔을 살며시 잡으며 물었다.
"지금은?"
그녀는 다시 시선을 앞 유리 너머로 돌리며 대답했다.
"가슴에 찌릿한 느낌이 좀 남아있긴 하지만···. 괜찮아"
그때 앞 유리에 또 다른 생명체가 나타났다.
쉬익
"뭐야 이건?"
실인 줄 알았다. 실뱀 같은 느낌이다. 전선 정도의 굵기에 길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생명체가 앞 유리에 붙은 왕 개구리를 휘감기 시작했다.
푸득 푸드득
개구리는 안간힘을 쓰며 유리에 계속 붙어있으려 했지만, 몸 전체를 휘감은 실뱀 때문에 그대로 다시 물 위로 떨어졌다.
"지붕은 괜찮을까?"
성희는 문득 지붕이 걱정되는지 입을 열었다.
"운전 좀"
난 그녀에게 운전대를 넘기고 다시 지붕에 올랐다. 딱히 비명이 들리지 않아 괜찮을 듯싶긴 했지만···.
"젠장!"
난 바로 검을 뽑아 들고 휘둘렀다.
두 명 모두 실뱀에 칭칭 감겨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미라 같아 보였다. 어디서부터가 머리고 꼬리인지, 한 마리인지 여러 마리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우선 녀석들의 숨통부터 트여야 하니 얼굴 부분을 향해 검을 조심스럽게 휘둘렀다. 얇은 실뱀만 잘라야 한다.
"으허! 끄억"
얼굴이 다시 드러나자, 준수가 한꺼번에 숨을 토해냈다. 난 연이어 은정의 머리를 감고 있는 실뱀을 잘라냈다.
"꺄악! 으아아"
그녀는 많이 놀랐는지 마치 바닥에 떨어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며 거세게 몸부림쳤다. 그 때문에 여전히 그녀의 온몸에 달라붙어 있는 실뱀을 잘라내기가 힘들었다.
준수는 그런 은정의 모습을 바라보며 얼어붙은 듯 가만히 누워있어 잘라내기가 수월했다.
"고···. 고마워요."
잘린 실뱀의 살점을 털어내며 준수가 고개를 숙였다.
은정은 여전히 몸부림치며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고 그녀의 몸은 더더욱 셀 수 없는 실뱀들이 강하게 옥죄고 있었다.
"가만히 좀 있어 보라니까!"
하지만 내 말은 그녀의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퍽!
최대한 살살 때렸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깊은 잠에 빠져든 듯 평온한 얼굴로 변했다.
난 조심스럽게 남은 실뱀들을 모두 잘라내어 강물로 던졌다.
"주···. 죽은 건?"
준수가 놀라 은정을 살폈다.
"안 죽어"
그때 난간 너머로 십여 마리의 실뱀이 계속 기어 올라오는 게 보였다.
"뭐 저런 지렁이 같은 놈들이"
난 다가가서 검으로 계속 토막을 냈지만, 놈들은 끊임없이 기어 올라왔고 속도 또한 민첩해서 놓치는 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팔이 저려올 때쯤 두어 마리가 다시 지붕에 성공적으로 올라왔다.
"으허!"
준수는 발로 놈들을 밟으려 했으나 워낙에 빠르게 움직이는 놈들은 느려터진 그의 움직임을 쉽게 피해 발목을 휘감으며 다리까지 순식간에 기어 올라갔다.
"으아!"
난 재빨리 뛰어가 아슬아슬하게 실뱀을 잘라냈다. 그때 내 등에 두 마리의 실뱀이 갑자기 달라붙었다.
"아씨! 정말!"
두 놈은 동시에 검을 쥔 내 팔과 어깨를 순식간에 휘감았다. 그 때문에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끄윽!”
난 온 힘을 다해 놈들을 뜯어내려 했지만, 검으로 쉽게 잘리던 놈들이 힘으로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내가 비틀거리는 사이 서너 마리가 더 올라와 내 두 발목을 동시에 휘감는 바람에 난 그대로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젠장!"
그때 천천히 버스가 멈췄다. 그리고 마치 음악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지붕 문이 열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감지 않았던 머릿결의 냄새가 느껴졌다.
파직 파직
손으로 무언가 뜯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워낙에 움직임이 빨라서 내 시선이 따라가기도 어려웠다.
"나부터!"
하지만 넘어져 버둥거리는 나만 빼고 주변만 맴돌며 계속해서 무언가가 뜯기고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허"
은정이 정신을 차렸는지 이상한 소리로 감탄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언니"
그러다 이내 성희의 움직임에 반했는지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다.
"나···. 나도 좀"
그 순간 주변이 조금 잠잠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 고개와 팔에 달라붙어 있던 실뱀들이 뜯기는 느낌이 들었다.
드드득 파직!
내 얼굴 바로 옆에서 두어 마리의 실뱀의 몸통이 그대로 뜯겨나갔고 그 바람에 허연 액체가 내 얼굴에 그대로 튀었다.
"윽!"
난 다시 검을 틀어잡고, 다리를 감고 있는 놈들을 그대로 잘라냈다. 그런데 얼굴에 튄 놈들의 진액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겨우 옷으로 얼굴과 눈을 닦으며 주변을 살피자, 성희가 떡진 머리카락을 날리며 버스 난간을 잡고 전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멋있어요."
"누···. 누나"
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는 아저씨고"
그때 성희가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더 안 올라온다. 근데 저기 폭이 너무 좁은데?"
성희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전방에 급격하게 강폭이 좁아지는 게 보였다. 주변 지형도 현저하게 달랐다. 그때 준수가 일어서서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폭은 좁은데 물은 깊어요. 많이 왔네요."
성희가 전방을 계속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마존 같다. 가본 적은 없지만"
"뭐라도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할 거 같은데?"
그러자 준수가 대답했다.
"근데 이상하게 동물 같은 게 거의 없어요."
"그래? 괴물은? 꺽다리나 못난이 같은 놈들"
"꺽···. 뭐요?"
난 그들에게 우리가 괴물을 부르는 명칭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아하, 자···. 잘 지으셨네요. 네 그 칼날 발톱 같은 놈들 가끔 나타나나요. 그런데 요즘은 못 봤어요. 그때 그 이후론"
"그때?"
"네, 레드홀에서 파란 머리와 애들 나타나고 난리가 난"
"아···."
문득 궁금한 게 생겨 물었다.
"근데 그 이후로는 레드홀은 못 본 거야?"
그러자 테이블 자리에 앉아있던 은정이 입을 열었다.
"감시탑에서 가끔 멀리 숲속에서 붉은빛을 봤어요. 여전히 가끔 생기는 것 같은데···. 우리 둘이 접근하기에는 무섭고···."
아직도 그 현상은 그대로인 것 같다. 붉은 거미가 여전히 두 세계를 오가고 있는 거다. 아니면 이쪽으로 넘어오기만 하고 있거나
그러고 보니 우리가 여기로 넘어오기 직전에 오염 벌레가 우리 동해를 집어삼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문득 그쪽 상황이 궁금해졌다.
'돌아갈 곳이 남아있긴 한 걸까?'
난 착잡한 기분을 누르고 버스 지붕 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이번엔 내가 몰게, 지붕 부탁해"
성희는 여전히 시선을 전방에 둔 채로 짧게 대답했다.
"그래"
난 아래로 내려와 욕실 세면대로 가서 대충 세수를 한 후 운전석에 앉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끈적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앞 유리 너머로 버스 전조등에 비친 울창한 정글이 보였다. 내가 살던 지구의 정글과 형태는 비슷해 보였으나 식물의 느낌은 달랐다.
꿈에서 봤던 그 느낌이다. 아니 깨고 나서 내 손에 나뭇잎이 있었으니 꿈은 아닐 거다. 어떻게 그런 건지는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그건 꿈은 아니었다.
"출발한다."
난 열린 창문으로 소리치고 악셀을 밟았다.
우웅
버스는 그렇게 서서히 좁아지는 강의 상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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