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J1. 어미 괴물의 선택
눈이 없는 괴물인데도 놈은 마치 날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내 말이 들렸을까?
내 의도가 느껴졌을까?
돼지 같은 새끼 괴물은 그렇게 잠시 몸부림을 멈췄다. 괴성도 지르지 않았다.
마치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뀌이이이이이
엄청난 입 냄새의 어미 괴물만이 기다림을 참지 못하는 듯 괴성을 질러댔다. 마치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닦달하는 성질 급한 부모처럼
어미 괴물의 괴성에도 새끼 괴물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입밖에 없는 괴물이지만 사방이 보이는 듯했고 주변의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뀌이이
어미는 지붕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고 거대한 입과 그 속에 있는 수많은 가시 같은 이빨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메뚜기가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나라가 뛰어가 살피더니 소리쳤다.
"기절한 거 같아"
메뚜기의 특별한 능력도 이젠 기대할 수 없다.
어미 괴물은 빠른 속도로 그 거대한 머리를 아래로 내리고 있었고 그 대상은
"엇?"
나였다.
난 새끼 괴물의 입에 반쯤 꽂아 넣었던 검을 급히 뽑아 들었다. 역겨운 냄새가 바로 가까이서 느껴졌다.
그 순간 시간이 다시 느려졌다.
난 흐름을 자른다는 느낌으로 검을 어미 괴물의 입을 향해 가로로 그었다. 검의 궤적을 따라 질긴 가죽이 마치 부드러운 고기처럼 갈라졌다.
하지만 괴물은 입가가 찢어진 채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어? 내가 아닌가?'
놈의 거대한 입이 향하는 곳이 이상했다.
그때 바로 시간의 흐름이 풀렸다.
섬뜩한 느낌에 난 새끼 괴물을 손에서 놔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어미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대로 새끼 괴물을 물었다.
"뭐야!"
인질 따위로 죽게 두느니 그냥 직접 처리한다는 건가?
괴물의 입속으로 잘근잘근 씹히며 들어간 새끼 괴물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새끼는 괴성도 지르지 않았다.
괴성은 어미의 몫이었다.
뀌이이이이이
새끼를 집어삼킨 어미 괴물은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엄청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슬펐나?
감정 따위가 정말 있었나?
놈의 움직임에 버스가 산 쪽으로 조금씩 밀렸다. 그때 내 눈에 나무가 없는 완만한 경사가 눈에 띄었다.
"성희야 지붕 좀 부탁해!"
난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지붕 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내려가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바로 핸들을 돌리고 악셀을 밟았다. [수평]이 켜져 있어 흔들림이 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물살에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악셀을 밟자 바로 [위치] 버튼이 흰색으로 돌아갔다. 난 바로 완만한 경사로 방향을 잡고 풀 악셀을 밟았다.
우우우웅
버스 뒤편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그리고 버스는 점점 더 속도를 올리며 움직였다.
사이드미러로 버스 뒤편에 있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포효하고 있는지 버스와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저대로만 있어라.'
난 눈앞에 다가오는 경사를 확인했다. 이제 거리는 대략 이십여 미터, 거의 다 왔다.
그 순간 사이드미러에 놈의 모습이 가까이 나타났다. 또 실제보다 가까이 있다는 글자가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젠장"
놈이 머리로 버스를 강하게 밀었다. 그런데 버스는 놈의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 바람에 일어난 파도에 조금 흔들릴 뿐이었다.
"방어막은 그대로라 다행이다."
그 순간 놈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어?"
이제 남은 거리는 십여 미터, 곧 육지에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괴물은 우리가 향하는 곳을 예상한 듯 버스의 바로 앞에 다시 나타났다.
촤아아!
거센 물보라와 함께 물속에서 튀어나온 괴물은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괴성을 질렀다.
뀌이이이이이이
핸들을 돌릴 틈도 없었다. 아니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버스는 그대로 놈에게로 돌진했다.
충격의 느낌이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이상한 진동만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놈은 버스에 부딪히며 계속 뒤로 밀려나더니 그대로 뒤집히며 땅 위까지 올라갔다. 그 바람에 근처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나갔다.
뀌이이이!
같은 괴성이지만 느낌은 달랐다. 마치 당황하며 지르는 비명 같았다.
괴물은 짧은 여섯 개의 다리로 계속 발버둥을 치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잡았다.
머리가 산 쪽으로 향하며 밀려났던 괴물은 위치를 파악하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움직임 때문에 근처 작은 나무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우우웅!
계속 직진하던 버스는 그대로 땅에 닿았다. 그리고 버스 전체에서 기계음이 잠시 들리며 멈칫거리더니 이내 땅 위로 거세게 올라갔다.
그때 괴물이 버스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고는 몸을 돌렸다.
거대한 입이 버스 앞에 있었다. 그리고 버스가 놈의 입 냄새에 먼저 닿았다. 버스도 그 냄새가 역겨웠는지 이상한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의 입과 이빨이 버스에 닿았을 때 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광경을 눈앞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인간형 정도의 작은 괴물은 접촉 파괴 시 빠르게 그대로 터져나갔다. 그런데 이런 거대 괴물은 처음이다.
버스에 먼저 닿았던 이빨과 주둥이가 먼저 진한 초록색으로 변하며 터졌다. 그리고 마치 느린 화면처럼 그렇게 순차적으로 놈의 몸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놈의 몸 중간쯤을 지나갈 때 버스의 앞 유리와 양쪽 측면은 온통 초록의 액체로 뒤덮였다. 아마 버스 지붕도 그 액체로 난리가 났을 거다.
그렇게 버스의 조명에 비친 괴물의 진액은 묘한 초록색을 사방으로 흩뿌리며 연기로 사라져갔다.
순식간에 버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에 가뜩이나 짧은 시야가 완전히 막혔다.
'젠장'
그리고 풀 악셀을 밟아도 느렸던 버스가 육지로 올라오며 괴물까지 터트리고 나니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난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자욱한 연기 때문에 전조등이 켜져 있었는데도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진흙탕에 미끄러지던 버스가 물에 떠내려온 잡동사니들과 얽히더니 겨우 속도가 줄었다.
"헉!"
버스가 완전히 멈추고 나서야 버스 바로 앞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 게 눈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연기가 사라지며 버스의 조명에 비친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십여 개의 코르카가 버스로 날아오고 있었다.
난 급히 뒤쪽 계단을 지나 지붕으로 올라갔다.
"다들 괜찮아?"
테이블 위에 있던 네 명의 사람은 테이블 아래로 피신해 있었고 그 옆에 성희와 나라가 있었다. 메뚜기는 벤치 시트에 눕혀져 있다.
"휴!"
성희가 천천히 일어선다. 뒤이어 나라도 주변을 살피며 일어섰다. 일반인 네 명은 반쯤 정신이 나간 듯 그렇게 아직도 테이블 아래에서 쪼그리고 숨어있다.
"접촉 파괴가 바로 돼서 다행이야."
성희가 상황을 바로 알아채고 말했다. 나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메뚜기는 괜찮을까?"
난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가가서 그의 상태를 살폈다.
"드르렁!"
내가 다가가자 녀석은 갑자기 크게 코를 골았다. 기절한 게 아니라 자는 거였다.
"왜 아깐 못 봤지?"
성희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물이 다 들이찼을 때는 분명 보이지 않던 지형이었다.
"물이 빠졌으니까"
눈썰미가 좋은 나라가 지형을 살피더니 말했다. 나도 난간으로 다가가 아래를 살폈다.
주변 지형이 달라진 게 느껴졌다. 수위가 조금 내려가 물에 잠겨 있던 경사가 나타난 거였다.
"진흙을 올라간 게 신기하네!"
성희가 버스 아래쪽을 살피며 말했다.
경사면은 버스 바퀴가 바로 빠져버릴 만큼 진흙탕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지나온 바닥에 인조 잔디같이 생긴 카펫이 마구 찌그러져 있었다.
'건물 앞에 깔려있던?'
물이 빠진 그 자리엔 카펫뿐만이 아니라 분지에 있던 각종 잡동사니가 진흙과 뒤엉켜서 엉망이었다.
"물이 더 빠지면 산에 갇히겠는데?"
급히 육지로 올라오긴 했지만 현재 위치에 머물다가는 우리는 산 위에서 오도 가지도 못할 수 있었다.
"분지 쪽까지는 가야 할 것 같아"
물이 빠질 때 적어도 처음 있던 분지의 영역 안에는 있어야 했다. 물론 더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수면 아래를 파악할 수 없는 지금 더 내려갔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지표가 있어야 해"
그런데 어디까지가 분지의 영역인지 도저히 알 방도가 없었다. 우리가 있는 땅 위 말고는 주변이 전부 물이다. 아직 수면 위로 보이는 건 없었다.
"우선 다시 물로 내려갈게."
난 버스 안으로 내려왔다. 침대를 지나치는 데 할아버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깨셨어요?"
지나가면서 슬쩍 보니 아직 의식이 없으신 거 같다.
난 운전석에 앉아 버스를 후진시켰다.
위이이이잉
바퀴가 헛도는 게 느껴졌다. 아까 올라올 때 도움을 줬던 잡동사니가 지금은 역으로 버스의 움직임을 막고 있었다.
위이이잉
재차 악셀을 밟았지만, 뒤로 조금 움직이다 다시 밀리며 바퀴는 계속 헛돌았다.
"젠장"
그때 버스 앞으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성희다.
그녀는 두 손으로 버스를 밀기 시작했다.
"밟아!"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소리쳤다. 난 다시 악셀을 밟았다.
흙탕물이 그녀에게 마구 튀었다. 그녀의 셔츠와 바지에 진흙이 묻었다. 얼굴과 머리카락까지 흙탕물 범벅이었다.
"으아아아아!"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버스는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엄청나게 튀는 진흙 때문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몸 전체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그녀는 이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인간 형태의 조형물 같았다.
그녀는 소리도 더 지르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고 작은 신음만이 아득하게 들려왔다.
위이이이잉~ 철썩!
버스의 뒷바퀴가 수면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내 버스 전체가 다시 물 위로 밀려났다.
위이이잉!
격하게 돌던 바퀴가 천천히 멈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버스 뒤쪽에서 보트 상태였을 때 들렸던 엔진음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얼른 올라와!"
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녀에게 소리쳤다. 그녀는 물가로 더듬거리며 다가오더니 얼굴부터 물로 씻었다.
그때 그녀의 얼굴이 전조등에 비쳤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물로 뛰어들었다.
첨벙!
그녀는 버스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버스는 물로 다시 내려올 때의 관성으로 육지와 조금 멀어져 있는 상태였다.
"조심해서 올라와"
버스 운전석 옆으로 헤엄치며 지나가는 그녀에게 그렇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한 손을 들어 오케이 표시를 하고는 버스 뒤쪽 사다리 방향으로 향했다.
난 그녀가 무사히 버스 위로 오를 때까지 기다리며 사이드미러로 그녀를 살폈다.
그런데 미러에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사방을 살폈다.
아무도 안 보였다.
"성희야!"
그녀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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