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J1. 타인의 선택
허공에 떠오른 괴물들은 빠르게 회전하며 버둥거리고 있었고 끊임없이 더 높이 올라갔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둠 속으로 놈들의 모습이 한둘씩 사라져갔고 이내 시야에서 모두 사라졌다. 지상에 남아있는 괴물은 더는 없어 보였다.
깨진 창문과 부서진 창틀, 골목에 있던 잡동사니, 그리고 부서진 차량까지 지상에 있던 모든 것들도 여지없이 공중으로 떠올라 있었다.
심지어 거세게 내리던 빗줄기까지 바닥에 당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중으로 올라갔다. 바닥에 고여있던 빗물까지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정말 괴기스러웠다.
그 때문에 높은 하늘에 물로 생성된 거대한 돔이 생겨났다. 성운이의 각성 능력이 만들어낸 강력한 에너지의 크기가 빗물에 의해 시야에 나타나고 있었다.
일전에 촉수 거미 때문에 공중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나를 허공에서 멈추게 했던 바로 그 에너지 같았다.
버스는 다행히 괴물과는 다르게 빌라 3층 정도의 높이에서 더 떠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탓에 제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창 아래를 바라보니 여전히 빌라 입구에 그대로 서서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는 성운이가 보였다.
성희가 버스 반대편 창 아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거 뭐지?"
난 비틀거리며 간신히 테이블 창문으로 다가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살폈다.
한 사내가 주변의 상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듯한 편안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성운이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파란 머리?"
모자를 쓰고 있어서 위쪽에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뒤쪽으로 바람에 날리는 긴 머리칼이 조금 보였다.
버스가 허공에 떠 있어서 조명이 완전히 그를 밝히지는 못했지만 아까 창문에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그 의문의 사내가 맞는 거 같다.
"성운아!"
아이도 자기에게 다가오는 그 사내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치 그 사내를 알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어? 민희 언니?"
그때 작은 성희의 손을 잡고 민희 누나가 빌라 입구에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이 동네에서 성운이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피해 가는 건 저들뿐이었다. 모두 공중에 떠올라 있는 와중에 저들만 바닥에 편안하게 있는 모습은 정말 이질적이었다.
푸른 긴 머리의 사내는 성운이 앞에 다다르자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스에서는 그 음성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민희 누나와 작은 성희와도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전부 같이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누나!"
"성운아!"
나와 성희가 버스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들을 불러봤지만, 그들은 위쪽으로는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우리의 음성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 언덕 아래쪽으로 향했다.
"성운아!"
내가 다시 아이를 부르자 맨 뒤에서 따라 걸어가던 성운이가 혼자 멈춰 섰다.
"들었나 봐"
하지만 뒤를 돌아보진 않았다. 녀석은 잠시 그렇게 서 있더니 앞에서 파란 머리가 재촉하자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왜 순순히 따라가는 거지?"
성희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친한 사람들이 함께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
"혹시?"
내가 입을 열자 성희가 날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은 내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성운이 아빠?"
내가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자 그녀가 다시 창밖에서 멀리 사라져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란 긴 머리가 성운이 아빠라고?"
지금 적어도 확실한 건 성운이네 가족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저 사내를 따라가고 있다는 거고 그건 이미 친한 사람이거나 혹은 다른 어떤 이유가 있다는 거다.
"설마···. 아닐 거야. 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닌 거 같아"
그들은 마침내 버스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언덕 아래쪽이다.
"악!"
그때 갑자기 버스가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꽉 잡아!"
갑자기 우리를 옭아매고 있던 어떤 거대한 에너지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버스는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허공에 붕 뜬 느낌이었다가 다시 떨어져 그대로 버스 바닥을 굴렀다.
"으···."
일반 차량이었다면 아마도 큰 상처를 입었을 터였다. 하지만 버스가 어느 정도 충격을 상쇄시켜 준 것 같다. 그때 갑자기 밖에서 엄청난 물 폭탄이 떨어졌다.
쏴아아아!
거대한 물줄기가 마치 강물처럼 동네를 휩쓸었고 그 물 위로 공중에 떠 올랐던 각종 쓰레기와 부서진 차량이 떨어졌다.
물 폭탄은 얼마간 계속되다가 멈췄고 그 물살에 언덕 아래쪽으로 잡동사니가 대부분 쓸려 내려갔다.
"휴! 괜찮아?"
내가 고개를 들며 성희를 살피자 그녀의 팔에 테이블 구석에 긁힌 상처가 보였다.
"피난다."
그녀는 오히려 나를 살폈다. 그때 이마에서 통증이 느껴져 손으로 만져보니 끈적한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성희가 급히 구급상자를 들고 와 붕대로 이마의 출혈 부위를 눌렀다.
"너는?"
"난 괜찮아"
큰 상처는 아닌 듯 피는 금방 멈췄고 성희는 소독을 한 번 하더니 이마에 붕대를 감아줬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엄청난 상처라도 입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정도는 침대에 한 시간만 누워있어도 낫는다.
"형!"
그때 옆 건물에서 유민이가 날 부르며 뛰어왔다. 반장은 보이지 않았다.
"넌 괜찮아? 그쪽 사람들은?"
그때 내 머리에 감긴 붕대를 보며 유민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형 다쳤어요?"
"별거 아니야, 너는?"
그때 유민이네 빌라 건물에서 유민이 엄마가 뛰어나왔다.
"유민아! 괜찮아?"
그녀의 뒤로 빌라 위층에 있던 사람들이 한둘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전부 밖으로 걸어 나왔고 옆 건물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엄마! 괜찮아요?"
"우리도 천장에 붙어있다가 떨어졌어, 다행히 다친 곳은 없다. 아빠도 괜찮으셔"
난 군중들을 살피다가 물었다.
"반장이 안 보이네?"
내 질문에 유민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 그게···. 아까 창문에서 말씀드렸는데 괴물 놈들 괴성 때문에 전달이 안 돼서···."
"무슨 일이야?"
"벼락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반장 어머니가 마치 폭탄처럼 터졌데요."
"뭐?"
"그 충격에 괴물들은 전부 조각났는데 사람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네요."
처음 보는 현상이다. 이건 자폭 각성 능력인가? 그러고 보니 반장 엄마의 각성 능력에 관해 물어보지 못했다. 설마 정말 단 한 번 쓸 수 있는 능력이었을까? 아니면 벼락 때문에?
"그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데요."
"반장은?"
"그게···. 아직 빌라를 뒤지고 있어요. 엄마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난 더는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유민이한테 반장 데려오라고 말을 하기도 애매했다. 그저 스스로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때 성희가 버스에서 나오며 말했다.
"탐지가 모두 0이야"
그렇게 많았던 인간형 괴물들이 전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아까의 그 속도를 볼 때 꽤 멀리까지 날아갔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유민이 형은 탐지기에 걸리지 않고 있었다. 어떤 변화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포탑이 유민이 형을 공격하지 않는 이유와 같은 거 같다. 버스도 상황에 적응하는 건가?
"성운이는 어떻게 된 거예요?"
유민의 질문에 문득 동네 사람들은 성운이네 아빠를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까 파란 머리 사내 봤어?"
"모자 쓴 사람요? 어두워서 제대로 못 봤는데"
난 동네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까 파란 머리 사내 보신 분 계세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어느 중년의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천정에 붙어있어서 창밖을 볼 수가 없었어."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공중으로 뜨는 힘이 너무 셌다니까"
"숨도 너무 막혔어."
"위험해서 창문 쪽으로는 안 갔는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 사내를 제대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성운이 아빠 얼굴은 알지?"
유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는 못 봤지만, 옆집이니 얼굴은 알죠. 저보다 아빠가 잘 아실 텐데, 예전에 같이 술도 가끔 드셨거든요. 요 앞 슈퍼에서"
하지만 잠정적 괴물 대기자인 그에게 물어볼 방도는 없었다.
"파란 머리는 아니었지?"
"네, 그냥 평범한 모습이었어요."
"아까 그 중절모 파란 머리 사내가 성운이 아빠일 리는 없을까?"
유민이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2층에 있던 유민이도 공중으로 날아가지 않으려 창틀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고 그 사내가 모자를 눌러쓰고 있던 탓에 얼굴은 제대로 못 봤을 거다.
"성운이 아빠는 항상 머리가 짧았어요."
"그래, 알았다. 넌 가족이랑 반장 잘 챙기고"
그리고 군중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밤은 이 빌라 건물에 모여서 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잠시간의 웅성거림이 들리더니 하나둘 빌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3층짜리에 층마다 두 집뿐이라 공간이 넉넉하진 않지만, 지금은 가까운 곳에 몰려있어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찾으러 가보자"
성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난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 아까 바닥으로 다시 떨어졌을 때 바로 성운이네가 사라진 언덕 아래로 버스를 몰고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키지 않았다.
'남의 가족 일에 간섭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머뭇거리자 내 생각을 읽은 듯 성희도 더는 묻지 않았다.
난 자꾸 그들이 마치 가족처럼 순순히 따라 걸어가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잠시나마 내가 가족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혹시 질투심이라도 느낀 건가?
어이없는 생각이다. 그런데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난 버스로 다시 들어갔다. 성희는 그런 내 모습을 밖에서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따라 들어왔다.
3층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버스의 상태는 괜찮았다. 쉴드 수치만 조금 떨어진 것 같다.
"비가 멈췄어."
거세게 몰아치던 폭풍우는 완전히 지나갔는지 어느새 하늘에서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가늘게 뜬 초승달이 보였다.
"이해가 안 돼"
거실 테이블에 앉아 밖을 바라보던 성희가 말을 꺼냈다.
"언니와 애들의 행동도 이상했어."
나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단순하게 추론해보자면 만약 그 사내가 성운이 아빠가 아니라면 아마도 그 가족을 데려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일 거다.
"아빠에게 데려다준다고 한 걸까?"
"정말 그렇다면···."
"증거 따위도 있었겠지, 전해 달라는 말 같은 거나"
성희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찾아야 하나?"
"어디로 간 줄 알고"
우리가 부르는 외침에 대답도 하지 않고 사라진 사람들을 찾으러 이 늦은 밤에 출발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까 날아간 괴물들이 다시 여기를 덮치기라도 하면 수십 명의 사람은 그대로 찢겨 죽을 거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선택한 거니까"
나도 성희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의문의 사내가 어떤 말로 구슬렸든 그들이 판단하고 선택한 거다. 강제로 잡아갔다면 구하러 출발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들을 찾아낸들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 액정의 탐지 숫자가 바뀌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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