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J1. 정식 버전
진화하고도 코르카가 저렇게나 남았다고?
그럼 지하실에 있던 코르카가 거의 천오백 개 정도?
난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벌어진 입은 앞으로 당분간 닫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시보드의 계기판이 완전히 바뀌었다.
마치 베타버전 외국 프로그램 쓰다가 한글화된 정식 버전이 출시된 것 같다.
대시보드에 계기판과 옆의 램프, 버튼들이 난잡하게 있던 모습이 완전히 하나의 터치스크린으로 정리가 되었다.
게다가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커졌다. 가로로 길게 늘어진 액정이 대략 40인치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계기판은 큰 주변 지도와 그 옆으로 마치 버스의 상태창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많은 정보가 제대로 정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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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카 [459/3000] [0.05/H]
방어막 [100/100] [1 Kc]
탐지 [ 0 < 0 < 0 ]
포격 사거리 [50m]
자동 포격 [OFF]
자동 접촉 파괴 [OFF]
승차정원 [4/6]
차주 [한진우]
승객 [장성희] [추방]
승객 [최성운] [추방]
승객 [최성희] [추방]
투명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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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의 상태정보를 살펴보니 이전보다 정말 친절해졌다.
괴물 탐지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이전엔 색상 램프로 괴물과의 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숫자가 따로 분리되어있다.
승차정원을 보니 두 명을 더 태울 수는 있는 것 같은데 아직 그럴 마음은 없다.
그리고 차주가 지정되어있다. 승객 명단이 생겼고 이제 내가 허가 및 추방을 할 수 있게 된 거 같다.
근데···. 자동 포격? 이게 뭐지? 그리고 접촉 파괴?
이전에 [Warning] 버튼을 누르던 게 접촉 파괴 같은데 이걸 자동으로 한다고? 근데 그것보다 자동 포격이라니? 그럼 우리 버스에 포탑이?
설마? 조금 있다 확인해봐야겠다.
계기판 옆으로 대시보드에는 각종 조명 버튼과 내부 장비 제어 버튼이 액정에 터치식으로 나와 있었다. 이전보다 한눈에 잘 들어왔다.
"정말 많이 바뀌었는데?"
운전석에 앉아있던 성희도 멍하니 대시보드와 계기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버스에 탑승하지 않았는데도 진화는 되는구나, 그리고 이전 진화 때 버스 안에서는 한참 동안 기절한 것 같았는데 이번에 외부에서 바라볼 때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진화 과정도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아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마치 시공간을 초월하며 어디 개조공장이라도 다녀온 것 같이
"애들한테 가보자"
우리는 거실로 향했다. 그제야 바뀐 실내가 눈에 제대로 들어왔다.
버스의 크기도 이전보다 더 커졌는데 내부의 구조도 변화가 있었다.
운전석 머리 위쪽으로 공간이 생겼다. 두 명은 누울 수 있을 것같이 넓었다. 시트 뒤쪽의 작은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거실의 크기도 커졌다. 벤치 시트에는 끼어 앉으면 각각 세 명씩도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있던 두 개의 이층 침대는 약간씩 폭이 넓어진 것 같다. 그리고 사다리가 없어지고 벽 쪽으로 작은 계단이 생겼다. 이층으로 오르내리는데 더 편하게 생겼다. 그러고 보니 버스의 천정이 조금 더 높아졌다.
난 그보다 빨리 지붕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거실 벤치 시트 뒤에 있던 사다리가 안 보인다.
다시 주변을 찾아보니 버스 뒤쪽 2층 침대로 오르는 작은 계단 옆으로 바로 지붕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보였다.
아이들이 침대에서 아직 곤히 자고 있어 난 조용히 뒤쪽 계단을 올라 지붕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역시나 아까 출입구처럼 지연 없이 바로 잠금이 풀렸다. 계단 형식이라 좀 더 쉽게 지붕에 오를 수 있었다.
"오!"
아까 밖에서 버스를 봤을 땐 높이 때문에 지붕이 잘 안 보였는데 위에 올라와서 보니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테두리에 난간 정도 있는 간이 지붕이었는데 지금은 테두리의 높이가 내 허리보다 높았고 두꺼웠다. 그리고 지붕에도 작은 테이블과 고정형 의자가 생겼다.
그리고 지붕 앞쪽에 못 보던 반구체 모양의 검은 장치가 보였다. 그 중앙에는 내 팔뚝 정도 되는 크기의 포탑이 숨 막히는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버스에 코르카를 마구 소모하는 접촉형 파괴 방법 말고도 공격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
'성능을 빨리 보고 싶은데?'
그때 수상한 소리가 언덕 아래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무거운 괴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니다.
작고 가볍지만 먼지 같은 소음
"악마쥐?"
아까 대부분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딘가에 놈들이 많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난 지붕에서 멀리 언덕 아래를 살폈으나 아직 시야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이거 뭔 소리래요?"
버스 옆에서 바뀐 버스의 외관을 구경하고 있던 유민이가 말했다.
"악마쥐 같아"
유민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안 그래도 덤덤한 표정이 더 딱딱해 보였다.
"정말 교회에 있는 덩굴 때문인가 보네요"
표정과는 달리 그의 말투는 여전히 차분했다.
"놈들이 여기까지 나타난 적은 아직 없었어?"
"예. 특히 쥐 괴물은 한 번도 없었어요."
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다시 옮기며 말했다.
"이젠 아닌 거 같은데"
유민이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난 약수터 있는 언덕으로 올라갈게. 넌 어떻게 할 거야?"
약수터 쪽에서는 언덕 아래로 교회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쪽에 주차하기 좋은 공터가 있던 게 떠올랐다.
"전 집에 먼저 들르고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야겠어요. 나중에 상황 봐서 만나요"
유민이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급히 버스 안으로 내려갔다.
"탐지에 숫자가 나와"
성희가 대시보드의 액정을 살피고 있다가 날 보자마자 말했다. 나도 운전석으로 가서 확인했다.
탐지 [ 0 < 234 < 143 ]
이게 뭐지? 아까는 그냥 0 하나였는데 지금은 숫자가 계속 바뀐다. 잠시 패턴을 관찰하니 오른쪽 숫자가 줄어들고 왼쪽으로 숫자가 이동하고 있었다.
탐지 [ 0 < 268 < 109 ]
아무래도 이건 거리별 괴물 수다. 잠깐만 보고 있어서 쉽게 알 수 있게 숫자가 변했다. 그럼 맨 좌측 숫자는 아마도 버스 바로 옆이겠지
'램프 색상으로 알려주던 괴물과의 거리 표시가 이렇게 바뀐 거군'
난 아이들도 깨우고 운전석에 앉았다.
"벨트!"
난 바로 악셀을 밟아 버스를 출발시켰다.
"오오."
버스가 움직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승차감이 너무 좋았다.
이게 버스의 원래 모습인가? 그동안은 그저 베타버전 체험판이었나?
교회 앞을 지나니 푸른 덩굴 식물은 이미 교회 외벽을 완전히 뒤덮고 있어 원래의 형체를 거의 알아보기 힘들었다.
교회 정문과 창문으로 튀어나온 덩굴은 그 앞 주차장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발육이 어찌나 빠른지 자라고 있는 게,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난 언덕을 더 올라 약수터 앞 공터에 주차했다. 창밖으로 교회가 한 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니 그 모습이 더욱 괴이했다. 그리고 언덕 아래에 모여들고 있는 수많은 악마쥐들이 마침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뒤로 멀리 거대한 괴물의 형체가 여럿 보였다. 일전에 마트 앞에서 못난이들한테 뜯어먹히던 이구아나 닮은 거대한 놈이다.
거리는 멀었으나 놈들이 언덕 방향으로 오고 있는 거는 확실해 보였다. 놈들에게 스친 건물들은 힘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저놈들이 악마쥐들을 보고 따라 움직이는 걸까? 아니면 놈들도 그저 푸른 덩굴이 목적일까?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난 대시보드의 상태정보를 확인하다 문득 맨 아래에서 시선을 멈췄다.
투명 [ON]
이젠 투명 여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같다. 무조건 투명일 때 오히려 더 눈에 띌 때가 많았었다. 버스가 안 보이는 사람이나 일반적인 괴물 앞에서 문을 열면 바로 우리의 특징이 들켜버리는 거다.
차라리 대놓고 버스가 보이게 두면 오히려 쓸모없는 주변의 차량과 다를 바 없어 보여 위장에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동안의 바람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거 같은데?'
하지만 이전에도 각성자나 인간형 괴물은 버스를 볼 수 있었다. 이 버튼이 완전 투명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하여튼 반쪽짜리라고 해도 지금은 투명이 필요했다. 언덕 위에 떡하니 주차된 우리 버스는 교회에서도 너무 잘 보이는 위치기 때문이다.
악마쥐가 좀 모이면 자동 포격 테스트를 해볼 생각이었는데 그 뒤로 다가오는 거대 괴물을 보니 테스트는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초대형 이구아나와 악마쥐가 어떤 상성을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대감이랄까?
"아까보다 많아요."
성운이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작은 성희도 악마쥐들을 발견했는지 다시 표정이 무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큰 성희가 아이의 등을 쓸어주며 진정시켰다.
사실 포탑보다 작은 성희의 각성 능력이 훨씬 강력할 터였다. 하지만 조절이 안 되는 아이들의 능력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그리고 강력한 각성 능력에 어떤 후유증이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
나는 시공간의 뒤틀림을 겪으면서 어지럼증이 생겼다. 그리고 그럴 땐 판단력이 흐려졌다. 갑자기 무모하고 멍청한 행동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나뿐만 아니라 식구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큰 성희는 후유증으로 각성 시의 기억을 잃었다. 지금은 그 시간이 계속 짧아지는 것 같았지만 아직도 완전히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거의 올라왔다."
성희의 말이다. 나도 보고 있었다. 난 계기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탐지 [ 0 < 377 < 0 ]
악마쥐를 멀리서 대규모로 내려다보니 정말 쥐 떼 같았다.
액정의 [자동 포격] 버튼에 계속 시선이 갔다.
'누를까?'
그런데 멀리서 다가오는 저 초거대 이구아나 괴물 다섯 마리···. 아니, 일곱 마리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초거대 괴물은 꺽다리와 못난이와는 상극인 걸 봤다. 그런데 악마쥐와의 관계는 아직 모른다.
둘의 사이가 좋지 않다면 두 집단 모두가 피해를 볼 동안 관객 모드로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런데 둘이 같은 편이라면?
그러면 지금 악마쥐를 처리하고 늦게 오는 초거대를 상대하는 게 그나마 나은 방법이다. 한꺼번에 버스나 빌라촌이 공격받으면 방어하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아니면 악마쥐와 초거대 둘 다 사이가 안 좋은 꺽다리와 못난이들이 나타나 주거나
"헐"
때마침 멀리 언덕 아래에서 시공간이 비틀어지는 움직임을 언뜻 본 것 같다.
혹시 나에게 예지 능력이라도 있는 건가? 우연이 너무 작위적인데?
게다가 먼 하늘에서 까맣게 모기떼처럼 몰려오는 무언가도 눈에 들어왔다.
그건 당연히 모기떼가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날괴물 무리다.
'이 새끼들 여기서 전쟁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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