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J1. 식곤증
쓰러진 트럭 위에 나타난 형체들은 멀리서 봐도 어떤 놈들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놈들의 한 없이 못난 모습은 어둠과 거리를 초월하며 강력한 못생김을 여기까지 전달하고 있었다.
못난이 괴물 무리는 굶주린 바퀴벌레처럼 수없이 기다란 트럭 위를 넘어와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대 이구아나를 뒤덮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니 지렁이를 덮은 개미 떼처럼 보이기도 했다.
짜직 짜직 짜직
소리만으로 이렇게 비위가 상할 수도 있나 싶은 정도의 흉측한 소리가 들려왔다.
수백 마리의 못난이가 이구아나를 뜯어먹는 소리였다.
쿠쿵!
촉수 거미 두 마리가 그 옆으로 쓰러졌다. 계속해서 몰려들던 못난이의 일부는 넘어진 촉수 거미 쪽으로 그 못생긴 입을 벌리고 다가갔다.
거대 촉수 거미와 이구아나 괴물은 그렇게 못난이의 저녁밥이 되고 있었고 누군가의 식사를 지켜보는 일이 이렇게 비위가 상할 줄은 우리는 미처 몰랐다.
나머지 촉수 거미도 쓰러졌다. 잘린 촉수는 마치 산낙지처럼 바닥에서 꿈틀거렸고 이내 날괴물과 못난이의 식사로 변했다.
저 촉수 거미는 마리당 코르카 열 개짜린데!
하지만 아쉽게도 놈들끼리 싸우다 죽으면 코르카는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저렇게 씹어 먹히니 남아날 게 없어 보이기도 했다.
저 끔찍하고 비위 상하는 장면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놈들은 소화를 시키는 듯 바닥에 널브러지더니 행동이 느려졌다. 날괴물들도 바닥을 까치처럼 총총거리며 뛰어다녔다.
"버스로 밀어버릴까?"
눈에 보이는 놈들만 밟아버려도 코르카 수백 개는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쉴드 투자 대비 수익이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우선 숫자가 너무 많다. 그리고 한 마리라도 마트 쪽으로 튀어 나가 조용히 숨어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건 모두 내 탓이 된다.
그때 작은 성희의 음성이 들렸다.
"애들 자요"
응? 너희 깨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못난이가 졸고 있다. 앉은 채로 고개를 푹 숙이더니 동그랗게 말려서 가만히 있었다. 날괴물들도 날개로 몸을 감싸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몸이 날개에 가려진 후에 움직임이 멈췄다.
'배부르니 자는군.'
이거 버스가 무슨 다큐멘터리 촬영 차량도 아니고, 이렇게 괴물의 생태를 생생히 바로 근처에서 관찰하고 있으니 기분이 참 더럽게 이상했다.
쌔근쌔근 자는 놈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마트 안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 밖으로 나가긴 위험하다. 특히나 마트 안에 누군가 있다는 걸 놈들이 알게 되면 그들은 몰살이다.
그렇다고 저 개미 떼 같은 놈들을 눈앞에 두고 편안히 잠들기도 애매하다.
'젠장, 조용히 나가서 한 놈씩 찌를까?'
한 놈 죽이고 나머지 수백 마리가 동시에 깨어난다면?
괜히 생각했다.
"그냥 자자"
언제 들어갔는지 욕실에서 양치까지 끝내고 나온 성희의 음성이다. 그녀는 바로 자신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가 참 포근해 보였다.
"너희 칫솔은 내일 구해 줄게"
나도 양치를 마치고 침대 이층으로 올라갔다. 애들도 자기 자리에 다 누웠다. 테이블 조명만 그대로 켜두었다.
"다들 잘자"
어느새 우리는 그렇게 수백의 괴물들과 함께 곤히 잠드는 희한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졸음에는 장사 없고 저놈들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 편하게 자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트 안의 사람들은 불안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까지 그들처럼 불안해하면서 밤을 지새울 필요는 없었다.
혹여나 인간형이라도 나타나면 뭐 버스 내려치는 느낌이라도 들겠지, 이 버스는 경고등은 있는데 경고음이 없는 게 참 아쉬웠다. 할아버지는 소리 나는 기능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던 게 분명했다.
생각해보니 소리 나는 기능을 넣으려면 소리가 잘 나는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너무 내 상황에서만 생각한 것 같다.
* * *
밝은 햇살이 눈에 그대로 떨어져 난 실눈을 뜨고 일어났다. 떠오르는 햇살이 창문 틈으로 곧바로 내 침대로 향하고 있었다.
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식구들을 살폈다. 다들 아직 자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푹 잔 것 같다. 괴물들의 졸음은 전염성이 있던 걸까?
난 거실로 내려와 창밖을 살폈다.
'부지런한 놈들'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전부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다.
'블랙박스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들이 사라진 방향이라도 봐두었어야 했다.
'아 마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생각하고 버스 오른편을 바라봤다.
"아 시발"
나도 모르게 입으로 욕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마트 입구가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왜 소리를 듣지 못했지? 아무리 피곤했어도 그렇지 저 정도면 괴물의 괴성과 사람들의 비명으로 분명히 난리가 났을 텐데?
우리는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고 너무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거 같다.
젠장 젠장
파이프형 셔터는 완전히 부서져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입구 유리문은 전부 깨져있었다.
놈들이 마트에 사람들이 있는 걸 언제 눈치챈 걸까? 그리고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자고 일어나니 또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정말 블랙박스라도 있어서 밤사이 일어난 일을 전부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난 운전석 대시보드부터 살폈다. 탐지 램프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근처에 괴물은 없다.
난 다시 옆문 쪽으로 돌아와 마트 안을 집중해서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했다.
그때 성희가 침대에서 내려와 눈을 비비다 창밖의 상황을 보더니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마트가 왜 저래?"
"당한 거 같아"
"이 난리를 왜 못 들었지?"
"그러니까, 우리 다 못 들은 게 너무 이상해"
정말 그랬다. 아무리 모두의 피로가 극심했다고 해도 어떻게 네 명 모두가 그렇게 푹 잠들고 깨지도 않을 수가 있는 건지 의아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잠귀도 밝던데
난 버스 우측 작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누구 있어요?"
대답이 없었다. 인간도 괴물도
난 다시 버스의 운전석으로 갔다. 탐지 램프는 여전히 꺼져있다. 반경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마트 입구 근처에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퍼센트 게이지 자체가 사라졌다. 수리가 끝났다. 그 때문인지 코르카가 많이 줄어있었다.
[38/1000]
난 버스의 시동을 걸고 후진으로 조금 이동했다. 그리고 핸들을 우측으로 꺾었다.
어제는 사람들 때문에 생각만 하고 시도하지 못했던 방법이다. 이왕 입구도 뚫린 마당에 안전한 버스에서 내릴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난 천천히 부서진 마트의 입구로 버스를 몰았다.
지이이익
부서진 문의 잔해가 버스에 걸려 밀리는 소리가 났지만 난 버스를 멈추지 않았다.
우두둑
버스는 주변의 잔해들을 밀어버리며 천천히 마트 안으로 들어섰다.
아침이지만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 마트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난 외부 등을 모두 켰다.
카트가 계산대 근처에 엄청나게 쌓여있다. 생존자들이 방벽을 친 모습이다. 그 너머 마트 안에서는 진열대로 벽을 만들어 칸막이처럼 해놓았다. 그 사이로 침구류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게 보였다.
열린 우측 창으로 썩은 내가 훅 들어왔다. 상한 음식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윽!"
성희가 옆 창문을 닫았다.
난 계산대 옆의 넓은 진입구에 쌓여있는 카트를 버스로 밀어버렸다.
어설프게 묶어놓은 카트의 방어막은 쉽게 뚫렸고 버스는 마트 매장 내부로 들어섰다.
사람이건 괴물이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탐지 램프도 아직 반응이 없다.
사실 내가 걱정한 건 생존자들이 감염되어 인간형 괴물로 변해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거였다. 그런데 그 걱정이 사실이 될 수도 있었다. 마트 내부에 인간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인간으로 무사히 도망쳤으면 다행이고 인간형 괴물로 빛을 피해 어디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면 골치 아픈 일이다.
문득 어제 그 친구의 이름이 기억났다. 난 운전석의 창을 조금 열고 소리쳤다.
"태형아!"
어젯밤 떨리는 손으로 어설프게 낫을 든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끼이이익
그때 녹슨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난 버스를 멈추고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진우?"
아는 음성이다. 난 성희에게 손짓한 후 검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성희는 운전석으로 와서 대시보드를 살폈고 아이들은 거실에 앉아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태형이 나온 곳은 마트 구석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여전히 손에 낫을 들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은 지난밤에 그가 겪었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다가가며 묻자 그는 사무실 문 앞에서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뛰어가 그를 살피자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옷과 손에는 피가 굳어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다리도 상처가 있는 듯 천으로 대충 감아 놓았다.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네가 이상한 문으로 사라지고 밖이 난리가 났었어."
태형은 내가 버스 안에서 다 지켜본 걸 당연히 모를 것이다. 그저 이상한 문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로만 보이겠지
그는 내 뒤에 열려있는 버스의 문을 발견한 듯 두 눈이 커지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저···. 저게 대체 뭐야? 왜 문만 보여?"
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버스를 탈 수 없다. 아직 버스에 타는 사람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추측하기로는 각성한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말고도 어딘가에 각성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가 버스를 탈취할 마음을 먹는다면?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없다. 아직 표본이 너무 부족하다.
그리고 버스로 사람들을 돕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순간적인 위기에서 잠시 벗어나게 도와주는 정도인데 그마저도 너무 위험하면 불가능하다.
"특별한 능력이 생겼어. 이해할 순 없지만 보는 거 그대로야. 그런데 넌 문으로 들어올 수 없어"
난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가 이해하든 못하든 그건 내 문제가 아니었다.
태형은 다시 천천히 일어나 비틀거리며 버스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가 옆에서 그의 팔을 잡고 부축해줬다.
"이···. 이게···."
그는 정말 신기한 듯 문 너머 벤치 시트에 앉아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가 손을 뻗자 보이지 않는 막이 그의 손을 막았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손을 다시 떼더니 버스의 문과 자기 손을 번갈아 바라봤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도 나처럼 이해를 포기해야 한다.
난 멍한 표정의 그에게 물었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는 힘든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다시 주저앉았다.
"괴물들이 다 잠들었지만 우리는 불안해서 잘 수가 없었어."
난 묵묵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로 하고 난 사무실에 들어가 누웠는데, 새벽에 놈들이 마트 쪽으로 몰려왔어."
"뭐? 어쩌다 들킨 거야?"
"아니 들킨 게 아니고"
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무리가 지나가는 길에 그냥 우리가 있었던 거야. 재수 없게"
하필 이쪽으로 지나가다니
"다른 사람들은?"
내가 묻는 도중에 그가 나온 사무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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