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J1. 빛이 있으라
난 열린 버스 문으로 온 힘을 다해 뛰어갔다. 이성적인 판단 따위는 할 겨를도 없었다.
내가 버스에 오르자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바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이미 강한 빛은 버스 안까지 들어와 내 시야를 모두 가렸다. 너무 밝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밝은 빛만이 존재했다.
순간 난 눈을 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 부신 빛에 통증까지 밀려왔다. 하지만 내 얇은 눈꺼풀은 그 강렬한 빛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 분명 거대한 불덩어리 같은 구체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수없이 떨어지는 것을 봤는데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땅에 닿았다면 엄청난 진동과 폭음에 지표면 위에 모든 것이 불에 타고 지옥이 되었을 텐데 강한 빛 말고는 너무 고요한 정적이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진공의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내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도 내 몸속에서만 울리는 것 같다. 아까 밖에서 들었던 공포스러운 굉음도 버스가 차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밖이 너무 궁금해서 눈을 떠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강렬한 빛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보여주길 거부했다.
난 눈을 감은 채 일어서서 버스 안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살펴봤다. 아까 급하게 뛰어 들어오면서 잠깐 스친 기억으로는 침대와 테이블 따위가 보였던 거 같다.
순간 손에 테이블 같은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옆에는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난 그곳에 앉고서 숨을 가다듬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행성이 떨어진 거라면 난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럼 그건 대체 뭘까?
아무런 충격도 굉음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여전히 밝은 빛만 세상에 가득할 뿐이다. 이건 대체 어떤 현상일까?
난 눈을 감은 채 놀라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켜보려고 했다. 하지만 몸은 강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식은땀은 연신 흘러내렸고 심장박동 소리도 내 가슴 전체에서 계속 크게 울렸다.
'아···.'
갑자기 심한 현기증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데도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다. 그리고 하얀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곧 캄캄하게 변하고···.
* * *
난 눈을 떴다.
아니 아직 감고 있는 건가?
여기가?
아
버스 안이다.
캄캄하다.
왜 여기 엎드려 있지?
그리고 난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이제 기억이 났다. 거대한 불덩어리와 강한 빛
아까는 너무 밝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채로 극과 극의 특이한 시야만 겪고 있었다.
난 플래시를 켜려고 휴대폰을 꺼냈다.
'어라?'
휴대폰이 꺼져있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젠장'
난 더듬더듬 버스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전원 스위치가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출입구 옆에서 스위치들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난 이것저것 막 눌러봤다.
그중 어떤 스위치가 누르자 버스 안이 갑자기 밝아졌다. 메인 전등 스위치였나보다.
내 눈에 들어온 버스 안은 생각보다 훨씬 아늑했다. 너튜브에서 보던 캠핑카의 모습과 정말 흡사했다.
'그 고물 버스로 대체 어떻게 만드셨지?'
할아버지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며 내부를 둘러봤다. 안쪽에 큰 더블 침대 하나가 있고 그 앞으로 양쪽에 작은 문이 두 개 있었다. 난 다가가서 그 문을 열어봤다. 하나는 화장실 겸 욕실이었고 하나는 창고였다.
뒤돌아 출입구 쪽을 보니 큰 테이블과 벤치 시트가 있었다. 내가 앉아 있던 시트다. 그리고 출입구 옆에는 싱크대와 선반이 있었다.
버스 내부를 둘러보던 나의 시선은 곧 버스 창밖으로 넘어갔다. 아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버스 차창 밖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운전석으로 가서 전조등을 켰다. 반응이 없어 시동 열쇠를 찾는데 이미 꽂혀있다. 난 반 시동으로 돌렸다. 그때 바로 전조등이 켜졌다.
조금 열린 창고 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밖으로 집의 마당이 전조등에 비쳐 조금 보였다.
엄청나게 어둡다는 것 외에 눈에 보이는 풍경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난 버스에서 내려 밖을 확인해 볼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바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밖에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아니
움직이는 것들이 있었다.
'뭐···. 뭐지?'
난 전조등을 끌까 생각했지만 그러면 정말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바로 생각을 접었다.
대신 버스 안의 조명을 껐다. 이제 밖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난 의자에 앉아 몸을 낮추고 창밖을 살폈다.
검은 형체들이 마당에서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창고 문이 조금만 열려있어서 시야가 아주 좁았다.
'저게 대체 뭐야?'
직립 보행하는 걸로 보인다. 사람인가 싶었지만, 키가 사람보다 훨씬 커 보였다. 도저히 저 생명체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 난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그 형체가 조금 열린 창고 문틈 사이로 안쪽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두 개의 눈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두 개의 붉은 눈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난 순간 버스의 바닥에 엎드렸다. 공포심에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고개를 들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공포심에 한참을 그렇게 버스에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나 진동도 느낄 수 없었다.
'꿈인가?'
분명 소름끼치는 눈을 봤다. 하지만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모습에 내 기억을 의심하고 있었다.
계속 엎드려 있을 수만은 없어서 난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버스의 앞 창문을 바라봤다.
아까 보이던 그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난 한숨을 쉬고 천천히 일어나 벤치 시트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데
"으헉!"
내 바로 옆의 창에 아까 그 붉은 두 눈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난 너무 놀라 기절할 뻔했다. 그리고 내 몸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침대 쪽으로 이미 피신한 상태였다.
'내가 언제 여기로?'
생명에 대한 급박한 위협에 빠진 인간은 이렇게 순간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들었던 거 같다.
난 침대의 이불을 눈만 내어놓고 뒤집어썼다. 마치 어릴 때 무서운 TV프로를 볼 때의 자세다. 어떻게 보면 다 큰 어른이 이러고 있는 게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공포감에 사로잡히면 어른이나 애나 다 똑같은 사람이다.
그렇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정말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위험을 이불 하나로 다 막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조금 진정되자 이불을 쓴 채로 침대 옆의 창에 있는 커튼을 조금 열어봤다. 세 군데의 창이 침실에 있었는데 모두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다.
세 곳의 커튼을 살짝 열어 밖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난 용기를 내 거실 쪽으로 조금 이동해 아까 그 소름끼치는 눈이 있던 창으로 다가갔다.
'헉!'
그 눈은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안이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선팅을 한 창밖에서 자기 얼굴을 비춰보는 행인 같은 모습이다.
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갔다.
그 괴상한 생명체는 그렇게 창밖에 얼굴을 들이대고 자기 얼굴을 신기하게 감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려움은 그대로였으나 이상하게 근거 없는 용기가 가슴 깊은 곳에서 조금씩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생명체가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몸이 움직였다. 내가 모르는 무의식에 어떤 힘이 숨어 있는 걸까? 난 다시 벤치 시트에 조심스럽게 다시 가서 앉았다.
공포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호기심이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난 그렇게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코앞에서 그 흉측한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형상과 비슷하긴 했지만 붉은 눈과 거의 없어 보이는 코, 그리고 귀밑까지 찢어져 있는 커다란 입
그러고 보니 저건
괴물이었다.
그때 난 버스의 전조등에 비친 마당에서 수많은 움직임을 발견했다. 한두 마리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었다.
모두 다른 놈이었다.
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미천한 나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저 생명체는 눈으로 보고 있는 와중에도 믿을 수 없었다.
나의 지식이, 아니 지구에 사는 인간들의 지식이 얼마나 허망하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서서히 깨닫는 순간 밖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마치 진공 상태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순간이 순식간에 풀리며 묵혀있던 소리의 외침이 동시에 밀려드는 느낌이었다.
그 소음이 들린 직후 내 옆에서 자기 얼굴을 감상하던 그놈은 순식간에 창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분명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아니 움직이는 순간을 볼 수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시공간을 점프하듯 잠깐씩 보이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창고 문밖에서 보이던 수많은 형체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디론가 모두 몰려간 듯 그렇게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난 버스 문밖으로 나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적어도 이 버스 안에 있으면 들키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나 이 안에 있을 수 있을까?
난 싱크대의 물을 틀어봤다. 나오지 않았다.
'아···. 캠핑카는 뭔가 스위치를···.'
영상으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난 아까 스위치들이 모여있는 곳을 다시 살폈다.
안이 어두워 메인 전등을 잠깐 켜고 작은 전등 스위치를 찾은 후 밝은 메인 전등은 껐다. 내부가 너무 밝으면 아무래도 불안하다.
스위치는 다양했다. 환풍기, 각종 전등, 냉장고 전원, 물 펌프, 에어컨, 온풍기 등 다양한 장치를 조작할 수 있었다. 난 물 펌프 스위치를 켜고 다시 물을 틀었다. 살짝 기계음이 들리더니 수압은 약하지만, 물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난 물을 잠그고 다른 스위치를 살폈다.
냉장고 스위치는 이미 켜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 특유의 소리가 계속 들렸던 거 같다.
'어디 있지?'
난 옷장 같은 손잡이를 당겼다.
'오!'
냉장고 문이었다. 도저히 냉장고 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문이었다.
냉장고 안에는 식료품이 가득···. 은 아니고 조금 들어있었다. 삼겹살 작은 거 한 팩, 소시지 한 개, 생수병 한 개, 맥주 한 캔, 오이 하나, 바나나 한 개
'뭔가 풍족해 보이면서도 아쉽네'
난 냉장고 옆의 수납장을 열어봤다.
즉석밥, 간장, 식용유, 참치통조림, 양반김 각 한 개씩 그리고···. 뭐 더는 없다.
이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음식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냉장고 근처의 다른 서랍을 열어보니 평범한 수저와 주방 도구들이 들어있다.
어쨌거나 할아버지가 왜 여기에 오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할아버지는 날 살리려고 부르신 거 같다.
난 살아남아야 한다.
밖의 상황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인간이 아닌 미지의 생명체, 즉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 그들이 인간에게 호의적일지는 아직 모른다. 아직 어떤 피해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괴물이 인간과 친하게 지내려고 여기까지 온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괴물의 종류가 내가 본 그놈 하나인지도 아직은 모른다.
우선 내가 살아남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돕고
그리고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야겠다.
만나 뵙고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아셨냐고,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때 밖의 창고 문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건 작은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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