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종 친 학교는 (6)
[복싱]
‘아 놔! 이거 스킬 창 더러워지겠네.’
시스템은 굳이 공을 들여 남구의 새로운 육체에서 동작하는 기술들을 스킬 카테고리별로 정리해 등록시키고 마치 새로운 스킬인 양 텍스트로 망막에 출력해왔다.
좀비들이 무더기로 쉴 새 없이 덤벼드는 긴박한 상황에 눈앞이 어지러워 몹시 신경에 거슬렸다.
남구는 백 스텝과 싸이드 스텝을 밟아가며 간발의 차이로 좀비 떼의 이빨과 손톱을 피해 냈다.
단 한 차례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한 마리씩 차례차례 맨주먹으로 머리를 부숴나가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격전이 지속될수록 분산되는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 또한 관건인 상황에서 시스템의 행태에 절로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후욱, 후욱, 아우! 정신 사나워!”
이리저리 피해내는 재빠른 몸짓에 고무줄에서 빠져나온 가닥가닥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리며 나풀거렸다.
“하아, 하아, 아우! 힘들어!”
흥건하게 배어 나온 땀방울이 흠뻑 뒤집어쓴 피와 섞여 머리카락을 타고 허공을 날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격렬한 공방에 피와 땀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바닥에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악!”
옆쪽에서 미친 듯이 달려온 좀비가 목덜미를 향해 크게 벌린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흡!”
얼굴을 들이미는 좀비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아채며 몸을 돌려 수그렸다.
동시에 엉덩이로 좀비의 아랫배를 밀어 올렸다.
‘바닥에 대가리를 꽂아 주마!’
덮쳐오던 가속력에 자연스럽게 등을 타고 넘는 좀비의 기울기를 수직으로 조정했다.
시멘트 바닥과의 완충재는 달랑 데코타일 두께 2mm가 전부.
시멘트 맨바닥과 마찬가지다.
한 팔 업어치기로 정수리를 바닥에 꽂아버렸다.
쩡-
수박이 쪼개지듯이 시멘트 바닥과의 충격에 대가리가 쩍 갈라졌다.
목뼈가 부러지면서 안면이 등 뒤로 돌아가 버리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멱살을 잡은 남구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유도]
‘온몸에 피가 마를 날이 없군.’
흠뻑 피가 고인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쪼그려 앉은 남구에게 숨 돌릴 틈도 없이 정면에서 좀비가 달려들었다.
“크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며 들이닥치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남구는 꿇어앉은 그대로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바로 코앞까지 닥쳐온 순간,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우며 어깨를 축으로 팽이처럼 돌아 돌진해온 좀비를 피해 뒤를 잡았다.
이런 인버티드 동작이 흥건한 혈액에 미끄러져 더욱 거침없이 돌아갔다.
지나치는 좀비의 발목 앞쪽을 쭉 뻗은 손으로 낚아챘다.
꽝-
손아귀에 발목이 걸린 좀비는 만세를 부르며 앞으로 꼬꾸라져 이마를 짓찧었다.
옆에서 또 다른 한 마리가 울부짖으며 몸을 날렸다.
“캬아아아!”
이번에는 재빨리 앞구르기를 하면서 피했다.
구를 때 잡고 있던 발목을 겨드랑이에 단단히 끼웠다.
으드득-
힐 훅에 발목 관절이 어긋나며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재차 덤벼 오는 떼거리에 돌아간 발목을 놔버리고 재빨리 뒤로 빠졌다.
뒤꿈치와 발가락의 위치가 반대로 돌아간 좀비는 일어났다가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바닥에서 버둥거릴 뿐이었다.
시스템은 여지없이 알려왔다.
[주짓수]
‘꼭 마무리하지 않아도 상관없겠지.’
너무 많았다. 좀비 떼거리가 바글바글했다.
속도만 늦춰놔도 한결 편해질 것이다.
좀비들은 숨 쉴 틈 없이 계속 덤벼들었다.
카아악! 펄럭-
좀비의 진행 방향을 피해 옷깃을 펄럭이며 주먹을 내질렀다.
빡-
일격에 머리뼈가 쪼개진 좀비는 핏물을 흩날리며 곧바로 무너져 내렸다.
캬아아아! 퍼러럭-
닥쳐온 괴성에는 언제나 펄럭임이 뒤따랐다.
남구의 발등이 바짓단을 펄럭이며 좀비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악-
머리통이 터져 나간 좀비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없이 날아가 버렸다.
울부짖는 괴성 한 번에 날리는 옷자락 소리 한번.
그리고 여지없이 뒤를 잇는 박 터지는 소리가 똑같은 박자로 연달아 이어졌다.
포위되지 않기 위해 바쁘게 스텝을 밟아가며 최선을 다해서 한 마리씩 상대했지만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두 마리가 앞뒤로 동시에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아!”
“캬아아아악!”
손톱이 어깨에 닿기 직전 주저앉아 무릎을 바닥에 끌며 밑으로 빠져나왔다.
사력을 다해 돌진한 두 마리의 좀비는 서로 부둥켜안으며 헤딩하듯 머리끼리 충돌했다.
쿠웅-
바닥에 무릎을 스치며 빙그르르 돌아들어 좀비의 등 뒤에서 두 마리의 허리를 동시에 싸잡았다.
대퇴부에 아랫배를 밀착시키고 허리를 튕겨 한꺼번에 들어 올렸다.
허리를 활처럼 꺾어 머리 위 공중으로 크게 뒤집어 넘겼다.
안아 던지기에 두 마리의 정수리가 바닥으로 사이좋게 떨어졌다.
꽈광-
각각 똑같이 대가리가 깨져 뒹구는 곳으로 좀비들이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싸잡은 손을 놓고 허리를 뒤틀어 튕기며 자리를 서둘러 벗어났다.
[레슬링]
‘머릿속에 있는 스킬이란 스킬은 전부 등록시킬 기세로군.’
철철 흘러넘치는 피 웅덩이에 덮쳐든 좀비 떼거리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눈을 까뒤집고 한데 뒤엉켜 어지러이 허우적거리며 발광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사람들의 아귀다툼에 남구의 미간이 절로 씰그러졌다.
‘썩을, 아사리판이구만! 지옥이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저 개자식 때문에 이 지랄을 또 해야 하다니!’
남구의 가자미 눈이 은성을 찾았다.
불똥이 튀는 남구의 눈동자에 헐떡이며 사력을 다하는 은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불같이 화가 치밀다가 난데없이 애잔함이 밀려왔다.
‘후유! 그래, 너라고 좋아서 그랬겠냐. 어차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었으니.’
좀비가 산더미처럼 쌓여 뒤죽박죽 몸부림치는 곳에서 멀찍이 벗어났다.
안전한 곳까지 물러선 남구가 서로 엉켜 허우적대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골이라도 넣었니? 꼭 세리머니하는 꼴이군.’
“그륵, 그륵.”
난전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한숨 돌리는 사이 라이칸 구울이 목젖을 긁어대는 거친 소리를 발하며 인제야 상체를 세우고 있었다.
뇌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었다.
남구가 주먹을 쥐었다 펴 보기를 반복했다.
손아귀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끝없이 힘을 쥐어짜 한계에 부딪친 근육이 부르르 떨려왔다.
재빠르게 신체 능력 카테고리를 불러냈다.
남구의 까만 눈동자가 모터를 단 듯 허공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근력에 LP를 몇 개씩 넣어 보다가 한꺼번에 60 LP를 쏟아부었다.
[근력 20 → 26]
부들부들 떨리던 손의 떨림이 서서히 멈추었다.
남구의 한쪽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비틀렸다.
‘1 스텟 올리는데 10 LP밖에 안 들다니! 효율이 정말 끝내 주는군!’
허공에 머물던 눈동자의 초점이 구울에게 날카롭게 향했다.
‘체력도 많이 빠졌는데 어디 한번······.’
남구는 구울이 일어선 곳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잠시 체력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손을 쭉 뻗었다.
‘중력제어!’
아직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는 못했는지 축 늘어진 구울이 땅바닥에 발끝을 스치며 뻗은 손아귀로 빠르게 당겨졌다.
남구의 4m 앞까지 당겨진 구울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중력제어의 권능을 발휘하던 손아귀에서 연달아 또 다른 스킬이 시전됐다.
‘일소!’
썩은 몸뚱이를 뚫고 실처럼 하늘거리는 백색 광채의 빛 가닥이 찬란하게 무더기로 뽑혀 나왔다.
교실에서 밤샘 막노동을 한 덕분에 일소의 사정거리를 4m까지 늘일 수 있었다.
칼 좀 쓴다는 검사의 한 칼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는 거리였다.
구울은 턱이 날아가 사라졌음에도 목젖을 긁어대며 고통에 겨운 하울링을 발했다.
“그르륵! 그르륵!”
빛의 실타래로 얽히고설켜 부피를 불린 찬란한 빛줄기가 뻗은 손아귀로 빨려들었다.
생명력이 급속도로 소실되어가는 구울은 바닥에 엎어진 채 무기력하게 몸을 떨 뿐이었다.
우우우우웅-
자기장이 발생하듯 울어댔다.
굵다랗게 엉켜 남구의 손아귀로 흐르는 백색 빛줄기가 뒤틀리고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특유의 진동을 발했다.
파사삭-
구울의 피부가 바싹 말라 편편이 부서지고 떨어져 나갔다.
메마른 딱지처럼 떨어져 나온 편린은 흥건하게 고인 핏물에 녹아들어 사라져 갔다.
쩌저적-
수분이 몽땅 빠져나간 몸뚱이 전체가 쩍쩍 금이 가며 갈라지더니 이내 팔다리가 끊어져 내렸다.
마지막 빛줄기의 꼬리가 손아귀로 빨려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터엉-
그와 함께 목이 끊어져 떨구어진 턱 없는 대가리가 바닥을 굴렀다.
[9 LP 획득]
[생명 포인트 : 158 LP]
‘그동안 최소 여덟 명 이상은 잡아먹었군.’
구울은 물어서 개체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아예 잡아먹기도 했다.
그렇게 생명 에너지를 취하고 자신의 성장을 도모했다.
남구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끓어오르는 생기에 호흡을 길게 뿜어냈다.
“후우우우우우!”
입에서 뱉어지는 숨결을 통해 기체화한 에너지가 연기처럼 입김처럼 새어 나왔다.
손아귀를 꽉 말아 쥐었다.
꾸드득-
장갑이 터져 나갈 듯한 마찰음이 일었다.
불끈불끈 솟는 힘이 손아귀 가득 맴돌았다.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하지?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군!’
마치 생기 가득한 새싹이라도 된 것 같은 벅차오르는 충만감이 밀려들었다.
그 싱그러운 충만감을 조용히 만끽했다.
눈을 감은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남구의 귓가에 전력으로 달려드는 좀비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
‘세 마리!’
가장 앞서 달리던 좀비가 땅을 박찼다.
타닥-
“크아아악!”
포효하는 호랑이가 먹이를 덮치듯 공중에 날아올랐다.
양 팔을 한껏 벌리고 몸 전체로 덮쳐들었다.
남구가 감았던 눈꺼플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허공에 떠오른 좀비를 노려보는 눈동자가 순간 빛났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았다.
발이 바닥을 딛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 스르륵 뒤로 물러났다.
남구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좀비의 두 팔이 허무하게 휘저었다.
좀비는 허공을 끌어안은 채 우당탕 온몸으로 추락했다.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몸뚱이가 곧장 주르륵 미끄러졌다.
남구가 무릎을 들어 올렸다.
주자가 슬라이딩하듯 발밑까지 밀려온 좀비의 대가리를 그대로 밟아 버렸다.
꽈앙- 파바박-
물풍선을 밟은 것 같았다.
사방으로 뇌수와 뼛조각이 튀었다.
대가리는 형체도 남지 않았다.
바닥과 발바닥 사이에는 으깨진 파편만이 존재했다.
‘젠장, 언제쯤 편안한 안식을 찾을 수 있을까?’
고단한 남구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아비규환 속으로 등을 떠민 은성에게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꿎은 좀비의 대가리에 풀었다.
뭉개진 대가리를 발바닥으로 비비적거렸다.
타다다닥-
두 번째 좀비가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캬아악!”
크게 벌린 아가리에서 괴성과 함께 침과 피가 튀었다.
남구가 손을 뻗었다.
씰그러진 미간 그대로 싸늘하게 바라보던 남구의 눈동자가 또 한 번 반득이는 광채를 발했다.
꽈앙-
달려오던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좀비는 미끄러지지 않았다.
이마가 땅에 붙어버린 듯 고개도 들지 못했다.
일어나려 부들거리는 좀비의 머리맡에 발소리가 울렸다.
터벅터벅-
남구가 두 걸음 다가갔다.
세 걸음째 똑같이 밟아 버렸다.
꽝- 파바박-
땅바닥과 발바닥의 좁은 틈으로 뇌수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으, 빨리 샤워하고 뽀송뽀송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군.’
타다닥-
세 번째 좀비가 뒤에서 덮쳐들었다.
허공을 응시한 남구의 블랙홀같이 새까만 눈동자에 중력제어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특유의 광채가 여지없이 일었다.
눈동자가 반뜩이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중력제어가 작용한 신체는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뒤에서 덮쳐오는 좀비의 겨드랑이 밑으로 순식간에 돌아 나갔다.
턱-
등 뒤를 점한 남구의 손아귀에 좀비의 뒤통수가 붙잡혔다.
“크아악!”
좀비는 괴성을 질러대며 용을 썼지만, 뒤로 돌지 못했다.
남구의 뒤통수를 움켜쥔 손아귀가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꽈드득- 퍼억-
움켜쥔 손아귀에 뒤통수가 그대로 뜯겨 나갔다.
남구는 피범벅이 된 손을 허공에 흔들어 탈탈 털어 냈다.
‘근력을 26까지 올렸더니 두개골 정도는 아귀힘으로 박살을 내는군.’
남구의 한쪽 입꼬리가 흡족한 듯 비스듬히 비틀렸다.
“흐흐!”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 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흡족한 듯 올라갔던 입꼬리는 떠오른 메시지에 금방 제자리를 찾았다.
[글탄 맨손 살상술]
시스템이 글탄 가문의 전투 기술명을 눈앞에 띄워 보냈다.
남구의 눈동자가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은성아 수고해라.’
남구는 덤벼오는 좀비를 모두 쓰러뜨리고 잠시 공백이 생긴 틈을 이용해 중앙 현관 쪽으로 크게 물러났다.
이어 곧바로 스킬 감정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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