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같은 그림 찾기
“자네도 참 별종이야.”
-크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진짜 별종들이 몰려드는군요.”
박 부장이 귀를 쫑긋거리며 입을 열었다.
“으음, 숲에서는 인기척이 없네. 좀비 떼가 전부 도로를 따라 달려오고 있군.”
분주하게 움직이는 박 부장의 귓바퀴를 보며 남구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후후,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을 얻은 기분인데요?”
“허허, 사람 참! 자네도 다 느끼면서 뭘 그러나?”
남구가 납작 수그렸던 고개를 살짝 들고 잠시간 귀를 기울였다.
산과 강을 끼고 그 굽이진 모양을 따라 구불구불 끝없이 기다랗게 뻗어있는 국도의 양쪽 끝단에서 적지 않은 숫자의 달음박질치는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좀비가 도로 양쪽에서 한꺼번에 몰려오네요? 쟤네 중간에 끼였는데? 어디로 도망치려나?”
“살려면 강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어 보이네만.”
“음, 그럴까요?”
“다른 길은 없는 듯하네.”
“나중에 물에 동동 뜬 머리에다 화살을 박아 넣으면 재미있겠군요.”
“허어!”
아니나 다를까 ‘뭐 이런 놈이 다 있지?’라는 표정을 또 짓고 있는 박 부장에게 남구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매번 그렇게 놀라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이젠 익숙해지실 때도 됐죠?”
“으흠, 노력해 봄세.”
몰아치던 총성이 일순 씻은 듯이 사라졌다.
“쟤네도 느꼈나 봐요. 사격 멈췄네요.”
“놈들이 당황하고 있구만.”
“강으로 뛰어들 수도 있지만 도로를 건너서 우리가 있는 산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있어요. 저 같으면 그렇게 할 겁니다.”
남구는 말을 하며 이미 석궁의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박 부장의 여유롭던 눈빛에 금방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으음, 그럴 수도 있겠군.”
“쟤네 따라서 좀비 떼까지 산으로 기어오르면 번거로워집니다.”
남구가 레일에 화살을 얹고 끝까지 밀어 넣었다.
긴장한 눈빛의 박 부장이 쿠크리의 칼자루를 거듭 말아 쥐며 물었다.
“그럼 정말 난감해지겠구만. 놈들이 도로를 건너온다면 숲속으로 들어오기 전에 다 잡을 수 있겠나?”
“글쎄요. 4차선 도로 정도는 한번 뛰면 금방 건너니까요. 게다가 네 명 모두 총기를 소지해서 장담할 수는 없겠는데요?”
귀를 쫑긋한 박 부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어엇? 놈들이 벌써 도로를 건너고 있어!”
“아이고, 한발 늦은 건가?”
남구가 장전된 석궁에 화살이 빠지지 않도록 받쳐 들고 도로가 내다보이는 숲 바깥쪽으로 뛰었다.
집중 사격을 받은 매복지는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총알이 무수히 박힌 고목을 지나 부러진 나뭇가지를 해치고 뒤집힌 흙바닥을 디디며 도로가 내다보이는 위치로 들어섰다.
조각난 마른 잎사귀가 여전히 허공 가득 바람을 타고 나풀나풀 떠다녔다.
“하! 자식들, 돌아 뛰네?”
도로를 곧장 가로지르는 것이 산으로 들어오는 가장 짧은 동선이었지만 남구에게 정면에서 저격당할 것을 염려한 이들은 먼 산기슭을 향해 대각선으로 4차선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급박했기에 남구는 숲 밖으로 몸이 훤히 드러나는 것도 감수하고 부리나케 도로를 가로지르는 4명에게 석궁을 겨누었다.
심장이나 머리에 맞추어 사살하기보다 기동성을 제한하고 목숨을 붙여 놓는 것이 남구가 좀비로부터 조금 더 시간을 벌 수 있는 방편이었다.
가장 앞선 자의 다리를 노려 방아쇠를 당겼다.
퉁-
남구가 쏘자마자 곧바로 요동치는 시위를 잡아당겼다.
짧은 화살은 짧은 거리를 눈 깜짝할 새 날아갔다.
쒜에에에엑- 퍽-
중앙 분리대를 넘기 위해 한쪽 다리를 걸친 발목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으아악!”
분리대 위를 타고 넘던 몸뚱이가 기울어지며 밑으로 우당탕 떨어졌다.
뒤를 이어 중앙 분리대를 뛰어넘은 나머지 사람들은 아스팔트 바닥에 엎어져 비명을 지르는 친구의 몸뚱이를 훌쩍 뛰어넘거나 스쳐 지나가며 앞만 보고 내달렸다.
“사, 살려줘!”
살려달라는 자나 외면하는 자나 저 부르짖음은 부질없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발목이 꿰뚫린 자는 엉금엉금 거친 아스팔트를 기면서 계속 부르짖었다.
“제발 나도 데려가!”
참기 힘든 극심한 고통에 더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몸을 말아 꿰뚫린 발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러 댔다.
“크, 크아아악!”
남구가 다음 화살을 석궁에 끼웠을 때는 이미 중앙 분리대를 넘은 이들이 가까운 쪽 도로를 죽을힘을 다해 질주하고 있었다.
스코프에 눈을 붙이고 렌즈를 통해 본 사람들은 벌써 도로를 가로지른 후 온몸을 던져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사사삭-
‘쯧! 한 명밖에 못 잡았네!’
뒤쪽에서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박 부장이 상황을 알려왔다.
“오크가 숲으로 들어 왔어.”
남구가 박 부장을 돌아보며 신속하게 말을 뱉었다.
“석궁 쏠 줄 아세요?”
“아니, 모르는데?”
남구가 석궁을 박 부장의 가슴팍에 떠안겼다.
“어엇?”
당황하여 받아 든 박 부장에게 번갯불에 콩 볶듯 순식간에 남구의 말이 쏟아졌다.
“제가 쏘는 거 보셨죠? 당기고 얹고 쏘면 됩니다.”
“응? 아, 알겠······.”
탄띠에서 풀어낸 쿠크리의 칼집을 털이 수북한 박 부장의 허리에 재빠르게 둘러맸다.
남구가 갑작스럽게 몸에 손을 대자 박 부장은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부장님께서 오크랑 합의 보세요. 전 나머지 놈들 잡으러 갑니다.”
“그, 그래!”
남구가 박 부장을 스쳐 지나가며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너무 영입에 목메지 마시고요. 아니다 싶으면 그냥 죽여 버리세요. 전 부장님 판단에 따를게요.”
“크흠, 그래 알겠네! 내 신중하게 접근해 보······.”
어느새 남구의 모습은 저만치 멀어져 갔다.
어두워진 수풀 사이를 검은 갈기를 휘날리는 날랜 짐승처럼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허어!”
박 부장이 잠시 그 뒷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다 고개를 내렸다.
단단히 묶인 칼집에 쿠크리의 도신을 밀어 넣었다.
스르르릉- 탁-
석궁을 받쳐 들고 오크가 진입한 산기슭 방향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남구는 산을 크게 돌아 거슬러 오르며 뛰었다.
숲에 진입한 이들에게 일정반경 접근한 남구가 발소리를 죽여가며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왔다.
톡- 토독-
탄티 양쪽 허리에서 소켓의 똑딱이를 뜯자마자 대검을 양손으로 뽑아 들었다.
흙바닥 이곳저곳에 드러눕거나 쪼그려 앉아 넘어갈 듯 급한 숨을 몰아쉬는 자들의 목소리가 남구의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하아! 사, 살았다. 빌어먹을 놈! 밥 먹고 석궁만 쐈나?”
“헥헥! 미친! 그런 귀신 같은 놈이 있을 줄이야!”
“다들 조용히 안 해?”
노랑머리의 윽박에 모두 입을 다물고 채 가라앉지 않은 거친 숨만 쌕쌕거렸다.
타다다다닥-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좀비 무리의 격한 발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3명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각자 큼지막한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도로 쪽을 내려다봤다.
도로에는 4명이 화살에 꿰뚫린 채 널브러져 온몸을 뒤틀며 버둥거렸다.
고통에 겨워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어금니를 악다물고 씹어 삼키며 어떻게든 도로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거친 아스팔트 도로 위를 애벌레처럼 꿈틀대는 부상자들을 발견한 좀비 떼가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캬아아아아!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몇몇이 악에 받쳐 외쳤다.
-이런, 제기랄!
-개새끼들아! 좀비가 돼서라도 복수할 거야!
절망과 체념으로 도로 위에 대자로 드러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흐윽! 좃됐다.
수많은 좀비가 한꺼번에 밀어닥쳐 순식간에 부상자들을 휩쓸었다.
-크아아악!
-아아악!
-캬아아아!
어떤 것이 좀비의 괴성이고 어떤 것이 사람의 비명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수풀에 숨어 그 적나라한 모습을 지켜보던 자들이 몸을 떨었다.
“젠장!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돼!”
“으으, 총을 쏜 게 잘한 짓일까? 맞추지도 못했잖아!”
노랑머리는 친구들과는 다르게 도롯가를 보지 않았다.
숲 안쪽을 부릅뜬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총부리를 겨누었다.
“어디선가 또 우릴 노리고 있겠지!”
“헉!”
“헥!”
노랑머리의 한 마디에 도롯가를 지켜보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고개를 돌렸다.
노을이 이제 막 물러가고 어슴푸레한 하늘에는 별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숲속은 더욱 어두웠고 날아오는 날붙이도 검은색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만이 귓가에 울렸다.
휘리리리리리릭-
맹렬한 바람개비 소리와 함께 총성이 터졌다.
타앙-
이제 막 뒤를 돌아본 두 명 중 한 명의 이마에 대검이 틀어박혔다.
퍼억-
“끅!”
검신이 모두 파고들어 젖혀진 머리에는 칼자루만 빼꼼하게 드러났다.
털썩-
바로 옆에서 고개를 한껏 젖힌 친구가 벌러덩 넘어가자 기겁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닥치고 따라와!”
총을 쏜 노랑머리가 비명을 지르는 친구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벗어나 뛰기 시작했다.
따라붙는 친구와 함께 정신없이 내달리며 더욱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 뒤편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남구가 한쪽 어깨를 빙글빙글 돌렸다.
굵은 나무를 방패막이 삼아 상체를 반만 내밀고 군용 대검을 던졌는데도 드러난 가슴팍에 탄환을 맞고 말았다.
늦가을이었다.
땅바닥에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뭇잎이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남구가 아무리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접근했다고 하더라도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에 노랑머리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몸이 드러나기만을 기다리며 작정하고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방탄조끼를 입지 않았다면 한 방에 끝날 수도 있었다.
‘방탄복이 열일 하는구만!’
이마로 날아오는 총알을 밑으로 잡아당겨 가슴에 맞았다.
감각은 탄환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잡아내었고 중력제어 또한 그 빠른 속도에 약간이나마 간섭하였다.
‘식겁했네!’
어깨를 돌려가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가슴이 뻑적지근하고 욱신거렸다.
틀어박힌 탄환에 우그러진 플레이트 돌출부가 가슴을 압박했다.
‘신체 능력의 상승이 없었다면 뼈가 부러졌을 수도 있었겠네! 역시, 보통 놈이 아니군.’
노랑머리가 몸을 감추고 숨어 있던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찍힌 발자국을 뚫어져라 내려다봤다.
내려다보던 눈꺼풀이 몇 번 깜박거렸다.
눈꺼풀의 깜박임이 멈추자 남구의 망막에 발자국의 형상이 도드라지게 상을 맺었다.
발자국 모양을 눈에 새긴 남구가 고개를 들었다.
노랑머리가 멀어져 간 방향을 따라 총총히 이어진 발자국이 마찬가지로 도드라지게 눈에 들었다.
어두워진 산중에 노랑머리의 발자국만이 형광으로 부각되어 보였다.
낙엽이 수북이 깔린 탓에 맨눈으로는 찍힌 발자국의 식별이 어려웠지만 남구의 눈에는 선명하게 비쳤다.
어느 방향으로 도주 중인지 훤히 알 수 있었다.
[같은 그림 찾기]
이미 남구는 ‘같은 그림 찾기’ 스킬을 시전 중이었으나 또다시 새로운 스킬을 획득한 양 시스템은 눈앞에 텍스트를 띄워 보냈다.
꽤 초반부에 획득한 스킬이었다.
스킬 ‘같은 그림 찾기’를 배울 수 있는 마법서가 나왔을 때 친구들은 한껏 배꼽을 잡고 웃었었다.
별 거지 같은 스킬이 다 있다며 조소를 날리고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거지 중에 상거지였던 남구가 홀라당 배울 수 있었다.
동일한 모양과 형태를 찾아 주는 스킬이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게임과도 같은 스킬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첨병 역할과 추적 임무를 주로 맡던 남구에게는 활용도가 상당히 높은 유용한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다들 이런 효용성을 초반부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좀 더 전투에 직접적으로 쓰일 강력한 스킬에 혈안이 됐었다.
파사삭-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남구의 눈썹 끝이 씰긋거렸다.
삽시간에 도로를 휩쓴 좀비 떼가 천둥처럼 울려 퍼진 격발음을 따라 산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