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힐링라이프 (2)
미션에 투입된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성공하면 살고 실패하면 죽었다.
성공한다고 해서 모두 사는 것도 아니었다.
심한 상처를 입게 되면 돌아가서도 사망하는 경우가 흔했다.
마족들은 사정을 봐주는 족속이 아니었다.
아무리 심각한 상처가 생겼더라도 부상을 안고 또 임무에 투입되어야 했다.
힐러는 언제나 부족했고 부상자는 넘쳐났다.
또한 힐링 능력을 화수분처럼 쏟아낼 수도 없었다.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라면 힐러의 손길 한번 받지 못하고 죽기도 했다.
남들은 생사를 오가는 갈림길에서 임무 완수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고난의 여정이었지만 이제 와 남구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수용소는 햇빛도 안 들거든. 꼴 보기 싫은 놈들도 봐야 하고. 이렇게 한번 나왔을 때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기고 가야 하지 않겠어?”
츄르릅-
남구는 과즙이 터져 나오는 열대 과일을 베어 물며 지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띄워 만든 1인용 쉘터에서 마치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듯 비스듬히 기대 누워있었다.
급속히 선선해지는 바람을 만끽하며 편안한 눈빛으로 어스름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 곧 쏟아지겠군. 한참 더웠는데 잘됐네!’
갑작스럽게 밀어닥치는 먹구름에 별도 모조리 숨어버린 하늘을 바라보며 우물거리던 입에서 과일 씨앗이 튀어 나갔다.
푸-
뱉어진 씨앗은 나무 위에 지어진 쉘터의 입구를 통과해 밖으로 날아갔다.
씨앗이 날아간 쉘터 아래에는 잡아먹은 온갖 짐승 뼈와 함께 제멋대로 사지가 뒤틀린 오광수가 흐릿한 눈빛으로 꼼짝도 못 하고 널브러져 있었다.
오광수의 얼굴에는 과일 씨앗이 종류별로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얼굴에 달라붙은 씨앗도 스스로 떼지 못하고 쥐어짜듯 외쳤다.
“크으으, 제발 죽여줘! 이젠 그만할 때도 됐잖아!”
오광수의 발음은 상당히 어눌했다.
대충 알아들은 남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참 나!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죽으면 미션 끝나잖아! 한 번 나왔을 때 힐링도 하고 LP도 좀 벌고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 텅 빈 수용소에 처박혀 있는 거 난 별로다?”
“으으윽! 지독한 놈! 제발!”
오광수는 태생적으로 남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묶어두고 괴롭힌 희생자의 감정을 능히 이해할 것만 같았다.
혀를 깨물 수도 없었다.
고통을 참지 못해 시도한 자살이 실패로 돌아간 뒤 이를 몽땅 뽑혀버렸다.
신체 능력에 너무나 많은 포인트를 투자해 혀를 깨물어도 잘 죽지 않았다.
후드득후드득-
급격히 어두워진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 비 온다.”
짜자자작- 꽈과과광-
어두운 하늘에 섬광이 번뜩이며 귀청을 찢는 천둥·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놀란 짐승들이 화다닥 숨어드는 소리가 들려 왔지만 남구의 얼굴은 잔잔한 수면 같았다.
“으음! 운치 있군.”
나무 위에 지은 쉘터는 마치 새집처럼 허술해 보였으나 비가 새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유독 쉘터 자리는 고요했다.
가만히 빗소리를 듣고 있던 남구가 연속되는 무더운 날씨에 시원해져 기분이 좋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남구는 거의 웃지 않았고 웃는다 하더라도 태반이 비웃음이었다.
대각선으로 비틀린 입꼬리의 모양은 여전했지만 지금 남구의 입가에 걸린 웃음은 종류를 달리했다.
박 부장을 비롯해 삼식과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부터 때때로 이런 미소가 남구의 입가에 걸리곤 했다.
비록 편치 않은 삶의 조건이었으나 언제나 남구가 꿈꿔왔던 삶이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무용담을 안주 삼아 소소하게 술 한잔을 나누며 초야에 파묻혀 유유자적 살아가는 꿈.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우를 바라보는 남구의 눈빛이 점점 그윽해졌다.
남구가 무시무시하게 생긴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런 미소를 띠었다.
‘마치 꿈을 꾸고 온 듯하군.’
“으으, 죽여줘! 제발!”
발음도 부정확한 희미한 절규는 퍼붓는 폭우 소리에 묻혀 일반 사람이라면 듣지 못할 것이다.
과일을 다 먹은 남구가 일반인인 양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오광수는 불어닥치는 모진 바람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져 내리는 굵은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이하며 옴팍해진 입을 뻐끔거릴 뿐이었다.
*
햇살이 쨍쨍한 아침이었다.
남구가 내리쬐는 햇살을 듬뿍 받으며 양팔을 높게 들고 눅눅하고 찌뿌둥한 몸을 활짝 열어젖혔다.
“으으으윽!”
기지개를 켜는 소리에 발맞춰 오광수도 희미한 신음을 발했다.
“으으으윽!”
간밤에 휘몰아친 폭우로 인해 한 구석에 산더미 같이 쌓아놓았던 짐승의 뼈들이 사방 천지로 흩어져 있었다.
스테이지에 갇힌 짐승들은 남구가 학살하다시피 잡고 돌아다녀 살아남은 개체가 얼마 없을 정도였다.
어처구니없게도 관객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 지난 일주일 동안 벌어졌었다.
쉘터에서 나온 남구가 그 무수한 뼈의 잔해와 뒤엉켜 거의 땅속에 파묻히다시피 한 진흙투성이 오광수에게 물었다.
“잘 잤어?”
“으으으으.”
오광수는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가느다랗게 앓는 소리만이 옴팍한 입을 통과할 뿐이었다.
남구는 자신을 쳐다보는 오광수의 핏발선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틀니 잃은 할머니같이 홀쭉해진 저 입으로 과연 어떤 말을 하고 싶을지 잘 알 것 같았다.
전신의 마디마디가 분리된 극한 고통을 일주일 동안 인내하며 밀림의 모진 환경에 그대로 방치된 참혹한 몰골의 오광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는 무심히 툭 말을 던졌다.
“잘 못 잔 것 같군.”
“으.”
이제는 앓는 신음조차 희미했다.
“덕분에 일주일 푹 쉬다 가.”
인사말을 건네는 남구의 어깨에는 단단한 나무와 질긴 가죽을 덧대 만든 투박한 가죽 방패가 메어 있었다.
또한 탄력 있는 나뭇가지를 휘어 양 끝에 짐승의 힘줄을 꼬아 만든 시위를 건 단순하고 조잡한 활과 나무 껍데기로 엮어 만든 거친 화살통이 그 방패 옆으로 어깨에 같이 걸려 덜렁댔다.
화살집에는 촉도 없이 대충 대각선으로 뾰족하게 잘라낸 화살 세 발이 겨우 깃털만을 붙이고 꽂혀있었다.
양탄자처럼 둘둘 만 여러 장의 짐승 가죽 두루마기 안에는 60cm 내외의 비교적 짧은 길이지만 정교하게 뼈를 갈아 만든 뼈 칼이 네 자루나 들어있었다.
폭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좁은 쉘터 안에 넣어 놓았었다.
쉘터에서 질질 끌고 나온 꾸러미를 남구가 어깨 위에 들쳐 올렸다.
“끄응!”
네 자루의 뼈 칼과 흡사한 형태의 뼈 칼이 허리에도 하나 채워져 있었다.
바리바리 짐을 챙긴 손으로 허리에 찬 뼈 칼을 뽑아냈다.
“뭐가 이렇게 많냐?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까 이렇게 늘어났네?”
남구가 아무렇게나 뒤틀려 널브러져 있는 오광수에게 철벅 철벅 다가갔다.
최후를 감지한 오광수가 핏발 선 눈동자만 돌려 남구를 올려다보았다.
“으으으.”
“그래, 잘 가라고.”
푹-
남구가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울대를 뾰쪽한 뼈 칼로 깊게 찔렀다.
오광수는 이미 시체와 다를 바 없었던 생전의 그 모습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1 LP 획득]
[생명 포인트 : 2125 LP]
목에서 쑥 뽑아낸 뼈 칼을 허공에 털었다.
쉑- 촤악-
날아가는 핏방울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임무 달성을 축하합니다]
[50 LP와 아이템 룰렛 이용권 3매가 지급되었습니다]
[소환을 진행 중입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남은 시간 30초··· 20초··· 10초······.]
서서히 남구의 전신을 휘감던 광휘가 카운터 제로의 알림과 함께 강렬히 발광했다.
파악-
남구의 모습이 수용시설 1호실 정중앙에 휘몰아치는 강렬한 광휘를 동반하고 느닷없이 등장했다.
남구가 감았던 눈을 뜨자 철창 너머 환희에 찬 눈빛으로 마티나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간 남구와 눈을 맞추던 마티나가 떠나가라 웃어젖혔다.
“오호호호호호호호!”
마티나의 카랑카랑한 박장대소를 시작으로 관리자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뒤따랐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아!”
“이야아아아아아아!”
이미 승패는 첫날 결정 났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용광로 같은 분위기는 식지 않고 있었다.
가문과 일족의 존폐를 건 한판의 도박이 성공을 거두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관리자들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환호를 넘어 서로 얼싸안고 미친 듯이 길길이 날뛰었다.
‘이번 개막전이 중요하긴 중요했나 보군.’
은성에 대한 마티나의 각별한 집착이 남구에게 향하고 있었다.
은성을 제외한다면 소환된 모든 이들은 가축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취급을 받았었다.
은성의 지위도 마티나의 지대한 사랑을 받는다 뿐이지 그다지 다를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은성의 차별성은 단지 식용 가축과 애완동물의 차이 정도였다.
소환 초기에는 사망자가 부지기수였다.
특히 첫날 첫 임무에서 죽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경험도 없고 스킬도 없으며 아이템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첫 미션에 지정 대상을 죽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테이지 자체를 풍비박산 내고 돌아온 남구라는 애완견을 견주인 마티나와 관리자들이 환호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마티나의 웃음이 멈추었다.
“특식 준비해!”
마티나가 오직 남구에게만 눈을 맞추고 불특정 다수에게 성의 없이 짓거린 말을 염소수염이 찰떡같이 받아 쳤다.
“네! 아가씨!”
똑 부러지게 대답한 염소수염이 고개를 돌려 다른 관리자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봤다.
눈빛을 받은 관리자가 질겁해 환호하던 표정을 지우고 후다닥 달리기 시작했다.
‘특식 준비해!’
마티나의 말을 되새긴 남구가 입꼬리를 실기죽거렸다.
‘언제나 은성이를 대상으로 했던 저 말! 똑같이 내게 하는군.’
마티나는 은성과 은성의 팀이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을 때 지금과 낱말 하나 다르지 않은 똑같은 말을 종종 지껄였었다.
큼직하고 두꺼운 스테이크일 것이다.
‘젠장! 일주일 동안 질리도록 고기를 처먹고 왔는데 또 먹게 생겼군. 아우! 김치 땡겨!’
철창 밖에서는 1호실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남구를 보며 별걸 다 만들어 왔다는 둥 손재주가 좋다는 둥 몸값을 한다는 둥 자기들끼리 떠들어 댔다.
별별 소리가 들뜬 목소리로 웅성웅성 정신없이 들려왔다.
남구가 시끄러운 소리에 미간을 좁히며 우두커니 서 있던 걸음을 옮겼다.
남구는 소음에서 멀어지려는 듯 철창으로부터 가장 먼 구석 자리로 다가와 장식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마냥 하얗기만 한 벽면을 노려보았다.
남구가 노려보자 반질거리는 벽면에 손바닥만 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사용자 강남구 인식하였습니다]
평평하고 매끈한 벽체는 치즈가 한 뭉텅이 숭덩 잘려 나가듯 네모반듯하게 일정부분 뚝 떨어져 옆으로 밀렸다.
드르륵-
한 데 둘둘 말아 어깨에 짊어진 가죽 꾸러미를 붙박이장처럼 열린 그 안에 내려놓았다.
메고 있던 방패와 활과 화살통도 벗어내 가죽 꾸러미 위에 휙 던져두었다.
사람 키보다도 훨씬 큰 가죽 한 장만을 따로 챙겨 바닥에 깔았다.
이곳은 언제나 한기가 만연했다.
남구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행보에 화들짝 놀란 관리자들이 난리를 쳤다.
“어어! 저건 또 어떻게 알았지?”
“벽에 얼굴을 비춰보고 싶었나?”
“정말 저런 놈은 처음 봐!”
마티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사랑스러워 미치겠다는 눈으로 애견숍 쇼윈도에 갇힌 강아지를 구경하듯 남구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챙겨온 물품을 모두 수납한 남구가 망설임 없이 구석에 둥둥 떠 있는 제어구를 향해 걸었다.
다가서서 제어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곧장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룰렛 이용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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