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단체전 (1)
후유우우우우-
뱉어내던 숨이 멈췄다.
투웅- 쐐애애애애애액-
-하아악!
-악! 워 차오!(씨발)
-허억! 마떠!(제기랄)
-히이익!
추위에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던 중국인들이 산득한 눈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화살은 그들에게 채 닿기도 전에 전방 눈밭에 푹 파묻혀 깃털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좀 짧았네!”
팽석수가 전방을 주시하며 한 손만으로 시위를 쭉 잡아당겼다.
일반인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정도로 상당한 탄력을 자랑하는 시위가 곧바로 당겨졌다.
옆으로 메고 있는 소쿠리 같은 화살집에서 잽싸게 화살을 꺼내 레일 위에 올려 끼웠다.
‘힘줄을 꽤 여러 겹 꼬아 만들었는데 스텟 많이 올렸나 보네? 하긴 지구에서는 신체 능력 올리는 것 말고는 마땅히 LP를 투자할 데가 없기는 하지!’
용무늬 재킷의 남자가 눈바닥에 넙죽 엎드린 동료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어서 돌격해! 춥다고 지랄을 떨더니 눈밭에 엎어져서 뭐 하는 거야?”
“하, 하지만······.”
“으아! 저, 저 긴 창! 우린 꼬치가 돼버릴 거야!”
“우리는 마땅한 무기도 없어. 몽둥이뿐이란 말이야! 쟤들을 어떻게 이겨? 승산이 없다고!”
“리웨이, 네가 그랬잖아! 모두 우리랑 마찬가지라며? 동상 걸리기 전에 간단하게 다 죽일 수 있다며? 근데 저게 뭐야? 쟤들은 어떻게 저런 무장을 한 거야?”
리웨이가 두려움에 떠는 동료들을 독려했다.
“나도 저런 놈들이 있을 줄은 몰랐어. 하지만 너희가 살길은 날 믿는 것뿐이야. 내 능력을 믿어! 내가 저놈들 다 쓸어버릴 거야! 일단 내 앞을 엄호하면서 사정거리까지는 전진하라고!”
“하지만 화살이 날아 오는데? 그냥 고기 방패를 하라는 거야?”
동료의 반론에 리웨이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윽박질렀다.
“그냥 죽을래? 엎어져 있으면 얼어 죽기밖에 더 하겠어?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불리해! 쟤들 다 옷 껴입고 있잖아! 빨리 안 일어나?”
중국인들은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에 더는 엎드려 있을 수도 없었다.
꽝꽝 언 몸을 비척비척 일으키기 시작했다.
“으흑! 알, 알았어!”
“으으, 창자가 몽땅 얼어버릴 것 같아.”
“그래, 가자고. 젠장!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똑같아! 살 방법은 저 한국 놈들을 다 죽이는 것뿐이야!”
“흑, 내 발! 내 발 색깔이 이상해! 리웨이, 꼭 저 가오리빵즈 다 죽여줘! 제발!”
리웨이의 입가에 잔혹한 웃음이 걸렸다.
“큭큭큭, 걱정하지 마! 너희가 부탁하지 않아도 싹 쓸어버릴 참이니까!”
언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일어선 동료들에게 리웨이가 거듭 말했다.
“내가 말한 거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지? 뒤처지는 놈은 등짝을 썰어버릴 거야! 작전대로 간다. 다들 뛰어!”
리웨이를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돌아보고 있던 중국인들이 이를 악다물고 눈 위를 맨발로 박차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공포와 파고드는 한기를 함성으로 날리려는 듯 목에 핏대를 세웠다.
“와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죽어! 이야아아!”
“제기랄! 크아아!”
리웨이도 큰 키에서 나오는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일행의 뒤를 쫓아 뛰어들었다.
남구의 일행은 촘촘히 붙어서서 어깨를 맞대고 기다란 창을 내밀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중국인들을 대비했다.
팽석구가 또 한 발을 날려 보냈다.
투웅- 쐐애애애애액-
직선을 그리며 곧게 뻗어나가던 짧은 화살이 리웨이의 머리 옆을 스쳐 지났다.
피잉-
리웨이는 아랑곳없이 가소롭다는 듯 비틀린 미소를 머금고 넓은 보폭의 발걸음을 이어 나갔다.
팽석수가 펄쩍 뛰며 발을 굴렀다.
“아우! 아까워!”
끼이이익-
곧장 시위를 당겨 살을 메겼다.
“이제 감 잡았어. 죽었다고 복창해라! 이 되놈들아!”
남구가 전의를 다지는 팽석수를 슬쩍 돌아보았다.
‘대가리부터 노리는군. 10억짜리 판에 메인 게임 말이 과연 순순히 화살을 맞아 줄까?’
퉁- 쐐애애애애액-
원시적이라 조준은 힘들었으나 대단한 장력의 시위에 추진력을 받은 화살이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쐐애애애- 척-
뚫어버릴 기세로 곧장 날아들던 짧은 화살을 리웨이는 한 손으로 간단히 낚아채 버렸다.
커다란 손아귀에서 짧은 화살이 뚝 부러져 떨어져 내렸다.
팽석수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헉! 뭐, 뭐지?”
세 발의 화살이 바람을 가를 동안 중국인들은 코앞까지 밀려들었다.
8m 앞까지 접근한 이들이 남구의 일행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크게 외쳤다.
“엎드려!”
“으윽!”
“지금이야!”
“흡!”
퍼서석-
구르다시피 눈밭에 엎어진 중국인들 뒤로 거대한 체구의 리웨이가 바닥을 박차고 빨간 수염을 휘날리며 공중에 떠올랐다.
동시에 용의 아가리가 도신을 집어삼킨 모양의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곧바로 등 뒤에서 두껍고 커다란 환도가 청량한 쇳소리를 울리며 빠져나왔다.
스르르르릉-
‘어? 저건!’
휘어진 널따란 도신에 가느다란 선들이 얽히고설킨 마법진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선상을 따라 푸른 한기가 맹렬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싹 다 쓸어 버려라!”
후우우우웅-
횡으로 휘두른 경로를 따라 소름 끼치는 한기가 예리한 파동을 일으키며 날아들었다.
한방에 모두를 처리하겠다는 듯 수평으로 반듯하게 날아오는 한기의 파동은 촘촘히 붙어선 남구의 일행 모두를 표적으로 삼고도 남았다.
‘중력제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남구가 날아 오는 한파의 진행 방향에 곧바로 중력장을 펼쳤다.
‘헉! 으윽!’
그러나 쇄도하는 기운의 힘이 무지막지했다.
한기의 파동이 중력장이 펼쳐진 바닥을 벗어나 일행의 바로 앞에서 곤두박질쳤다.
꽈아아아앙-
내리꽂힌 한파에 쌓인 눈과 흙이 엄청난 높이로 튀어 올랐다.
쩌저저저적-
쓰나미의 높은 파도처럼 튀어 오른 눈발과 흙더미가 곧장 얼어붙어 높다란 빙벽을 형성했다.
“크아아악!”
“어어억!”
“허억!”
“끄아악!”
어마어마한 충격파에 모두 뒤로 나뒹굴었다.
남구의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납작 엎드려있던 중국인들도 파동의 여파에 밀려 뒤로 날아가 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남구의 일행과 중국인들 사이에 높은 파도가 그대로 멈추어버린 듯 높다란 얼음 빙벽이 형성되었다.
남구가 뒤로 굴러나가던 몸을 잽싸게 일으켰다.
눈 범벅으로 일어난 남구는 철렁 내려앉은 마음을 단숨에 가라앉혔다.
‘휴! 하마터면 얼음 동상이 될 뻔했어! 역시 별 한 개짜리 아이템이군. 개인 스테이지만 돌았을 놈이 명품을 얻다니 운도 좋은 놈이네!’
남구는 저 거대한 도의 이름도 익히 알고 있었다.
시스템이 부여한 명칭은 참룡도였다.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던 은성의 소장품이라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었다.
한기를 날릴 수 있는 빙결 마법이 인첸트된 별 한 개짜리 명품 아이템이었다.
대기의 기운을 끌어모으는 기능이 있기에 추운 날씨일수록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저 아이템을 쓰기에는 이곳이 정말 최적의 환경이네!’
한방을 받아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을 뻔했다.
남구의 휘둥그레졌던 눈이 순식간에 벼린 듯 날카롭게 좁혀졌다.
리웨이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회심의 일격이 무산된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치솟은 빙벽을 입을 한껏 벌린 채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봤다.
동전에는 엄연히 양면이 존재하듯이 장점이 있으면 언제나 단점도 있는 법.
참룡도의 한기 파동은 강력한 한방의 위력을 발휘하는 만큼 아무 때나 마냥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따로 재사용 대기 시간이 필요한 스킬은 아니었으나 대기에 흐르는 냉한 음의 기운을 적어도 최소 요구치까지는 끌어모아야 했다.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그 위력은 배가 됐다.
풀 자칭을 이룬 한기 파동의 한방은 남구로서도 감당하기 매우 부담스러웠다.
고개를 쳐들고 파도처럼 치솟은 자기 작품을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리웨이도 마음을 재빨리 수습하고 한기 파동의 충전에 들어갔다.
‘한 번이면 족하지!’
파삭-
남구가 뒤집어쓴 눈가루를 휘날리며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꽈앙-
온몸으로 빙벽을 뚫고 최단 거리로 달려 나갔다.
참룡도에 대기의 기운을 불어넣던 리웨이의 시선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남구를 향했다.
리웨이는 남구의 몸짓에서 만만치 않은 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움직임을 쫓는 부릅뜬 눈동자에 안광이 번들거렸다.
리웨이가 한기 파동의 충전에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
한기 파동의 어마어마한 한 방을 또 얻어맞을 수는 없었다.
‘몰아쳐야겠군.’
뛰어들며 곧장 화살을 메겼다.
화살촉에서부터 생성된 붉은 기운이 순식간에 깃털까지 뻗어나갔다.
핑- 쒜에에에에엑-
핑핑핑- 핑핑- 피비비빙-
쒜쒜쒜- 쒜쒜- 쒜쒜쒜쒜에에엑-
엄청난 속사가 이어졌다.
기관총의 총구에서 예광탄이 날아가듯 서너 발에 한 발꼴로 붉은 광채의 화살이 뻗어나갔다.
깡- 까가가강- 깡- 까앙-
리웨이가 널찍한 도면으로 기관총처럼 날아오는 무수한 화살을 튕겨냈다.
어느 정도 다가선 남구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게걸음으로 주위를 빙빙 돌았다.
화살이 곧게 날지만은 않았다.
글탄 궁술에 의해 양옆으로 휘어져 들어왔다.
리웨이가 변화무쌍하게 날아드는 화살을 간발의 차로 겨우겨우 막아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크윽! 뭐지? 저놈은?”
커다란 덩치에도 날쌘 움직임으로 화살을 전부 튕겨내자 날아드는 화살의 궤적에 변화가 일었다.
오발인 듯 몇몇 화살이 땅바닥에 박혀 들었다.
리웨이의 입꼬리가 슬쩍 비틀려 올라갔다.
비틀린 입에서 조소와 함께 주절거림이 흘러나왔다.
“큭큭! 힘이 빠지시나?”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비아냥거리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껴졌다.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점화!’
꽈아앙-
바닥에 박혀 있던 붉게 빛나는 화살에서 폭발이 일었다.
“크아아아악!”
리웨이가 살점이 뭉텅이로 날아간 발목을 부여잡고 철퍼덕 꿇어앉았다.
마치 발목 지뢰에 당한 듯 움직임이 봉쇄된 리웨이를 향해 화살이 빗발쳤다.
더 많은 화살이 더 빠르게 집중됐다.
퍽- 깡- 퍼퍼퍽- 까앙- 까강- 퍼억-
널찍한 도면을 휘어들어 어깨와 허벅지, 종아리, 옆구리 등 곳곳에 화살이 꽂히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그중에는 붉은 광채를 발하는 화살도 틀어박혀 있었다.
끊임없는 속사로 인해 화살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그와 함께 조잡한 활의 시위가 툭 끊어졌다.
망가져 버린 나무 활을 옆으로 휙 집어 던졌다.
활대가 하얀 눈밭에 파묻히기도 전에 남구의 손에는 허연 뼈 칼이 뽑혀 나왔다.
“큭! 젠장! 폭발한 게 이건가?”
리웨이가 제 몸에 박힌 화살 중 붉은 광채를 발하는 화살만을 우선해 모조리 쑥쑥 뽑아 버렸다.
그리고는 냅다 멀찍이 집어 던졌다.
‘아우! 조금만 있음 쿨타임 돌아오는데. 새끼! 생긴 것답지 않게 눈치 한번 빠르네!’
고슴도치가 되어 무릎 꿇은 리웨이를 노려보던 남구의 까만 눈동자가 힐끔 일행을 살폈다.
남구의 일행이나 중국인들이나 냉기를 가득 머금은 폭발의 충격에서 이제야 간신히 벗어나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1호실 사람들은 난생처음 접해보는 초자연적 현상에 매우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미사일이 떨어진 듯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위력적인 스킬의 여파로 온몸이 얼어붙은 듯 굳어 삐거덕거렸다.
하지만 서로를 챙겨가며 한데 뭉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상체 방어구와 해골바가지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옷도 얼어붙어 빳빳했다.
빙벽은 흙더미를 가득 품고 있어 그 너머의 상황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최남단이 휘적휘적 고개를 주변으로 돌려 가며 남구의 행방을 찾았다.
“남, 남구! 남구 어데 있노? 파묻힜나?”
박영호가 최남단의 빳빳한 옷깃을 잡아끌었다.
“여기 없어요. 앞으로 뛰어나가는 거 제가 봤어요.”
턱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해골바가지가 날아가 버려 민머리가 훤히 드러난 조무모가 빙벽의 구멍에 손가락질했다.
“미친! 여기! 여기를 그냥 뚫고 나갔어.”
눈밭에 파묻힌 석궁을 간신히 찾아낸 팽석수가 화살을 장전하며 말했다.
“남단 형님! 서둘러요. 어서 갑시다!”
“알았다. 내 일났다. 퍼뜩 가제이!”
1호실 사람들은 남구가 몸통 박치기로 뚫어놓은 구멍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도처럼 높게 치솟은 빙벽을 통과한 남구의 일행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멈칫했다.
남구는 이미 화살을 모두 소진하여 뼈 칼을 꺼내 들고 적의 수장과 치열하게 일기토를 벌이는 중이었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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