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마법전
인공 구조물 하나 없이 수목만 빽빽한 이곳은 그에 걸맞게 모든 기운이 조화를 이루며 순행하고 있었으나 남구의 날카롭게 곤두선 감각에 유독 제멋대로 휘몰아치는 대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는 방향으로 까만 눈동자가 번개같이 향했다.
각자가 각자의 스킬로 서로 시야를 벗어 나르라 숨 가빴다.
‘순간 이동?’
어느새 이동했는지 무려 전방 20m 앞에서 양팔을 빙글빙글 돌려 가며 커다란 원형을 허공에 그리는 노랑머리의 모습이 남구의 까만 눈동자 속으로 들었다.
짧은 텔레포트로 쥐포가 될 위기를 간신히 벗어난 노랑머리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부릅뜬 눈으로 남구를 노려보며 양손을 차례대로 뻗어냈다.
동시에 쩌렁쩌렁 외쳤다.
“에어 에로우!”
먼저 뻗어낸 손에서부터 화살처럼 뾰쪽하게 압축된 공기 덩어리가 쏘아졌다.
쒜에에에에에-
주먹만 한 크기로 응축된 공기의 화살이 파공음을 울리며 날아들었다.
남구도 손을 뻗었다.
‘중력제어!’
뾰쪽하게 응축된 공기가 쏜살같이 날아오다 즉각 중력장이 펼쳐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콰앙-
바닥이 움푹 파이며 흙먼지가 사방 천지로 튀어 올랐다.
노랑머리의 교차한 반대 손에서 똑같은 형태로 응축된 두 번째 공기덩어리가 연이어 쏘아졌다.
쒜에에에에에-
곧게 뻗어 나오던 압축된 공기가 같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마찬가지로 급격히 하강하며 처박혔다.
콰아앙-
흙더미 속을 파고든 응축된 공기의 화살은 폭탄이 터지듯 공기 폭발을 일으켰다.
수북이 쌓인 낙엽과 그것이 썩어 이룬 시커먼 토양이 눈 앞을 가릴 정도로 흩날렸다.
두 번 연속으로 같은 지점에 압축 공기가 떨어져 폭발하자 흙바닥에 헤집어진 구덩이는 더욱 깊고 넓어졌다.
‘네 무덤 네가 파는 구나! 저곳에 묻어주면 되려나?’
섬뜩한 생각을 하는 남구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비틀렸다.
‘중력제어’는 질량을 가진 모든 것에 작용했고 지금도 아주 잘 작동하고 있었다.
노랑머리는 자신의 주특기가 남구에게 다다르지도 못하고 중간에 바닥으로 연속해서 처박히는 상황에 파란 눈동자를 휘둥그레 치켜뜨고 파인 구덩이를 바라봤다.
그래봤자 흙바닥일 뿐 별다른 것이 없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다시 고개를 쳐들고 남구를 노려보며 계속 손을 교차해 쏘아 보냈다.
쒜에에에에에-
사나운 기세로 쏘아지던 응축된 공기가 중력장이 펼쳐진 흙바닥으로 여지없이 꺾여 내렸다.
콰앙-
“으아아아아!”
노랑머리는 기합인지 울부짖음인지 분간할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연달아 손을 교차해 뻗어냈다.
쒜에에에엑- 콰앙-
쒜에에에엑- 콰앙-
쒜에에에엑- 콰앙-
똑같은 속도와 크기로 쏘아진 응축된 공기덩어리는 똑같은 지점으로 끊임없이 처박혔다.
그리고는 똑같은 폭발력으로 무의미하게 낙엽과 흙더미만을 허공에 흩뿌렸다.
깊은 산중에 내려앉은 싸늘하고 눅눅한 밤공기는 피톤치드만을 함유한 것이 아니었다.
대기는 스산한 바람결에 부유한 흙 입자와 낙엽 가루를 잔뜩 품어 앉고 흠뻑 땀에 젖은 피부를 휘감았다.
안구가 까끌까끌해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력이 바닥난 노랑머리가 어깨가 빠질 것처럼 길게 뻗어낸 팔을 부르르 떨어댔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렸다.
“하악! 하악!”
노랑머리는 여전히 한쪽 팔은 당기고 한쪽 팔은 뻗은 채 주변 나무들처럼 뿌리라도 내린 듯 미동도 못 하고 서서 방정맞게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남구와 노랑머리의 사이에는 한 사람 정도는 충분히 들어가 누울 만한 구덩이가 듬성듬성 파여있었다.
노랑머리는 입술을 떨며 씹어 뱉듯 말을 뱉었다.
“빌어먹을!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남구는 노랑머리의 스킬을 훤히 꿰고 있었고 노랑머리는 남구의 기술을 감도 잡지 못했다.
“왜? 뭐가 잘 안돼?”
남구의 무던한 목소리가 밤공기와 만나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태연한 표정과 말투가 더없이 소름 끼치게 느껴진 노랑머리가 몸을 떨며 진절머리를 쳤다.
한쪽 눈과 뺨에 세 줄기의 흉측한 발톱 자국을 드러낸 채 기다란 까만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입꼬리를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비틀어 올린 남구의 모습을 담은 노랑머리의 파란 눈동자가 거세게 요동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노랑머리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깨닫고 말았다.
육체 쟁탈전을 씹어 먹고 좀비가 발호한 세상에서 우두머리로 우뚝 올라선 자신이 남구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기만 했다.
지금으로써는 한 가지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노랑머리의 목소리가 한층 격하게 떨려 나왔다.
“사, 살려 줘!”
“끝이야? 뭐 더 없어?”
“하, 하나 더 있기는 한데요.”
한참 어려 보이는 남구에게 존대하기 시작했다.
“뭔데?”
“구, 궁금하세요?”
“마법사는 보기 드무니까. 주로 쓰는 스킬도 각양각색이고. 알아 두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 아니겠어?”
알면 살고 모르면 죽었다.
정보가 곧 힘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모르는 건 약이 아니라 극독이었다.
워낙 허약한 몸으로 재앙을 맞이했던 남구는 언제나 이런 마인드였다.
힘으로 안 된다면 머리로라도 해결을 봐야 했다.
‘기술을 알면 파훼법도 찾을 수 있는 법.’
노랑머리의 눈에 비친 남구는 자기와 비교하면 절반도 안 돼 보이는 나이였지만 육체 전이자가 분명하기에 실제 나이를 가늠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남구가 갓난아기라고 해도 극존칭을 쓸 수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라 못 할 말이 없었다.
또한 끈질기게 쫓아 온 것에 비해 지금은 마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노랑머리가 희망 회로를 돌렸다.
‘저놈, 의외로 적의가 없어 보이는데 살살 구슬리면 살길을 찾을 수 있을까?’
살길이 없다고 해도 뚫어내야 했다.
노랑머리가 마음을 다잡았다.
‘난 지옥 같은 육체 쟁탈전에서 당당히 살아남은 생존자야. 그것도 제일 처음으로 육체를 선택할 권리까지 획득했다고. 인적 하나 없는 이런 외진 곳에서 듣도 보도 못한 놈에게 비참하게 죽을 수는 없지!’
노랑머리가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짓고 다짜고짜 친한 척을 했다.
“형님도 마법사세요?”
“질문은 내가 할게.”
“헉! 어이쿠, 그럼요. 헤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성심껏 답하겠습니다. 형님!”
노랑머리의 태도가 급변했다.
친구들에게 고압적으로 굴던 모습은 씻은 듯이 사라졌고 가랑이 사이라도 길 것처럼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갖은 아양을 떨어 댔다.
남구가 흉측한 흉터를 꿈틀거리며 그런 노랑머리의 행태를 유심히 눈에 담았다.
‘음, 나랑 동류인가? 하긴, 자존심이고 뭐고 다 개나 줘버려야 육체 쟁탈전에서 살아남지. 저런 놈이니까 살 수 있었을 테지.’
남구는 노랑머리가 자신의 스타일과 꽤 흡사하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하나 남았다는 거 써 봐!”
노랑머리의 파란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다.
잠시간의 대화로 조금이나마 기력을 회복했다.
스킬을 선보이는 척하다가 남구에게 날릴 수도 있었다.
최후의 일격을 날릴 절호의 기회였다.
파란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며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저 자식 발바닥이라도 핥을 것처럼 납작 엎드려 꼬리를 살살 흔들면 과연 살 수 있을까? 아니면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불의의 일격을 날려버려?’
목숨이 걸린 중차대한 선택이었지만 판단은 빨랐다.
노랑머리가 발끝만 내려다보던 눈을 들어 남구를 똑바로 마주 보며 생각을 굳혔다.
‘오냐! 너 어디 한번 죽어 봐라! 내 한 방 제대로 보여주마!’
“그럼 한 번 보여드리겠습니다. 형님!”
노랑머리의 눈빛을 마주한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삐쭉 틀어 올리며 가소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해 봐!”
노랑머리는 공격 의사가 전혀 없다는 표현을 확실하게 어필했다.
남구에게서 돌아서서 옆모습을 보였다.
이내 엉덩이를 뒤로 빼고 기마자세를 취했다.
압축공기를 쏘아댈 때와 비슷하게 양팔로 원을 그리듯 허공을 크게 휘적거렸다.
“후유우우우우!”
호흡을 기다랗게 가다듬으며 휘적거리던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거, 준비 동작 한번 거창하구만.’
지루한 남구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노랑머리는 그러고도 한참을 더 뜸을 들였다.
가슴 앞에 모은 두 손 사이에서 서서히 공기가 압축되어갔다.
둥그렇게 모인 기운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관자놀이에 곤두선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기어 다녔다.
땀을 비 오듯 뚝뚝 흘리며 목덜미에 핏대가 날을 세웠다.
“으아아아! 토네이도!”
노랑머리가 퍼런 두 눈에 안광을 번뜩이며 허리를 비틀어 가슴 앞에 모았던 두 손을 남구에게 뻗었다.
휘이이이이이이잉-
칼날처럼 예리한 회오리바람이 남구를 향해 폭풍같이 휘몰아쳤다.
주변의 흙과 낙엽과 나뭇가지들이 빨려들어 믹서기에 갈린 듯 산산조각으로 갈려 나갔다.
남구의 손바닥이 차분하게 밑으로 펴졌다.
‘중력제어!’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르도록 기를 쓰던 노랑머리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어렸다.
“헉! 뭐, 뭐지?”
어리둥절한 노랑머리가 남구를 향해 뻗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휘둥그레 눈을 뜨고 찢어져라 입을 벌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현상을 도저히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폭주하듯 세차게 몰아치던 스킬 ‘토네이도’가 제자리에서만 뱅글뱅글 돌았다.
바닥을 드러낸 마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퍼 올려 아무리 독려해도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평온하고 여유롭던 남구의 미간에 미세한 움직임이 일었다.
‘하! 생각보다 강하네? 내 중력장에서도 돌긴 도는군!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치어에 불과한 저놈이 이 정도라니! 역시 마법사들은 절대 긴장을 풀 수 없는 존재야.’
기를 쓰고 마력을 불어넣던 노랑머리가 탈진하여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휘청거렸다.
두 손을 허우적허우적 휘저으며 마력이 텅 비어버린 몸의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내 풀린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력 공급이 끊긴 ‘토네이도’도 그저 그런 바람으로 바뀌어 갔다.
비록 제자리에서만 돌 뿐이었으나 맹렬하게 휘몰아치던 회오리바람이 주변의 여타 바람과 마찬가지로 서로 동화되어 바람결에 너울너울 흩어졌다.
그에 따라 가루가 된 잡동사니들도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어둠에 묻힌 새까만 머리카락을 올올이 펄럭펄럭 휘날리던 남구가 고개를 몇 번 휘저어 갸름하게 정돈했다.
먼지를 집어삼켜 텁텁한지 입을 우물거렸다.
칼칼한 목을 가다듬으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칵 퉤-
들고 있던 해머를 목공 벨트에 꽂아 넣고 엉덩이 부근에 착용한 휴대용 정수 텀블러를 빼 들었다.
흙먼지가 잔뜩 들어간 입에 가져다 대며 생각했다.
‘저놈은 바람 계열이군. 4 서클 정도 되려나? 10대 후반에 4 서클이라······. 역시 대단한 육체를 제공받았구나! 에이, 뭔가 새로운 스킬이라도 발견할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하나도 건진 게 없네? 다 아는 스킬이구만.’
침을 탁 뱉고 물로 입을 헹구는 남구의 모습을 노랑머리는 동작 하나 놓치지 않고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몸을 움찔거리며 남구를 주시하는 노랑머리의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이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처형되기 직전 사형집행관을 바라보는 사형수의 심정이었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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