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아가씨께서 환장한 놈
거대한 규모 탓에 탁 트여 보였지만 창도 없이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전장으로 남구가 들어섰다.
이곳은 교도소와 다름없었다.
인류의 건축 양식과는 완전히 달랐으나 구조 자체는 비슷했다.
수용소의 웅장하리만치 커다란 규모가 무색했다.
이곳을 이용할 자는 현재로선 오직 남구 혼자뿐이었다.
‘이거야 원! 지구로 장기 휴가를 다녀온 셈인가?’
이곳저곳 눈동자를 굴리던 남구가 타르의 뒤통수 너머를 힐끗 보았다.
수용인원 하나 없는 텅 빈 수용소에 관리자만 여럿 보였다.
자칭 관리자라 칭했으나 교도관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저들을 간수라 불렀었다.
‘전과 마찬가지로 다들 모여 있군. 꼭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아!’
사열을 위해 수용시설을 관리하는 관리자 대부분이 대기 중이었다.
부와 명예를 안겨줄 첫 번째 인간을 맞이할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했다.
“너무 기대돼! 제일 비싼 놈이라며?”
“그놈, 원하는 군장이 많았나 봐!”
“아가씨께서 너무 한 놈한테 몰방한 거 아니야?”
“차라리 조금 기다렸다가 여러 놈을 데려오는 게 낫지 않았으려나요?”
“그러게 한번 꽂히면 앞뒤 안 가리는 성격이시라.”
“난 좀 불안해 그놈 죽어버리면 우린······.”
“에이! 시작도 안 했는데 초 치는 소리 하지 마!”
저벅저벅-
기대감 한편으로 걱정이 혼재한 모든 초점이 이제 막 들어선 남구에게 향했다.
재소자도 없는 수용소에 삼삼오오 모여 하릴없이 담소를 나누던 관리자들이 새로 맞춘 듯 반질반질 윤이 나는 빳빳한 검은 제복과 머리에 난 뿔을 흔들어대며 신이 나 달려왔다.
“아가씨께서 환장한 놈이 이놈이야?”
경박하게 말을 뱉은 자는 숱이 적은 수염이 염소처럼 나 있었다.
타르가 잔뜩 인상을 쓰고 윽박질렀다.
“아가씨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염소수염의 목소리에 잔뜩 주눅이 들었다.
“우, 우리끼리만 있는데 뭐 어때!”
타르가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았다.
“너 그러다 지구로 전출 가는 수가 있어?”
“헉! 그, 그것만은. 나 아직 장가도 못 갔다고.”
염소수염의 뒤를 이어 모여든 관리자들이 남구를 기웃대며 들떠 떠들어 댔다.
“이놈 보기에는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는데?”
“인간은 원래 허약하게 생겼잖아요.”
“왜? 난 강해 보이는데. 지구에서 많이 굴렀나 보군. 상처투성이야!”
“남자라면 저 정도 상흔은 있어야지!”
관리자들의 수다에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어찌 보면 나도 마족이라 할 수 있겠군. 너희처럼 뿔은 안 달려 있지만 말이지. 글탄 가문의 후계자쯤 되는 몸이려나?’
흥분한 관리자들의 수다는 멈출 줄 몰랐다.
“지구에서 보내온 영상 보니까 인간들은 허약하기 짝이 없더라고. 픽픽 죽어 나가니까 이렇게 생명 에너지도 금방 모이잖아.”
“어? 그 영상은 군장들만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데스 게임에 참가 안 하면 군장들도 못 보는 건데?”
“순진하긴, 다 보는 수가 있지!”
“오! 정말? 나도 좀······.”
“있어봐! 이놈 구경 좀 하자. 드디어 시작이야. 이번 시즌.”
‘아주 환장하는구나!’
월드컵에 열광하는 인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월드컵은 한 달여간 진행되지만 데스 게임은 몇십 년 단위였다.
그동안 버티던 생명체가 거의 다 소멸했을 때 원활한 생명 에너지의 수급을 위해 또 다른 행성을 물색했다.
내전을 종식한 마계의 족속들은 변태적인 데스 게임이 곧 삶이자 삶이 곧 데스 게임이었다.
데스 게임은 그들의 기질을 배설할 항문이었으며 생명 에너지 수급을 위한 입이었다.
“전에 있던 애들 일찌감치 다 죽어서 여기 텅텅 비었잖아요. 우리 잘리는 거 아닌가 걱정했어요.”
“괜한 걱정이야. 군장님께서 얼마나 부잔지 모르는 거야?”
“그럴 리가요. 한 손에 든다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일찌감치 패배하셨지만, 그 정도로 흔들릴 우리 군장님이 아니지!”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다시 시작하는 데스 게임이야?”
“전 정말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식구들도 벌써부터 들떠 있어요.”
“나는 데스 게임 생각에 잠을 못 자!”
“우리는 공짜로 볼 수 있잖아. 난 이 직업이 너무 좋아!”
“만족도 1위! 모두가 부러워하는 꿈의 직업 아닙니까? 하하하!”
“이놈이 기대만큼 잘 해줘야 할 텐데······.”
“우리에게 할당된 구역에서는 제일 비싼 놈이잖아요. 몸값 하겠죠.”
“다른 인간들은 언제쯤 소환 한대?”
“생명 에너지가 좀 더 모여야겠지.”
“저놈 사 오는데 몽땅 털어 넣어서 아마 더는 경매에 참여할 수 없을 거야. 이젠 떨거지들을 데려올 수밖에 없을걸?”
“아마도 그렇겠지?”
다가온 관리자들은 왁자지껄 수다를 떨어가며 처음 보는 인간을 초롱초롱한 눈초리로 목을 빼고 구경했다.
그중 나이가 지긋하게 든 주름이 자글자글한 관리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글탄족 귀족 애들이랑 무척 흡사하게 생겼구만?”
주름이 자글자글한 관리자의 혼잣말에 염소수염의 관리자가 말을 받았다.
“다 죽고 식민지로 도망친 놈들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하지만 한때는 대단했었어!”
“또 나 때 얘기예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 이제 지겹습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관리자가 가자미 눈으로 째려봤다.
“너는 걔들 안 겪어 봤지?”
“네, 제가 전쟁 이후 세대잖아요.”
“니들이 전쟁 맛을 알아?”
버럭 언성을 높인 주름 진 관리자가 회상에 젖은 눈으로 몰려든 동료 뒤편에서 남구를 빤히 넘겨다 보았다.
동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최고 관리자인 타르의 타박이 울려 퍼졌다.
“이거 봐! 불이라도 났어? 이제 보기 싫어도 맨날 볼 얼굴이야!”
타르가 남구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적어도 죽기 전까지는 말이야.”
남구를 돌아본 타르가 과연 얼마나 살지 가늠해 보기라도 하려는 듯 시선을 아래위로 훑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아가씨께 보고나 올려.”
말을 마친 타르가 염소수염을 째려봤다.
흠칫한 염소수염이 잽싸게 돌아서며 비굴한 목소리를 발했다.
“알았어! 내가 다녀올게.”
타르의 시선이 곧장 남구에게 향했다.
타르가 남구를 돌아보자 남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1호실로 들어가라]
남구의 시선이 메시지를 힐끔 보고 다시 타르에게 향했을 때 타르의 손가락은 1호실로 뻗어 있었다.
각각의 수용실마다 입구에 아라비아 숫자가 쓰여 있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한 나름의 배려였다.
남구가 염소수염의 뛰는 발걸음 소리를 돌아선 등 뒤로 들으며 1호실로 들어갔다.
드르르르르르륵- 차캉-
들어서자마자 남구의 뒤통수로 철창이 닫히는 마찰음과 충격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날카롭게 울리는 쨍한 소리에 움찔거릴 법도 하지만 남구는 태연히 서서 1호실 내부를 쓱 둘러봤다.
이곳 역시 발가벗고 누워있던 장소와 규모만 다를 뿐 구조는 똑같았다.
20여 명 정도를 수용할만한 직사각형 공간이었다.
한구석에 둥둥 떠 있는 제어구를 제외하곤 실내에 아무것도 없었다.
남구의 시선이 철창 반대편 벽면으로 향했다.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가 하나 더 있었다.
재소자 전원이 교류할 수 있는 공터로 통하는 문이었다.
공터 역시 야외가 아니었다.
단지 또 하나의 거대한 직사각형 실내였다.
넓디넓은 공터에서 체력단련과 팀별 정보 교류 및 작전 계획을 짰었다.
광활한 공터도 당분간 남구의 독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1호실이라······.’
자신이 서 있는 내부를 둘러보는 남구의 얼굴은 기가 막힌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은성아, 네가 살던 곳에 내가 들어 왔다.’
1호실은 은성과 그를 뒷받침 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을 갖춘 정예 구성원이 머물던 곳이었다.
각종 생필품도 다양하게 갖췄었고 다른 인원들에 비해 음식도 고급이었다.
남구는 언제나 이곳에 머물던 친구들을 철창 너머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봤었다.
그들이 고기를 씹을 때 남구는 마른 빵을 뜯어가면서.
‘얄궂지만 이젠 이곳에서 내가 나의 정예를 꾸려야겠지.’
지금쯤 은성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예솔이는 살아 있을지 모든 것을 갖춘 아지트를 떠나 헤매고 있을 박 부장과 삼식이 황량한 거리에서 못생긴 얼굴로 무사할지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지만, 잡념을 털어 버리고 손가락을 단숨에 물어뜯었다.
배어 나오는 핏물로 벽면에 작대기를 하나 그었다.
‘오늘부터 일일이군.’
남구가 시스템 메시지를 띄워 올렸다.
[생명 포인트 : 2012 LP]
‘과연 나와 줄까?’
사람들은 스킬을 얻을 방법이 없었다.
지구에서는 오직 육체 쟁탈전에서의 승리가 사람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킬을 얻을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소환된 사람들은 데스 게임에서 승리할 때마다 생명 포인트는 물론이거니와 특정 보상을 받게 된다.
그중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마법서였다.
‘받드시 얻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두 가지 습득 마법서 중 하나는 꼭 얻어야 했다.
얻는데 필요한 생명 포인트는 2000 LP.
남구가 지구에서 딱 맞춰 준비해온 LP였다.
남구의 눈동자가 메시지 텍스트를 떠나 구석에 떠 있는 제어구로 향했다.
‘저것을 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마족들이야 자신의 마력에 접속 권한을 부여받아 생명 에너지를 운용할 수 있었지만 권한 없는 인간들은 그저 내어주는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며 노예로서의 삶에 만족해야 했다.
많이 먹으면 좋아했고 과거의 남구처럼 적게 먹는 자들은 비탄에 빠졌었다.
게임 말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없어 보였고 다들 그렇게 믿었었다.
‘세상일은 참 알 수가 없어.’
과거, 은성의 오른팔이었던 승아가 멋도 모르고 얻었었다.
얻고 나서도 그 기능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발견했었다.
그 발견이 대대적인 종의 전쟁에 시발점이었다.
그 끝에는 비록 다 죽고 한 줌도 안 되는 인간만이 남았었지만, 이제는 주인공이 바뀌었다.
스스로 원한 일은 결코 아니었으나 남구는 텅 빈 공간에 혼자 우두커니 서서 이글이글 눈빛을 불태웠다.
‘끝은 봐야겠지!’
타다다다다닥-
급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텅 빈 공간에 윙윙 울려 퍼졌다.
“후우우우우!”
끓어오르는 기운을 숨결에 날려 보냈다.
‘오랜만에 보겠군. 젊은 시절 얼굴을.’
남구의 뒤통수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멈추어 섰다.
“헤엑! 헤엑!”
가쁜 숨소리의 주인은 염소수염일 것이다.
‘숨조차 헐떡이지 않는군.’
“어머~~~~!”
신이 난 듯 길게 늘이는 감탄성이 들려왔다.
너무나 익숙한 어투와 목소리였다.
‘네 안하무인에 그 철딱서니 없는 목소리도 여전하구나!’
“드디어 만났네? 내 보물!”
‘반갑다고는 못하겠군. 마티나!’
“남구야! 좀 돌아봐봐!”
“아가씨!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타르의 말에 마티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호호호, 내 정신 좀 봐!”
눈앞에 돌아서라는 메시지가 떠올랐으나 이미 남구는 뒤돌아 있었다.
마티나의 갸름하고 하얀 얼굴에 들어있는 날카로운 눈매와 올라가 붙은 입꼬리에는 만족의 미소가 환하게 피어 있었다.
뒤로 말린 뿔을 흔들며 남구의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타르에게 물었다.
“어때? 내가 고른 애가?”
마티나의 물음에 타르가 신속하게 대답했다.
“아가씨의 선구안이야 이미 정평이 난 거 아니겠습니까?”
“아빠 고집 때문이야! 내 말만 들었으면 지난 시즌 그렇게 망쳐버리지 않았을 거야.”
마티나의 환했던 얼굴에 금방 골이 났다.
분함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동자는 연신 남구를 담느라 분주했다.
“그치?”
보지도 않고 물어오는 마티나의 질문에 좀 전까지 위풍당당하던 타르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말이 틀려?”
차마 군장을 비방할 수 없는 타르는 조금 전 신속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 모습과 다르게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 두꺼운 입술만을 뻐끔거렸다.
“그, 그것이······.”
“그년한테 그렇게 개무시를 당하지도 않았을 거고.”
타르가 이때다 싶어 즉각 입을 열었다.
“샴족에 그 못생긴 년 말입니까?”
“그래, 그 들창코 년.”
“감히 우리 아가씨를······.”
“개인전 준비시켜.”
말이 잘린 타르가 휘둥그레 눈을 떴다.
너무나 뜬금없는 얘기였다.
“버, 벌써요?”
“응, 내기했거든. 일억 LP. 내가 자존심 구기고는 못 살지!”
타르는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머뭇거렸다.
“그년이 내 꺼보다 지 꺼가 더 세다잖아! 남구가 우리 구역에서는 몸값 제일 비쌌던 거 너도 알지?”
“그, 그럼요.”
“개막전이야! 정식으로 룰 다 적용해서 방송 내보내기로 했어. 일정이 갑자기 잡힌 거긴 한데 시즌 시작을 알리는 첫 방송이라 수신료도 짭짤할 거야. 팍팍 벌어 보자고. 오호호호!”
‘망할 년! 오자마자 이게 무슨!’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