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남구가 나타났다.
[히든 보상은 이 자리에서 바로 지급됩니다]
‘그래, 좋아!’
[제시하는 명품 아이템 4개 중 선택하거나 직접 원하는 아이템을 명명하십시오]
‘오호라! 대박이구나!’
대다수가 주관식보다는 사지선다를 선택할 것이다.
뭘 알아야 면장도 하는 법.
명품 아이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며 자기에게 맞는 것은 또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터.
‘히든 보상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군.’
남구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주체할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 으하하하하!”
남구의 박장대소에도 의식을 잃은 여자들은 깨어날 기미가 전혀 없었다.
“참 나! 내가 히든 보상을 다 받는 날이 오는군.”
남구가 언제 웃었냐는 듯 정색한 표정으로 시스템 메시지를 노려봤다.
‘제시 따위 필요 없어.’
일말의 고민 없이 남구의 입에서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스산하게 흘러나왔다.
“핵산2.”
‘벌써 누군가 획득했으려나?’
이곳은 대형 마법진이 새겨진 전용 소환실이었다.
곧바로 2,000 LP가 빠져나가며 남구의 발 앞에 습득 마법서가 휘몰아치는 광휘와 함께 등장했다.
‘아무도 얻지 못했었군.’
명품 아이템은 모두 수량이 한정되어 있었다.
특히 핵산1이나 핵산2는 그 수량이 달랑 1개인 유일무이한 아이템이었다.
남구가 광휘와 함께 바닥에 모습을 드러낸 마법서를 잽싸게 집어 들고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후유!”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부좌를 틀었다.
습득 조건은 핵산1과 같았다.
마법서에 손을 올리자 득달같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핵산2를 습득하시겠습니까?]
‘또 물어 쌌는구나! 그래, 습득한다.’
시스템 메시지가 재차 물어왔다.
[정말로 핵산2를 습득하시겠습니까? 부작용으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남구는 무리한 중력 사용으로 입은 내상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핵산1을 제 것으로 품고 있는 몸.
생명 에너지에 푹 젖어 완전히 하나가 된 남구의 세포들은 같은 성질인 핵산2에도 절대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오든 샤워기에서 나오든 물은 물이었다.
부르는 용어와 발현되는 방식만 다를 뿐 똑같은 기운이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한 몸에 오러와 마력을 다 가져보자꾸나!’
그림처럼 수 놓인 황금색 마법 문자에서 광채가 너울너울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솟아올랐다.
‘이 산득한 느낌, 좋아!’
형형하게 너울거리던 광휘가 정절에 다다라 백색 광채를 뿜어냈고 이내 손바닥을 통해 몸속으로 고스란히 흡수되며 핵산2의 기운으로 전환됐다.
핵산2의 기운이 전신을 휘돌던 핵산1의 기운과 만나 마치 그리운 피붙이를 상봉한 듯 얼싸안고 종횡무진 내부를 질주했다.
생명의 핵이라는 같은 부모 밑에서 탄생한 같은 성질의 기운은 반발하기는커녕 서로의 기운을 더욱 북돋웠다.
‘하! 이런 시너지가!’
한참을 뛰놀다 저녁녘 집으로 돌아가듯 심장에 모여든 핵산2의 기운이 꽈배기처럼 꽈리를 틀고 공고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외부의 간섭을 원천 차단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한 남구의 코와 입에서 가느다랗게 새어 나오는 핏기가 비쳤다.
하지만 처음 핵산1을 운용할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게 순조로웠다.
단지 심장이라는 새로운 신체 기관에 자리를 잡느라 따르는 미약한 부담이었다.
에일 듯한 한기를 발하며 내부에서부터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특유의 거대한 압박감이 분명하게 일어났지만 이미 남구에게는 익숙하고도 평범한 현상일 뿐이었다.
산득산득한 핵의 기운이 슬며시 벌어진 입에서 안정된 호흡을 따라 한겨울 서릿바람처럼 풀풀 흩날렸다.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남구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순간처럼 느껴지지만 이토록 배가 고픈 걸 보니 이번에도 꽤 걸렸나 보네!’
[핵산2를 습득하셨습니다]
[핵산2 ★★★★★ : 핵의 두 번째 분신, 생명 에너지를 근간으로 하는 법사 계열 전용 마력]
[핵산2 운용 시 모든 마법 공격력 30% 상승]
[신체 재생 능력 500% 상승]
[내구력 200% 상승]
[회복력 200% 상승]
[지구력 200% 상승]
‘합치면 신체 재생 능력이 1,000%?’
핵산1과 핵산2의 시너지 효과가 상당했다.
어떠한 어지럼증도 매스꺼움도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진탕 난 오장 육부가 모두 멀쩡하게 회복해 있었다.
단지 내상을 회복한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재생하는 세포로 인해 불끈불끈 용솟음치는 생명력이 시나브로 더해갔다.
활기가 끓어 올라 지붕을 뚫고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후후, 이러다 영생하는 거 아니야?’
마치 새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었지만 남구의 웃음은 변함없이 똑같았다.
눈을 감고 있는 남구의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가 지어졌다.
서서히 올라가는 눈꺼풀 안에서 까만 눈동자가 얼음장 같은 광채를 한층 짙게 번득거렸다.
“눈 떴어!”
터키 여자의 외침에 여자들이 남구의 근처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꽉 막힌 소환실에 윙윙 울려 퍼졌다.
“어머머! 이제야 깨어났다.”
“역시 죽은 건 아니었어.”
“안 일어날까 봐 너무 무서웠어.”
일본 여자가 남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남구 사마 눈빛이 더 살벌해진 거 같아.”
태국 여자가 남구를 향한 신기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몸에서 계속 나오던 수증기가 이제 멈춘 건가?”
이탈리아 여자도 남구의 몸에서 하늘하늘 피어오르는 기체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어.”
러시아 여자가 남구와 여자들을 번갈아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는 발가벗겨 놓고 남구는 왜 옷을 그대로 입혀 놨을까?”
프랑스 여자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소름 끼쳐! 변태가 있나 봐.”
터키 여자가 정신이 들자마자 후다닥 주워 입은 얇은 원피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이런 옷이라도 놔두고 갔잖아. 알몸보다는 낫지.”
독일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그게 더 소름 끼쳐! 단체로 다 벗겨 놓고 똑같은 옷만 달랑 던져두고 가다니!”
브라질 여자가 따끔거리는 왼쪽 가슴을 어루만지며 인상을 찌푸렸다.
“가축처럼 낙인까지 찍어 놨어.”
스페인 여자가 가슴이 한껏 파인 원피스를 들춰보며 말했다.
“이런 낙인이 찍히는데도 우린 계속 의식이 없었나 봐!”
터키 여자가 어두침침한 주위를 불안한 눈빛으로 다시금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남구가 지켜줄 거야.”
남구의 곁으로 한데 모인 여자들이 너도나도 두서없이 입을 열었다.
“남구는 어쩜 저렇게 온종일 앉아 있을까? 신기해!”
“이제 만져봐도 괜찮을까?”
“잘못되면 어쩌려고, 좀 기다려 봐!”
“예솔이가 가만 놔두라고 했잖아.”
예솔의 목소리가 짱짱하게 메아리쳤다.
“다 비켜!”
남구를 둘러싸고 있던 여자들이 예솔의 날카로운 음성에 기겁하며 후다닥 물러났다.
온몸에서 줄기줄기 품어져 나오던 기운을 갈무리한 남구가 눈동자를 분주하게 휘돌렸다.
‘다들 깨어났군. 낙인은 언제 또 다 찍었지?’
낙인찍힌 왼쪽 가슴팍에서 배어 나온 핏기가 속이 훤히 비쳐 보이는 얇은 천 위로 드문드문 드러났다.
여자들이 입은 옷은 일반 소환자들에게 보급되는 거친 질감의 누런 박스형 유니폼과는 다르게 특별했다.
굳이 만져 보지 않더라도 부들부들 매끄러운 촉감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예솔이 남구를 호위하듯 여자들을 쫓아내고 곁에 서 있었다.
남구가 곁에선 예솔에게 손을 뻗었다.
뽀얀 피부에 또 다른 피부인 양 착 달라붙은 천을 살며시 만져 보았다.
예솔이 깜짝 놀랐지만 남구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이런 느낌이었군. 진짜 매끈매끈 보드랍구나!’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실크 소재로 허리가 잘록하게 잘 빠진 와인색 원피스였다.
일반 소환자들과 이 여자들은 존재 이유와 역할이 완전히 달랐다.
그에 따라 지급되는 복장도 천지 차이였다.
‘도마뱀들은 언제 또 다 거둬 갔지?’
목도리 스몰 드래곤들이 보이지 않았다.
10명의 여자만 똑같은 옷을 입은 채 소곤거리며 모여 있었다.
쿠구구구구-
네모난 치즈 조각이 반듯하게 잘려 나가듯 벽체가 뚝 떨어져 옆으로 밀려 나갔다.
그곳을 통해 염소수염이 들어왔다.
역광을 받은 염소수염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기 시작했다.
“허억!”
“어, 어머!”
“어쩜!”
“으으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신음이 그 좁은 사이를 꾸역꾸역 비집고 새어 나왔다.
처음 보는 뿔 달린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처음 겪어보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눈빛이 출렁출렁 흔들렸다.
이곳에 처음 소환당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숱하게 보아왔던 남구로서는 한결같은 그녀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새어 들어오는 밝은 빛줄기와 함께 염소수염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염소수염의 입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남구가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염소수염이 발걸음을 저도 모르게 우뚝 멈추고 머뭇머뭇 주저하며 남구를 향해 제어구를 뻗어냈다.
관리자가 노예를 보는 일반적인 눈빛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남구를 무척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있음이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왜? 심장 마사지라도 하려고?”
남구의 말이 제어구를 통해 해석되어 염소수염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마계어로 변환되었다.
염소수염이 자기도 민망한지 목을 큼큼 가다듬으며 입술을 열려 했다.
남구의 말이 빨랐다.
“저기로 나가면 돼!”
자기 집 안방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가며 안내하듯 말하는 남구의 태연한 태도에 여자들의 긴장이 약간이나마 풀어졌다.
앞서나가는 남구의 뒤를 똑같은 디자인의 실크 원피스를 걸친 여자들이 어미 닭은 쫓는 병아리처럼 줄줄이 뒤따랐다.
마치 남구가 이곳에 관리자인 듯 했다.
다가오는 남구의 일행을 무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염소수염이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구의 목소리가 먼저였다.
“뭘 멀뚱히 서 있어? 빨리 안내나 해!”
남구는 낙인찍힌 자들의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자인 관리자에게 갑질하는 손님같이 굴었다.
염소수염은 관리자 중에서도 최고위 관리자였다.
“어디, 초호화 교배실이라는데 구경 좀 해볼까?”
비아냥거리는 남구의 말에 염소수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최고위 관리자인 염소수염이 일개 게임 말에 불과한 남구의 안하무인인 태도 앞에서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전 세계에 걸쳐 최고들만 엄선하여 진행된 이번 이벤트로 남구는 그야말로 슈퍼스타의 자리에 우뚝 올라섰다.
각 족속의 해설진 누구나 남구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타입의 월드클래스임을 입에 침을 튀겨가며 떠들어 댔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 촌구석의 족속들도 남구에게 선물을 보내왔다.
날아드는 팬들의 선물 공세에 새로 지은 창고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 위명과 인기가 대륙 방방곡곡 말단까지 뻗어나가 마계 전체를 통틀어 남구를 모르는 자가 없었다.
그로 인해 고트족의 위상 또한 덩달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마계에 고트류라는 새로운 열풍이 일어났다.
고트족의 육성법과 노하우를 배우러 전 세계에서 파견된 사신이 수도 없이 오고 갔다.
덕분에 군장과 아가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번 이벤트로 고트족은 또 한 번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지금 당장의 이득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 이득이 얼마나 불어날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고트족에 쌓이는 생명 에너지는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이다.
최고의 가문으로 등극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렇게만 된다면 언감생심이었던 차기 마왕의 자리까지 노릴 만했다.
“야! 안 가냐고.”
“헉!”
상상의 나래에 빠져 있던 염소수염이 남구의 무례한 언사에도 헛기침만 내뱉었다.
“크흠! 가, 가자고.”
오랜만에 마계어를 변환한 텍스트가 남구의 망막에 떠올랐다.
염소수염은 너무나 압도적인 남구의 위상에 주눅이 들었다.
제어구로 찜질해 버르장머리를 고쳐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남구가 무사히 핵산2의 마력을 얻은 것까지는 제어구의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구의 내부에서 마력이 안정적으로 착상했는지 불안정한 요소가 남아 있는지 겉으로 봐서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방금 마력을 장착한 남구에게 섣불리 제어구를 사용하여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자신은 아가씨께 바로 타죽을 것이 명약관화했다.
고트족에게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주는 남구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아가씨께서 용서치 않을 것이다.
염소수염이 열린 출입구로 되돌아 나가며 생각했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가늘고 길게 가야지!’
염소수염은 권위와 위신을 세우려 했던 죽어버린 타르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정년퇴직만 기다리는 뼛속까지 공무원 마인드로 꽉 찬 인사였다.
아가씨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것도 모자라 모든 마족이 흠모하게 되어버린 남구와 절대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꿈의 직장을 무탈하게 마르고 닳도록 다니고 싶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남구의 등 뒤만을 쫓아 어슴푸레했던 소환실에서 수용소로 나온 여자들이 쏟아지는 밝은 빛에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자리를 비운 동안 어찌 지냈으려나?’
수용소의 복도를 지나는 남구가 새카만 선글라스 안에서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려 가며 분위기를 면밀하게 살폈다.
‘이 정도면 그동안 꽤 잘 버텼군.’
각각의 호실마다 남구의 눈동자가 바람처럼 훑고 지났다.
대부분이 기존에 있던 인물이었다.
처음 보는 새로운 사람이 없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드물었다.
일괄적으로 보급되는 꺼끌꺼끌한 박스형 유니폼을 입은 인사도 거의 없었다.
대다수가 보상으로 받은 옷을 입고 있었다.
초반, 스킬과 아이템의 유무는 생존에 직결되는 요소였다.
생존율이 이렇게 높다는 것은 공평한 아이템 분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남구는 삼계명만 선포하고 몇 달 동안 사라졌었다.
법만 세워 놓고 자취를 감췄으니 기존의 아이템 독점 구도로 되돌아가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삼식의 존재가 없었다면 그리되었을 것이다.
‘삼식이가 잘 해내고 있었구만.’
삼식이 남구의 뜻을 잘 이어 나가고 있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남구를 제외한다면 관리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인원이 전무했던 이유로 수용소 밖 소식을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마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수용소 내 대부분이 남구의 죽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누군가 꽥 고함을 질렀다.
“남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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