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간택 (1)
‘생명 에너지를 확보한 놈들이 드디어 간택을 시작한 것이지.’
남구의 망막을 자극하며 어딘가를 향해 이어지는 이 빛줄기의 끝자락에는 보나 마나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성능 소환진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홀리듯 은은하게 광휘를 발하며 특정 사람에게만 존재를 드러내는 이 빛줄기를 남구는 벌써 두 번째 보게 되는 것이었고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불나방처럼 빛에 이끌려 아무것도 모른 채 몰려든 자들은 기약할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세포 하나하나 조각나 날아가 버릴 것이다.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굳어버린 삼식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뻐끔거리며 열었다.
“헤, 헤어져요?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남구는 어디론가 끝없이 이어지는 빛줄기를 따라 창틀 너머로 시선을 돌리며 눈보라 치는 밖을 내다보았다.
“어제부터 빛이 보이기 시작했어.”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삼식이 휘둥그레진 눈을 더욱 부릅떴다.
어제 남구의 망막에 떠오른 것은 빛줄기뿐만이 아니었다.
빛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도 떠올랐었다.
단 한 줄의 아주 간단명료한 문장이었다.
남구가 하얗게 눈 덮인 세상을 가로지르는 빛줄기를 바라보며 출력된 텍스트 내용을 상기했다.
[선택받은 자여 이끄는 빛을 쫓으라]
건방지기 짝이 없는 메시지의 형태로 봤을 때 단순히 지역 관리자 차원에서 발신한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 각지에 널리 퍼져 있는 선택 받은 자 모두에게 동일한 내용의 전체 메시지가 일률적으로 전달됐을 것이다.
타임 어택처럼 제한 시간까지 정해 놓고 따르기를 독촉했다.
어리둥절해 있던 삼식이 곧장 물어 왔다.
“빛이라니요?”
“소환진으로 안내하는 빛!”
삼식이 기절초풍하며 헛바람을 일으켰다.
“허억! 소, 소환이요? 육체 쟁탈전 같은 거 또 하는 건가요? 시, 싫은데?”
“그건 단순한 이벤트에 불과했을 뿐이야. 그런 거랑은 차원이 달라. 지구를 아예 떠나는 거지!”
삼식은 남구의 조언을 들으며 하루가 멀다고 실전 경험을 쌓아 나갔기에 처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부쩍 성장했다.
근래 들어서는 크리처한테도 당당히 맞서는 등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처음의 소심한 모습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지, 지구를 떠난다니? 말도 안 돼! 저, 정말요? 전 빛 같은 거 안 보이는데?”
“소환 대상자에게만 보이는 거야. 그냥 지구에 남아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소환자들의 삶도 그리 녹녹지 않거든. 죽거나 살거나 언제나 둘 중 하나지.”
삼식이 절박하게 외쳤다.
“혀, 형님! 안 가면 안 돼요?”
“나라고 가고 싶겠냐? 하지만 안 갈 수가 없어.”
“왜, 왜요? 빛 때문에 눈이 좀 부시기는 하겠지만 그냥 안 가면 되잖아요.”
“거부하고 버티면 강제로 소환되거든.”
삼식의 부리부리한 눈망울에 차오른 눈물이 치켜 올라간 눈꼬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흐윽! 형님 떠나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요.”
“앞으로 6개월 후 본격적인 무작위 소환이 시작될 거야. 그때 부장님이나 너나 소환될 수도 있어.”
눈물을 떨구던 삼식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그럼 우린 소환된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네요?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곳으로 소환될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각자 다른 곳으로 찢어질 확률이 더 높아. 게임에 참여하는 족속이 한둘이 아니거든. 아주 많아!”
삼식의 얼굴이 또다시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어? 그럼 안 되는데?”
3월에도 불구하고 온통 하얀 세상이 펼쳐진 창밖을 내다보던 남구가 표정을 진지하게 고치고 삼식의 그렁그렁한 눈을 똑바로 마주해 다짐받듯 말했다.
“다른 곳으로 찢어지게 된다면 그곳에서 꼭 살아남도록 해. 그리고 기다려.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내가 꼭 찾아갈 테니까! 아니면 불러오던가.”
“진짜요? 진짜죠? 진짜 찾아올 거죠? 꼭 불러 줄 거죠?”
엄마 손을 놓친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연달아 물어오는 삼식 때문에 남구는 저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치켜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풋! 그래!”
“그럼 다행인데······.”
“성장 루트는 내가 일러준 대로 잘 타고 있겠지?”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근데 형님은 어떻게 이런 정보를 다 알고 있어요?”
“알 것 없고, 부장님 일어나면······.”
어느새 박 부장이 모로 누워 조용하게 남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 역시 귀가 밝으시네요.’
남구가 이불 속에 파묻힌 박 부장에게 물었다.
“어디서부터 들었어요?”
“물 마시라는 데서부터.”
“풋! 그럼 다 들었군요. 삼식이가 번거롭게 말을 옮기지 않아도 되겠네요.”
박 부장이 누워 있던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물었다.
“지금 가려고?”
일으킨 몸에는 크리처의 갈고리발톱 자국이 수두룩했고 붉게 물든 붕대가 전신에 둘둘 감겨 있었다.
“어제 빛을 보자마자 떠날 준비 다 해놨어요.”
박 부장이 자세를 바로 하며 상처를 봐 달라는 듯이 두 팔을 펼쳐 보였다.
“내가 이렇게 다쳐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정말 바로 떠날 건가?”
“후후후, 최근 들어 들은 얘기 중 제일 재미있네요. 회복력 하면 부장님 아닙니까? 금방 털고 일어나시겠죠. 걱정 안 합니다. 다만!”
박 부장과 삼식이 남구의 입술을 빤히 쳐다봤다.
“인간이란 자기와 다르면 용서가 없는 종이에요. 그 외모로 무작정 싸돌아다니면 위험합니다.”
박 부장은 남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금방 눈치챘다.
“자네가 어떤 걱정을 하는지 잘 아네. 하지만 이제라도 찾아 나서야지.”
“찾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생김새도 다른 양반이 아들 찾겠다고 너무 무모하게 움직이지는 말라는 얘기예요. 삼식이가 또 혼자되면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그거 하나만 부탁하고 갑니다.”
인간이 아닌 몸을 얻은 사람들은 육체 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월등할지 모르나 이주자라 할 수 있는 소환된 괴수와 토박이라 할 수 있는 인간 사이에 끼어 오래 버티기 쉽지 않았다.
박 부장과 삼식처럼 괴물의 몸을 가진 사람은 극히 소수였기에 이렇게 서로 만나 뭉칠 확률도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남구가 있었기에 지금에까지 이른 것을 박 부장도 모르지 않았다.
박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 조심하도록 하지! 우리도 곧 소환될 거라고?”
“재앙이 닥친 날로부터 딱 1년 후 소환이 일어나요. 이제 6개월 남은 거죠.”
박 부장이 미간을 좁히며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으흠, 나도 빨리 움직여야겠구만.”
남구는 이렇게 먼저 떠나게 될 것을 이미 예상했었다.
셋이 함께 지낼 때까지는 아들을 찾으러 나서겠다는 박 부장을 만류했었다.
둘에게 성장 방법과 생존 노하우를 어느 정도 전수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박 부장은 생존할 힘이 있어야 지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남구의 말을 따랐다.
아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건 그저 마음일 뿐 무작정 찾아 나설 수만은 없는 것을 박 부장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구가 떠나게 된 이때 위험을 무릅써 길을 나설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곳은 아직 눈이 온다지만 이제 겨울도 다 지났다.
각자 능력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더는 이들에게 전수할 것도 남지 않았다.
남구가 장비를 주섬주섬 챙기며 말했다.
“삼식이가 부장님 잘 도와주고.”
“네! 형님!”
삼식이 울상이던 말던 박 부장이 상처투성이던 말던 어느새 남구는 배낭까지 짊어졌다.
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 각각 선호하는 개인 장비가 이미 준비되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개인 장구를 모두 착용한 남구가 기약할 수 없는 길을 나섰다.
그런 남구의 뒤통수로 삼식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뜨자마자 그렇게 서두를 건 없잖아요.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지.”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강제 소환된단다. 그렇게 되면 불이익이 상당하지.’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남구의 망막에 표시된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다.
강제로 소환될 때는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간혹 미쳐버리거나 몸이 망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던 LP가 있다면 자기들이 수고한 대가를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몽땅 거두어 갔다.
가타부타 대답 없이 고개만 뒤로 돌려 박 부장과 삼식을 한번 훑어본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훈훈한 공기가 가득 차 있던 객실을 빠져나갔다.
그동안 두 사람이 숱하게 보아온 남구의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그런 남구의 뒷모습을 아련한 눈빛으로 쫓으며 잠시 잠깐 열린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싸늘한 바람을 맞이해 머리카락을 휘날릴 뿐이었다.
*
“크아아아아!”
“캬아아아아!”
좀비의 괴성이 울려 퍼지자마자 소음기를 통과하는 총성이 곧바로 뒤따랐다.
툭툭-
눈 덮인 도로 주변을 배회하다 사박사박 걸어오는 남구를 발견한 몇몇 좀비가 K7 소음기관단총의 조용한 총성과 함께 몇 걸음 떼지 못하고 푹신하게 널브러졌다.
쓰러진 모든 좀비는 대가리에 작은 구멍이 하나씩 정확하게 뚫려 있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었다.
남구가 지나온 이동 경로를 따라 그런 좀비의 시체가 듬성듬성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남구는 하얀 눈밭에 검붉은 혈액을 흩뿌리고 나뒹군 좀비의 시체에서 시선을 돌려 전방을 바라보았다.
한갓진 지방 국도가 눈앞에 끝없이 뻗어 있었다.
도로 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간혹 덩그러니 버려진 자동차뿐이었다.
남구를 이곳까지 이끈 빛줄기가 국도를 따라 곧게 이어지다가 최종 목적지를 향해 휘어졌다.
‘옛날짜장이라······.’
쭉 뻗은 국도 옆으로 휴게소를 비롯해 몇몇 식당 건물이 응집해 있었고 그 건물들이 공유하는 널따란 주차장 겸 공터에 빛줄기의 끝이 맞닿아 있었다.
‘빌어먹을! 이제야 도착했군. 목적지 한번 더럽게 머네! 장갑차 타고 올 걸 그랬나? 뭐, 남겨 놨으니 삼식이랑 부장님이 알아서 잘 쓰겠지!’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과 발자국도 없이 소복이 쌓인 새하얀 눈에 굴절된 반사광을 시커먼 선글라스가 막아 주었다.
그 안쪽에서 선글라스보다도 까만 남구의 눈동자가 주변으로 휙휙 돌아다니며 목적지 주변을 살폈다.
공터 전체가 투명한 빛의 결계로 보호받았다.
결계는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 돔의 형태로 공터 전체를 감싸 안았다.
투명한 돔은 기하학적 형태의 가는 선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얼핏 보더라도 그 족속들의 마법진 양식인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돔 안에는 이미 몇몇이 도착해 있었고 그들의 머리색과 피부색은 각양각색이었다.
남구와 같은 시기에 소환된다는 것은 남구 못지않게 대단한 재미를 그 족속들에게 선사했다는 의미였다.
오직 선택받은 자만이 결계를 통과할 자격이 주어졌다.
결계 밖으로 꽤 많은 좀비의 불탄 시체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돔 안쪽에 자리한 사람들을 발견한 좀비가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타죽은 모습이었다.
“이야! 소음기가 달린 총이 좋긴 좋군요.”
도로에 버려진 승용차 뒤편에서 커다란 배낭을 둘러멘 건장한 체격의 샛노란 머리색의 서양인이 보닛 위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남구에게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보닛 위로 드러난 꽝꽝 얼어 발그스름해진 하얀 얼굴을 향해 남구는 눈동자만 슬쩍 돌렸다.
커다란 덩치에서 나오는 기백과 주렁주렁 달린 온갖 흉흉한 장비에 비해 얼굴은 앳되기 이를 데 없었다.
‘너도 육체 쟁탈전 출신이구나! 제공된 육체는 하나 같이 10대 후반의 몸뚱이구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참을 숨어서 근방의 동태를 계속 살피고 있었던 듯싶었다.
‘신중한 성격이군. 안심해! 결계 안으로 그냥 들어가면 된단다. 추운데 괜한 허튼짓하고 있었어. 결계 안이 더 안전할 거야.’
남구는 가타부타 말없이 눈 덮인 도로 위에 미끄러짐 없는 등산화의 발자국을 뽀득뽀득 남기며 최종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남구가 지나치자 볼 빨간 남자도 승용차 뒤편에서 커다란 덩치를 들어냈다.
새카만 선글라스 안에서 남구의 까만 눈동자가 옆으로 스르륵 이동했다.
‘숨어 있는 놈이 또 있군. 볼 빨간 놈보다도 더 오래 있었나 보네?’
여태 몸을 숨기고 있던 볼 빨간 남자도 숨어 있는 또 다른 자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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