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이 구역의 지배자 (1)
‘이게 다 내가 해 놓은 짓거리란 말이지?’
남구는 자신의 압도적인 위용에 취해 복도 출입구 유리문으로 드리워진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고양된 기분은 찢어질 것만 같은 폐부의 통증으로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하아! 하아!”
해머와 망치를 잡은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떨구지 않기 위해 힘겹게 움켜쥔 해머와 망치를 축 늘어뜨렸다.
늘어진 어깨가 숨 가쁘게 들썩였다.
격전 중에 스킬 ‘정신방벽’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해머를 놓쳐버렸을 것이다.
도망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남구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참! 정신방벽을 초반에 불과한 이때 이렇게 필사적으로 남발하게 될 줄이야!’
벙거지와 고글, 마스크 등 전신을 감싼 옷가지 안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막바지에 이르자 해머와 망치의 무게를 감당하기도 버거웠다.
‘검을 쓸 걸 그랬나?’
반나절이 넘는 지난한 장기전에서는 해머의 무게가 꽤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렇다고 검을 쓴다면 손도끼처럼 두개골에 칼날이 박혀버려 회수가 늦어질 수도 있었다.
검은 둔기보다 가볍지만 공간을 더 필요로 했다.
휘젓는 좀비의 팔이 전후좌우에서 거치적거렸다.
휑한 머리 위를 단숨에 노리는 것이 그나마 가장 이상적이었다.
짧은 궤적의 수직 운동에는 한 손 둔기가 제격이었다.
게다가 글탄 둔기술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좀비를 한 방에 보내기에는 둔기만 한 게 없지! 막판에 신체 능력을 끌어올릴 LP 여유분이 없었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뻔했군. 자만하고 방심한 탓에 죽을 수도 있었어!’
“후우우우우우!”
길게 뿜어내는 숨결에 빨갛게 물든 마스크가 흠뻑 머금었던 핏물을 뱉어내며 불룩하게 배를 불렸다.
고글 안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주변을 세세하게 살폈다.
좀비가 더는 눈에 띄지 않았다.
적어도 이 건물의 1층 매장 안에 있던 좀비는 모조리 처리한 듯 보였다.
‘젠장, 건물 안에 있던 놈들이 몽땅 몰린 것 같군. 30포인트까지 끌어올린 근력도 달리는구나!’
시스템이 제공한 수치상으로만 놓고 본다면 일반 성인 남자의 다섯 배에 달하는 근력이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그대로 맞으며 뻐근한 양쪽 어깨와 손목을 차례로 돌려 풀었다.
머리와 어깨 위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으나 지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벗어나기도 귀찮았다.
‘드러눕고만 싶군! 음?’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가늘게 뜬 눈동자가 복도로 진입하는 주 출입구를 향해 스르륵 움직였다.
유리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강렬했다.
정오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강렬하게 비쳐 드는 햇살을 가리며 둥그런 그림자가 반투명 시트지에 어른거렸다.
뻐근하게 밀려오는 근육통에 찌푸렸던 인상이 이내 눈 녹듯 사라졌다.
한쪽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가며 마스크 사이로 웃음이 샜다.
“풋!”
처음 입구를 통과해 복도를 들어올 때 지었던 의미 모를 조소와 똑같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목공 벨트에 해머와 망치를 양쪽 엉덩이 부근으로 각각 꽂아 넣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좀비의 주검으로 눈길을 돌렸다.
피 웅덩이를 철벅거리며 몇 걸음 걸어가 산처럼 쌓인 좀비의 주검을 발로 밀었다.
곧 도끼 뭉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하게 박힌 좀비를 발견했다.
좀비의 대가리를 밟고 두개골에 깊이 박혀 들어 빠지지 않았던 손도끼를 잡아 뽑았다.
까드득-
흠뻑 젖은 손도끼를 허공에 휘둘렀다.
부웅- 촤아아악-
살점과 뼛조각이 흥건하게 묻어 있던 핏물을 대충 털어냈으나 여전히 혈흔이 남은 손도끼를 망치 옆에 꽂아 넣었다.
양쪽 엉덩이에서 해머와 망치와 손도끼가 무게의 균형을 이루었다.
‘좀비들의 아우성이 멈추니까 그새 염탐하러 왔나 보군.’
정비하는 남구의 모습을 출입구 유리문을 통해 누군가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어 가며 기웃기웃 훔쳐보았다.
곧 고개를 돌려 우두머리를 불렀다.
“박 경사님!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부를 거였으면 그냥 문을 활짝 열고 쳐다보지 그랬냐?’
염탐이라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그냥 대놓고 우두머리를 부르고 있었다.
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남구로서는 저런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풋, 경찰이었어? 뭐, 그럴 수 있지! 총이 있겠군.’
할인 마트를 점거한 무리의 리더가 경찰이었다.
망해버린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던 군인이나 경찰이 도적 떼로 돌변하는 경우가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곳 할인 마트는 품목도 많고 값도 싸 동네에서 꽤 장사가 잘됐었다.
동네 마트치고는 1층과 지하층을 모두 아우르는 큰 규모의 슈퍼마켓이었다.
밖의 차도에서 좀비 3마리를 처리할 때부터 할인 마트를 점거한 무리 중 몇몇이 남구를 주시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 중에서 탐이 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미끼를 던지는 낚시꾼처럼 일부러 가장 모양이 나는 기다란 장검을 뽑아 들고 설친 것이다.
거룩한 은성과 반평생을 같이 보낸 세월 때문인지 한 번도 누군가를 습격하거나 약탈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닥쳐온 약탈자를 살려 보낸 적 또한 없었다.
어쩌면 저들이 뒤를 치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커다랗고 빵빵한 백팩과 목공 벨트에 여러 가지 장비와 공구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니 약탈자들에게는 탐나는 먹잇감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남구는 혼자였다.
이런 상황에 홀몸으로 여러 좋은 물품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였다.
‘5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경찰이 도적 떼가 된 건가? 라디오 방송에서는 희망의 메시지를 계속 던지던데 믿지 않은 모양이군. 상황 판단이 빠르네! 그러니 이 동네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겠지.’
좀비의 시체들로 미어터지는 길지만 좁은 복도로 십여 명이 넘는 건장한 남자들이 각자 멋들어지게 중무장하고 하나씩 차례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덩치의 사냥개 두 마리가 같이 들어왔다.
훈련받았는지 짖지 않았다.
단지 낮게 그르렁댈 뿐이었다.
‘크으! 무장이 장난 아니군. 여태 살아 있을 만하구나!’
남구는 사방 천지 핏물이 주룩주룩 떨어지는 복도에 가만히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무심한 척 상세하게 관찰했다.
건물 입구를 기웃거리며 남구의 뒤를 염탐하던 젊은 남자가 가장 앞장서 들어왔다.
철조망을 둘둘 감아 놓은 나무 재질의 야구 배트를 손에 들고 등에는 엽총을 메고 있었다.
삐죽삐죽한 철조망은 말라붙은 검붉은 혈흔으로 찌든 지 오래되어 보였다.
바닥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벽체와 천장까지 쏟아진 핏물로 도배된 복도를 야구 방망이를 든 남자의 시선이 정신없이 휘저었다.
무수한 좀비의 시체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바닥을 과장된 몸짓으로 넘나들며 방정맞은 목소리를 발했다.
“히야, 이거야 원! 쩌는데? 대단한 놈이네?”
야구 방망이를 든 남자뿐만 아니라 피 칠갑을 한 복도에 들어와 둘러보는 십여 명이 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져 오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건물 안은 조명이 전부 나가버려 어스름했다.
스산한 복도로 들어온 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괴기스럽기 짝이 없는 살풍경에 넋이 나갔다.
남구는 도주할 경우를 대비해 지금까지 메고 있던 백팩을 벗어서 한쪽 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피가 잔뜩 튀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고글을 벗어 백팩 위에 툭 떨구었다.
땀과 피에 흠뻑 젖은 벙거지 모자도 그 옆에 던져 놓았다.
축축한 붉은 마스크도 벗자마자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그런 남구의 모습을 의기양양하게 들어온 사람들이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얼이 빠져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사람들의 뒤에 숨어 남구를 이리저리 넘겨다보던 박 경사가 일행의 선두로 나섰다.
복도에 펼쳐진 살풍경에 휘둥그레 놀란 눈으로 연신 두리번거리던 박 경사가 당당한 척 태연한 몸짓으로 앞으로 나서는 꼴을 보고 있던 남구가 가소롭다는 듯 희미한 조소를 입가에 띄웠다.
‘풋, 위협이 될만한 무기가 없다고 판단했나 보지?’
박 경사는 건물 안의 상황도 놀라웠지만, 전신에 핏물을 뒤집어쓰고 홀로 오연히 서 있는 아이의 앳된 얼굴에 다시 한번 놀랐다.
박 경사의 경탄에 마지않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어! 고등학생? 너 혼자서 이렇게 한 거야?”
‘여기 나 말고 또 누가 있니?’
대꾸할 가치가 없는 말이므로 남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 경사는 묵묵부답인 남구의 대답을 기다리다 인상을 구겼다.
야구 방망이를 든 남자의 촉새처럼 방정맞은 입이 열렸다.
“박 경사님, 변종 좀비도 저놈이 잡았어요.”
“뭐? 허허!”
박 경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 구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는 박 경사가 이끄는 그룹과 아종이었다.
박 경사의 무리와 아종은 서로가 경계하는 관계였다.
박 경사는 이 그룹의 리더로서 그만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좀비의 이빨에서 조금이라도 신체를 지켜줄 시위 진압용 보호 장구를 전원에게 공급했고 목숨 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할인 마트의 방어 시설을 견고하게 구축했다.
항상 데리고 다니는 사냥개도 있었다.
무엇보다 경찰서에 보관 중이던 총기를 탈취해와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신중한 사냥꾼인 아종이 먹이가 풍부한 환경에서 이들을 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야구 방망이를 든 20대 남자는 남구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박 경사에게 일러바쳤다.
정찰에 대한 보고라고 거창하게 말하기에는 너무나 경망스러웠다.
“박 경사님! 저놈 칼을 끼깔나게 잘 써요. 완전 쩔어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
박 경사는 감탄성을 발하며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남구를 주시했다.
눈동자만 봐도 살이 떨리던 변종 좀비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았을뿐더러 발견해도 너무 빨라 잡아내지 못했었다.
박 경사의 무리는 총과 활과 석궁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총은 소음이 심해 사용할 수 없었고 화살로는 맞추어 내는 이가 없었다.
잡아보려 나섰다가 애꿎은 목숨만 잃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다들 아종을 잡고 싶어 했다.
이제는 무리의 모든 사람이 LP의 개념을 다 알고 있었다.
아종은 LP를 잔뜩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기에 모두 군침을 흘렸었다.
모두가 잡아보려고 애를 쓰던 아종을 허여멀겋고 솜털이 뽀송뽀송한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단독으로 사냥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박 경사는 수를 헤아리기 힘든 좀비의 잔해가 가득 쌓인 복도를 둘러보며 생각을 굳혔다.
‘저 애새끼도 LP를 듬뿍 가지고 있으려나? 그래, 잔뜩 가지고 있을 게 확실해!’
복도의 참상을 훑어보던 박 경사의 눈동자가 다시금 남구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저 어린 학생은 대단한 위용을 보여줬지만, 총이 없었다.
긴 검을 매어놓은 배낭을 복도 구석에다 던져 놓고 그저 시큰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멍청한 놈! 우리를 전혀 경계하지 않는구만.’
세상과 사람들이 얼마나 무섭게 변했는지 아직 개념이 서지 못한 순진무구한 자태였다.
남구를 살펴보던 눈동자에 숨겨두었던 탐욕의 기운이 슬그머니 흘러나왔다.
“쓰읍!”
박 경사는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군침은 나오지만 경계심을 완전히 풀 수는 없었다.
총이 없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딘가 숨겨두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세상에 총 한 자루 없이 혼자 싸돌아다닐 수는 없는 법이다.
박 경사의 눈동자는 남구의 전신을 훑으며 혹시 모를 총기의 유무를 부지런히 찾았다.
어린놈이 코너에 몰려 살아보겠다고 멍청하게 총이라도 쐈다가는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다 같이 손에 손잡고 황천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것저것 잔뜩 채워져 있는 다기능 목공 벨트를 유심히 살폈다.
그곳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각종 무시무시한 연장들을 걸어놓았다.
대단히 육중하고 무거워 보였다.
‘힘도 좋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
특히 눈길을 잡아끄는 무기가 있었다.
‘호오! 저 일본도는 장난이 아니구만.’
검은 예술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길이만 다를 뿐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한 쌍의 검이었다.
멋들어지게 휘어진 검을 벨트와 배낭에 각각 달아놓고 있었다.
빵빵하게 부푼 커다란 배낭도 뭐가 들어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저런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검을 차고 다니면 상당히 모양새가 나고 절로 위엄이 생길 것 같았다.
최근 들어 LP를 조금 찍었다고 기어오르는 놈이 몇 있었다.
힘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얼마 전에 알게 된 덕분에 다들 초인이 되기 위해 좀비 사냥에 혈안이었다.
심지어 사람까지 죽이는 자도 있었다.
힘만 얻을 수 있다면 스스럼없이 별 짓거리를 다 할 인사가 무리에 몇몇 되었다.
남구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박 경사가 자신을 살피는 것만큼이나 까만 눈동자를 분주하게 굴려 가며 박 경사의 무리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건 정말······. 대박이군!’
차오르는 희열에 애써 표정을 수습해야만 했다.
전기가 모두 나가 새벽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었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는 새벽녘, 생존 물품을 구비하기 위해 얼마나 힘겹게 싸돌아다녔던가.
필요한 장비를 아니, 넘치는 장비를 이곳에서 한 방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구가 흡족한 눈빛으로 입맛을 다셨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보내는 탐욕스러운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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