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마트 입성 (2)
남구가 한쪽 구석에 있는 창고 문을 열었다.
창고에는 자동소총이 수두룩하게 쟁여져 있었다.
“하! 이 동네 뿌려진 총이란 총은 싹 다 긁어모았군.”
탄통도 몇 상자나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군용 대검을 비롯해 탄띠와 탄창, 야전삽, 방탄 헬멧에 수통까지 군인들이 사용하고 착용했던 온갖 잡다한 장비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자식들, 전투 준비만큼은 철저하게 하고 있었군.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곳에서 꽤 버텼겠는데?’
남구는 창고에 쌓여있는 군용 대검을 집어 들고 하나하나 칼집에서 뽑아 보았다.
급하게 출동했는지 무딘 것 태반 있었지만 비교적 날을 잘 벼린 것도 없지는 않았다.
개중 가장 날카롭게 갈린 몇 자루를 솎아냈다.
‘얘들아, 내가 나중에 아주 예리하게 갈아줄게.’
무기와 연장이 주렁주렁 매달린 묵직한 목공 벨트를 풀었다.
탄약통을 깔고 앉아 굴러다니던 탄띠 하나를 골라내 구멍마다 대검 소켓을 연결했다.
3인치밖에 안 되어 휴대가 간편한 38구경 리볼버 권총집을 탄띠 오른쪽에 채웠다.
조폭 사무실에서 주워 온 고풍스러운 검 중 짧은 검의 검집은 왼쪽에 옮겨 달았다.
날이 낫처럼 역방향으로 휘어져 도끼와 도검의 중간 역할을 하는 쿠크리의 검집은 덜렁거리지 않도록 허리 뒤쪽에 수평으로 거치했다.
한일자에 가깝게 가로로 매달았지만, 전체 길이가 60cm도 되지 않아 팔을 움직이는데 거치적거리지 않았다.
박 경사 일행이 가지고 있던 도검류 중에서는 이 쿠크리가 가장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권총과 두 종류의 도검과 다섯 개의 군용 대검이 나름 효율적으로 부착된 탄띠를 허리에 채우고 그 위에 목공 벨트를 둘렀다.
깔끔하게 둔기류와 약간의 연장만을 꽂아 넣은 목공 벨트는 이제야 제대로 제 기능을 찾았다.
남구의 눈동자가 나무 재질의 궤짝으로 향했다.
뚜껑이 열려있어 내용물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곳에 쌓여있는 동글동글한 수류탄을 집어 들고 중얼거렸다.
“보물창고가 따로 없구나!”
창고 밖에서는 긴장이 풀리지 않은 두 남녀가 이대로 움직여도 과연 괜찮은 것인지 어찌할 바를 몰라 마냥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구의 태도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한순간에 뒤바뀐 부작용이었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 무슨 뜻일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알아서 기라는 것인지 정말 가도 된다는 것인지 모호했다.
자칫 마음대로 움직였다가는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올 것만 같았다.
대책 없이 나갔다가 1층에서 일행에게 또 붙들릴지도 몰랐다.
살벌한 눈빛으로 당장에라도 활을 쏠 것만 같던 남구가 돌연 자신들을 내버려 두고 매장 창고로 홀연히 들어가 버린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망부석이 되어 못 박힌 듯 서 있는 두 남녀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후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살짝 긴장이 풀린 남자가 꺼질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애인을 바라보며 조용하게 속삭였다.
“죽는 줄 알았네! 그 짐승들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자기야! 그럼 우, 우리 더 먹어도 되는 걸까?”
배고파하는 애인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활을 든 혼혈아의 태도가 석연치 않았다.
“내 생각에 저놈은 다중 인격인 것 같아.”
남자는 남구가 활을 겨누던 모습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으으윽! 그 소름 끼치는 눈빛, 절대 정상적인 사람의 눈빛이 아니야. 그런 눈빛은 생전 처음 봤어.”
여자도 남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으으으, 맞아! 동물원에서 봤던 맹수 같은 눈동자였어.”
“그 다중이 같은 놈이 또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우선 챙길 거 챙겨서 빨리 뜨자! 어서 서둘러.”
“알았어, 자기야!”
두 남녀는 숨어 있던 진열장 뒤로 후다닥 뛰어갔다.
벗어 놓은 배낭을 부리나케 챙겨 들고 허둥지둥 닥치는 대로 식료품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남자가 속삭였다.
“우리 자기도 묶여 있던 여자들처럼 될까 봐 얼마나 식겁했는지 몰라. 이제는 사람도 좀비만큼이나 위험해! 사람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겠어.”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던 여자가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소리 하지도 마! 생각만 해도 끔찍해!”
매장 안이 매우 어두워 열량이 많고 유통기한이 긴 식료품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낮인데 실내가 이렇게 컴컴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 때문에 랜턴을 챙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남구가 나오기 전 최대한 필요한 식량을 챙겨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자 했던 두 사람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덜컹-
배낭에 얼마 넣지도 못했는데 창고 문이 거칠게 열리며 남구가 튀어나왔다.
저벅저벅-
남구의 빠른 발소리가 두 사람에게 점점 가까워졌다.
신속한 발소리가 두 사람의 등 뒤에 도달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어느새 쪼그려 앉아있던 두 사람의 뒤에서 남구의 발소리가 우뚝 멈췄다.
남녀는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남구가 물끄러미 두 사람을 내려다봤다.
‘부스럭거리고 부피도 많이 나가는 과자는 뭐 하려고 집어넣지? 하! 답답하구만!’
저벅저벅-
잠시 멈추어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남구가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이 유유히 멀어져 갔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털썩-
“하악! 뭐야? 저 자식!”
“으으으, 자기야, 무서워!”
“에이, 안 되겠다. 튀자!”
“물, 물만이라도 가져가야지!”
“그, 그래, 이제 식수만 더 챙겨서 얼른 나가자!”
바닥에 주저앉아 다 들리도록 속삭이는 두 남녀를 뒤로하고 복도 통로를 걸어 올랐다.
지하 매장 입구 바로 앞에 장애물을 잔뜩 쌓아 만든 진지를 지나며 남구의 눈동자가 복도 통로를 훑어보았다.
이 복도는 고객이 이용하는 용도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곳은 이미 단단히 봉쇄해 놓았고 이곳만을 열어 두었다.
각종 물류의 이동에 쓰이는 통로라 비교적 폭이 넓은 편이었고 매장의 규모만큼이나 아주 길었다.
죽은 박 경사가 1층 매장이 밀렸을 경우를 대비해 2차전을 치르기 위한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다.
복도의 특성상 병목 현상을 유발할 것이다.
유독 긴 동선으로 인해 더욱 방어하기 용이해 보였다.
지상층으로 올라온 남구가 묶여있던 여자들에게는 눈길조차 한번 주지 않은 채 매장 전체를 꼼꼼히 돌아봤다.
묶여 있던 자리에 흥건했던 배설물은 막내 라인의 살신성인으로 어느 정도 치워져 있었다.
최영민과 노병철이 아직도 대걸레로 바닥을 분주히 문질렀다.
‘배가 불렀군. 생수를 똥 치우는 데 사용하다니!’
남구의 시선이 매장 뒷문으로 향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봉쇄된 출입구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 정도면 좀비가 뚫고 들어오진 못하겠어.’
물샐틈없이 견고하게 설치한 장애물을 흔들어 보던 남구의 귓가에 서럽게 울먹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 진짜요? 그 악마들이 다 죽었다는 게 정말이에요?”
“네, 정말이에요! 다 죽었으니까 이제 안심하세요.”
대답을 마친 이성우 대리가 출입구를 점검하는 남구를 흘낏흘낏 쳐다봤다.
이성우 대리뿐만이 아니였다.
모든 직원이 슬슬 눈치를 보며 남구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심한 고초를 겪은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라서일까?
박 경사와 그 일당이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저질러서일까?
남구는 뒤통수에 전해지는 직원들의 눈길에서 그나마 마트로 막 진입했을 때보다는 얼음장 같던 싸늘함과 두려움과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직원들은 녹초가 된 여자들 주변에 하릴없이 둘러앉아 사연을 묻거나 어쭙잖은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박 부장과 김수정 대리는 연민 가득한 얼굴로 여자들의 식사를 챙겼다.
남구가 한심하다는 듯 푹 꺼지는 한숨을 내 쉬었다.
‘후유, 다들 뭐가 중한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구만!’
경험해 나가면서 차차 나아지겠지만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갈수록 나아질 테니 괜찮다는 말은 이런 시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실수하더라도 다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운이 좋은 경우에 속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다음을 기약하지 못하고 바로 생사를 가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알몸이던 여자들은 어디서 찾아냈는지 버려졌던 옷가지를 다시 주워 입었다.
담요를 두르고 앉아서 성심껏 대해주는 직원들의 대화에 응했다.
“진짜 이럴 줄은 몰랐어요. 전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야!”
“어디 있나요? 시체는? 시체라도 찾아서 복수해야겠어!”
여자들은 부관참시라도 할 기세였다.
절망적인 세상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는 여자도 있었고 억하심정에 저주를 퍼붓는 여자도 있었으며 박 경사 일당에게 당한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 목놓아 우는 여자도 있었다.
어떤 여자는 최대한 친절을 베푸는 직원들도 거북한지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입을 닫고 기력 없는 몸을 돌려 뉘었다.
정신을 놓은 흐릿한 눈빛의 여자는 여전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구석구석 모든 점검을 마친 남구가 눈이 부시도록 밝은 햇살이 비치는 마트 정문 쪽으로 시선을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여자들에게 관심을 둘만 한 여유가 없었다.
바깥 낌새가 좋지 않았다.
‘이거 일 나겠군!’
남구의 일행보다 한발 늦게 이곳 마트에 당도한 이들이 있었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전면부 강화유리와 좁은 입구를 통해 어스름한 마트 내부를 유심히 들여다보느라 머리를 기웃거렸다.
내부에 촘촘하게 설치된 장애물 탓에 안을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바람이나 쐴 겸 놀러 나온 것이 아니었다.
목숨 걸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멋모르는 타지 사람이 이곳에 들를 리는 없을 터.
그동안 자신들이 숨어 있던 은신처에서 다들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트를 점거한 이들이 어떤 이들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좀비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냥하던 이 지역의 지배자가 점유하는 곳임에도 넘보는 이유는 한가지 뿐이다.
창백한 얼굴과 갈라진 입술에서 그들의 절박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대부분 자신뿐만 아니라 식솔의 목숨까지 저당 잡힌 사람들이다.
마트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비록 두려움을 가득 담고는 있었지만 희번덕거렸다.
간절하고 절실한 그들의 눈빛은 무척이나 사나웠다.
총대를 억세게 부여잡은 손바닥이 허옇게 짓눌려있었다.
남구의 시선이 기웃거리는 그들을 지나쳐 뒤편을 바라봤다.
마트 밖에서는 일출과 함께 시작된 포성과 총성이 여전히 울려 퍼졌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던 부대의 진격 소리가 어느 순간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소리만 들어도 대강 짐작이 갔다.
진격도 그렇다고 후퇴도 할 수 없는 상황인 듯했다.
‘빼도 박도 못하고 있나 보네! 둘러싸였군.’
밀려드는 좀비 떼에 사방이 포위된 것이 틀림없었다.
반나절 내내 단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탄만 소비하고 있었다.
‘똥 싸고 밥 먹을 시간도 없겠지? 지금쯤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
군대가 도시로 진입한 지 반나절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결국 군은 소음에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던 좀비까지도 대거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건물 내부에는 여전히 상당수의 좀비가 존재했지만, 격전지와 인근에 위치한 이곳의 거리는 휑할 정도로 비어 버렸다.
환경미화원이 사라진 늦가을의 거리 풍경은 나뭇잎만 천지로 굴러다녔다.
말라비틀어진 잎사귀가 바람에 날려 대는 휑한 거리에는 좀비와 사람의 주검만이 나뭇잎과 함께 수북하게 깔려 있었다.
마른 잎사귀와 마찬가지로 수분을 공급받지 못해 말라 죽어가던 사람들에게는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하던 좀비의 숫자가 급감한 이때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목숨 걸고 마트 지하에 숨어들어 음식을 훔쳐먹던 남녀뿐만이 아니었다.
실내에 틀어박혀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까지 버티고 버티던 수많은 사람이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점차 늘어났다.
꽤 많은 인파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좀비의 눈을 피해 숨 가쁘게 이리저리 숨어 다녔다.
그들의 손에는 하다못해 식칼이라도 하나씩 들려 있었다.
맨손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름대로 자신이 구할 수 있는 무기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을 들고나왔다.
총을 든 자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한두 명이 멀찍이서 은근슬쩍 마트를 넘겨 보다가 점차 가까이 접근하더니 이제는 아예 출입문을 넘어올 기세였다.
연쇄 반응이 일어나 마트 입구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자들을 풀어주고 대화를 나누고 있던 직원들도 밖에서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긴장된 눈으로 내다보았다.
바깥에서 힐끔거리는 사람들도 시위 진압용 방어 장구로 완전 무장을 하고 총까지 메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에 함부로 들어오지는 못했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밖을 내다보던 변 과장이 옆에 있던 김수정 대리에게 물었다.
“우리, 문 잠갔나?”
“전 안 잠갔는데요. 제가 제일 먼저 들어와서······.”
누군가 정문을 슬그머니 밀며 마트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저, 드, 들어가도 될까요?”
직원들은 물어오는 질문에 당황해 똥그랗게 눈을 뜨고 서로 돌아보기만 했다.
드넓은 마트 내부의 모든 점검을 마친 남구가 팔짱을 끼고 느긋하게 벽면에 등을 기댔다.
발목을 교차해 꼬며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이거이거, 각오했다더니 막상 닥치니까 쉽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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