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좀
“이 개새끼야!”
조용했던 교실에 난데없는 욕설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커다랗게 울리는 욕설에 깜짝 놀란 선생과 학생들은 쌍욕의 진원지로 쏜살같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앙상하게 바짝 말랐으며 퀭한 눈 밑에 시커먼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어쩐지 음울해 보이는 남구가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선생은 어처구니가 없어 화를 내려던 그대로 입을 벌린 채 어정쩡하게 굳어버렸다.
얼굴 한가득 서러운 표정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우는 아이를 혼내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남구였다.
요주의 인물이다.
학생들의 소요가 서서히 시작됐다.
웅성웅성-
술렁임이 시작되자 선생은 칠판을 두드렸다.
탁탁-
아이들의 놀란 마음은 순간에 불과했고 칠판의 두드림이 귓가에 들려올 리 만무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금방 키득키득 웃음을 터트렸다.
“킥킥킥킥킥!”
“아하하하하!”
“우헤헤헤헤!”
“후후후, 아나, 저 새끼!”
“크크큭! 캑캑! 콜록콜록.”
“왜 저래? 캬캬캬!”
“밑도 끝도 없이 웬 욕이야? 오호호!”
“뭐니, 쟤? 미친 거 아니니?”
“꿈꿨나? 쿡쿡쿡!”
교실은 도떼기시장이 되어버렸다.
탁탁탁탁탁탁탁탁- 틱-
선생이 칠판을 연타하다 분필이 똑 부러져 날아가 버렸다.
엉망이 된 수업 분위기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안 해?”
화가 난 선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자자, 주목! 모두 조용히 해.”
아이들도 부라리는 선생의 눈빛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선생은 남구가 어떤 학생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통제하는데 더 신경을 썼다.
본인도 놀란 마음을 가다듬으며 진정시켰다.
“크흠!”
헛기침을 크게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칠판에 분필을 놀렸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판서부터 하고 수업을 진행할 요량이다.
교사 생활 30년에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강의하기에는 심장이 너무 뛰었다.
교실은 어렵사리 소요가 가라앉았다.
남구의 하얗게 멀어버린 시야가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초점이 맞지 않아 빠르게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차올랐던 눈물이 방울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물방울이 걷히고 전방의 물체가 촉촉한 망막에 상을 맺었다.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한쪽 벽면을 저 혼자 가득 차지하고 있는 흑색 칠판.
그곳에 하얀 분필 가루가 수학 공식을 빼곡히 수놓고 있었다.
‘학교?’
사위가 온통 고요한 가운데 칠판과 분필의 마찰음만이 귓가에 들려왔다.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분필 소리지?’
시력과 청력뿐만 아니라 온몸의 감각이 회복되어 갔다.
은성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쓱쓱 거리는 분필 소리를 뒤로하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귀여운 교복을 차려입은 앳된 아이들이 가지런한 책걸상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땟국물을 뒤집어쓰고 온통 넝마를 걸친 사람들의 광경에 익숙했던 남구의 눈이 오랜만에 호강하는 기분이다.
그리움을 동반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불현듯 가슴속에 휘몰아침에도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사지를 넘나들며 생긴 오래된 습관이다.
격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뇌의 회로가 가닥가닥 이어지며 빠르게 돌아갔다.
어떤 생각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격돌.’
인류의 운명은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린 작디작은 모래 알갱이와 한 치도 다를 바 없었다.
인류는 이미 죽어버린 공룡의 부산물로 에너지를 얻어 왔지만, 저들은 살아있는 생명체로부터 생체 에너지를 얻었다.
이기심에 우리의 환경을 우리 스스로 파괴해 왔듯이 그 족속들의 터전도 고갈되어갔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원을 찾아 헤매듯 그들도 새로 얻을 생명 에너지를 찾아 헤매는 것은 마찬가지.
대부분 인간은 한 줌의 에너지원으로 화했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 또한 단지 필요한 에너지원을 수급해 주는 매개체에 불과했을 뿐.
‘그런 족쇄를 벗어나기 위해 그 고생을 해왔는데 망할 자식 때문에 또다시······.’
지긋지긋한 굶주림과 살육의 굴레를 깨트리기 위해, 그들이 정해준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켜가며 숨 가쁘게 달려온 인생의 결과가 지금 이것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올올히 각인된 지옥과도 같았던 과거의 경험들이 뇌리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식은땀이 콧잔등과 등줄기에 몽글몽글 샘솟았다.
‘여태까지의 발악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됐어.’
이내 물밀듯이 밀려드는 허탈감을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걸상 등받이에 축 처진 몸을 기댔다.
‘가만, 내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지?’
눈을 부릅뜨고 번개같이 주위를 훑었다.
희번덕희번덕 돌아가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대상을 포착했다.
대상은 태연하게 노트필기 따위를 하고 있었다.
칠판과 노트를 까딱거리며 오가는 은성의 고갯짓.
샛노란 머리가 까맣게 변해 있었다.
2m가 넘었던 엄청난 거구가 졸아들었다.
다른 모습이지만 기억 속 은성이 확실했다.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저 자식, 아무것도 모른다.’
시간이 거꾸로 돌아갔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더는 남구가 알던 리더 최은성은 이 세상에 없었다.
다만 반장 최은성만이 존재할 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지 못한 채 한없이 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앳된 얼굴에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리는 차게 식었다.
‘저놈과 같은 반이니 고등학교 2학년!’
남구의 고개가 서서히 창가로 돌아갔다.
창밖의 풍경은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고개를 빼고 밖을 넘겨다보던 남구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고등학교 2학년, 늦가을? 설마!’
우당탕-
벌떡 일어나는 엉덩이에 밀려 걸상이 뒤로 나자빠졌다.
의자 나뒹구는 소리가 분필의 마찰음을 간단히 집어삼키며 조용했던 교실에 울려 퍼졌다.
남구의 창백한 얼굴은 혼이 빠진 듯했다.
‘아닐 거야! 준비할 시간이 조금은 있겠지.’
모두의 시선이 벌떡 일어선 남구에게 일제히 쏠렸으나 남의 이목 따위는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부러져 몽땅해진 분필을 들고 얼음이 된 선생의 얼굴이 울상이었다.
복도 쪽에 앉아있던 남구는 다급히 교실을 가로질러 운동장이 더욱 명확하게 내다보이는 창가로 달렸다.
교실에 앉아 있는 전원의 고개가 달리는 남구를 따라 이동했다.
남구는 창문에 코를 박고 밖을 내다보았다.
가늘게 뜬 눈으로 운동장 곳곳을 훑었다.
활을 재던 습관이 과거로 돌아갔다고 달라지지는 않았다.
‘제발, 조금만이라도 시간을.’
순식간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지만, 곧 거칠게 열리는 창문 소리가 다시금 교실의 적막을 깨웠다.
드르륵- 쾅-
조금이라도 자세히 살피기 위해 활짝 열어젖힌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울고 싶던 선생이 기겁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으악! 쟤, 쟤 잡아! 떠, 떨어진다. 붙잡아! 당장 끌어내려!"
근처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남구의 허리와 팔다리를 잡아끌었다.
남구는 깃털처럼 가볍게 뒤로 당겨져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꽈당-
몇몇 아이들이 남구와 같이 포개져 바닥을 굴렀다.
서로 뒤엉켜 황당한 표정으로 남구를 쳐다봤다.
남구도 아이들과 똑같은 황당한 눈빛으로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
아이들의 거친 숨결이 뺨에 느껴졌지만, 지금은 키스를 퍼붓는다 해도 신경 쓰지 못할 상황이었다.
‘내가 저런 어린 것들에게 내동댕이쳐지다니?’
남구는 당황하여 자기 몸을 훑어보고 만져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정도로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몸뚱이였다.
‘이런 몸으로 과연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강철같이 단단했던 근육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비록 보잘것없지만, 평생을 수련하며 쌓아 올린 시스템의 마력 또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방벽을 전개해 보았다.
역시 발동되지 않았다.
그들이 인류를 원활히 착취하기 위해 심어둔 시스템 창도 묵묵부답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기억만은 온전했다.
특정 능력을 발현시키는 스킬은 생명 포인트(LP)라 불리는 적립된 에너지원을 일정량 소비하여 얻게 된다.
그렇게 사용된 LP는 생명의 핵으로 수렴됐다.
LP를 얻기 위해서는 LP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를 죽여야 했다.
죽여서 몽땅 빼앗든 죽임을 당해 몽땅 내주든 둘 중 하나인 제로섬 구조에서 평화적 거래는 성립하지 않았다.
간혹 예외적으로 핵으로부터 LP를 제공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공짜란 있을 수 없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언제나 치러야 했다.
‘정신방벽’ 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능력은 비록 얻을 기회가 생겼다 하더라도 빠듯한 LP를 소모해가며 획득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그래서 이미 쓸만한 스킬을 선점했던 친구들은 남구에게 양보라는 미명하에 선심을 쓰는 척했다.
덕분에 어떤 능력도 얻지 못하던 남구가 LP를 사용해 생에 처음으로 ‘정신방벽’이라는 스킬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정신방벽이 남구를 구원했다.
‘고맙다, 나의 최애 스킬! 마지막에 100%를 달성한 정신방벽이 내 영혼을 무사히 보호해 냈구나! 기억이 사라졌다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걷어 올려진 소맷자락으로 인해 삐쩍 마른 팔목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두 개의 자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어설프게 자살을 시도했던 흔적이었다.
전신을 수놓았던 무수한 상흔 탓에 전에는 이까짓 흉터쯤은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
지금은 유독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선생의 어처구니없는 과민 반응이 절로 수긍되는군.’
남구는 자칭 스따, 타칭 왕따였다.
이름도 남구다.
강 씨라는 것이 문제다.
강남구!
강남에서 살아 보자는 희망을 담아 이따위로 지었다고 수년 만에 보육원에서 상봉한 할머니께 전해 들었다.
어렸을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었지만, 부모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남구로서는 처음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평생 강북에서만 살아 봤다.
줄곧 이름으로 놀림을 당했다.
항상 풀 네임으로 불렸다.
모두 아는 척을 했다.
자살 소동과 이름 탓에 이 학교에서 남구를 모르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따돌렸는지도 모른다.
‘맞아! 나는 그런 아이였지!’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연명하기 급급해 잊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 2층인데요.”
“뭐?”
한 아이의 말에 얼이 빠진 선생이 되물었다.
“뛰어내려도 안 죽는다고요.”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아이들의 폭소가 터져 나왔다.
짓궂은 웃음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나 수학 선생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역시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 남구는 선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강남구, 쟤는 1층에서 떨어져도 죽을 수 있어요.”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짓궂은 농담에 또 한 번 아이들이 자지러졌다.
선생은 우스갯소리를 건넨 아이를 한번 째려보고선 시선을 남구에게 돌렸다.
“야, 강남구! 너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러면 못 써! 힘들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무언가 단단히 오해한 선생의 목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새로운 육체를 원하는 자, 소환진에 오르라. 단 부작용으로 죽을 수 있다]
“헉!”
화들짝 놀란 남구가 헛숨을 토해내며 감전이라도 당한 듯 펄쩍 뛰었다.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쫌!’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