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종 친 학교는 (4)
부러움을 가득 함유한 격앙된 은성의 목소리에 남구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씰룩대며 비틀렸다.
은성에 대한 빈정거림과 야유를 한껏 포함하고서.
‘아주 부러워 죽는구나!’
괜찮으냐고 물어본 말에는 전혀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형식적으로 꺼낸 말에 불과했다.
은성의 관심은 온통 남구가 방금 사용한 스킬에 쏠려 있었다.
남구가 지그시 은성을 쳐다봤다.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지껄이는 은성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켜켜이 쌓여 왔던 울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언제나 가장 좋은 장비나 스킬은 제일 먼저 은성이 차지했었다.
힘을 추구하는 욕심에서만큼은 은성도 누구 못지않았다.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쓸만한 마법서가 나왔을 때 은성의 LP가 부족하다면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
고이 모셔 놓고는 했었다.
생명 에너지를 은성에게 몰아줄 때도 잦았다.
은성을 먼저 챙기고 그다음에 나머지 친구들이 적당히 나눠 가졌었다.
팀워크가 좋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남구는 언제나 소외됐었다.
자기 밥그릇 자기가 찾아 먹기에는 남구의 입지가 상당히 좋지 못했다.
누구나 힘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명을 원동력으로 삼는 세상에서 약자의 운명은 뻔한 것이었다.
누구도 자기가 먼저 죽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모두들 강력한 스킬을 선점해 강해지고 싶어 했다.
그 때문에 강력한 스킬이나 아이템이 최약체였던 남구에게까지 돌아오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무리에서 남구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렇다고 무리를 떠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무리에 붙어 있어야 처우가 어찌 됐든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었다.
‘끼리끼리만 나눠 먹는 짓거리에 쌓여가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지! 간절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고.’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 남구에게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과 같은 나날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래도 은성이 너만큼은 수긍하고 넘어갔었어. 닥친 상황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 당시 남구의 눈에 비친 은성은 동갑내기 친구였으나 존경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마냥 위대하게만 우러러보던 동경의 대상이었다.
비단 남구뿐만 아니라 은성의 위상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무리의 리더였고 누구보다 강했으며 생명의 은인이었다.
비록 다른 누군가가 죽을지언정 은성이 사망한다면 전원이 위험하다는 공감대가 짙게 형성됐었다.
은성은 언제나 정의의 사도처럼 굴었지만, 누구를 위한 정의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남구는 알 수 없었다.
‘모두를 위하는 정의의 사도인 양 가식이나 떨지 말고 차라리 솔직하게 힘을 독점했더라도 나는 충분히 이해하고 따랐을 거야. 이제 와 이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겠지.’
은성을 향한 남구의 비틀린 미소는 살짝이나마 경멸을 담고 있었다.
남구의 삐뚜름한 입술 사이로 냉랭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왜? 내 스킬이 부럽냐? 지금 그런 게 중요해?”
갑작스러운 까칠한 말투에 은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구가 교실 문밖에 버글버글 몰려들어 발광하는 좀비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거, 다 때려잡아야 한다고. 더 시간을 지체하면 탈진해! 빨리 뭐라도 먹어야 할 것 아니야? 빌빌대다 잡아먹히고 싶어?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은성에게 윽박지른 남구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 속이 다 시원하네! 십 년, 아니 평생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구만.’
은성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살아온 삶이었다.
켜켜이 쌓여 화석이 되어버린 울화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은성의 남자다운 각진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버지를 제외한다면 자신에게 핀잔을 준 사람은 지금까지 극히 드물었다.
특히 친구들은 자신을 언제나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큰, 리더십까지 겸비한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반장이었다.
뜨끔하게 정곡을 찌르는 지적에 자존심이 상한 은성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아, 거 쪽팔리게······. 왕따 새끼 주제에 감히 나한테 지적질을?’
기분 나쁜 티가 역력한 표정의 은성이 남구의 눈을 쏘아 봤다.
‘남구의 저 새까만 눈동자! 왜 내 속을 훤히 다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지?’
항상 드러나지 않게 경계하고 자제해온 내재한 욕심과 탐욕을 남구에게 들켜버린 것만 같아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러워졌다.
남구가 사용하는 화려하고 신비롭기까지 한 엄청나 보이는 스킬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부러웠다.
은성은 누워있던 세 구의 육체를 선택할 당시 자신의 지금 신체가 가장 멋지고 강해 보였다.
은성이 남구의 균형 잡힌 탄탄한 육신을 힐끔거리며 생각했다.
‘겉으로 보기엔 내 몸이 제일 강해 보였는데.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가? 속에 저런 능력을 품고 있을지는 몰랐군.’
제일 강해 보이는 육체를 누구보다 먼저 확신하고 선점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선택한 판단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또다시 감히 은성을 막 대하는 남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해? 어서 문이나 열어봐! 빨리 처리하고 갈 길 가자고.”
은성은 남구의 싹 퉁 머리 없는 말투에 자존심이 상하고 성질이 폭발할 것 같았지만, 틀린 말이 없었거니와 상황이 상황인지라 치미는 화를 한숨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휴우, 그래, 알았다.”
은성은 이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비록 남구에게 먼저 말을 건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따돌림을 시키거나 괴롭히지는 않았었다.
끔찍한 지하공간에 갇혔을 때 서로 합심해서 똘똘 뭉쳤기에 극악의 확률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옥 같은 사선을 함께 넘은 친구라고 하기에는 남구는 너무나 차갑고 멀게만 느껴졌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리 퉁명스럽고 쌀쌀맞은 거지? 알 수가 없네?’
원래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생각하기에도 예솔에게는 툴툴거리는 척했지만, 꽤 다정다감했고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뻔히 보였다.
‘이성적으로 끌린 것은 아닐 텐데? 저런 애를 좋아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은성의 눈에는 예솔은 그저 찐빵이나 다름없었다.
친구들에게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서운함을 느끼며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교실 문을 살짝 열어 문틈을 만들었다.
드르륵-
좀비들은 교실 앞문이 빼꼼히 열리자마자 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남구를 물어뜯기 위해 득달같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중 한 마리가 좁은 문틈에 양쪽 어깨가 걸려 머리만이 쏙 빠져나왔다.
빠악-
지체 없이 박 터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남구가 망치를 든 손목을 빙글빙글 돌리며 중얼거렸다.
“으음, 좀 익숙해지는 건가?”
이제는 힘 조절에 익숙해져 두개골에 딱 필요한 만큼의 구멍만을 뚫어내었다.
바닥에 떨어진 수박처럼 폭발하듯 터져나가는 일은 다시 없었다.
남구가 정수리에 자그마한 망치 구멍이 뚫린 좀비의 멱살을 잡고 교실 안으로 끌어당겨 냅다 뒤로 집어 던졌다.
털퍼덕-
통조림 깡통에 캔 따개가 박히듯 처리된 동족을 눈앞에서 보았지만, 좀비 떼거리는 아랑곳없이 문틈으로 흉측한 얼굴을 집어넣기 위해 더욱 서로 치열한 경쟁이 붙었다.
못을 뽑아내는 용도인 망치 머리 뒷부분으로 가장 가깝고 적당한 위치에 있는 좀비의 옷을 걸어 끌어당겼다.
문틈으로 삐져나온 대가리의 작은 타점에 운동 에너지를 집중시키며 여지없이 망치를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빠악-
빠른 속도를 동반한 집중된 힘이 좁혀진 한 지점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단단한 두개골에 작은 구멍만이 깔끔하게 뚫렸다.
멱살을 잡아끌어 또 교실 안쪽으로 내던졌다.
“자! 다음 손님!”
빠악- 털퍼덕-
“자! 다음!”
빠악- 털퍼덕-
“다음!”
빠악- 털퍼덕-
남구는 어느 순간 말없이 그저 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빠악- 털퍼덕-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 아무 말이 없어졌다.
빠악- 털퍼덕-
이제는 지루하게까지 느껴졌다.
빠악- 털퍼덕-
그저 시계추처럼 같은 소리만이 일정하게 계속됐다.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글탄 둔기술]
몸에 체화되어 있던 글탄 가문의 둔기술이 남구의 뇌리에 활성화되었다.
깨달음을 바로 알아차린 시스템이 눈앞에 메시지를 출력해 왔다.
숙련되어갈수록 작업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빠악······.
그렇게 언제까지나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소리가 순간 멈추었다.
휙 돌아본 남구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야! 성예솔! 빨리 안 해?”
어쩔 수 없이 근력에 모든 LP를 투자한 예솔이 하나같이 정수리에 깔끔하게 구멍이 뚫린 좀비의 주검을 교실 안쪽으로 옮겨가며 차곡차곡 쌓다가 발끈하여 쏘아붙였다.
“자리가 없잖아! 어디다 치워?”
교실 안이 좀비의 주검으로 천장까지 가득 차올라 더 쌓아놓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교실 집기로 앞문의 문틈을 적당하게 벌려 고정해 놓고 예솔과 함께 좀비의 주검을 쌓아 올리던 은성도 같이 한소리를 하였다.
“이대로는 안 돼! 더는 쌓을 곳이 없어.”
“음, 이러면 곤란한데?”
남구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1층에 있는 전부와 지하층과 2층의 일부가 이 교실에 몽땅 몰렸다.
잠시 고민하던 남구가 입을 열었다.
“창문 열고 화단 밖으로 던져 버려.”
예솔이 반색했다.
“아! 그러면 되겠구나! 이제 천장 꼭대기까지 쌓지 않아도 되겠다.”
한시름 덜어낸 예솔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졌다.
“자! 시작하자고. 빨리 끝내고 밥 먹자!”
말을 마친 남구는 바로 돌아서서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빠악- 털퍼덕- 빠악······.
셋이서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며 작업은 밤이 새도록 계속 이어져 나갔다.
날이 어두워져 버린 지 한참이 지났지만, 박 터지는 망치질 소리는 주검으로 꽉 찬 교실에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당분간 LP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
텅 비어 버린 1층 복도를 두 명이 살금살금 숨죽여 걸었다.
둘이 입은 교복과 양복은 피에 찌들대로 찌들고 갈기갈기 찢겨 넝마 그 자체였다.
전신에 핏물을 흠뻑 뒤집어쓴 그들의 몰골은 처참하기가 이루 다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어느덧 해가 떨어진 지도 한참 되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복도를 좀비의 교복 주머니에서 찾아낸 휴대 전화 불빛에 의지해 간신히 걸어 나갔다.
쥐 죽은 듯 조용한 텅 빈 복도 공간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남구야! 1층에 있는 놈들은 전부 교실로 몰려왔었나 봐.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여.”
중앙 현관에 다다른 남구가 속삭이는 은성을 돌아보며 검지를 세워 들었다.
“쉿!”
밑에 얼마나 많은 좀비가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남구가 손에 든 망치로 중앙 현관의 계단 밑을 가리켰다.
내려가자는 신호에 입을 닫은 은성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은성의 넓은 어깨 위에는 예솔이 축 늘어져 얹혀 있었다.
간신히 수분은 보충했다지만 그것도 한참 전이었다.
예솔은 좀비의 주검을 쌓고 옮기는 고된 막노동을 끝까지 버텨내지 못하고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남구가 20 스텟이 넘는 감각을 총동원하여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마땅히 들려오는 소리가 없었다.
아주 먼 곳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어기적거리는 발소리 정도가 전부였다.
‘좀비들이 지하에서도 대거 올라왔었군.’
남구는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계단을 밟아 내렸다.
휴대전화의 불빛을 지하 복도와 매점으로 비춰 보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매점은 형광등이 밝혀져 있었다.
사위가 온통 어두운데 오직 그곳만 켜져 있으니 어쩐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계단을 내려와 복도 벽면에 몸을 숨기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먼발치에서 서성거리는 희끄무레한 형체가 수두룩했다.
어둠에 묻혀 가물가물 보였지만 그것이 좀비라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복도 중앙에 위치한 매점 근처에는 좀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주변에 있던 놈들은 우리한테 다 몰려왔었나 보네?’
뒤쪽을 향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남구가 발소리를 죽여가며 매점 안으로 진입했다.
이내 예솔을 어깨 위에 둘러 얹은 은성도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종종걸음으로 쫓아 들어왔다.
남구는 은성이 들어오자마자 문을 잽싸게 닫아걸었다.
이제야 굳게 다물었던 남구의 입이 열렸다.
“후우, 은성아, 예솔이 깨워 봐! 뭣 좀 먹여야지.”
속삭이듯 말을 건넨 남구가 상체를 한껏 낮추고 매대에서 물과 먹을거리를 챙겼다.
은성이 탈진한 예솔을 흔들어 깨웠다.
“예솔아, 정신 차려! 드디어 매점에 도착했어. 일어나봐!”
“으으······.”
늘어져 정신을 못 차리는 예솔은 메마른 입술 사이로 가는 신음만을 뱉어냈다.
딸깍-
생수 뚜껑을 돌려 따며 어느새 다가온 남구가 예솔의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 물을 조금씩 넣어주었다.
“켁! 콜록, 콜록.”
사레가 들려 몇 모금 넘기지도 못하고 연거푸 기침해댔다.
남구가 재빨리 예솔의 입을 틀어막고 창밖을 향해 정신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은성도 한껏 몸을 낮추고 회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웬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남구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발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희한하게도 신발을 신은 발소리가 아니었다.
경황없는 와중에 신발이 벗겨졌다면 양말이라도 신었을 것이다.
하지만 맨발이 피에 젖은 바닥을 차지게 밟는 소리였다.
아니면 피에 젖은 발바닥이 바닥을 밟는 소리거나.
발소리에 상당한 무게감이 있었다.
과도할 정도로.
철퍽- 철퍽- 철퍽- 철퍽-
‘기침 소리를 들은 것일까?’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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