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육체 쟁탈전 (7)
남구가 깊숙하게 숙였던 고개를 들고 헤실헤실 웃어댔다.
“흐흐, 실력 발휘 한번 해 보겠습니다. 형님!”
말을 마친 남구가 뒤로 돌아섰다.
돌아선 시야에 은성이 들어왔다.
은성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네가 그럴 줄은······.”
남구의 한쪽 입꼬리가 쓱 비틀려 올라가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풋!”
‘사람 함부로 믿는 거 아니란다.’
남구가 겨드랑이에 낀 두 쪽 난 조경 가위를 양손으로 각각 옮겨 들었다.
손아귀에 힘을 주며 그립감을 확인했다.
그리고 무던하게 왼발을 내 뻗었다.
은성이 움찔하며 칼을 겨눴다.
‘거리가 이쯤이지?’
왼발이 바닥을 딛는 순간 팽이처럼 오른쪽으로 돌았다.
거구의 목을 향해 오른손에 든 가윗날을 수평으로 반듯하게 휘돌렸다.
핑-
눈 깜짝할 사이에 가윗날이 큰 호선을 그리며 360° 돌았다.
“헉!”
거구의 조폭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혔다.
순간 머리를 제쳐 백 스핀 블로우로 날아오는 가윗날을 피해냈다.
목 대신 오른쪽 볼이 예리하게 베였다.
거구의 눈은 황소 눈깔처럼 커다래졌다.
너무 놀라 멍했던 얼굴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으으윽!”
거구의 조폭이 고개를 숙여 통증의 진원지를 내려다보았다.
남구의 왼손에 들려있던 또 하나의 가윗날이 복부 한가운데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뇌리에 가윗날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는 것이 스쳐 지났다.
쑥-
남구는 곧게 찔러 넣은 왼팔을 비틀어 뽑아내고 깡충깡충 깡깡이를 뛰듯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으아아아아아악!”
거구의 조폭이 귀청을 찢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수그렸다.
이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쿠궁-
뚫린 배에서 혈액이 왈칵 쏟아지며 허벅지를 적시고 금세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서. 흐흐.”
남구가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눈을 뎅그렇게 뜨고 황당한 얼굴로 남구와 무릎 꿇은 거구의 조폭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남구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서늘한 눈동자로 거구의 조폭을 꼼꼼하게 살폈다.
‘끝났군.’
“에이, 역시 전 안 끼는 게 좋겠네요. 싸움은 영 적성에 안 맞아서.”
피를 흠뻑 머금은 가윗날을 팔꿈치 오금에 끼우고 쓱 닦아냈다.
그리고는 각각의 가윗날을 한데 모아 또다시 왼쪽 겨드랑이 안쪽에 턱 올려 끼웠다.
“그럼 전 이만.”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원래 있던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응? 내가 그렇게 무섭나?’
어처구니없게 바라보던 병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과 노인들, 여자들이 기절초풍하며 남구의 주변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오직 예솔만이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가까이 붙어선 남구를 바라봤다.
“휴, 간신히 살아왔다.”
남구가 하는 말에 예솔은 촉촉한 눈만 깜빡거렸다.
그런 말을 하기에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쉬워 보였다.
바람 쐴 겸 잠시 편의점을 다녀온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대충대충 간단하게 사람을 죽였다고 볼 것이다.
지금까지 50명의 사람이 뭐 한 건가 싶었다.
예솔은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헤벌린 입에서 침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침을 흘리든 뭐를 흘리든 남구는 오직 남은 조폭 보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뒤통수를 너무 제대로 맞으셨나?’
충격을 받은 조폭 보스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떠벌리며 쉴 새 없이 농담을 짓거리던 입도 굳게 닫혀 있었다.
챙그랑-
버티고 버티던 거구의 조폭이 회칼을 놓치고 앞으로 기울었다.
철퍼덕-
혈액이 흥건한 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졌다.
“큭, 크윽, 크으으으윽!”
벌린 입에서는 고통에 겨운 신음만이 흘러나왔다.
부릅뜬 눈은 초점을 잃고 바닥만을 향해 있었다.
은성이 부리나케 달려가 회칼을 집어 들었다.
조폭 보스는 제지하지 못했다.
평정심을 완전히 상실해 멍하니 뜬 눈으로 식어가는 거구의 몸뚱이를 보고만 있었다.
은성이 슬금슬금 보스에게 접근했다.
벽에 붙어있던 사람들도 은성의 곁으로 다시 모여들고 있었다.
“크으으, 크으으윽.”
쥐 죽은 듯 조용한 공간에 거친 신음성만이 주기적으로 계속됐다.
은성이 옆으로 슬슬 돌아 뒤에서 보스의 등을 찔렀다.
푹-
“아악!”
보스가 화들짝 놀라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기습을 했는데도 날갯죽지 뼈에 가로막혀 칼끝밖에 집어넣지 못했다.
쫓아 들어가며 칼을 휘둘렀지만 닿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숨통을 끊을 기회를 놓쳐 버렸다.
고통에 정신을 번쩍 차린 보스도 회칼을 휘저으며 은성을 견제했다.
근처에 누워있던 목수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일어나 앉았다.
“으으윽!”
신음과 같이 입속에서 피가 튀었다.
난자당한 전신에 피가 낭자했다.
특히 거구의 조폭에게 붙들려 깊게 찔린 복부에서 출혈이 가장 심했다.
정신을 잃고 있다가 방금 깨어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끙끙 앓으면서도 연신 두리번거리던 목수가 배를 부여잡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났다.
조폭 보스를 향해 미간을 찡그리며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타다닥-
힘겨운 발걸음은 뜀박질로 바뀌었다.
“으으윽!”
악다문 잇새로 고통에 겨운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공중에 붕 떠서 양발로 조폭 보스의 등짝을 밀어 찼다.
퍼억-
“허억!”
기력과 심력 모두를 거의 소진한 채 은성을 견제하던 보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지르며 속절없이 앞으로 나뒹굴었다.
우당탕탕-
그 틈에 은성이 달려들어 옆구리에 회칼을 쑤셔 박고 빠져나왔다.
“으아악!”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누워서 휘두르는 보스의 칼날은 한발 늦게 허공만을 휘적거렸다.
근처에 엎어졌던 목수가 끙끙거리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조폭 보스도 옆구리를 틀어막으며 비스듬히 기우려 앉았다.
“헉, 헉, 헉.”
“헥, 헥, 헥.”
둘은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서로 마주 노려보고 앉아 거칠게 헐떡거렸다.
은성은 언제라도 달려들 듯 회칼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 뒤로 만신창이가 된 세 명이 병풍처럼 서기 시작했다.
“크크크, 으윽! 좃돼 부렸네!”
보스는 포기한 듯 허탈하게 웃었다.
어느새 숨진 거구의 시신으로 시선이 향했다.
안타까운 듯 혀를 찼지만 인간미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쯧쯧쯧, 쌔가빠지게 끼워 논께, 허벌나게 씹창 나 부렀네.”
보스의 눈동자가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다녔다.
힘없이 헤매던 눈길이 이윽고 남구에게 도달했다.
“니미, 크크크크크크.”
무엇이 그렇게 우스운지 찔린 배를 부여잡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웃음 중간중간 울컥울컥 새빨간 피를 토해냈다.
그럼에도 웃음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목구멍에서 피가 끓는 듯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남구는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으미, 징헌 거! 복병은 따로 있어 부렀네, 그려!”
은성과 그 무리가 보스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하지만 여전히 회칼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조폭 보스는 남구를 희한한 물건이라도 되는 양 바라봤다.
“아야, 니 대체 어서 배운 겨? 솜씨가 보통이 아니여, 와따매, 전문가여, 전문가. 콜록! 콜록!”
기침과 함께 짙은 선혈을 왈칵 쏟았다.
남구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가윗날 중 하나를 손에 들고 쓱 걸어 나왔다.
예솔은 여전히 꼼짝도 못 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조폭 보스의 떠벌림에 남구가 부각되고 있었다.
지껄임이 거슬리기도 했거니와 주목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 되었겠지만.
남구가 조폭 보스의 코앞까지 산책하듯 걸어갔다.
“뒈질 놈은 그냥 뒈져.”
고저 없는 말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팔을 뻗어 순식간에 가윗날을 찔러 넣었다.
푸욱-
가로로 찔러 넣은 날카로운 가윗날이 가슴뼈 사이를 지나 심장을 관통했다.
“윽!”
외마디는 크지 않았다.
조폭 보스의 회칼을 든 팔도 남구를 향해 같이 뻗어 있었다.
그러나 남구에게 닿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남구의 가윗날이 훨씬 길었다.
“흐읍!”
몰아쉬듯 마지막 숨을 크게 들이켜며 서서히 뒤로 누웠다.
그에 따라 점차 핏빛 가윗날이 가슴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털썩-
그대로 절명했다.
기껏 들이쉰 호흡은 뱉지 못했다.
죽으면서도 손에 든 회칼을 부여잡고 있었다.
팔꿈치를 굽혀 같은 방식으로 피를 닦고 마찬가지로 겨드랑이에 끼웠다.
‘제대로 된 검이나 창이 아니라 저항감이 상당하군!’
피를 닦아 수납하는 과정이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고 빠르게 이어졌다.
마치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처럼.
은성과 같이 싸우던 추리닝 차림의 30대 남자가 죽은 조폭 보스에게 잽싸게 달려들었다.
회칼을 얻기 위해 단단하게 오므린 손가락을 허겁지겁 낑낑거리며 펴고 있었다.
남구는 바로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예솔의 곁으로 오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벌써 온몸이 삐걱대고 아파져 왔다.
벽에 눕듯이 등을 기대고 갑자기 움직인 몸에 긴장을 이완시켰다.
그리고 채 닦이지 않은 붉은 가윗날을 교복의 깨끗한 부위에 쓱쓱 문질렀다.
새것과 마찬가지의 가윗날이었지만 그래도 피가 말라 엉겨 붙으면 예리하지 못하다.
모든 이의 시선이 남구에게 쏠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거슬렸다.
비록 모두 죽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남구는 관심받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결리는 팔을 뻗어 봉지에서 사과 한 개를 꺼내어 들었다.
사과가 얼마 없어 아쉽다는 듯 말을 꺼냈다.
“이거로 오래 못 버틸 것 같은데? 얼마나 버티려나?”
사람들의 시선이 곧바로 사과로 변경됐다.
가늘게 뜬 눈으로 바람처럼 움직이는 남구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표정을 헤아렸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표정이 존재했다.
단지 식욕에 먹고 싶어 하는 표정, 앞으로의 식량 걱정에 어두워지는 표정, 탐욕에 흉악해지는 표정 그리고······.
‘하! 저 아줌마 진짜 명물이군.’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빨간 머리 아줌마는 남구처럼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저 아줌마랑 있다가는 자다가 칼 맞기 딱 좋겠는데?’
누군가와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르고 음울한 인상.
빨갛게 염색한 머리에 검은색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있었다.
험한 일을 했던 사람 같지는 않았다.
눈치가 빠르고 총명해 보였다.
평일 낮에 끌려왔는데 집에서나 입는 편한 옷을 헐렁하게 걸치고 있었다.
‘아줌마, 사업 망했어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몸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신체를 포기하려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 가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개중 멀쩡한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그 사람들부터 죽거나 치명상을 입고 바닥에 누워 버렸다.
역설적이게도 약자들이 더욱 많이 살아남았다.
아삭-
한입 크게 베어 문 사과를 쩝쩝거리며 씹어 삼켰다.
쳐다보는 사람들의 침 넘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 공간을 밝히는 것은 오직 바닥에 새겨진 진에서 은은하게 발하는 빛무리뿐이었다.
창이 없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누구, 몇 시인지 아는 분?”
남구의 질문에 사람들은 서로 돌아볼 뿐 아는 이가 없었다.
은성과 눈을 맞추고 곧바로 들고 있던 사과를 던졌다.
휙- 탁-
은성은 부러진 팔을 받치고 있던 손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사과를 간단하게 받아냈다.
고통을 참아 내느라 일그러진 얼굴로 갸웃하며 바라봤다.
“먹어, 먹어야 살지. 밥 먹을 때 한참 지났을 거야.”
“그래, 고마워.”
“거기, 목수 아저씨랑 너하고 같이 싸웠던 분들이랑 나눠 먹어. 양이 얼마 없어서 일단 지금은 그렇게 하자!”
조폭과 사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세 명과 목수가 달랑 사과 한 쪽에 감격한 눈빛을 보내왔다.
대부분 치명적인 자상을 입어서 과다 출혈에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은성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물었다.
“몇 개 있는데?”
“이제 4개.”
“후유, 큰일이네!”
주변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살짝 눈치를 살폈지만 이내 나누어 먹기 시작했다.
은성과 같이 있을 때는 언제나 은성이 상황을 주도했었다.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같이해 왔지만, 남구가 통제권을 쥐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내 말을 들었다면 우린 벌써 평화로운 곳에서 자유롭게 유유자적 살고 있었을 거야. 이 빌어먹을 놈아!’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목젖을 꿀렁이며 침을 삼켰다.
‘다들 생각이 복잡하겠지?’
공공의 적이 없어졌다.
자기 자신 빼고는 다 죽어야 하는데 유일한 음식을 남구가 가지고 있었다.
힘으로 빼앗기에는 부담스러운 존재.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일 터.
무척 작고 마른 학생이었지만 신체조건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존재였다.
명분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 그거 내 껀데?”
명분 있는 사람이 등장했다.
장바구니의 진짜 주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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