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마트 입성 (1)
거의 찬양과도 같았다.
직원들은 남구를 향해 찬송가를 부르는 신도 같았다.
마냥 다정하고 따듯한 눈망울로 바라봤었다.
그랬던 눈빛이 한순간에 얼음장으로 돌변했다.
사방에서 싸하게 날아드는 직원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모두 남구를 힐끔거리며 두려워했다.
남구가 씰긋 입꼬리를 비틀며 씁쓰름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알콩달콩 살 팔자는 아닌 게 확실해! 힘이 없을 때나 있을 때나 똑같네!’
1층 복도 전체에 펼쳐진 난장판을 목격했을 때만 해도 기함은 했지만 남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장비를 수거해야 했다.
켜켜이 쌓인 시쳇더미 사이사이에 조각나 뒤섞여 있던 열다섯 구의 시신은 좀비에게 당한 것이 아니었다.
그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팔다리가 없는 것은 예사였고 대부분 머리가 붙어있지 않았다.
고깃덩어리를 정밀한 기계로 썰어버린 듯 매끈하게 목이 날아가 있었다.
말끔히 게워내어 기껏 채운 배가 홀쭉해진 직원도 있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말은 안 해도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남구는 한순간에 변해버린 직원들의 태도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람들의 감정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감지했지만, 푸념이나 변명은 고사하고 얼굴에 굳은살이 박인 듯 절대로 표정에서 서운한 빛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감정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것이 남구의 생존 스타일이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방금 들어온 마트 내부를 가늘게 좁힌 눈꺼풀 사이로 민활하게 둘러볼 뿐이었다.
구석 한편에 다섯 명의 여자가 모여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널따란 할인 마트의 내부 모습은 여느 마트와 하등 다를 바 없이 똑같았다.
토막 난 시체에서 벗겨 낸 시위 진압용 방석복을 입은 직원들이 남구의 뒤를 이어 마트 내부로 들어왔다.
범벅된 혈액이 꾸덕꾸덕하게 굳은 장비를 고대로 착용한 직원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창백했다.
댕강댕강 잘려 나가 피 웅덩이에 흠씬 잠겨 있는 머리들을 목도한 김수정 대리는 남구가 몸서리치게 무서웠지만 그래도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좀비에게 덮쳐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남구의 꽁무니를 바짝 쫓아 황급히 마트 내부로 들어왔다.
그 때문에 남구를 제외한다면 김수정 대리가 가장 먼저 여자들을 발견했다.
창백했던 낯빛이 더욱 허옇게 질려 까무러칠 듯 소리쳤다.
“꺅! 어, 어쩜 저럴 수가!”
저도 모르게 너무 큰 소리를 지른 것을 깨닫고는 급히 입을 막고 혹시 좀비가 듣지는 않았을까 밖을 돌아보며 두리번거렸다.
한발 늦게 마트로 들어온 직원들이 김수정 대리의 뒤를 이어 하나같이 기절초풍해 외쳐댔다.
“헉! 뭐, 뭐야?”
“아니! 이, 이건!”
“어마! 세상에!”
“말세로군!”
“이, 이런, 짐승들!”
이후 행동도 김수정 대리와 별반 다를 것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직원들도 똑같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잔뜩 긴장한 눈동자로 밖을 내다보며 경계했다.
입을 꼭 다물고 발걸음도 조심조심 들어온 직원들의 눈에 현실이라 믿기 힘든 광경이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마트 한쪽 귀퉁이에서 여자들이 군데군데 멍이 든 알몸으로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묶여 있었다.
구속된 손발에 피가 통하지 않아 피부가 자줏빛으로 짙게 물들었다.
입도 뻥끗 못 하도록 재갈까지 물려 놓았다.
죽은 박 경사 일당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오래된 탓인지 벌거벗은 여자들 주위에는 대소변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코끝을 찌르는 악취가 들이닥친 현실을 생생하게 상기시켰다.
쌀쌀한 날씨에도 담요는 고사하고 홑껍데기 한 장 걸치지 못했다.
그런 인간적인 배려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로 느껴지는 참담한 모습이었다.
어떤 여자는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심대한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단 며칠 만에 의식을 아예 놔버린 듯 초점 잃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다른 여자는 마트로 진입한 직원들을 본 순간부터 내처 겁에 질린 두려운 눈빛이었고 또 다른 여자는 박 경사의 패거리가 아닌 것을 눈치채고는 간절한 구원의 눈빛을 보내왔다.
알몸의 여자들이 묶여 있는 광경은 마치 거죽을 홀라당 벗겨낸 도축한 가축을 걸어 놓은 듯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 인간은 이렇게나 돌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참혹한 광경을 바로 코앞에서 적나라하게 목격한 직원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직원들이 하나같이 경기를 일으키는 와중 오직 남구만이 무던한 눈빛으로 일체의 동요 없이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순식간에 둘러본 남구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곧바로 지하층으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가며 박 부장을 돌아본 남구의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풀어 주세요. 밑에 보고 올게요.”
“어어, 그, 그래!”
박 부장은 남구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굳어 있던 몸을 삐걱삐걱 움직여 묶여 있는 여자들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배불뚝이 변 과장도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몹시 당황했는지 다가서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목소리만 높였다.
“괘, 괜찮으세요?”
남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려갔다.
‘괜찮겠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니? 재갈이라도 풀어주고 묻던가.’
박 부장이 손목에 묶인 매듭이 잘 풀리지 않는지 낑낑 용을 쓰다 부하직원들을 돌아봤다.
“다들 어서 여기 좀 도와줘!”
“네, 부장님!”
다가갈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이성우 대리가 서둘러 합류했다.
넋을 잃었던 직원들도 주춤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정아 대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담요가 어디 없을까?”
김수정 대리가 어딘가로 허겁지겁 뛰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전 덮을 것 좀 가져올게요.”
사지와 목이 잘린 시신을 비롯해 성 착취를 위해 인간을 사육하는 현장까지 처참한 광경을 한꺼번에 목격한 직원들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갈팡질팡 허둥거렸다.
‘죽이지 않아도 되겠군.’
마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저런 모습이 아니었으면 남구에게 모두 죽었을 것이다.
자유롭게 있었다면 죽은 자들의 가족이거나 조력자일 소지가 다분했다.
박 경사 무리가 사용하던 장비를 직원들이 구비한 이상 어떻게 보일지는 뻔한 일.
지금 당장은 맞서지 않고 넘어간다 해도 기회를 봐서 복수하려 들 수 있었다.
묶여 있던 여자들은 어찌 보면 저런 확실한 모습 때문에 남구에게서 목숨을 건진 것일지도 몰랐다.
지하로 내려간 남구가 입구에서 넓은 내부 공간을 쓱 둘러보았다.
방탄조끼의 가슴 부근에 달아 놓은 플래시를 켰다.
딸깍-
밖은 태양이 최고점에서 살짝 꺾인 무렵이라 눈이 부시도록 밝았지만,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 마트는 사물을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음······.”
매장을 휘 둘러본 남구가 화살집에서 한 무더기의 화살을 뽑아 들었다.
한 움큼 살대를 움켜쥔 손으로 미리 한발 걸어놓은 시위를 지긋이 당겼다.
끼이익-
좁혀진 까만 눈동자에 듬성듬성 이가 빠진 상품 진열장의 상태가 오롯이 들어왔다.
몇몇 물품이 이곳저곳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강렬한 플래시 빛줄기가 비치는 매장 바닥을 좁힌 눈에 힘을 주고 내려다봤다.
개봉된 분유통에서 쏟아져 나온 내용물이 바닥에 수북하게 흩뿌려졌다.
흘린 물을 밟은 탓에 분말과 섞여 총총히 신발 자국이 찍혔다.
허겁지겁 움직였던 흔적이 여실했다.
‘두 사람?’
남구가 지그시 다문 입술을 열었다.
“나와!”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조용한 공간에 충분히 퍼져나갔다.
텅 빈 매장에 청아한 메아리가 흐른 뒤 쥐 죽은 듯 정적만이 남았다.
응답이 없자 남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나오면 죽어!”
벼락같은 호통 소리에 움찔하여 부딪치는 마찰음이 들려왔다.
미세한 마찰음은 희미하게 이어진 발자국의 끝에서 발생했다.
‘역시, 거기 있었군.’
숨어든 진열장 틈바구니로 숨죽이고 내다보는 질린 눈동자를 까만 눈동자가 싸늘하게 쏘아 보았다.
남구의 플래시 불빛이 정확하게 숨어든 곳을 비추었다.
“헉!”
상품 진열장 뒤편에서 헛숨이 터져 나왔다.
“나, 나갈게요. 쏘지 마세요!”
손을 맞잡은 30대가량의 남녀가 체념한 얼굴을 내밀어 남구를 넘겨다봤다.
“다 보이게 나와!”
거부할 수 없는 남구의 위협적인 목소리에 몸을 감추고 있던 남녀가 주춤주춤 걸어 나왔다.
겁에 질린 여자의 똥그랗게 뜬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여자는 무의식적으로 남자의 한쪽 팔을 부둥켜안고 매달렸다.
남자는 꼭 쥐고 있던 야구 방망이를 진열대 옆에다가 세워 놓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 따라 팔을 붙들고 있던 여자도 엉겁결에 손을 들었다.
야구 방망이는 빨갛게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적어도 한 번 이상의 목숨을 건 실전 경험이 있다는 의미였다.
좀비의 핏물인지 사람의 핏물인지 알 길은 없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도 예사 사람은 아닌 듯 보였다.
생사를 건 싸움에서 살아남은 남자였지만 팽팽하게 시위를 당기고 있는 서슬 퍼런 남구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나 다름없었다.
남자는 화살이 그대로 심장을 꿰뚫어버릴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남자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사, 살려 주세요. 배가 고파서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어요.”
‘마트를 점거했던 자들의 식구인가? 아니면 그저 식량을 훔치러 온 사람들인가?’
남구의 눈동자가 좁힌 눈꺼풀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손을 높이 드는 바람에 모습을 드러낸 허리띠에 찬 부엌칼과 내려놓은 야구 방망이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다른 무기는 없었다.
앞섶이 흘러내린 물에 흠뻑 젖었고 입 주변에도 먹던 음식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직접 음식을 주물렀던 손가락은 말할 나위 없이 지저분했다.
남녀 모두 머리가 짓다 만 까치집 모양으로 마구 엉겨 붙었다.
한동안 씻지 못해 꼬질꼬질한 몰골이었다.
남구도 언제나 배를 곯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늘 봐왔다.
‘참, 익숙한 모습이구나! 허기져서 급하게 손으로 퍼먹었군. 저 정도 상태면 안에 숨어 있다가 밖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네.’
금방이라도 쏘아버릴 듯 활을 겨눈 남구의 살벌한 모습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여자가 울먹이며 애절하게 말했다.
“흐윽! 조, 조금밖에 안 먹었어요. 정말이에요.”
난데없이 여자가 나서자 깜짝 놀란 남자는 여자의 앞을 황급히 가로막으며 절절한 음성으로 사정했다.
“다 놔두고 그냥 나갈게요. 제발 보내 주세요.”
‘단지 식량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군.’
남녀가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 것은 비단 남구가 활을 겨누고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알몸으로 묶여 있는 여자들을 봤겠지!’
무척이나 격렬한 남녀의 반응에 경계를 풀었다.
저들의 정체는 뻔했다.
살기를 거두고 겨눈 활을 내렸다.
온몸을 후들후들 떨고 있던 남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로막은 남자에게 반쯤 가려졌던 여자가 반색한 얼굴을 내밀고는 물었다.
“사, 살려 주시는 건가요?”
남구가 주변을 둘러보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우리도 이제 막 도착했어요.”
죽을상이던 남자의 얼굴이 환하게 활짝 피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그럼 이곳에 있던 그 짐승 같은 놈들은 다 어디로 떠난 건가요?”
‘지금 이 시국에 이런 최상의 은신처를 버려두고 떠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남구의 한쪽 입꼬리가 비스듬히 비틀려 올라갔다.
소름 끼치는 남구의 삐뚜름한 미소에 남녀는 풀렸던 긴장감이 다시 엄습했다.
마트의 소유권이 넘어갔다는 것을 두 사람은 금방 깨달았다.
별안간 또다시 몸이 떨리기 시작한 남자가 말을 더듬거렸다.
“저, 저희 가도 되나요?”
“뭐, 알아서 하세요.”
성의 없는 말을 남긴 남구가 그대로 등을 보이더니 두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지하 매장을 성큼성큼 빠르게 걸으며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하층 출입구는 아예 다 봉쇄해 놨군.’
외부로 통하는 다른 출입구는 내부가 보이지 않게 모두 막아두었고 1층 정문만을 뚫어 놓았다.
그래서 훤한 대낮인데도 지하가 이토록 어두웠다.
‘한군데 정도는 퇴로를 뚫어 놓을 만한데 박 경사가 아무도 믿지 못한 건가? 아예 도망갈 수 없게 원천 봉쇄를 해 놨군.’
정문도 딱 한 사람이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 개의 문짝만을 남겨두고 전면을 모두 진열장으로 막아 버렸다.
외벽 유리에는 좀비가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끔 커튼처럼 가림막까지 설치했다.
이런 구조는 퇴로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좀비가 떼로 몰렸을 때 효과적이었다.
한 곳으로 병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배수진처럼 도망갈 구석이 없으니 사람들도 죽기 살기로 막을 수밖에 없다.
소수였던 박 경사 일행의 궁여지책이었겠지만 아주 효율적인 대처였고 출입구도 매우 견고하게 봉쇄해 놓았다.
혹여 1층이 밀리면 지하층으로 대피해 1층 매장과 지하 매장을 잇는 복도에서 계속 저항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설치해 방어진을 구축했다.
지하 매장 입구 바로 앞에 설치한 그 진지 또한 매우 탄탄하고 견고했다.
‘시간도 빠듯했을 텐데 박 경사가 수고했네!’
남구가 한쪽 구석에 있는 창고 문을 열었다.
창고에는 자동소총이 수두룩하게 쟁여져 있었다.
“하! 이 동네 뿌려진 총이란 총은 싹 다 긁어모았군.”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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