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국도를 달리는 사람들
남구가 영점 조정을 끝낸 석궁을 들어 올렸다.
“음, 잘하면 이번에는 제대로 맞출지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남구를 보며 박 부장이 특유의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이거 왜 이렇게 흥분되지? 짜릿한 기분이 드는군? 나도 자네를 닮아 가나 보네. 구경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구만. 돈 내고도 보겠어!”
‘모르시겠지만 이미 다과를 즐기며 관전하는 것들이 꽤 많을 겁니다.’
거센 강바람을 맞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국도를 내달리던 일단의 추격전이 난데없이 날아온 화살 한 발에 올 스톱되었다.
아스팔트 도로에 몸을 납작 엎드린 사람들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으나 숲에 가려져 있는 남구를 찾을 수는 없었다.
오크도 산을 맞대고 있는 도로 갓길에 뛰어들어 거대한 몸을 최대한 숨기고 헐떡헐떡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계속되는 출혈에 기진맥진하여 더는 달릴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덕분에 경각에 달렸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악!”
엉덩이에 화살이 박힌 남자가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아스팔트 바닥으로 꼬꾸라져 데굴데굴 구르는 바람에 온몸 가득 타박상까지 입게 된 남자는 연거푸 내지르는 고함을 멈추지 못했다.
“아아악! 나 죽어! 아악!”
“이 미친 새끼야 조용히 안 해? 좀비한테 물어뜯기고 싶어?”
남구의 첫 번째 표적이었던 활을 든 남자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휘둥그레 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행여나 좀비 떼가 몰려올까 봐 엉덩이에 화살을 맞은 친구를 타박했다.
“으으윽! 크윽! 아, 아파!”
어금니를 깨물며 나름대로 참아 보려 했지만 비집고 새어 나오는 신음을 막기 힘들었다.
“아가리 좀 닥쳐! 좀비 몰려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석궁을 패대기친 채 고통에 겨워 도로를 이리저리 뒹굴뒹굴 굴러다니던 엉덩이가 뚫린 남자가 친구들의 성화에 입을 틀어막고 끙끙 앓았다.
“석궁 쏜 놈 봤어?”
“저쪽 산에서 날아왔어! 저기 어디쯤인 것 같은데?”
“너무 먼 거 아니야?”
“아니, 바람이 이렇게 부는데 저 먼 거리에서 어떻게 맞추지? 원샷, 원킬이네!”
“으으윽! 원킬이라니? 나 아직 안 죽었거든?”
“어떤 새낀지 졸라게 잘 쏴!”
“시파, 총 쏴야 하는 거 아니야?”
“미쳤어? 좀비 몰려오면 어쩌려고 그래? 좀 있어 봐!”
“어디 있는지나 알아야 쏘든 말든 하지!”
도로에 납작 엎드려있던 육체 쟁탈전의 승리자 노랑머리가 외쳤다.
“야! 여기 휑하게 뚫린 도로야. 그냥 엎어져 있다가는 고슴도치 되겠다. 갓길 가드레일에 숨자! 동시에 뛰는 거야, 알았어?”
“아, 알았어!”
“그, 그래!”
“오케이!”
“아아악! 엉덩이 아파! 나, 나는? 나 좀 업고 가!”
“넌 아가리나 좀 닥치고 있어!”
노랑머리가 손을 들어 보였다.
다섯 손가락 중 하나가 접혔다.
“하나!”
쒜에에에에에에엑-
활을 쥐고 아스팔트 바닥에 껌딱지처럼 착 달라붙어 있던 남자의 허벅지에 짧은 화살이 거친 바람을 가르고 날아와 꽂혔다.
퍽-
“크, 크아아아아악!”
아가리 좀 닥치라고 구박했던 입에서 더 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엉덩이에 구멍 난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으윽! 개새끼! 지가 더 지랄을 떨 거였으면서!”
손가락 한 개를 구부리고 있던 노랑머리가 벌떡 일어나 갓길 가드레일로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카운터를 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재장전하는 동안 재빠르게 튀어야 했다.
“어어?”
“썅! 혼자 튀냐?”
“이런, 제기랄!”
“에라이!”
“야! 뛰어!”
아스팔트 위에 접착제처럼 납작 엎드려 붙어있던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황급히 일어나 갓길로 내달렸다.
쒜에에에에에에엑-
“씨부럴! 또 날아 온다.”
“허어억!”
“히익! 난 아닐 거야!”
퍼억-
휘청휘청 바람을 타고 가르며 날아온 화살이 자기는 아닐 거라며 가드레일로 꽁지 빠지게 뛰던 남자의 등짝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커억!”
화살이 한 발 한 발 거듭될수록 적중도가 급속하게 상승했다.
폐가 꿰뚫린 남자가 그대로 꺼꾸러져 가드레일에 처박혔다.
쿠웅-
그 틈에 모두가 가드레일 뒤로 몸을 날렸다.
우당탕 아무렇게나 구른 덕분에 팔꿈치와 무릎이 깨지고 착용한 각종 소지품이 날아다녔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는 활과 석궁을 소지했던 세 사람만이 각자 한발씩 짧은 화살에 몸뚱이가 꿰여 나뒹굴고 있었다.
“으윽, 씨발! 이 피!”
“아악! 으아악!”
“끄으, 끄으으.”
엉덩이에 화살을 맞은 남자가 엉덩이를 쓰다듬던 손에 묻은 피를 보고 경악했지만 그나마 가장 양호했다.
허벅지에 화살을 맞은 남자는 연신 고통에 겨운 신음을 내뱉었고 등에 맞아 폐가 꿰뚫린 남자는 숨을 쉬기도 힘들어했다.
“저 새끼들 죽여야 할까? 너무 시끄러워서 좀비가 몰려올 것 같은데?”
“여기서 총 쏠래? 활이랑 석궁 들었던 놈들이 다 도로 위에서 구르고 있잖아.”
“칼 던질까?”
“잘도 맞추겠다.”
“나 연습 좀 했는데.”
“다들 조용히 해!”
윽박을 지른 노랑머리가 손가락을 뻗어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야! 내가 봤어.”
모두 노랑머리가 가리킨 방향을 돌아봤다.
“그래서 어쩌자고?”
“이제 석궁도 없고 목숨 걸고 주워 온다고 해도 실력에서 우리가 완전히 밀려. 저 먼 거리를 어떻게 맞춰?”
노랑머리가 총기 멜빵끈을 늘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다들 총 들어!”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노랑머리를 쳐다봤다.
“총 쏘게?”
“다 같이 죽을 수도 있어!”
노랑머리가 남구가 숨어 있는 지점에 소총을 겨누며 말했다.
“숨어 있는 위치 알았으니까 한꺼번에 갈기면 죽일 수 있어. 죽이고 좀비 떼가 오기 전에 일단 튀자! 그리고 나중에 와서 뒷정리하자고.”
“볼트에 맞은 애들은? 진짜 죽으라고 저기 그냥 놔둬?”
노랑머리가 날카롭게 쏘아보며 성을 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 쟤들까지 구하려다가는 다 죽어! 빨리 총 안 들어? 숨어 있는 놈이 눈치채기 전에 쏴야 할 것 아니야!”
“알았어! 알았어!”
“빨리빨리 총 들어!”
“그래, 까짓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총기를 소지한 네 명이 덜그럭거리며 총을 풀어냈다.
그 모습을 스코프를 통해 보고 있던 남구가 박 부장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따라오세요.”
남구가 속삭이듯 툭 한 마디를 내뱉고선 재빠르게 뒤로 빠졌다.
나무가 빽빽한 숲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쏜살같이 나무 기둥과 가지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적진과의 거리를 좁혔다.
박 부장도 조용하고 신속하게 남구의 뒤를 따랐다.
남구와 박 부장에게 100m 정도는 순간이었다.
10초도 걸리지 않아 어느새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바라보는 지점까지 달려왔다.
속도를 줄인 남구가 수목을 엄폐물 삼아 이리저리 몸을 숨겨가며 도롯가로 접근했다.
적당한 사격 위치를 찾아 까만 눈동자가 분주히 돌아다녔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전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지점에 들어서자 발소리를 죽여가며 고양이처럼 사뿐거렸다.
‘여기 괜찮네!’
천천히 매복지로 들어서며 신속하게 석궁 시위를 당겨 걸쇠에 끼우고 화살을 걸쳤다.
‘30m 정도 되겠군.’
갓길까지 합쳐서 도로 폭만 20m가 조금 넘는 듯했다.
적과의 거리가 30m라지만 남구가 매복한 위치가 더 높았다.
‘눈동자도 뚫을 수 있겠는데?’
남구가 자리를 잡고 석궁을 들어 올릴 때 한 발짝 뒤에서 박 부장이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쪼그려 앉았다.
남구의 귀에 긴장된 숨소리가 들려 왔다.
박 부장은 아까와는 다르게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가드레일 위로 4명의 머리가 불쑥불쑥 올라왔다.
곧바로 총구에서 화염이 터져 나왔다.
타다다다당- 타당-
타다당- 타다다당-
타다다다다다다다당-
타당- 타다당- 타다다당-
남구가 스코프에 한쪽 눈을 붙였다.
“후우우우우!”
순간 호흡이 멈췄다.
투웅-
쒜에에에엑- 퍽-
화살이 정확하게 머리를 꿰뚫자 비명도 없이 가드레일 밑으로 푹 꺼졌다.
끼이이익- 딸각-
바로 시위를 당겨 걸고 화살을 얹었다.
“후우우!”
퉁-
쒜에에에엑- 퍽-
똑같은 상황이 똑같이 일어났다.
두 명이 순식간에 나자빠지자 가드레일 위에 올라왔던 모든 머리가 밑으로 쑥 가라앉았다.
“빠져요.”
남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 부장이 신속하게 뒤로 물러났다.
남구도 튀어 나가듯 숲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도로 반대편 가드레일 밑에서는 당황한 이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몸을 바짝 웅크렸다.
“헉! 이, 이럴 수가!”
“미친! 완, 완전 저격수잖아!”
“제기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언제 코앞까지 기어들어 왔지?”
가드레일 밑으로 몸을 잔뜩 수그렸던 노랑머리가 총을 든 친구를 쏘아보며 외쳤다.
“야! 건너편에다 갈겨!”
“타, 탄창 좀 갈고.”
“이런! 빨리 해!”
“알, 알았어. 잠깐만!”
덜덜 떠는 손으로 달그락거리며 단창을 교환한 남자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노랑머리를 쳐다봤다.
“지금이야! 쏴!”
노랑머리와 마지막 남은 소총수가 가드레일 위로 머리를 내밀자마자 화살이 날아왔던 도로 건너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당- 타다다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당- 타다당-
이어 바닥에 떨어진 소총 두 정을 나머지 생존자 두 명이 각각 주워 들고 사격에 합류했다.
타다당- 타다다당-
타다다당- 타당-
타다다다다당- 타다당-
타당- 타다다다다당-
4개의 총구에서 쉴 새 없이 불을 뿜었다.
남구와 박 부장이 매복했던 곳으로 총탄이 빗발쳤다.
탄환에 스친 잎사귀들이 흔들흔들 탄력 넘치는 춤을 추었고 꺾인 나뭇가지가 허공에 파편을 흩뿌리며 날아다녔다.
퍽퍽 소리를 내며 탄환을 맞이한 수목이 조각조각 쪼개져 튀어 오른 흙더미와 같이 사방 천지로 비산했다.
우거진 수풀 속 두꺼운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엎드린 남구와 박 부장이 매복했던 곳으로 탄환이 무수히 날아드는 상황을 숨죽이고 지켜봤다.
박 부장이 끊임없이 빗발치는 전방을 주시하다 경탄에 마지않는 눈빛으로 남구를 돌아봤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총알이 바로 날아올 줄 알고 있었나? 조금만 늦었으면 우린 벌집이 될뻔했어.”
“총을 쓰기로 작정했는데 당연한 순서죠.”
“참 오래도 쏴대는군. 저러다 좀비가 떼로 출몰할 것 같은데?”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곳이라고 해도 이 정도면 안 나오고는 못 배길 것 같죠?”
“이 근처에 수상스키 타는 곳도 있고 마을도 그리 멀지 않다네. 군데군데 식당도 꽤 있어. 분명히 몰려올 거야.”
남구가 머리를 바짝 흙바닥에 붙이고 박 부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 잘 아세요? 전 이곳에 와본 적이 없어서.”
박 부장이 과거를 회상하듯 아련한 눈빛을 띄웠다.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이 열렸다.
“마누라가 살아 있을 때는 이 근방에 있는 쌈밥집을 자주 갔었지. 서울에서 가까우니까 바람 쐴 겸 나들이하기 좋거든.”
“아! 그렇군요.”
‘이후로 아들하고 둘이서만 살아왔던 모양이네? 줄곧 아들 타령을 할 만했군.’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 참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허허!”
박 부장의 너털웃음에 남구도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전한 곳에서 빗발치는 화살 소리라던가 총소리는 들으면 의외로 기분이 편안해질 때가 있어요.”
남구의 눈빛도 아련해졌지만 박 부장의 그것과는 종류가 달랐다.
“허허, 그래?”
“전 그렇더라고요. 남들은 맞아 죽어도 나는 안전하다는 일종의 쾌감 같은 것도 있고요.”
“자네도 참 별종이야.”
-크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진짜 별종들이 몰려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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