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육체 쟁탈전 (2)
남구가 바지춤에 찔러 넣은 분리된 조경 가위를 슬며시 쓸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겠지.’
“아저씨 혼자죠?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숫자가 많은 쪽에 끼도록 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같이 가진 못하더라도 초반부터 서로 대립하지는 말자고요.”
‘내 말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는군.’
아이의 장난스러운 말을 들었다고 하기에는 목수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했다.
지금은 어린아이의 허황한 말이라고 그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구의 말을 들은 목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끼리끼리 뭉쳐있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폈다.
목수의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남구가 손가락으로 목공 벨트에 꽂혀있는 망치를 가리켰다.
흠칫한 목수가 망치를 손으로 가리며 물었다.
“이건 또 왜?”
“그걸 사용하도록 하세요. 만약의 사태 때.”
“마, 만약의 사태?”
“그게 제일 쓸만할 것 같아요. 다른 연장들 보다는.”
목수의 머릿속에 눈앞에서 떠오른 글자와 지금의 상황과 이 어린아이의 말이 조합됐다.
긴장감이 잔뜩 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악마들의 노리개라니, 이걸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고······. 네 말은 악마들이 나타나면 망치로 때려잡으라는 거냐? 큰 무리에 끼어서?”
‘설마 사람에게 사용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목수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차마 말로 뱉지 못했다.
수전증이 재발할 것만 같아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남구는 그런 목수의 모습에 예전 자기 자신이 투영되어 대답 없이 입꼬리만 올렸다.
‘당분간 악마라 표현된 그 족속들은 절대로 볼 수가 없을 겁니다. 그들은 시스템 뒤에 숨어서 생명의 핵을 이용해 혜택을 누리며 즐길 뿐이에요. 뭐, 정답은 빗나갔지만 비슷한 전략으로 임하면 바로 죽는 일은 면할지도 모르죠.’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느다랗게 미소만 띠고 있는 남구를 본 목수는 온몸이 딱딱하게 경직됐다.
‘무슨 아이가 저렇게 섬뜩하게 웃지?’
목수는 자신이 뱉은 말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왠지 자꾸만 두려워졌다.
정말 지금 당장 악마들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잔뜩 긴장해 버린 목수에게 남구가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툭 던졌다.
“그냥, 제가 위험하면 좀 도와달라는 말이에요.”
“늙은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볼일 끝났으면 이만 가보마.”
목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서둘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낯설고 두려운 환경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쩝! 내 인상이 그렇게 안 좋았나?’
남구는 목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목수는 인생의 쓴맛, 단맛, 매운맛, 별별 맛을 다 봤을 만한 지긋한 나이였다.
종류를 막론하고 어떤 경우에도 경험이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죽음의 고비를 딱 한 번 넘겨본 것만으로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와는 천양지차가 났다.
위기가 닥쳤을 때 단 10초 안에 향방이 정해졌다.
허둥거리느냐 침착하느냐로 삶과 죽음이 갈렸다.
공포에 날아가는 정신을 챙기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생존의 최소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 10초 안에 멘탈을 붙잡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위기에서도 공황에 빠져 간단히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최약체의 몸으로 시작한 남구가 최후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남구는 지금도 여전히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목수가 나이는 많았지만, 아직 강건한 육체, 소지하고 있는 무기 대용의 연장들, 연륜까지 내게 필요한 아군의 조건을 두루 갖췄는데 아쉽네!’
신체 능력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남구에게는 목수만 한 보험도 없었다.
‘돌발 상황이나 피치 못할 위기 상황에 구원군 역할을 해주면 참 좋았을 텐데, 사람들 앞에서는 표정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
오랜 세월 야차들과 부대끼다 정상인을 대하려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남구는 이곳저곳에서 무리를 이루어 두려움을 달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인제 보니 게임은 벌써 시작되었군.’
소환된 그때 그 시점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느껴졌다.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판을 짜는 시점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포석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군.’
이때 많은 수의 아군을 포섭하고 확보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만이 꼭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기왕 포섭에 실패한 거 캐스팅보트 역할이나 해야겠군. 차라리 잘 됐어! 솔플이 심력 소모도 덜 하지. 역시 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영 쉽지 않네! 어디 내 상태나 한번 살펴볼까?’
원하면 소환진에 오르라는 그들의 메시지가 보였으니 이제는 뇌리에 시스템이 장착됐다는 의미였다.
생명체가 죽으면 생명 에너지를 수거해야 하니 그 족속들이 침공할 때 무엇보다 우선해서 하는 일이 시스템 이식이었다.
생명체가 죽으면 고스란히 생명의 핵에 영양가가 제공된다.
살아 있는 생명체도 생명 포인트(LP)를 사용해 신체 능력을 상승시키고 각종 스킬을 얻어 진화시켜 나가야 하니 그것 또한 생명의 핵에 배를 불리는 일이었다.
시스템을 이식받은 모든 생명체의 활동 목적이 생명의 핵에 배를 불리는 일이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 시스템과 똑같나?’
차원이 완전히 다른 두 문명이었지만 불변의 진리처럼 똑같은 것도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재벌 배를 불려주고 그들에게 받은 떡고물로 재벌의 물건을 사서 또 재벌 배를 불려주는 인류 사회의 시스템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구조였다.
매개체만 달랐다.
돈 대신 생명이라는 차이뿐.
시스템의 상태 창을 익숙하게 불러냈다.
이미 알고는 있지만, 신체 능력 카테고리를 확인했다.
[근력 1]
[지구력 2]
[회복력 2]
[내구력 2]
[감각 7]
[반사신경 7]
[동체시력 8]
.
.
.
리셋된 스텟을 바라보는 남구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처참하군. 역시 거지 같네! LP를 사용하지 않은 일반 성인 남자의 평균 능력치가 6~7 정도 되려나? 경험상 그 정도 될 것 같군.’
숫자 1 밑으로는 출력이 안 된다.
따라서 남구의 근력은 1보다 낮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LP를 쏟아부어도 근력의 수치가 잘 오르지 않았다.
같은 LP를 투자해도 잘 오르던 감각과 비교해 근력은 요지부동이었다.
LP를 엄청나게 모아서 들이부어도 상승 폭이 낮아 효율이 떨어지면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다.
남구의 육체는 연비가 너무 떨어졌다.
한마디로 남구의 몸뚱이는 깨진 독이었다.
남구가 새로운 육체를 얻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정말 내 몸뚱이는 쓰레기군. 또 똑같은 개고생을 할 수는 없지!’
어느 하나의 특정 신체 능력이 유독 높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반사신경이 뛰어나도 근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빠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근력의 상승 폭에 내구력이 뒷받침을 못 한다면 인대가 끊어지고 뼈가 부러졌다.
한가지 능력에 LP를 퍼부었다가 사달이 나는 경우를 꽤 보아왔다.
알고 보면 모든 신체 능력은 서로 각각 시너지를 주고받으며 얽히고설켜 있었다.
능력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고른 능력치를 보유하고 적은 LP를 투자해도 스텟이 크게 상승하는 몸뚱이가 쓸만한 육체라 할 만했다.
그런 몸이라야 생존에 유리했다.
연비가 좋고 효율성이 높아야 나중에 가서 강한 몸을 만들 수 있었다.
흔들리던 남구의 눈빛이 어느새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다른 몸으로 당장 갈아입고 싶은 마음이 불끈불끈 올라오는군. 반드시 이번 기회에 강력한 몸뚱이를 차지해야 해!’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쳐다보기만 해도 눈을 버릴 것 같은 처참한 능력치의 메시지 출력창을 치워버렸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점점 커지고 표정도 풀릴 때쯤이었다.
둘러보며 사람들의 면면을 파악하던 중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뻐하고 경배하라. 자비롭게도 강건한 육체가 세 구나 주어졌다. 3인이 남을 때까지 살아남아 새로운 몸을 얻는 영광을 쟁취하라. 단 부작용으로 죽을 수 있다]
전체 시스템 메시지에는 세부 내용이 없었다.
핵심만 전할 뿐이었다.
해석을 잘못하면 죽을 수 있었다.
‘채널 관리자는 이거 끝나고 나오는 건가?’
메시지를 보자마자 사람들의 아우성이 시작됐다.
“시방 뭐라고 씨부렁거려 쌌냐?”
“저기요. 이해가 안 가는데 지금 무슨 상황인가요?”
“저는 그냥 나갈게요.”
“아, 잣 된 거 같은데······.”
“누구 없어요? 문 좀 열어 주세요.”
“뭐 하는 놈들이야? 이거 납치야!”
“콜록콜록, 나 약 먹어야 하는데.”
“우리더러 3명 빼고는 다 죽으라는 소리 같은데요?”
“흑흑흑, 엄마!”
“정신없어 죽겠는데 누가 울고 지랄이야?”
“문이 도저히 안 열려.”
남구를 제외하고 52명이 저마다 목청을 높였다.
심지어 은성마저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남구도 이런 종류의 이벤트는 처음이었다.
다시없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그래, 한마디로 말해서 육체 쟁탈전이로군. 내가 거른 첫 번째 이벤트는 이런 거였어. 응? 저 자식은?’
한참 동안 욕지거리하며 열을 내던 짧은 머리의 조직폭력배가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마이 안쪽으로 스리슬쩍 손을 집어넣었다.
‘하! 사시미라도 차고 있나? 정통파 건달이구만.’
“제발 내보내 주세요!”
누군가의 처절한 목소리가 으스스한 지하 공간에서 길게 메아리쳤다.
꽝- 꽝꽝꽝-
굳게 닫혀 열리지 않는 철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며 난리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공포감에 이성을 잃고 아우성쳤다.
‘이곳에 소환된 53명이 서로 살해해 3명만 남던가, 50명이 탈수로 죽을 때까지 버텨 3명만 남던가 하라는 말이군. 물이 없으니 3일을 넘길 수 없겠지.’
남구는 사람들의 발에 차여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버려진 장바구니를 슬쩍 쳐다보았다.
‘밀폐된 공간인데 공기는 순환될까?’
천장을 보니 덕트는 있었다.
팬이 돌아가는 기계음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질식사는 면했다.
과연 누가 있어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티는 것으로 3명 안에 들 자신이 있겠는가.
누가 물 없이 오래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운에 맡겨야 한다.
53명 중 3명이니 그럴 운은 5.6%의 확률이다.
그런 희박한 불확실함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살인할 바에야 차라리 탈수로 죽겠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다 같이 죽자는 개념인데, 힘이 약하고 병든 사람은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군.’
남구는 병원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과 나이가 많아 연로한 이들을 둘러봤다.
‘하지만 힘과 세력에서 우위에 선 자는 5.6%의 희박하고 불확실한 확률보다는 확실한 방법을 선택할 것 같군.’
골똘히 생각하며 둘러보던 남구의 시야에 불안한 표정으로 망치를 만지작거리는 목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던 목수가 양복 안쪽에서 슬그머니 회칼을 꺼내는 조폭을 보고 있었다.
짧은 머리 조폭은 포식자의 눈으로 먹잇감을 찾았다.
‘인내심 없는 놈! 아주 초반부터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첫 경험인 사람들을 고려해 3일째 되는 막판에 가서야 결판이 나려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빨리 끝날 수도 있겠군.’
“남구야! 예솔아! 이리 와!”
은성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은성 역시 위협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세 명의 조폭을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솔이? 나와는 정반대로 과도하게 풍만한 계집아이의 이름인가 보군.’
울상인 예솔이 출렁출렁 종종걸음으로 자신을 부르는 은성에게 다가갔다.
남구는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장바구니를 잽싸게 집어 들고 합류했다.
정신 없고 다급한 지금 시점에 장바구니 따위를 신경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악!”
조폭에게 부둥켜안긴 건장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에 찬 메아리가 꽉 막힌 지하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서도 날카로운 단말마의 비명은 확연하게 도드라졌다.
“악! 악! 으아악!”
조폭은 젊은 남자의 목덜미 옷깃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복부를 계속해서 찔러댔다.
찔린 남자는 흠뻑 피가 묻은 손으로 조폭의 얼굴을 밀쳐 내며 버둥거렸다.
그러나 곧 힘이 빠지는지 양팔을 밑으로 늘어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폭은 몸을 낮추고 쫓아 내려가 무참한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푸욱- 푹푹-
“윽! 으으.”
이제 건장한 젊은 남자는 저항도 못 하고 신음만을 힘겹게 뱉어내며 몸을 들썩였다.
곧 새우처럼 몸을 말아 힘없이 모로 쓰러졌다.
털썩-
바닥의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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