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갈고리발톱이 훑고 지난 자리 (1)
탄띠에 달아 놓은 파라코드(낙하산 줄, 생존 끈)를 풀어 절단된 박 부장의 팔을 지혈해 나갔다.
“으으윽! 뭐 하는 거야? 어, 어서······.”
박 부장이 극심한 고통을 참아가며 안간힘을 써 재촉해 보았지만 남구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부지런히 손만 놀러 가며 입으로 바람을 길게 뱉었다.
“쉬이이이! 거, 조용히 좀 하세요. 다 죽어가는 양반이.”
“허어!”
할 말을 잃고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박 부장을 무시하며 숙련된 솜씨로 재빠르게 팔을 동여맨 후 일어섰다.
남구의 한쪽 눈동자가 다시 김수정 대리에게 향했다.
이제는 갈고리발톱에 긁힌 왼쪽 눈이 완전히 감기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구의 이름을 처연하게 불렀던 김수정 대리의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미약하게나마 오르락내리락하던 상체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필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한다는 말이······. 내 까짓것 불러서 뭐 한다고.’
짧은 순간 찡그렸던 인상을 되돌렸다.
좀비가 떼로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통증 때문인지 남구가 눈을 감았다.
‘이 사람들, 그냥 그 상가 건물에 놔두고 왔다면 조금 더 살았을까? 내가 혼자 움직였어야 했을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남구의 표정은 한결같이 무던하기만 했다.
‘아, 애달프구나!’
담담한 표정의 남구가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복을 빈 시간은 눈 깜박할 사이보다는 미세하게나마 조금 더 긴 시간이었다.
“부장님! 갑시다.”
“크으윽! 난 틀렸다니까. 어서 도망치지 않고 뭐해?”
참기 힘든 극도의 통증 속에서도 윽박지르는 박 부장을 남구가 안아 올렸다.
“끄응!”
“어? 크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의아함을 가득 품은 눈빛의 박 부장을 지하 매장에 내려놓고 다시 복도 진지로 향했다.
박 부장이 그런 남구의 뒷모습을 생명력이 서서히 꺼져가는 희미한 눈동자로 어렵사리 쫓았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죽을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쓸데없는 짓을 하는 남구의 등 뒤를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눈앞이 흐려져 희끄무레한 윤곽만이 아른거렸다.
체념 섞인 긴 한숨을 내쉬며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휴우, 산 사람은 살아야 할 텐데······.”
남구가 아담한 체구에 앳되고 순박해 보이는 얼굴을 한 오정아 대리의 앞으로 발 빠르게 다가갔다.
오정아 대리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남구와 몇 마디 나눠보지도 못했었다.
이 순간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살려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감쳐물고 또르르 눈물만 흘렸다.
신속한 걸음이 오정아 대리 앞에 멈춰서자 비탄에 잠긴 눈동자가 남구를 올려다보았다.
오정아 대리의 상태는 다가서는 중에 이미 파악했다.
개중 부상의 정도가 가장 얕았다.
모두 목숨을 잃을 만한 극심한 치명상을 입었기에 그나마 얕아 보이는 상처였지만 이 또한 중상이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감염돼 죽을 것이 뻔했다.
조금 전까지 공황 상태였으나 금방 회복한 모습이었다.
비록 눈동자는 흠뻑 젖어 있었지만 이 와중에도 이지가 살아 있는 것이 외모와는 다르게 심지가 굳어 보였다.
‘쪼끄만 아가씨가 생각보다 단단하네? 외유내강이군.’
남구가 오정아 대리를 한 손만으로 감싸 안고 번쩍 들었다.
“흐으윽!”
갈고리발톱에 긁힌 등이 자극되어 고통에 겨운 신음을 흘렸지만 처지를 봐줄 상황이 아니었다.
오정아 대리를 안아 들고 주변을 쓱 훑어봤다.
‘온전한 몸뚱이가 하나도 없구만.’
간신히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도 하나같이 신체 일부가 잘리고 뜯겨나가 위독했다.
병원 구급차에 실려 가 촌각을 다투는 응급 수술을 받을 수도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일절 가망이 없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망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지금 안고 있는 오정아 대리와 변 과장밖에 없을 듯했다.
변 과장이 죽는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지만 보호 장구가 제 기능을 발휘해 뚫린 상처가 깊지 않았다.
‘응? 한 명 더 있군.’
피투성이가 되어 집기에 깔린 쌍둥이 중 한 명도 잘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너진 장애물 밑에 깔려 있어서 발견이 늦었다.
일가족이 몰살했지만, 아직 유일하게 숨이 붙어 있는 쌍둥이에게 남구가 뚜벅뚜벅 다가갔다.
콰앙-
쌍둥이를 깔아뭉갠 진열장을 발로 차 날려 버렸다.
“크윽!”
신음하는 쌍둥이의 뒷덜미를 잡아채 끌어당겼다.
어깨에서부터 가슴팍까지 그리고 허벅지가 가닥가닥 갈라져 있었다.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자 끌리는 바닥에 레드카펫처럼 새빨간 핏물이 널따랗게 이어졌다.
혼자 남은 쌍둥이는 막무가내로 끌려가면서도 저항 없이 축 늘어져 눈물만 흘렸다.
“흑흑흑!”
지금은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고 있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꽤 유능한 모습을 보였었다.
일가족이 모두 죽고 혼자만 남겨지자 악착같이 버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모든 희망과 의욕을 잃은 듯 무기력했다.
“나, 나도 옮겨줘!”
변 과장이 연신 목청껏 목소리를 높였으나 남구는 고개조차 돌려보지 않았다.
망설임 없는 발걸음으로 지하 매장에 들어온 남구가 쌍둥이를 벽 쪽에 붙여 두고 그 옆에 오정아 대리를 내려놓았다.
오정아 대리와 쌍둥이는 응급처치만 잘한다면 살지도 몰랐다.
쌍둥이 형제는 처음 봤을 때부터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며 최선을 다해 크리처에게 맞서 싸웠었다.
쌍둥이에게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실전 경험이 있는 군인이었을 것이다.
동질감 때문인지 사력을 다해 싸워준 공로에 작으나마 성의를 표하고 싶었다.
‘뭐, 죽게 된다고 해도 적어도 인간으로서 죽을 수는 있게 해줄게.’
남구가 지하 매장 입구로 다가갔다.
쭉 손을 뻗자 한쪽 눈에서만 푸른 광채가 반득였다.
앞서 달리던 좀비 하나가 주르륵 당겨지더니 입구를 통과해 지하 매장 벽면에 처박혔다.
꽈앙-
벽면과 충돌한 좀비가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못 차리고 버둥거렸다.
힐끔 좀비의 상태를 확인한 남구가 뻗은 손을 곧바로 천장을 향해 들어 올렸다.
천장에 설치되어 있던 셔터가 손으로 잡아당긴 듯 저절로 밀려 내려왔다.
드르르르륵- 콰앙-
갑자기 내려온 셔터가 남구와 자신의 사이를 가로막아버리자 화들짝 놀란 변 과장이 쉴새없이 나불거리던 입을 순간 멈췄다.
그 입은 찢어질 듯 쩍 벌어져 있었다.
그런 순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높았던 목청이 더욱더 높아졌다.
“아, 아니? 나, 나는? 나도 옮겨 줘! 나는 어떻게 하라고?”
변 과장은 휘둥그레 뜬 눈으로 밀려드는 좀비 떼와 남구를 휘적휘적 번갈아 돌아봤다.
이제껏 꼼짝도 안 하던 변 과장이 허둥지둥 뚫린 배를 틀어막고 접질렸는지 부러졌는지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사력을 다해 기었다.
남구는 여전히 변 과장의 말에 한마디 대꾸도 없었다.
목공 벨트에서 기다란 드라이버를 꺼내 셔터의 걸쇠와 맞물린 바닥의 잠금장치에 꽂아 넣었다.
파라코드를 뽑아 드라이버와 잠금장치와 셔터를 직접 연결해 칭칭 동여맸다.
‘이쯤 하면 좀비 떼가 아무리 지랄발광해도 드라이버가 빠지거나 걸쇠가 떨어져 셔터가 열리는 일은 없겠지!’
“이, 이봐! 남구야, 나 좀 살려줘! 나 좀 살려달라고 이 새끼야! 으, 으아악!”
떠나가라 남구를 부르짖는 변 과장의 목청 덕분에 제일 먼저 좀비 떼의 표적이 되었다.
미친 듯이 달려 내려오던 좀비 떼거리가 순식간에 복도 진지를 휩쓸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좀비는 산 사람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덮쳐들었다.
변 과장 위로 덮쳐든 좀비 떼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변 과장은 속절없이 온몸을 물어뜯기며 목청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남구가 뒤도 안 돌아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좀비 중에서도 더럽게 생긴 놈이 탄생하겠군.’
지하 매장 벽면에 처박힌 좀비가 비틀비틀 일어나고 있었다.
저벅저벅-
남구가 망설임 없이 다가가며 파라코드에서 줄을 줄줄이 뽑아냈다.
몇 번 손을 놀리자 올가미 매듭이 생겼다.
올가미를 좀비의 목에 걸고 적당한 곳에 묶어 고정했다.
“캬아아아아!”
좀비는 괴성을 지르며 남구를 물어뜯기 위해 앞으로 돌진했지만 허무한 손짓만이 허공을 휘저었다.
묶어 둔 로프는 상당히 얇았으나 최첨단 기술력이 동원된 낙하산 줄이었기에 충분히 견디고도 남았다.
남구가 발목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쉭쉭- 쉭쉭-
단칼에 양쪽 손목과 발목이 날아갔다.
“캬아아아아아!”
손발이 잘려 나가 바닥에 꺼꾸러진 좀비가 기어서라도 남구를 물어뜯기 위해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남구가 나이프에 묻은 피를 닦으며 오정아 대리에게 향했다.
오정아 대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남구를 올려다보았다.
변 과장의 절절한 애원에도 굳게 닫혀 있던 남구의 입술이 멀쩡히 열렸다.
“어디 보자, 좀 돌아봐요.”
남구가 앉아 있는 오정아 대리를 빙그르르 돌렸다.
방호구를 벗기고 줄기줄기 찢어진 상의를 단번에 찢어 버렸다.
쫙-
오정아 대리는 휘둥그레 뜬 눈으로 남구를 어깨 너머로 넘겨다 봤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헤 벌리고 있었다.
남구가 목공 벨트 파우치에서 손바닥만 한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서 낚싯바늘과 봉합사를 꺼내 소독했다.
병원에서 의료 장비를 담아온 가방에 외과 수술용 바늘이 있었지만, 그것은 바늘집게와 핀셋을 이용해야 할 만큼 작았다.
양손에 익숙하지 않은 집게와 핀셋을 잡고 봉합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남구는 언제나 낚싯바늘이나 뜨개질용 바늘을 이용해 자상을 직접 손으로 기웠었다.
의료 가방에서 꺼내 든 수술용 멸균 장갑을 낀 남구가 큼지막한 낚싯바늘에 실을 연결하며 오정아 대리의 등 뒤에서 말했다.
“환자분, 수처 하겠습니다. 헤헤.”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나름대로 조크를 날린 것인데 오정아 대리는 웃기는커녕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남구를 바라봤다.
‘참 나! 이게 안 웃겨? 확 아프게 기워버릴까?’
너덜너덜해진 피부를 숙련된 손놀림으로 꿰매기 시작했다.
“으윽! 윽!”
오정아 대리는 바늘이 들고 날 때마다 어김없이 신음을 흘렸다.
‘엄살 부리지 마시지. 웬만한 의사보다 나을지도 몰라.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거든. 하루가 멀다고 내 몸 내가 기우고 다녔단다.’
꿰매는 손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비록 어디서 배워본 적도 없는 자기 나름의 방식이었으나 어느덧 갈고리발톱에 찢겨나가 넓게 벌어진 피부를 모두 봉합했다.
“흐흐, 꽤 예쁘게 됐네요.”
오정아 대리는 자신의 바느질 솜씨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 남구의 너스레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이런 처참한 상황에 웃는 남구가 미친놈이라 생각했다.
웃음 자체도 야비하고 사악해 보였다.
돌이킬 수 없는 심대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오정아 대리는 말을 잃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상처가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남구도 알 수 있었지만 위로 따위 하지 않았다.
‘쪼끄만 아가씨, 이번엔 상처가 아파서 울 거야.’
남구가 다짜고짜 포비돈 요오드를 뿌려 버렸다.
“꺅!”
오정아 대리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겨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구가 커다랗게 벌어진 오정아 대리의 입안에 항생제를 쏙 던져 넣었다.
“켁! 콜록! 콜록!”
물도 없이 그대로 넘어가 버린 알약에 오정아 대리는 연신 기침해댔다.
남구가 나머지 항생제를 오정아 대리의 허벅지 위에 툭 던져두고 시선을 쌍둥이에게 돌렸다.
“당신은 꿰매고 지혈해도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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