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육체 쟁탈전 (6)
거구의 조폭과 은성 무리의 싸움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격전의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나 몰라라 구경하는 이들과 회칼에 상처를 입고 바닥을 기는 부상자, 그리고 그 부상자들 옆에서 싸늘히 식어가는 사망자를 제외한 나머지 22명이 달랑 거구의 조폭 한 명과 생사를 건 사투를 시작했었다.
‘이제 8명 남았군. 그냥 덩치만 커다란 비곗덩어리가 아니었구만.’
22명 중 14명이 바닥에 누워 버렸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문신의 조폭과 다르게 거구의 조폭은 확실한 타입이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급소를 강하게 찔러댔다.
‘상대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없으니 맷집을 믿고 저런 스타일을 구사하는 거겠지!’
웬만한 공격은 두텁고 거대한 체구를 이용해 그대로 받아내며 하나하나 확실하게 회칼을 박아넣던 거구의 조폭도 멀쩡할 수만은 없었다.
공구에 맞아 머리와 얼굴에 상처가 가득했다.
양복은 너덜너덜 걸레가 돼버렸고 찢어진 천 쪼가리 사이로 선혈이 낭자했다.
거구의 조폭은 끙끙거리며 신음을 흘리는 보스를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끌어내 호위를 서듯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양 진영이 헐떡이며 첨예하게 대치했다.
조폭 쪽이나 은성 무리나 하나같이 피를 흠뻑 뒤집어쓴 몰골이었다.
다들 숨이 차 어깨를 들썩였다.
안면이 온통 울퉁불퉁하고 머리는 깨졌으며 상의가 다 벗겨지다시피 찢어져 반만 걸치고 있는 조폭 보스가 주저앉은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와중에도 손에서 회칼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빼앗기는 순간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찢겨나가 상체의 절반이 드러난 부위에는 온통 야쿠자 스타일의 용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용이 상처를 잔뜩 입고 붉게 물든 채 꿈틀거렸다.
조폭 보스는 느릿느릿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끄응, 니가 고생이 많어.”
“크윽! 전 괜찮습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형님?”
조폭 보스는 힘겹게 거구의 조폭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니 눈깔엔 나가 멀쩡혀 보이냐? 눈깔이 빙신이여? 붕어 눈깔이여?”
쫘악-
말을 마치자마자 급변한 표정으로 반만 남은 상의를 단숨에 찢어 던졌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서서히 일어섰다.
앉아있던 자리가 시뻘겋게 젖어 있었다.
일어난 보스의 퉁퉁 부은 눈이 사람 좋게 휘어졌다.
그러나 눈동자는 살기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 은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크크, 손모가지 부러져 부렸냐?”
은성도 비틀거렸다.
바닥에 크게 떨어지면서 팔이 골절됐다.
망치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반대 손으로 부러진 팔을 받쳐 들고 고통에 이를 악다물었다.
그리고는 짓씹듯 뱉어냈다.
“이까짓 거 상관없다.”
이사이로 뱉어진 말에 싸우려는 의지가 듬뿍 담겨있었다.
“아따! 저 오살할 넘, 징허네 징혀.”
“형님, 저런 놈 하나 스카우트했으면 참 좋았겠는데 말입니다. 형님!”
“크크크, 눈빛이 저러코롬 한 넘은 엔간해선 울덜이랑 안 맞는 넘이여.”
은성을 포함한 8명도 멀쩡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칼에 베이고 찔려 피를 뚝뚝 흘렸다.
단지 바닥에 드러누운 사람들보다 상처가 얕았을 뿐이다.
일어난 보스는 잔인한 눈빛으로 그런 은성의 무리를 쏘아보았다.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집념으로 회칼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붉게 물든 손잡이의 붕대에서 혈액이 쥐어짜여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190cm의 거구의 조폭도 피에 쩔은 회칼을 입에 물고 넝마가 된 웃통을 훌러덩 벗어 던졌다.
가슴팍의 새겨진 사나운 호랑이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었다.
그 아가리에서는 드라이버에 숭숭 구멍이나 줄줄 피를 흘렸다.
피를 토하며 포효하는 호랑이 같았다.
‘나 원, 거구한테 스무 명이 넘게 붙었는데도 사태가 이 지경이구만!’
보스까지 일어났고 8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조차 모두 칼에 베이거나 찔려 조폭을 이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였다.
은성의 무리는 사기가 급격하게 꺾여버렸다.
저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포기한다면 어차피 죽을 테니까 죽지 못해 싸울 수밖에 없겠지!’
죽기 싫은 것은 다 마찬가지.
은성의 뒤편에 선 사람들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이 먼저 덤벼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저런 상태로는 다 죽을 것 같은데? 그렇게 인원이 많아도 숙련된 칼잡이에게는 역부족인가? 혹시 전에는 은성이 조폭들과 손을 잡았던 건가? 그래 놓고 우리에게는 마치 세상을 구원할 정의의 사도인 양 굴었던 건가?’
아무래도 은성의 무리가 조폭들을 이길 수는 없어 보였다.
이대로 전멸해버릴 것이 눈에 훤했다.
여태 구경만 하던 남구가 바지춤을 뒤적거렸다.
부스럭대는 소리에 예솔이 남구를 빤히 바라봤다.
모습을 드러내는 기다란 가윗날 두 쪽에 예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솔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 뭐 해? 설마!”
대꾸 없이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남구의 팔뚝을 예솔이 온몸으로 꽉 부둥켜안았다.
팔 전체에 폭신한 감촉이 느껴졌다.
돌아보는 남구를 향해 예솔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눈물이 양옆으로 튀어 나갔다.
“안 돼, 남구야! 그냥 있어.”
“풋!”
비틀린 입꼬리에서 가소롭다는 듯 실소가 새어 나갔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얘가 왜 이래?’
“가면 너 죽을 것 같아!”
계속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툭툭 쏘아붙이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남구는 귀찮아서 지나가듯 한 마디를 뱉어냈다.
“벨런스를 맞출 뿐이야.”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예솔은 남구를 향해 눈물 그득 고인 눈을 맞추며 되물었다.
“밸런스?”
남구는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는 흠뻑 젖은 예솔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얼굴에서 왠지 모르게 눈을 떼기 힘들었다.
되묻는 예솔의 표정이 참 순진무구하고 선해 보였다.
‘이런 표정, 이런 얼굴······. 얼마 만에 보는 거지?’
이런 얼굴을, 이런 표정을 짓던 사람들은 얼마 가지 못했었다.
그래서 꽤 오랜 기간 볼 수 없었다.
이 아이는 얼마 안 가 사망할 것이 확실했다.
얼굴만 봐도 누가 금방 죽고 누가 오래 버틸지 알 수 있었다.
남구는 이 아이의 곧 죽을 운명에 아주 미약한 안타까움이 들어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쯧!”
‘멍청한 아가야, 난 지금 매우 취약한 상태란다. 쟤들과 정면으로 붙어 이긴다고 확신을 못 해! 나한테 유리하도록 양 진영에 팽팽한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할 것 아니니, 그래야 계속 자기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지.’
발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애타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 그냥 같이 있자. 가면 죽을 거야. 제발 가지 말아줘. 혼자 죽는 거······. 무서워. 흐윽!”
남구는 정면을 주시한 채, 발뒤꿈치가 들린 그 상태 그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베어버릴 듯 가늘게 조였던 눈꺼풀을 둥그렇게 뜨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해맑은 목소리가 너무나도 처절하게 들렸다.
해맑음과 처절함 사이에서 괴리감이 느껴졌다.
저런 청량한 절망감은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 목소리에는 자신을 염려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염려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희미한 기억 저편에 할머니뿐이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라며 애원하는 사람은 딱 한 종류뿐이었다.
자신을 헤치려다 되려 죽음을 목전에 둔 자.
남구는 언제나 자비를 베풀지 않았었다.
갑자기 몸속에서 펄펄 끓는 물이 수증기를 뿜어낼 것만 같았다.
끓는 김이 구멍이란 구멍은 다 뚫고 나와 기적 소리를 낼 것만 같아 숨을 쉬기 힘들었다.
“후우우우우우우······.”
가슴 속 아주 깊숙한 곳에 단단히 묻어 놓았던 어떤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울컥하여 머리털이 쭈뼛쭈뼛 곤두섰다.
참을 수 없이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 기다란 호흡으로 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후우우우, 안 죽어.”
“으흑! 흑흑.”
예솔이 서럽게 흐느꼈다.
죽음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있어 봐.”
매달리듯 끌어안은 예솔의 양팔을 밀어 내리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남, 남······.”
“다녀올게.”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쏟아내는 예솔을 뒤로 하고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걸어 나갔다.
자꾸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우우우!”
마지막으로 긴 숨을 뱉고 정면을 바라보는 남구의 얼굴은 서리가 낀 듯 싸늘했다.
역시 습관적으로 눈꺼풀을 가늘게 조이고 눈동자를 재빠르게 움직였다.
촤아아아-
혈액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웃차!”
조폭 보스는 가장 가까운 표적의 목을 그었다.
“카아아아악!”
베인 남자는 거북한 괴성을 지르며 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쓰러져 경련했다.
경련도 오래가지 못했다.
제대로 경동맥이 잘려 나갔다.
처음에는 은성을 노렸으나 효율이 높지 못했다.
팔이 골절됐는데도 재빠르게 칼날을 피해 다녔다.
체력도 좋았다.
발로 허벅지를 얻어맞고 생각을 바꾸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해왔고 특히 발차기를 수련한 티가 났다.
은성을 노리는 척하다가 본인을 협공하러 접근하는 대상을 공략했다.
이미 한 명은 죽여 버렸다.
벌써 두 번째다.
“어서 망치 달라고!”
은성은 파란 넥타이를 매고 다 찢어진 양복을 입은 남자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자가 망치를 들고 있었다.
사용하지도 않고 멀찍이 도망을 다니면서 가지고만 있었다.
“시, 싫어! 이게 니 꺼야?”
파란 넥타이에 양복 입은 남자는 죽음의 공포에 이성을 잃고 공황 상태였다.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이 그랬다.
의지를 가지고 싸우려던 사람은 먼저 덤빈 덕분에 벌써 제압당하고 말았다.
퍽-
거구의 조폭이 상대의 어깨를 잡고 발 안쪽으로 발목을 후려쳤다.
“헉!”
공중에 붕 떠서 모로 떨어졌다.
쿠웅-
“뒈져라! 씨발 놈아!”
푸욱-
육중한 덩치로 깔아뭉개며 회칼을 쑤셔 넣었다.
모두걸이에 넘어간 사람의 배 속에 깊숙하게 칼날이 들어왔다.
“아아아아악!”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연달아 두 번을 더 빠르게 찔러 넣고는 바로 일어났다.
‘총 세 번을 먹이는 게 습관이군.’
조폭 보스와 거구의 똘마니는 가쁜 숨을 내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제는 대항하는 자가 없었다.
3명은 바닥에 누워 가는 경련만 간헐적으로 일으켰다.
4명은 최대한 조폭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시멘트 벽면에 등을 비비며 오지 말아 달라는 눈빛을 간절하게 발하고 있었다.
벌벌 떨고 있는 그들을 제외하면 은성만이 유일하게 일정 거리를 두고 씩씩거리며 눈을 부라렸다.
거구의 조폭이 은성을 향해 소 뚜껑만 한 손바닥을 까딱이며 손짓했다.
“시벌넘아! 이리 와, 이리 와.”
조폭 보스도 은성을 불렀다.
“아야, 인자 고만 끝내 불자. 피곤혀.”
그때 난데없이 오라는 은성은 안 오고 같은 교복을 입은 웬 음험해 보이는 아이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작은 아이가 너무 앙상해 없던 동정심마저 자극할 정도였다.
휑한 눈 밑에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마냥 간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다가오더니 반으로 쪼개진 조경 가위 두 쪽을 한데 모아 겨드랑이에 턱 끼워 올렸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비벼댔다.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왐마? 니는 뭐여?”
남구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씩 웃었다.
“한 자리 비죠? 먼저 가신 분 자리, 제가 채울게요. 어차피 티켓은 3장이잖아요.”
거구의 조폭이 남구의 진로를 가로막으며 보스를 돌아봤다.
“형님! 우리한테 붙고 싶나 본데요?”
남구는 비굴한 웃음을 살살 흘리며 말을 이었다.
“흐흐, 힘드시죠? 좀 쉬세요. 저도 티켓값은 해야죠. 염치가 있지, 무임승차는 저도 싫어요.”
굽신거리며 아부하는 모습에 보스와 똘마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크, 주댕이 한번 싹싹 허구먼. 대세를 알어.”
“하하하, 뭐 이런 말라비틀어진 멸치 대가리 같은 게 다 있냐? 그건 들 수 있겠냐?”
거구의 조폭이 턱짓으로 조경 가위를 가리켰다.
“흐흐, 남자 아닙니까? 이 정도는 들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두 손을 마주 잡고 조경 가위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90도로 숙어진 머리에 둘은 조소를 띄었다.
조폭을 따라 하려는 치기 어린 어린애 같았다.
쓰러져 눕고만 싶던 그들에게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싸우다 죽어도 그만, 안 죽어도 한 자리는 남았다.
여차하면 없애버려도 그만이었다.
조폭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크크크, 밸 그지 깽깽이 같은 놈을 다 보는구먼.”
“하하하! 그럼 어디 한번 우리 넘버 쓰리 실력 좀 볼까?”
남구가 깊숙하게 숙였던 고개를 들고 헤실헤실 웃어댔다.
“흐흐, 실력 발휘 한번 해 보겠습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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