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최종 점검 (1)
펜트하우스에 입주한 지도 어언 4년이 지났다.
바야흐로 은성에게 펴 보였던 손가락 네 개의 시점이 다가왔다.
남구가 마계에 입성한 지 5년, 대규모 소환이 이루어진 지 4년 6개월이 지나는 이 시점.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남구의 귓가를 어지럽혔다.
새카맣게 타들어 가 뿌리 근처만 남은 나무둥치들이 그을린 대지 위에 처량하도록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화진이 너울거리는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깨 위로 걸쳐 놓은 참룡도에 스킬 한기파동을 충전해 나갔다.
남구의 육체 나이도 이제 20대 초중반쯤 됐을 것이다.
키도 188cm까지 훌쩍 커버렸다.
높은 어깨 위에서 점멸하던 푸른 광채가 초승달처럼 완연히 떠올랐다.
남구가 한기파동의 충전을 완료한 참룡도를 어깨 위에서 전방으로 쭉 뻗어 냈다.
팔을 뻗자 핵산도 단전에서부터 오른팔을 지나 참룡도의 도신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삽시간에 널찍한 도신에 백색 오러가 맺혔다.
육중하고 거대한 도신에 두 가지 기운이 동시에 서렸다.
몸 밖으로 빠져나온 핵산의 기운이과 참룡도의 한기파동이 하나의 도신을 공유했다.
핵산의 백색 광채와 한기파동의 푸른 광채가 어우러졌다.
하지만 핵산의 압도적인 기운에 묻혀 참룡도의 스킬 한기파동은 그 빛이 퇴색해 보일 정도였다.
도신에 오러를 자유자재로 뽑아내는 바로 이 시점, 과거 자신의 경지를 한참이나 넘어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류 최강자였던 은성마저 추월했다.
바야흐로 남구는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의심의 여지 없이 인류 최강자였다.
핵의 두 번째 조각을 얻은 계기와 더불어 100개의 황금 룰렛 이용권을 통해 쏟아져 나온 무수한 스킬과 장비들은 남구를 단시간에 한 차원 높은 경지로 이끌었다.
비단 남구 혼자만의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남구에게 잉여인 스킬과 장비들 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귀하디귀한 아이템이었다.
남구가 100개의 아이템을 획득한 이후로 팀원들 또한 단번에 초인의 경지에 다다랐다.
남구가 세운 선순환 구조는 사람들의 능력을 차츰 눈덩이처럼 불렸다.
4년 6개월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거의 사망자가 나오지 않는 경지였다.
데스 게임에서 복귀한 인원들은 언제나 보상을 들고 남구가 있는 펜트하우스로 찾아왔다.
사람들은 펜트하우스를 체험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언제나 손꼽아 기다리고는 했다.
남구는 무작위로 나온 보상을 일괄 정리하여 적재적소에 분배했다.
사람들은 잉여 스킬을 철저히 배제하고 각자의 특기와 특성에 맞게 필요한 스킬만을 중적으로 키워나간 덕분에 신체 능력을 향상할 생명 포인트를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모을 수 있었다.
최단 시간에 최고 효율로 육성된 그들은 지금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40에서 50 스텟까지 찍은 그들은 이제 더는 신체 능력 스텟이 오르지 않을 정도로 한계에 맞닿아 있었다.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스킬과 신체 능력이 극한에 이른 고트족의 공격대는 현존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공격대를 형성해 이곳에 보내지기 하루 전, 남구는 핵산1과 핵산2를 완전히 하나로 통합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시스템 메시지를 띄워 올렸다.
[핵산 ★★★★★ : 핵의 첫 번째 분신과 두 번째 분신의 융합체. 핵산1과 핵산2의 융합체로써 생명 에너지를 근간으로 하는 핵산의 기운을 오러와 마력의 형태로 자유롭게 변환할 수 있다]
[핵산 운용 시 모든 신체 능력 60% 상승]
[신체 재생 능력 1,000% 상승]
[내구력 400% 상승]
[회복력 400% 상승]
[지구력 400% 상승]
남구가 도신에 맺힌 백색 오러를 힐끗 보았다.
아랫배에 자리 잡은 핵산을 운용할 때면 심장에 꽈리를 튼 핵산이 힘을 보탰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근접 공격이든 원거리 공격이든 두 배로 불어난 핵산의 기운이 운용되었다.
얕은 둔덕에 올라 앞을 내다보던 남구가 발걸음을 떼었다.
그러자 남구의 뒤를 따라 고트족 낙인이 찍힌 400명의 인원도 함께 나아갔다.
이미 진을 치고 있던 2개의 공격대 무리에서 몇몇이 진동하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헉! 고트족이다.”
“뭐? 고트족?”
“다, 다행이야!”
“그렇다면 남, 남구?”
“정말 남구가 온 거야?”
“와! 남구다.”
모든 인원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와아아! 남구다, 남구가 나타났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연합 공격대 무리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이미 여러 차례 각각의 족속이 같은 스테이지에 투입되어 연합팀으로 레이드를 진행했었기 때문에 남구의 무용담은 싸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전혀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 쉬지 않고 오르내렸다.
남구는 마족과 인류를 막론하고 그 위용을 만방에 떨쳤다.
남구의 진행 방향에 따라 홍해가 갈라지듯 인파가 갈렸다.
남구가 3개 연합팀의 중앙에서 선두로 나왔다.
1호실 팀원들이 남구의 지근거리에서 뒤를 따랐다.
그중에는 예솔도 있었다.
늑대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굵직한 목소리를 발했다.
“잘 왔네! 이번 레이드는 안심이야!”
“네, 부장님! 무탈하셨군요.”
“허허허! 덕분에 잘 있었네.”
“요즘도 말썽부리는 놈들 있어요?”
“자네랑 만난 이후로 신기하게도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네.”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요, 뭐!”
남구의 눈동자가 옆으로 스르륵 돌아 박 부장이 이끄는 족속의 이인자라 할 수 있는 구레나룻의 남자를 보았다.
화들짝 놀란 구레나룻의 남자가 남구의 눈을 피해 시선을 깔았다.
박 부장의 골머리를 아프게 했던 인간이었지만 남구를 만난 후로 조용해졌다는 후문이었다.
남구가 이끄는 고트족만이 아이템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게 아니었다.
박 부장이 우두머리로 있는 족속도 어렵사리 독점 구조를 깨뜨렸다.
그렇게 운영하는 곳은 지금까지 만나본 족속 중에서 박 부장이 이끄는 족속이 유일했다.
남구가 박 부장을 힐끔 돌아보며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하여간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아빠!”
박 부장의 고개가 박영호의 목소리를 따라 돌며 반가움의 핀잔을 날렸다.
“다 큰 녀석이 아빠가 뭐냐?”
박영호가 빙긋 웃으며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제는 몇 번 봤다고 달라진 외모에 적응한 모습이었다.
다른 공격대의 우두머리가 남구의 곁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말로만 들어왔던 남구라는 인물을 실제로 보는 자리였다.
몇몇 공격대장을 그 자리에서 단칼에 죽여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이제 네가 대장해라.”라고 말했다는 남구의 일화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했다.
남구와 처음 만나게 된 다른 공격대의 우두머리가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연출하며 차오른 숨을 헐떡거렸다.
“헉헉! 처음 뵙겠습니다. 전 제라드라고 합니다. 위명은 익히 들······.”
“오러를 뽑아 놓고 있어서, 볼일 좀 보고 다시 얘기하죠.”
오러를 마치 자판기 커피라도 뽑은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제라드는 대답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네네!”
제라드가 도신에 뻗어 나온 눈부신 광채를 한껏 부러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눈동자가 제라드와 똑같은 눈빛을 띠었다.
제라드는 오슬오슬한 한기가 느껴지는지 어깨를 움츠리며 팔짱을 꼈다.
남구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박 부장을 돌아봤다.
“시험할 게 있는데 이번엔 저한테 그냥 맡겨 주세요.”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홀로 걸어 나가는 남구를 보며 박 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허! 성격 급한 건 세월이 지나도 변함이 없구만.”
“우헤헤헤헤!”
박 부장이 화통하게 웃어젖히는 삼식을 돌아보며 같이 픽 웃고 말았다.
“자네 웃음소리도 변함없는 건 마찬가지야. 침 튀기는 것도 여전해!”
“우헤헤, 오늘 재미있는 구경하실 준비 됐어요?”
삼식의 의미심장한 얘기에 박 부장이 잿빛 연기 사이를 헤치고 홀로 터벅터벅 나아가는 남구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제라드도 남구의 뒷모습을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박 부장과는 완전히 다른 눈빛이었다.
제라드가 이미 저만치 멀어지는 남구의 뒷모습과 제자리에서 요지부동인 남구의 공격대원들을 번갈아 휘적휘적 돌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안 따라가요?”
예솔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 정도는 문제없어요.”
“네?”
제라드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눈을 화등잔만 하게 부릅떴다.
그에 반해 남구의 대원들은 한결같이 태평한 표정이었다.
“저, 저걸 혼자 잡는다고요?”
제라드가 두려움이 뚝뚝 묻어나는 눈빛으로 먼발치에서부터 요란스럽게 다가오는 미션 목표를 넘겨다 보았다.
아파트 한 동만 한 거대한 크기의 드래곤이 제 서식지에 멋대로 들어온 인간들을 처리하기 위해 쿵쿵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시스템은 저 거대한 괴수를 자이언트 파이어 드래곤이라 명명했다.
온통 새카만 잿가루가 바람을 타고 이곳 근방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주변에 살아있는 나무라고는 단 한 그루도 없었다.
군데군데 아직까지 타다남은 불씨가 불어오는 바람에 빨간 불꽃을 피워올렸다.
3개의 공격대가 집결한 이곳에는 불에 타 녹아내린 무엇과 짓밟혀 납작해진 무엇이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숯덩이가 되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숯덩이 일부는 먼저 트라이한 다른 족속의 공격대원이었다.
미션을 달성하지 못하고 전멸한 모양새였다.
제라드가 예상했던 일이 예상대로 벌어졌다.
거대 괴수의 쩍 벌어진 아가리에서 수십 명 정도는 한 번에 쓸어버릴 만한 굵직한 불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제라드뿐만 아니라 천 명에 가까운 인원이 기겁했다.
“어헉! 저런!”
남구의 뒤통수에서 화들짝 놀란 사람들의 기함이 대규모로 터져 나왔다.
남구는 사람들의 아우성에 아랑곳없이 뿜어지는 화염을 향해 참룡도를 수직으로 그어 내렸다.
휭-
맥시멈까지 충전된 한기파동이 득달같이 뻗어나가 화염과 맹렬하게 충돌했다.
콰과과과과광-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한기파동이 곧게 뿜어진 화염과 맞부닥친 지점에서부터 아가리를 향해 불줄기를 타고 순식간에 얼어나갔다.
쩌저저저저적- 꽈아앙-
불줄기를 모두 얼려버린 한기파동이 한껏 열어젖힌 아가리에 직격했다.
자이언트 파이어 드래곤의 안면이 아가리를 벌린 모습 그대로 꽝꽝 얼어버렸다.
꽈자작-
부들부들 떨리던 쩍 벌어진 아가리가 굳세게 닫혔다.
어마어마한 치악력에 안면을 뒤덮고 있던 얼음이 조각조각 깨져 나갔다.
동시에 참룡도의 도신에 어려있던 핵산의 기운이 예리한 칼날의 형상으로 얼어붙은 화염 줄기를 가르며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짜자자자자작- 촤아아아악-
공중에 기다란 핏줄기가 뿜어졌다.
오러의 형태로 날아든 날카로운 핵산의 기운이 자이언트 파이어 드래곤의 안면을 베고 지났다.
원래는 화염 줄기였던 산산이 조각난 얼음 파편이 떠오른 핏방울과 함께 흐드러지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자이언트 파이어 드래곤이 목청이 터져라 울부짖으며 그 거대한 덩치를 비틀거렸다.
크아아아아앙-
길쭉한 아가리와 한쪽 안구가 깊숙이 베어 줄기차게 핏줄기를 허공에 뿌려댔다.
하늘 높이 치솟는 핏줄기가 불꽃놀이의 서막을 알리는 축포라도 되는 양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남구가 왼손을 활짝 펼쳤다.
피융-
순간 손바닥에서 핵산의 기운이 레이저 광선 같은 백색 빛줄기 형태로 쏘아졌다.
퍼억-
냉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빛의 막대가 그대로 자이언트 파이어 드래곤의 가슴을 직격했다.
총에 맞은 듯 뻥 뚫린 가슴 위로 울컥울컥 핏물이 솟구쳐 나왔다.
사무치는 한기로 인해 직격 된 주위에 널따랗게 하얀 서리가 끼었다.
피융- 슝- 슈우웅- 퍽- 퍼억-
한기가 피어오르는 백색 빛줄기가 심장 부근에 계속 꽂히기 시작했다.
자이언트 파이어 드래곤은 이 아크리 아일랜드에서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에 겁을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물며 꽁무니를 빼 본 적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길게 베어진 안면을 자글자글 흉측하게 일그러뜨리며 이빨이 숭숭 빠지고 갈라진 아가리를 벌려 천지를 떨쳐 울리는 포효를 토해냈다.
크아아아앙-
자이언트 파이어 드래곤이 수많은 생명체를 짓밟아 죽인 두꺼운 다리로 땅을 힘껏 박찼다.
쿠웅-
그 어마어마한 덩치가 엄청난 높이로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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