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크리처 (4)
“허억!”
뒤에서 날아든 총알이 등에 박혔다.
‘크윽, 어떤 새끼가!’
백 스텝을 밟아나가던 몸의 중심이 등을 파고드는 커다란 충격에 급격히 앞으로 쏠려 버렸다.
순간의 휘청임을 크리처는 놓치지 않았다.
쒜액-
서슬 퍼런 갈고리발톱이 안면을 대각선으로 벼락같이 훑고 지났다.
“아악!”
우악스럽게 갈라진 고랑을 타고 핏줄기가 튀어 올랐다.
‘젠장! 시, 시야가!’
솥뚜껑만 한 왼쪽 앞발에 머리통이 통째로 날아갈 뻔했지만, 정신과 근육에 메모리 된 스웨잉 기술이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유연하고 탄력 넘치는 육체는 중심이 앞으로 무너지는 와중에도 상체와 머리를 오른쪽으로 재빨리 젖혔다.
한껏 날을 세우고 대각선으로 날아오던 다섯 개의 발가락 중 가장 바깥쪽 세 개가 기울어진 안면을 타고 수직으로 길게 뻗은 고랑을 만들었다.
‘왼쪽 눈두덩이에 한 줄! 뺨에 두 줄!’
얼굴 왼편에 3줄기의 화끈거림이 느껴졌다.
30 스텟에 이르는 경이로운 육체의 반사 신경 덕택에 발톱 끄트머리만 허용했다.
아름답기까지 한 얼굴에 밭고랑이 세 개나 파였지만 남구에게 그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후유, 간발의 차로 목숨은 건졌군. 편편이 저며진 고깃덩이가 될뻔했구나!’
남구는 철렁 내려앉았던 마음을 순식간에 가다듬었다.
어둑한 공간에 연기까지 자욱한데 시야마저 붉어졌다.
게다가 파공음을 울리며 사방으로 탄환이 날아다녔다.
민첩한 크리처 떼거리를 상대하기에도 벅찬 마당에 시야에 심각한 문제까지 발생한 남구는 뒤를 돌아볼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썩을! 조준 사격해서 크리처만 맞추던가. 이러다 진짜 뒈지겠네!’
남구가 총에 맞아 위태로웠지만, 뒤에서는 탄창까지 갈아가며 연이어 사방팔방 난사를 해댔다.
타다다당-
남구의 윙윙거리는 귓가로 여러 발의 탄환이 스쳐 지났다.
피융- 슈우웅- 슈웅-
바로 옆으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시력과 청력에 타격을 받아 감각이 무뎌진 사이 크리처의 갈고리발톱이 전신을 훑고 지났다.
가각- 가가각-
날카로운 갈고리발톱이 가슴팍을 할퀴었지만, 방탄조끼 덕분에 주요 장기는 보호할 수 있었다.
남구는 최선을 다해 머리와 얼굴로 날아드는 공격만은 기를 쓰고 피해 냈다.
하지만 어깨나 팔다리까지 모두 보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목이 날아갈 수는 없었기에 다른 부위는 어느 정도 내 줄 수밖에 없었다.
사지에서 핏줄기가 줄기줄기 튀어 올랐다.
서걱-
“아아악! 이런 제기랄!”
날카롭게 구부러진 발톱이 할퀴고 지난 자리에서는 여지없이 끔찍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고통에 겨운 남구의 비명이 기다란 복도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남구가 뒷걸음으로 향하는 복도 진지에는 2조를 맡은 7인의 사무직원뿐만 아니라 제일 먼저 도주한 연인과 쌍둥이 일가족을 비롯해 비교적 상처가 가벼워 발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던 사람들이 합류해 있었다.
그들이 매복한 복도 진지에서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소란의 주인공은 남구의 일행이 마트에 진입할 때 제일 처음 마주했던 여자 중 한 명이었다.
고초를 겪었던 여자들은 모두 다 죽었는지 이곳에는 단 한 명만이 자리해 있었다.
박 부장이 화들짝 놀라 여자를 돌아보며 외쳤다.
“쏘, 쏘지 마! 사람 있는 거 안 보여?”
박 부장의 만류는 공허할 뿐이었다.
“꺄아아아!”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크리처 무리에 잔뜩 겁을 집어먹은 여자는 귀가 먹어버린 듯 박 부장의 목소리에 아무런 반응 없이 오직 방아쇠를 쥐어짜며 연이어 울부짖을 뿐이었다.
타다다다당-
크리처의 압도적인 위용을 몸소 체험한 탓에 겁에 질릴 대로 질려버려 당긴 방아쇠를 절대로 놓지 않았다.
남구는 날아든 탄환이 한발 한발 꽂힐 때마다 중심을 잃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기회를 포착한 날카로운 갈고리발톱은 그때마다 가차 없이 훑고 지났고 줄기줄기 찢겨나간 옷자락 안에서는 핏줄기가 속절없이 흩뿌려졌다.
살을 에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일그러졌던 남구의 표정이 어느 순간 더없이 냉랭해졌다.
상처가 늘어갈수록 오히려 무던해지는 괴이한 모습이었다.
긁힌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 나간 자리에서 복도 벽면까지 핏줄기가 뿌려졌지만, 살모사가 새끼에게 제 살을 내주는 양 대수롭지 않게 팔다리 정도는 선심 쓰듯 대주곤 했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다르게 남구는 치열했다.
목과 머리는 물론이거니와 팔다리가 날아가지 않도록 중력제어를 최선을 다해 적재적소에 적용하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집중력이 극도로 발휘되자 통증을 느낄 새도 없었다.
몰입의 극치에 다다라 한없이 침잠한 남구와는 정반대로 복도 진지에는 미친 듯이 길길이 날뛰는 여자가 있었다.
죽음의 공포에 집어삼켜진 여자는 사리 분별을 하지 못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고 여긴 나머지 남구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발광했다.
소름 끼치도록 흉측한 크리처가 더 가까이 접근 하기 전에 무조건 저지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총구를 좌우로 휘저으며 찢어지는 절규와 함께 총알을 난사했다.
꺄아아아아! 타다다다당-
경박하게 이어지는 비명과 방정맞게 연속되는 총성의 틈바구니를 뚫고 거세게 울려 퍼지는 단 한 발의 격발음.
타앙-
미친 듯이 난사하던 여자의 옆머리가 터져 나갔다.
총알이 들어간 반대편 복도 벽면에 뇌수가 흥건하게 흩뿌려졌다.
귀청이 떨어져라 질러대던 비명과 총성이 한순간 사라지며 마치 진공상태가 된 듯했다.
옆머리가 뻥 뚫려버린 여자는 탄피와 탄창과 피가 버무려진 웅덩이로 짚단 넘어가듯 뻣뻣하게 쓰러졌다.
철퍼덕-
복도 진지에 모여있던 사람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여자의 머리에 총을 쏜 사람을 쳐다봤다.
박 부장이 두 눈을 한껏 부릅뜨고 가슴을 거칠게 들썩였다.
“허억! 허억!”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총구도 똑같은 박자로 들썩거렸다.
살인을 처음 경험한 박 부장은 어깨를 출렁이며 몰아 쉬는 숨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죽은 여자가 총을 쏠 때 배불뚝이 변 과장도 소총을 만지작만지작하며 크리처를 향해 같이 쏠까 말까 고민했었다.
조급하고 두렵기는 변 과장도 피차일반이었다.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는 박 부장의 눈치를 가만히 살피던 변 과장이 입을 열었다.
“썅년이 좆뺑이 치는 아군 뒤통수를 쳐? 좆이나 먹어라. 에이, 퉤!”
변 과장이 오만상을 쓰며 머리가 한 움큼 날아가 널브러진 여자에게 침을 뱉었다.
사람들은 넋이 나가 변 과장의 욕지거리를 얼어붙은 채 듣고만 있었다.
바로 옆에서 고막을 울리는 과격한 욕설에 박 부장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박 부장의 떨리지만 우렁찬 외침이 복도 공간에 짱짱하게 울려 퍼졌다.
“사, 사격하지 마! 자신 있어도 하지 마! 조금만 기다려!”
박 부장은 경황없는 와중에도 남구를 보고 있었고 그의 외침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
지하 매장을 향해 내려오던 남구가 방향을 틀려고 했다.
후우웅-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크리처의 발톱을 주저앉다시피 쪼그려 피해 냈다.
바로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벽면을 밟고 크리처의 뒤편으로 뛰어내렸다.
끝부분이 송곳같이 뾰족한 꼬리가 곧바로 등을 찔러 들었다.
퍼억-
“으윽!”
타격감이 심하게 전해졌지만, 방탄조끼를 뚫을 수는 없었다.
등에 가해진 충격에 남구의 무게 중심이 기우뚱 앞으로 쏠렸다.
뒤에서 달려 내려오던 또 다른 크리처가 발톱을 바짝 세우고 남구의 뺨을 후려쳤다.
남구는 등을 찔린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안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굴러버렸다.
부우웅-
몸을 잔뜩 웅크리고 동그랗게 말아 구르는 남구의 머리 위로 허공을 줄기줄기 찢어발기는 갈고리발톱의 바람결이 느껴졌다.
남구가 굴러 일어나며 몸을 뒤틀어 돌아섰다.
비어버린 오른손에는 다시금 군용 대검이 어느새 뽑혀 있었다.
크리처의 발톱을 피해 위치를 바꾼 남구가 이제는 1층 매장을 향해 백스텝을 밟아 나갔다.
크리처들이 득달같이 내달리던 내리막길의 가속력을 잔걸음으로 겨우겨우 상쇄했다.
이어 길쭉한 몸을 급히 돌려 멀어진 남구를 쫓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했다.
남구의 손을 떠난 대검이 크리처의 이마로 날아들었다.
깊숙하게 박힐 듯 보였던 대검이 뺨을 찢고 날아갔다.
‘징글징글한 놈들! 순발력 한번 끝내주는군.’
어느새 남구의 코앞까지 바짝 따라잡은 크리처가 날카롭게 세워 든 앞발을 채찍처럼 휘두르며 급히 발을 빼는 종아리를 할퀴었다.
바짓단이 잘려 나가며 가는 핏줄기가 떠올랐다.
크리처의 주요 공격 부위가 바뀌었다.
내리막길에서는 주로 머리 쪽을 공격했다면 오르막길에서는 대부분의 공격이 하체로 날아왔다.
남구는 종아리가 베어지건 말건 관심도 없다는 듯 흔들림 없는 싸늘한 눈동자로 크리처를 쏘아 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시각 정보가 뇌를 거치지도 않는 듯 다리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끊임없이 스텝을 밟는 발이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채찍처럼 날아오는 발톱을 회피했다.
갈고리발톱이 종아리나 허벅지 안쪽으로 길게 들어와 훑을 때마다 싸늘한 눈동자에 푸른 광채가 어김없이 반득였다.
푸른 광채가 일 때면 크리처의 발톱은 옷깃도 스치지 못하고 허무하게 허공만을 갈랐다.
남구의 손 또한 발과 눈동자만큼이나 쉬지 않았다.
손아귀에 또 다른 군용대검이 들려 나왔다.
뒷걸음으로 연신 물러나며 손에 쥔 군용 대검을 반 바퀴 빙글 돌렸다.
허벅지를 노리고 날아오는 앞발의 궤적에 맞춰 역수로 쥔 대검을 비껴쳤다.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았을 때.
서억-
황홀하도록 짜릿한 손맛이 느껴진다.
‘이거지!’
허공에 두 개의 기다란 발가락이 핏줄기와 함께 떠올랐다.
“크아아앙!”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쩍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 왼손에 든 검을 곧게 찔러 넣었다.
푸욱-
‘됐어!’
목구멍 깊숙이 틀어박혔다.
꽈작-
빠져나오려는 검을 크리처는 덥석 물었다.
엄청난 치악력에 단번에 검신이 엉망으로 휘어지고 뒤틀렸다.
그대로 손을 놓고 바로 탄띠에서 대검을 뽑아 들었다.
“카앙! 카앙!”
목구멍을 찔린 크리처는 목에 가시가 박힌 듯 캑캑거리며 더는 쫓지 못했다.
워낙 깊게 박혔던 검이라 목구멍에서 쉽게 빠지지 않았다.
집요하게 남구를 쫓던 행보를 멈추고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박힌 검을 빼내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잠시라지만 세 마리보다는 두 마리에 쫓기는 게 훨씬 편했다.
양손에 군용 대검을 뽑아 들고 모두 역수로 쥐었다.
날아오는 크리처의 기다란 발가락을 노리고 대검을 놀렸다.
크리처는 상당히 지능적이었다.
동료의 발가락이 날아가는 것을 보더니 함부로 앞발을 뻗지 않았다.
일격에 치명상을 입힐 거리로 들기 위해 더욱 분주히 움직였다.
공격이 뜸해진 틈을 타 역수로 쥐었던 대검을 빙글 돌려 검 끝을 잡자마자 곧바로 가장 가까운 크리쳐의 이마를 향해 내던졌다.
양손의 대검이 꼬리를 물고 팽이처럼 날아갔다.
휘리리리리릭-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욕심으로 득달같이 달려들던 크리처의 앞발이 급히 땅을 밟았다.
뻑- 뻑-
두 개의 군용 대검이 짧은 거리를 휘돌며 미간과 이마에 연속으로 틀어박혔다.
회피가 늦어버린 크리처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카아아앙!”
급제동이 걸린 몸뚱이가 고꾸라지며 바닥에 뒹굴었다.
대굴대굴 구르다가 다시 일어서는 크리처를 항상 맨 뒤에서 몸을 사리던 큼지막한 덩치의 크리처가 곧장 추월해 앞으로 나섰다.
‘네 놈이군! 네놈이 우두머리로군!’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