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크리처 (3)
“안 돼! 그러지 마!”
꽈아아앙-
수류탄이 터졌다.
꽉 막힌 실내에서.
새어나갈 틈도 없이 그 어마어마한 위력을 고스란히 떠안은 매장 실내가 물결치듯 출렁였다.
폭발력의 파동이 그치자 또 다른 울림이 요동쳤다.
“끄, 끄아아아!”
“꺄아악!”
“아아악! 살려줘!”
“으악! 파, 팔이!”
천둥 같은 폭발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벼락같은 비명이 대신해 울려 퍼졌다.
누군가 달려드는 크리처에게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이판사판 수류탄을 던져 버렸다.
선두에서 진압 방패를 들고 나름대로 선전하며 사람들의 후퇴를 지원한 흔치 않던 몇몇 인원은 사지가 찢긴 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아직도 허공에 부유물이 날아다녔다.
가루가 된 집기 조각인지 건축 자재인지 살점인지 그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엎드려 있던 남구가 뽀얗게 뒤집어쓴 가루를 풀풀 날리며 사지 육신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이곳저곳 만져 보았다.
‘그나마 이만한 게 다행인가?’
온갖 집기를 동원해 칸칸이 장애물을 설치해 놓은 덕분에 수류탄 파편의 직접 타격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꽤 되었다.
충격파에 서 있는 사람은 없었으나 적어도 즉사는 면했다.
남구는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었고 따라서 폭발 지점에서도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한 터지기 직전 순간적으로 엎드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많은 사람이 걸레가 된 것에 비해서 크리처 무리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몇 마리가 군데군데 파편이 박힌 채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고 정신없는 몇 마리가 대가리를 흔들며 비틀거릴 뿐이었다.
끈질긴 생명력과 무지막지한 내구력이 특징인 크리처를 고작 이 정도로 섬멸할 수는 없는 일.
수류탄이 터질 때 바로 앞에 있던 크리처 한 마리만 앞발이 모두 날아간 채 뒤집힌 몸뚱이를 뒤틀며 펄떡거렸다.
앞발을 전부 잃고 전신의 두꺼운 거죽이 너덜너덜해져 나뒹굴었지만, 넝마가 된 몸뚱이를 심하게 요동치며 주변에 쓰러져 널려 있는 집기와 시체를 마구 헤집어 댔다.
하지만 저렇게 몸부림치는 것도 잠시뿐일 것이다.
크리처는 죽음을 직감하면 광전사가 된 듯 더욱더 거세게 발광하는 특성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발악을 멈추고 알아서 죽을 것이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눈앞에 보이는 사냥감을 앞뒤 없이 무차별로 공격하던 크리처들이 처음 접하는 수류탄의 가공할 위력에 놀랐는지 주춤거리며 상처 입은 몸을 추슬렀다.
하얗게 뒤집어쓴 이물질을 털어내느라 개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어댔다.
크리처도 이제 막 소환되어 모든 것이 아직은 낯설 때였다.
그 덕분에 거침없이 이어지던 살육의 시간이 잠시 잠깐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폭발의 충격에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끙끙 앓는 사람들이 비틀비틀 기를 쓰고 일어섰다.
사지가 날아가고 파편이 박혀 바닥을 구르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지만, 팔다리가 날아갔어도 숨이 붙어 있다면 일어나야 했다.
일어나 다시 싸우든 도망치든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아무리 큰 상처를 입었더라도 누워있기만 하다가는 일용한 양식이 될 뿐이다.
“아우, 귀 아파!”
엎드렸던 남구가 머리를 흔들어 젖히며 한쪽 무릎을 세워 앉았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하얗게 내려앉은 재가 풀풀 날렸다.
남구가 목청을 높였다.
“이쪽으로!”
남구는 자기가 내는 자기 목소리에 인상을 잔뜩 구겼다.
본인 목소리에도 귓가가 윙윙 울렸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남구의 목소리가 들려 온 방향으로 사력을 다해 후퇴하기 시작했다.
폭발에 휘말린 그들도 정신없이 이리저리 몸을 치대며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나, 나 좀 데리고 가!”
멀쩡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잠식당했다.
다리를 잃은 남자가 애처롭게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다들 자기 살기 바빴다.
크리처가 언제 또 덮쳐들지 모를 일이다.
멍멍한 정신을 수습한 남구가 서서히 일어서서 총기에 덮인 톱밥과 석고보드 가루를 탈탈 털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크리처를 향해 걸어 나갔다.
걸음 마다 나풀나풀 나부끼는 작은 입자들이 거슬려 숨을 길게 뱉어냈다.
“푸우우우우!”
‘죽으려면 혼자 죽든지. 수류탄을 그냥 까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기왕 죽는 거 다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귀찮아도 직접 무기를 분배할 걸 그랬나? 아우, 죽다 살았네.’
무기 분배를 하는 도중에 사람을 가려가며 통제한다면 갈등과 실랑이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급박한 상황에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서 그냥 다 풀어 버린 결과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야 말았다.
‘꼭 지휘관까지 갈 것도 없지.’
무능한 지휘관뿐만 아니라 등 뒤에 멍청한 아군 또한 적보다 더욱 무서운 법.
철저한 준비 하에 유능한 인원들과 함께해도 언제나 돌발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이런 아마추어들과 같이하기에는 꺼림직했다.
어떤 형태로든 한 번쯤은 분명히 사고가 터지리라 예상했던 남구는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신뢰할 수 없는 자들과 함께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었다.
이 사람들을 수족처럼 부리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철저히 통제하지 못할 바에야 철저히 외면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경미한 부상을 당한 사람부터 남구를 지나쳐 절뚝절뚝 부랴부랴 복도를 내려갔다.
옆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을 보지도 않고 크리처에게만 집중하던 남구의 시선이 출입구로 향했다.
좀비는 워낙 요란하고 시끄러운 놈들이었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고막에도 좀비들이 들이닥치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출입구를 힐끗 봤던 시선이 곧바로 되돌아와 크리처를 주시했다.
남구도 크리처 무리도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폭발의 여파로 주위가 난장판이었다.
겹겹이 쌓아 놓은 집기들이 곳곳이 파손돼 너저분하게 도미노처럼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집기 밑에 여러 구의 시체가 깔려 있었고 그 시체와 뒤엉켜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상처 입은 사람들의 신음과 도망치기 위해 버둥버둥 부스럭거리는 소음이 윙윙거리는 먹먹한 귓가에 끊임없이 이어졌다.
수류탄에 직격당해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천장에서 부서진 각종 설비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렸다.
그곳을 통해 파편과 먼지가 끊이지 않고 떨어져 내리며 흩날렸다.
유리가 깨져 나간 곳으로 좀비 떼거리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경쟁하듯 몸을 구겨 넣느라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깨진 문짝과 전면에 설치한 장애물이 곧 부서질 듯이 삐그덕댔다.
총탄과 수류탄 파편에 맞아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좀비의 시선을 차단하던 가림막이 폭발의 여파로 몽땅 날아가 버려 이제는 매장 안쪽만 정리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남구의 주변시에 좀비 한 마리가 매장 안으로 떠밀려 들어와 엎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남구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신경을 분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은 좀비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매장 바닥에 수두룩하게 널린 것이 다친 사람이다.
아직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은 아주 훌륭한 좀비의 미끼가 될 것이다.
비록 한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지금 남구의 처지는 그런 찰나의 시간이라도 필요했다.
‘흐음, 여섯 마리라······. 이거 상당히 부담스러운데?’
크리처 무리는 유독 당당하게 서 있는 남구를 덮치기 위해 태세를 갖추고 이제 막 걸음을 떼려 했다.
남구는 오직 그런 크리처에게만 집중했다.
‘그냥 내가 먼저 갈게. 빌어먹을 좀비들 때문에 시간이 내 편이 아니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철컥-
남구가 별안간 느닷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당긴 방아쇠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순식간에 한 탄창을 몽땅 비웠다.
빈 탄창이 빠져나오는 동시에 방탄조끼 앞부분에 달아 놓은 탄입대에서 새 탄창을 뽑아 올렸다.
철커덕-
눈 깜짝할 사이에 탄창을 갈아 끼웠다.
달가닥-
바닥에 빈 탄창이 떨어져 내렸다.
쿠웅-
미간에 스무 발의 탄착군이 동그랗게 형성된 크리처가 터저나간 양쪽 안구에서 핏줄기를 뿜어내며 꼬꾸라졌다.
버둥거리고 있지만 오래되지 않아 숨이 끊어질 것이다.
철컥- 타다다다다다다당-
후퇴 고정된 노리쇠 뭉치가 전진하자마자 흔들림 없는 총구에서 또다시 탄환이 연사 됐다.
크리처들이 날렵하게 바닥을 박찼다.
날 듯이 움직이는 크리처의 몸짓에 빗나가는 탄환이 수두룩했다.
드문드문 어깨와 다리와 가슴과 머리에 제각각 박혀 들었다.
총구가 크리처의 경로를 예측하고 상하좌우로 재빠르게 움직이며 점사를 시작했다.
타다당- 타당- 타다다당-
몸뚱이에 박혀 드는 탄환의 숫자가 점차 늘어 갔다.
남구의 까만 눈동자가 순간 반득였다.
당기는 방아쇠를 멈추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중력제어가 작용한 신체가 빗살처럼 움직였다.
물러난 자리에 크리처가 울부짖으며 덮쳐들었다.
“크아아앙!”
타다다당- 철컥- 철커덕-
한 스텝 크게 물러나는 사이 빈 탄창이 밑으로 떨어졌고 바람처럼 움직이는 손놀림에 탄입대에서 뽑혀 나온 새 탄창이 끼워졌다.
달가닥- 타다당-
빈 탄창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총구에서 불을 뿜었다.
화염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타다다당- 타다당- 타다다당-
크리처는 왔다 갔다 갈지자로 쏜살같이 남구의 앞을 스쳐 지났고 남구는 방아쇠를 끊어 당기며 잽싸게 물러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크리처 무리는 탄환을 온몸으로 맞이하면서도 끈질기게 남구를 쫓았다.
지그재그로 널뛰듯 뛰어다니며 앞발을 휘둘렀다.
날카롭게 휘어진 갈고리발톱은 번번이 간발의 차이로 남구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다란 앞머리가 가닥가닥 잘려 나가 허공에 너울너울 흩날렸다.
‘머리 안 잘라도 되겠군. 너희 머리만 잘라 줄게!’
남구의 눈동자가 순간순간 반득반득 점멸하듯 빛을 발했다.
놀라운 속도로 끊임없이 물러서며 되도록 대가리에 탄환을 박아 넣었다.
무리 사냥에 이골이 난 크리처가 사방에서 할퀴어대며 덮쳐들어 난감했다.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남구의 뒷걸음이 지하로 내려가는 복도로 향했다.
복도 통로로 접어들자 양옆에서 달려들던 크리처가 모두 앞쪽으로 몰렸다.
타다다다당- 타다당- 철컥-
총열이 휘어질 듯 새빨갛게 달궈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타다당- 타다다당- 타당-
신속하게 탄창을 갈며 최대한 머리를 노려서 끊임없이 쏘아댔다.
남은 다섯 마리는 전신에 총상을 입으면서도 대가리만큼은 총구의 방향에서 벗어나려 기를 썼다.
타당- 철컥- 철컥-
탄이 떨어짐과 동시에 복도의 좁은 폭에 회피할 공간이 부족했던 또 한 마리의 크리처가 집중된 총알 세례를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쓰러져 복도의 내리막길을 굴렀다.
다섯 탄창을 모두 소모한 남구가 농구공을 패스하듯 총기를 앞으로 던져 버렸다.
들이닥치는 크리처에게 소총을 토스한 양손이 재빠르게 옆구리로 당겨졌다.
카강-
던져진 소총이 크리처의 휘두른 앞발에 맞고 복도 벽면으로 날아갔다.
뒤로 물러나는 잰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권총 손잡이를 잡은 오른손을 쭉 뻗었다.
딸각-
38구경 리볼버가 뽑혀 나오자마자 불을 뿜었다.
탕탕탕탕탕타앙-
한순간에 여섯 발을 모두 발사하고 손에서 놓아 버렸다.
리볼버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여섯 줄기의 피를 뿌리며 달려든 크리처가 왼쪽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쉐액-
고개를 한껏 젖힌 남구가 왼쪽 옆구리에 매달린 검자루를 왼손 역수로 쥐었다.
휘둘러진 크리처의 갈고리발톱이 남구의 이마에서 나풀거리라는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머리카락을 잘라낸 왼쪽 앞발의 궤적을 향해 왼손 역수로 쥔 검을 뽑아내며 그대로 그어 올렸다.
쉭-
예리하게 휘어진 일본도 형식의 소도가 허공을 할퀴는 앞발의 발목을 스쳐 지났다.
촤아아아-
크리처는 핏방울이 튀어 오름과 동시에 울부짖었다.
“크아아앙!”
남구의 발도술에 갈고리발톱을 바짝 세운 큼지막한 앞발이 핏줄기를 뿌리며 잘린 머리카락과 함께 공중에 떠올랐다.
리볼버를 버린 오른손이 허리 뒤쪽으로 향했다.
허리춤에서 낫처럼 역으로 굽어진 짤막하고 두꺼운 쿠크리가 뽑히자마자 울부짖는 크리처의 정수리를 수직으로 직격했다.
쩍-
남구는 크리처의 정수리에서부터 콧잔등까지 깊숙하게 파고든 쿠크리를 손에서 놔버리고 뒷걸음질을 멈추지 않았다.
깊게 박힌 쿠크리를 뽑아내려 하다가는 남구의 머리도 똑같이 쪼개질 것이다.
온몸에 총알구멍이 가득해도 펄펄 날던 크리처는 길쭉한 앞발에 발목이 뎅겅 잘려 나간 채 묵직한 쿠크리를 깊숙이 받아들인 대가리로 복도 바닥을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쿠우웅-
득달같이 덮쳐들던 추진력을 이기지 못한 몸뚱어리가 구르기 시작했다.
쩍 갈라진 대가리를 처박고 우당탕 비탈진 내리막길을 굴러내리는 크리처의 경로에 굵은 핏줄기가 기다랗게 그 뒤를 따랐다.
크리처 세 마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나자빠졌다.
복도 통로를 줄줄이 꽉 메우던 크리처가 순식간에 3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3마리나 남았군. 상처 입은 짐승이 더 위험하다고 했던가?’
남은 크리처들은 총알구멍이 숭숭 뚫려 너덜너덜한 몸으로 사방 천지에 핏방울을 두둥실 흩날리며 더욱 집요하게 남구를 쫓았다.
남구의 오른손이 탄티로 향했다.
날이 바짝 선 군용 대검이 번뜩이며 빠져나왔다.
타다다당-
뒤쪽 복도 진지에서 총성이 울렸다.
남구는 대검을 뽑아내자마자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허억!”
뒤에서 날아든 총알이 등에 박혔다.
‘크윽, 어떤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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