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주특기
똑똑-
난데없이 옥상 문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7인의 사무직원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긴장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닷새 동안 바깥세상은 그야말로 혼돈이 소용돌이치는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지만, 문을 꼭 걸어 잠근 옥상에 작은 세상만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하기만 했었다.
바싹 말라 배만 불뚝 튀어나온 40대 배불뚝이 남자가 덜덜 떨려 나오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동료 직원들에게 속삭였다.
“좀, 좀비가 여기까지 올라왔나 봐!”
머리에 함박눈이 쌓인 듯 온통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50대 후반의 남자가 고개를 꺄웃거렸다.
쓸어 넘긴 흰머리가 다시 흐트러졌다.
“이건 노크 소리 같은데? 좀비가 노크할 리는 없지 않나?”
옥상 출입문과 서로를 번갈아 돌아보며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라 엉거주춤 서 있는 7인의 귓가에 문밖에서 앳된 음성이 들려왔다.
- 옆집에서 왔습니다.
갈색 머리 여자가 반색했다.
“어머! 그 학생이야!”
놀란 사람들이 저마다 입을 열었다.
“허!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와! 대단한데?”
“죽으려고 환장했군!”
“쟤는 용감한 거야? 멍청한 거야?”
배불뚝이 남자가 같잖다는 듯 조소를 흘렸다.
“철이 없는 거지. 갑자기 나타났을 때부터 난 멍청하고 무모한 놈이라는 걸 바로 알아봤지. 저런 놈은 얼마 못 가지, 암!”
흰머리의 남자가 행여나 쫓아오는 좀비에게 당하지는 않을까 싶어 황급히 옥상 출입문에 손을 뻗었다.
“용케도 왔구나! 학생 잠깐만 있어 봐!”
“부장님! 그렇게 막 문을 열면 어떻게 해요? 우리 다 죽일 작정이에요?”
배불뚝이 남자가 문을 열려는 흰머리 남자의 손목을 덥석 붙잡고 제지했다.
“과장님, 뭐 하는 거예요? 아, 저리 비켜요.”
갈색 머리 여자는 만류하는 배불뚝이 남자를 밀치고 서둘러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어두컴컴한 복도에 서 있던 앳된 학생은 뻑뻑한 출입문의 마찰음과 함께 활짝 열린 문틀을 넘어 들어오면서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 햇볕에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우, 눈부셔!”
그늘에서부터 밝은 햇살을 받으며 들어오는 남구의 모습은 찡그린 인상에도 싱그럽고 찬란하게 반짝거렸다.
어지간한 영화배우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햇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수려한 용모는 가히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세상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면 얼굴만 뜯어 먹고살아도 충분했을 것이다.
코앞에서 비주얼 쇼크를 받은 7인의 사무직원은 햇살에 파묻힌 찬연한 남구를 넋을 잃고 입을 헤 벌린 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옥상에 들어선 남구의 모습은 옆 건물에서 출발할 때와는 어딘가 사뭇 달라 보였다.
파우치가 많이 달린 회색의 얼룩무늬 방탄조끼를 입고 허리에는 권총까지 차고 있었다.
등에 멘 커다란 배낭에는 주위를 빙 둘러 모양도 제각각인 각종 도검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무게와 부피가 가장 덜 나가는 K1A 기관단총과 수렵용 석궁도 한 정씩 매여 있었다.
왼손에는 얇고 가벼워 보이지만 탄력 넘치는 철재로 만들어진 검은 색상의 심플하게 휘어진 활이 화살 한 발을 시위에 건 채 들려 있었다.
남구는 조준기와 스코프 등 활에 붙어 있던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를 모두 제거해 버렸다.
완전 무장의 남구를 넋 놓고 멍하니 바라보던 흰머리 남자가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 그, 그것들은?”
휘둥그레진 흰머리 남자의 시선이 방탄조끼에서 권총으로 또 활로 이어졌다.
옥상으로 들어선 남구의 모습을 마냥 넋 놓고 바라보던 일곱 명 모두가 착용한 장비를 보고는 별안간 동시에 놀라고 말았다.
갈색 머리 여자도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맞아요, 부장님! 마트 사람들 거잖아?”
‘며칠 동안 옥상에서 사람들 행적을 다 지켜보고 있었나 보군.’
무척 놀라 웅성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남구가 슬그머니 옥상 문을 닫았다.
끼익- 쿵-
닫힌 문과 함께 사람들의 떠들던 입도 같이 닫혔다.
남구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풋, 문도 안 열어 주려고 하더니 왜들 그렇게 떠들어요?”
흰머리의 남자가 살짝 민망해하면서도 여전히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마트 사람들 것을 학생이 왜 다 가지고 있어? 서, 설마?”
“네, 그 사람들 다 죽었어요.”
“뭐?”
“아니?”
“어머!”
“저런!”
저마다 호들갑을 떨며 놀라는 사람들에게 남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요. 아우, 배고파! 벌써 점심시간도 훌쩍 지나버렸네!”
모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만 껌뻑거렸다.
1층에서부터 옥상을 잇는 계단 구역과 3층 사무실 복도까지 싹 다 정리하고 올라오느라 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말았다.
배불뚝이 남자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밥, 밥이라니?”
“쉿! 다들 조용히! 사무실까지 가는 동선에 있는 놈들만 대강 정리했어요. 자, 어서 따라오세요.”
남구는 얼이 빠진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복도로 다시 나간 남구는 사람들이 따라오든 말든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급해진 사람들은 남구의 뒷모습과 서로를 돌아보기 바빴다.
배불뚝이 남자는 휑하니 열린 문밖을 흔들리는 눈으로 내다보며 당장에라도 좀비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흰머리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문지방을 넘으며 망설이는 직원들을 돌아다봤다.
“저 학생, 보통이 아니야! 일단 따라가 보자고.”
흰머리의 남자는 판단도 빨랐고 그에 따른 행동 역시 신속했다.
그 리더십 덕분에 사태가 터지자마자 일행이 옥상으로 서둘러 피신해 지금까지 살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갈색 머리 여자도 뒤따라 문지방을 넘었다.
“어차피 여기 더 있다가는 굶어 죽을지도 몰라요. 이건 기회예요. 가시죠, 부장님!”
“그래, 어서 가지.”
배불뚝이 남자가 복도로 진입하는 두 사람을 향해 만류하듯 손을 뻗었다.
“아, 아니!”
배불뚝이 남자는 허공만 휘젓는 무의미한 손짓과 함께 주춤거렸다.
잔뜩 긴장한 표정의 직원들이 하나둘 배불뚝이 남자를 지나쳐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배불뚝이 남자도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일행의 맨 뒤에 따라붙었다.
죽으러 가는 길인 것만 같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옥상에 혼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3층은 주로 개인 병원과 사무실이 많았다.
노래방이나 술집 같은 유흥 시설보다는 건전한 시설이 대부분인 번듯한 건물이었다.
병원과 사무실 안쪽에서는 아직도 좀비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소리가 아름아름 들려왔다.
7인의 사무직원은 남구를 따라 한 줄로 발소리를 죽여가며 흥건하게 흘러내린 핏물을 피해 천천히 이동했다.
복도 바닥에는 머리에 콩알만 한 구멍이 하나씩 뚫려 아무렇게나 나뒹군 좀비의 시체가 무더기로 널려 있었다.
사무실 문 앞에 멈춰 선 남구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어미 새의 꽁무니를 졸졸 쫓는 병아리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샜다.
남구는 무방비하게 마냥 피식거리는 표정과는 다르게 화살을 한 손 가득 무더기로 꺼내 들었다.
사무실 내부까지 모조리 정리하고 옥상으로 가려 했지만,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닫히면 자동으로 잠기는 구조였다.
돌아보는 남구를 줄지어 선 일행이 한껏 몸을 낮추어 수그린 자세로 멀뚱멀뚱 바라봤다.
남구의 시선이 가장 옆에 붙어 있는 흰머리의 남자에게 향했다.
“문 여세요.”
“안, 안에 많이 있는데?”
남구의 엉덩이에 뽀뽀라도 할 것처럼 바로 뒤에서 찰싹 달라붙어 대답하는 흰머리의 남자는 두렵고 곤욕스러운 표정을 한가득 짓고 있었다.
사무실 안에 좀비가 되어 돌아다니는 이들 모두 같은 직원이었던 터라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좋지 않았다.
남구 뒤쪽으로 줄지어 늘어서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은 자기 몸을 방어할 어떠한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좀비와 맞닥뜨린다면 저항 한번 못해보고 여지없이 당할 판이었다.
사태가 벌어지자마자 식량만 조금 챙겨 무작정 옥상으로 줄행랑을 친 듯 보였다.
물과 식량을 챙겼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들 중 통찰력과 판단력이 있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흰머리 아저씨는 꽤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사람 같은데?’
남구가 한 움큼 손아귀에 들려있는 화살 뭉치를 흔들어 보이며 흰머리의 남자에게 속삭였다.
“괜찮아요. 제가 활 좀 쏘거든요.”
저 뒤쪽에서 울먹이는 배불뚝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안 돼! 문 열면 우, 우린 다 죽을 거야!”
흰머리의 남자 역시 불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남구를 올려다보았지만 이제 와 어쩔 수 없다는 듯 출입 카드를 통제 기기에 가져다 데었다.
띠리릭-
남구는 출입 통제 장치의 효과음이 울리자마자 망설임 없이 오픈 버튼을 눌렀다.
슬라이드 출입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옆으로 밀리는 틈 사이로 화살이 연이어 빛살처럼 날아갔다.
쐐쐐쐐쐐쐐액-
전광석화같이 움직이는 남구의 손놀림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신들린 듯 연속해서 발사하는 엄청난 활 솜씨를 눈앞에서 보게 된 흰머리의 남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선이 남구에게서 활짝 열린 출입문 너머로 옮겨졌다.
흰머리의 남자는 들여다보이는 사무실 내부 광경에 저도 모르게 쩍 벌어진 입으로 헛숨을 들이켰다.
“커어억!”
좀비 다섯이 하나같이 기다란 살대에 머리가 꿰여 서서히 기울어졌다.
동시에 나머지 좀비들이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쐐쐐쐐쐐에엑-
발사되는 화살의 연사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아홉의 좀비가 끽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
벼락같이 연달아 쏘아지는 속도도 놀라웠지만, 예외 없이 머리 한가운데 명중하는 경이로운 정확도에 흰머리의 남자는 함박만 하게 벌어진 입으로 들이쉰 숨을 뱉어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강풍에 무더기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처럼 좀비 떼가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맥없이 고꾸라졌다.
그제야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있던 흰머리의 남자가 차오른 호흡을 다급하게 뿜어냈다.
“하악!”
남구가 또다시 한 무더기의 화살을 한꺼번에 뽑아 들고 사무실 내부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그에 따라 기차처럼 기다랗게 줄지어 선 사람들이 앞 사람의 꼬리를 물고 종종걸음을 치며 황급히 진입해 들어왔다.
위이잉- 쿵- 띠리릭
배불뚝이 남자를 끝으로 출입문이 닫혔다.
다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들은 대가리가 화살에 꿰뚫려 아무렇게나 나뒹군 좀비의 모습에 눈알이 빠지도록 휘둥그레 뜬 눈으로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남구만이 신속하게 각 사무실의 문을 열어젖히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탕비실의 문을 열었을 때 새로운 스킬의 등록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붉은 화살]
‘오호, 내 주력 스킬이 떴군. 며칠 안 됐지만 다시 보니 반갑구나!’
‘붉은 화살’은 ‘정신방벽’을 제외한 남구의 유일한 명품 스킬이었다.
중·단거리에서의 빠른 속사에 특화된 면모를 지닌 별 한 개짜리 궁술이었다.
‘장거리 저격에 살짝 아쉬움이 있지!’
스킬의 특성상 근거리에서의 전투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그 때문에 언제나 보조적으로 도검을 패용하고 다녔었다.
스킬 트리를 진화시켜 나가다 보면 시한폭탄처럼 붉은 기운을 심어 언제든지 시전자가 원할 때 폭발력을 발휘하는 꽤 유연한 기술을 쓸 수 있었다.
한방의 위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단점이 존재하지만 짧은 쿨타임으로 여러 번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장단점이 아주 확실한 스킬이다.
스킬의 상세한 정보를 들여다보았다.
예상대로 스킬 트리는 이미 최종 단계 바로 전까지 진화를 마친 상태였다.
‘점화까지 뚫려 있군. 역시 내가 쓰던 그 상태 그대로구나!’
남구의 시선이 활성화되지 않고 굳게 닫혀 있는 스킬 트리에 최종 궁극기로 향했다.
‘네 궁극기는 대체 뭘까? 정신방벽처럼 엄청난 것이려나?’
명품 스킬인 만큼 호기심을 채우려면 어마어마한 LP가 필요할 것이다.
과거 반평생 넘게 지옥을 전전하며 모은 LP로도 끝을 본 스킬이 없었다.
최후에 가서야 천만다행으로 간신히 정신방벽의 최종 트리를 뚫었을 뿐이었다.
그건 남구뿐만이 아니라 다 마찬가지였다.
남구의 한쪽 입꼬리가 씰룩였다.
‘후후,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좀 다르지!’
이미 천문학적인 LP를 보유한 셈인 몸뚱이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또한 현재는 LP를 진공청소기처럼 쓸어 담고 있었다.
붉은 화살의 최종 궁극기에 대한 궁금증을 뒤로하고 같은 카테고리에 새로 등록된 또 다른 스킬로 눈길을 돌렸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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