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종 친 학교는 (5)
발소리에 상당한 무게감이 있었다.
과도할 정도로.
철퍽- 철퍽- 철퍽- 철퍽-
‘기침 소리를 들은 것일까?’
좀비가 기침 소리를 들었다면 앞뒤 안 가리고 떼로 달려왔을 것이다.
단 한 사람 또는 한 마리의 발소리였다.
‘좀비는 아니야!’
게다가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는 대단히 육중한 체중으로 밟아대는 아주 느린 걸음걸이였다.
천천히 그리고 점점 가까이 매점으로 다가왔다.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남구의 시선이 은성의 눈동자를 찾아 응시했다.
발소리를 감지한 은성의 눈빛도 의문과 걱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남구는 은성의 눈을 맞추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안 그러면 나서기 좋아하는 은성의 성격상 말을 안 들을 것 같았다.
“예솔이 데리고 저 매대 뒤에 숨어 있어. 그리고 내가 나가면 문 잠가.”
덩달아 심각해진 은성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 자리 잡았지만, 지금은 질의응답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못마땅한 듯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예솔을 안아 올려 재빠르게 뒤쪽으로 숨겼다.
이어 매대 너머로 눈만 빼꼼히 내밀고는 남구를 지켜봤다.
남구는 매대에서 챙긴 고무줄로 피에 엉겨 붙은 긴 머리카락을 대충 뒤로 쓸어 넘겨 꽉 잡아맸다.
한 덩어리로 묶었으나 군데군데 흘러나와 늘어진 머리카락이 영 성가셔서 인상을 구겼다.
피에 절은 치렁치렁한 머리를 정리한 남구가 매점 유리문을 살며시 열었다.
어두컴컴한 복도 저편에 멀찍이 시선을 두고 소리 죽여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은성은 남구가 나가자 시키는 대로 유리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도 몸을 숨겼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만 빼꼼하게 내밀어 투명한 유리 너머 남구의 모습을 주시했다.
남구는 산더미를 이룬 좀비의 시체 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조경 가위를 왼손으로 다기능 목공 벨트에서 천천히 빼 들었다.
오른손으로는 회칼을 뽑아 습관적으로 서서히 손목을 돌렸다.
느리게 움직이는 회칼의 날붙이에 형광등의 불빛이 번뜩거렸다.
매점의 형광등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으로 희끄무레한 실루엣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무거운 발걸음의 주인이 시야에 확실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역시 구울이었군! 어디 안 가고 계속 학교에 짱박혀 있었던 거야?’
학교를 아니, 세상 전부를 이 지경으로 풍비박산 내버린 주범이 남구의 눈앞에 있었다.
전에는 학교에서 구울을 보지 못했었다.
‘내가 주도해서 움직이니 확실히 닥쳐오는 미래가 달라지는군. 은성이 주도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전개인데? 만약 과거에 이놈을 마주쳤더라면 은성이라고 무사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은성이 당했다면 남구를 포함한 같은 반 친구 모두가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몰랐다.
남구의 까만 눈동자가 구울의 허연 눈동자를 뚫어버릴 듯 쏘아 보았다.
‘뭔가 이상해서 와본 거니?’
구울도 앞길을 가로막은 남구를 주시했다.
퀭한 눈두덩이 안에 자리한 백태가 낀 듯 허옇게 뜬 눈깔이 흰자위를 번들거리며 남구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눈빛을 받은 남구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한기가 풀풀 날리는 남구의 싸늘한 눈동자가 분주히 구울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장대한 체격의 구울이었다.
‘2m 장신인 은성이와 비슷한가?’
늑대 인간인 라이칸이 구울화 된 경우였다.
굵은 갈고리 같은 검은색 손톱과 발톱이 멀리 떨어진 형광등 아래에서도 번쩍거리며 광채를 반사했다.
풍성했던 털은 듬성듬성 빠져 싸리비처럼 푸석거렸다.
썩어 문드러진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검붉은 진물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그르르르르.”
마치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낮은 톤의 하울링이 머리털을 쭈뼛 세웠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주둥이 사이에서 날카로운 송곳니 끝이 뾰족하게 드러나 보였다.
남구가 구울의 뒤편을 슬쩍 넘겨다봤다.
‘혼자야?’
“크아아앙!”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양 마치 응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남구를 향한 울부짖음이 휘몰아쳤다.
‘학교는 이놈 혼자 이렇게 만든 건가? 아니면 또 다른 구울이 있으려나?’
“캬아앙! 캬아앙!”
고막을 찢을 듯이 짖어대는 소리가 꽉 막힌 어두운 지하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고는 끝없는 메아리로 이어졌다.
라이칸 구울은 곧 뛰쳐나갈 듯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덕분에 몸뚱어리를 지탱하는 발끝의 갈퀴 발톱이 바닥에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만들어 냈다.
가가가각-
신경을 자극하는 마찰음에 남구의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한 번만 물려도 감염되어버리는 아주 까다로운 싸움이다.
실수가 인정되지 않는 쟁투가 될 것이다.
구울은 고통을 느끼지 않아 망설임이 없었다.
바꿔 말해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내구력이 100%라 할 수 있었다.
근접전을 하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산적했다.
‘더럽고 역겨워서 붙어 싸울 엄두가 나지 않는군. 원거리에서 끝내야겠지.’
빠르게 구울의 이곳저곳을 훑던 눈동자가 빛을 발하며 멈추었다.
작전 계획이 서자마자 망설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이마를 향해 회칼을 던져 버렸다.
“흡!”
팽그르르 돌아가는 날붙이의 반사광이 빛살처럼 날았다.
휘리리리리리릭- 퍼억-
둔탁한 소리를 내며 회칼이 꽂혔다.
“이런 젠장!”
쭉 내뻗은 손바닥 정중앙에 깊숙하게 박혀 들었다.
“크아앙!”
한껏 송곳니를 드러내며 물 찬 제비처럼 튀어나와 굵은 갈고리 손톱을 치켜들었다.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깃털 같은 몸짓에 꽤 떨어져 있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중력제어!’
라이칸 구울은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튕겨 나갔다.
꽈아앙-
쥐 죽은 듯 조용했던 공간에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중력장이 작용하는 복도 벽면에 대각선으로 처박힌 탓에 벽면을 타고 계속 미끄러지다 바닥으로 굴러내렸다.
데굴데굴 구르다가 바닥에 발톱을 박아 넣었다.
까드드득-
구울은 중력이 해제되자 꿇고 있던 무릎을 서서히 일으켜 세웠다.
남구가 지체 없이 도움닫기 하며 창을 던지듯 조경 가위를 힘껏 날렸다.
쒜애애애애애액-
먼 거리라 한참을 날아갔다.
퍼어억-
왼쪽 가슴에 깊숙하게 박혀든 조경 가위는 손잡이만 드러났다.
‘아, 역시 대가리에 안 맞네.’
곧게 뻗은 창이 아니기에 날아가던 방향이 틀어져 버렸다.
‘이거 쉽게 끝나지 않는군! 구울이 됐어도 라이칸은 라이칸인가?’
태생적으로 아주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녀서인지 회칼을 기습적으로 날렸는데도 반사신경에 막혀버렸다.
중력제어로 살짝 거리를 벌리고 조경 가윗날을 던져 이마를 뚫어버리려는 계획도 실패했다.
과다하게 적용된 중력 탓에 구부러진 가윗날로는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멀리 날아가 버렸다.
게다가 벽면에 대각선으로 부딪혀 힘이 모두 분산되어 버렸다.
‘아직 중력제어의 운용이 익숙하지 않아. 이렇게 되면 붙어 싸워야 하나? 아, 싫은데.’
“카아앙! 카아앙!”
라이칸 구울은 너무나도 멀쩡히 일어나 찢어댔다.
우연히 심장을 뚫었으나 어차피 뛰지도 않는 심장이었다.
구울이 왼쪽 가슴에는 길쭉한 조경 가위의 한쪽 날을, 손바닥에는 회칼마저 꽂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힘차게 젖히며 재차 달려들었다.
타다다다다닥-
‘아, 기습 선제공격으로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상황이 뭣같이 됐네!’
문제는 지하에 있던 좀비 떼거리가 모두 같이 뛰어온다는 것이었다.
기습에 실패한 부작용이 뼈아팠다.
끼익-
‘응?’
문이 열리는 소리에 매점으로 눈동자를 돌렸다.
은성이 죽음을 각오한 듯 비장한 얼굴로 유리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 쥔 회칼을 달려오는 것들을 향해 겨누고 임전 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맞아! 저놈은 저런 놈이었지!’
은성은 이런 상황에서 숨어 있으라 한다고 숨어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남구가 긴장으로 굳어있는 은성을 바라보며 매점에서 주워온 스포츠 장갑을 꺼내 들었다.
장갑에 손을 넣으며 나지막이 불렀다.
“은성아!”
은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스포츠 장갑을 착용한 남구가 목공 벨트에서 망치를 꺼내 은성에게 가볍게 던졌다.
은성은 깜짝 놀라 천천히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망치를 받아냈다.
그러고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남구를 바라봤다.
남구는 빨간색 스포츠 장갑을 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아이, 왜 빨간색밖에 없는 거야!”
남구의 혼잣말에 은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고 싶어 환장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남구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마치 딴 세상에 있는 듯 무던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저쪽 한 무더기 맡아. 회칼보다······.”
남구가 말하다 말고 왼손을 뻗어 중력제어를 사용했다.
남구는 지근거리까지 달려온 구울을 제자리에 멈춰 놓고 심력이 부치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은성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말을 이었다.
“···회칼보다는 망치가 더 나아! 좀비한테는.”
은성이 무기가 없는 남구를 확인하고는 눈을 치뜨며 말했다.
“너 무기가 없잖아! 뭐로 싸울 거야?”
“뭐?”
남구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은성은 확신했다.
자기가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했음을.
은성이 남구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타박했다.
“이 멍청이야! 이런 상황에서 착각하면 어떻게 해! 정신 차려!”
은성은 다시 망치를 던져 주려 했다.
하지만 남구는 은성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삐뚜름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 삐뚜름하게 비틀린 입에서는 곧 나지막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 흐흐흐, 흐흐흐흐흐흐흐흐······.”
상황에 맞지 않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의도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웃음에 은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남구가 두려움에 미쳐버린 줄 알았다.
안 그래도 공포에 질려 미쳐버린 사람을 소환된 지하실에서 한번 보았었다.
은성의 뇌리에 섬뜩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남구의 웃음은 오묘했다.
비웃는 것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박장대소를 하는 것도 아닌 것이,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하여간 듣는 사람 기분은 더러웠다.
웃음소리의 마지막은 분명한 비웃음이었다.
“···흐흐흐흐흐흐흐흐흐, 풋!”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아주 더러워지는 비웃음이 확실했지만, 은성은 왠지 모르게 긴장과 두려움에 굳어있던 몸이 풀리는 듯했다.
웃음을 멈춘 남구의 얼굴은 서리가 낀 듯 싸늘하게 돌변했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예솔이가 없잖아.”
지금은 거슬릴 게 없었다.
까만 눈동자가 순식간에 살기의 광채를 발산했다.
은성은 자기를 향하지도 않은 그 눈빛에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아가야, 나는 말이다.’
타다다다다닥-
순간 남구가 전광석화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은성은 남구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눈으로 좇을 수도 없었다.
‘놈들의 심장부까지 갔던.’
어느 순간 높이 뛰어올라 허공을 날고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란다.’
빠아아앙-
폭탄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단 옆차기가 라이칸 구울의 턱에 작렬했다.
은성의 부릅뜬 눈은 그때부터 볼 수 있었다.
발바닥에 아래턱을 얻어맞은 구울의 고개가 위로 한껏 쳐들렸다.
이빨이 맞물리며 산산이 부서져 허공에 유리 파편처럼 튀어 올랐다.
구울의 몸뚱이도 높게 떠올라 멀찍이 날아갔다.
아래턱은 아예 뜯겨나가 다른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사뿐히 바닥에 착지한 남구가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호오! 이 힘! 이게 20 스텟의 위용인가? 턱이 떨어져 나가 버리는구나!’
[태권도]
남구의 영혼에는 반 평생을 갈고 닦아 사용하던 스킬들이 선명하게 각인돼 있었다.
무의식중에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육체에서 발현하는 기술을 시스템은 부지런히 반영했다.
‘별게 다 뜨는군.’
좀비 떼가 깊숙이 파고든 남구를 향해 경쟁하듯 덤벼들었다.
“캬아악!”
착지한 남구의 바로 옆에 있던 좀비가 괴성을 지르며 덮쳐왔다.
손톱을 바짝 세운 오른손으로 남구의 얼굴을 쥐어뜯기 위해 뻗어냈다.
남구는 오른쪽 무릎을 살짝 굽히며 중심을 기울여 좀비의 손아귀를 왼쪽 귀 옆으로 흘려 버렸다.
쓱-
동시에 남구의 왼 주먹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좀비의 옆머리로 날아들었다.
오버 핸드 훅 크로스 카운터가 좀비의 뻗은 팔을 크게 타고넘어 관자놀이에 꽂혔다.
빡-
큰 호선을 그린 카운터 훅, 일명 쓱빡에 관자놀이가 깨져 나가며 허공에 뇌수를 뿌렸다.
[복싱]
‘아 놔! 이거 스킬 창 더러워지겠네.’
선작, 추천은 작가의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답니다. 볼만 하셨다면 꾹~ 눌러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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