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안과 밖 (2)
“씨발! 죽어!”
타앙-
총성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죽기는 매한가지.
결국 총기를 가진 사람들은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한 발의 총성이 일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출발 신호라도 되는 듯 너도나도 앞다투어 총을 쏴댔다.
탕- 탕- 타앙-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막장으로 치달았다.
드문드문 일어나던 총성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타앙- 타다당- 타다다당
타다다다당-
쌩쌩 날아다니는 탄환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장약의 폭발음과 함께 좀비 떼가 픽픽 쓰러져 나갔다.
벌집이 된 주검이 바닥에 수두룩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머리를 정확하게 맞출 수는 없는 일.
날아든 총탄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기어코 이빨을 박아 넣는 좀비에 총기를 떨구고 쓰러지는 광경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총알이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탄이 떨어진 소총을 거꾸로 부여잡고 휘두르며 악을 써댔다.
그러고는 곧 떼로 덮쳐져 나뒹굴었다.
총기를 소지한 이가 그리 많은 수도 아니었고 그마저도 본인 앞가림하기 급급했다.
자신이 쏜 총성 탓에 좀비를 왕창 불러들였지만 다른 사람까지 방어해 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총이 없는 대부분은 소지한 어쭙잖은 무기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무리 휘둘러 보아도 전력을 다해 달려드는 좀비의 머리에 맞추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뿐더러 설령 맞춘다고 해도 머리뼈를 부수는 결정타를 입히지 못해 곧바로 덮쳐졌다.
아직 신체 능력에 LP를 투자하지 못한 일반인이 식칼과 망치, 골프채, 야구 방망이 정도로 탁 트인 대로에서 자신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무작정 돌진해 들어오는 좀비를 상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건장한 남자라 할지라도 한두 번의 공격으로는 단단한 머리뼈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좀비는 얻어맞은 대가리에서 피를 뿌리며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기어이 물어뜯었다.
보이지도 않던 좀비들이 어디선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수없이 밀려들었다.
많은 수의 좀비가 총탄에 뇌수를 흩날리며 짚단처럼 쓰러졌으나 단지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코앞으로 닥쳐온 좀비를 겨누다가 옆에서 덮쳐졌고 옆에서 들이친 좀비의 대가리에 탄환을 박아 넣었지만, 뒤에서 들러붙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가 갑자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발목을 물어뜯었다.
꽈득- 꽈드득-
삽시간에 들러붙는 좀비에게 이곳저곳을 물어뜯긴 사람들이 버둥대다 깔려 버렸다.
“으아악!”
“이런, 제기랄! 크흐윽!”
“엄마! 아악, 아파!”
“으흑! 사, 살려줘!”
팔다리에 좀비를 대롱대롱 매달고는 허우적거리던 남자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마트 안쪽을 쏘아 보았다.
왈칵 피를 토하며 자기들만 살겠다고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마트 안에 사람들에게 울부짖듯 저주를 퍼부었다.
“악! 이 개새끼들아! 너흰 얼마나 잘 사나 내 죽어서도 지켜볼 거야! 아아악!”
털썩-
악을 쓰며 버텼지만 결국은 꼬꾸라졌다.
좀비 떼가 몸부림치는 몸짓 위로 산을 이뤘다.
움직임이 멈추자 악착같이 덮쳐들던 좀비 떼가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삐걱삐걱 움직임이 일었다.
생전의 다짐처럼 허옇게 치뜬 눈동자로 마트의 출입구를 노려보았다.
벌써 몇몇 좀비는 마트의 벌어진 문틈 사이로 손을 욱여넣으며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캬아아아악!”
찢어질 듯 벌어진 입에서 괴성과 함께 붉게 물든 끈끈한 타액이 줄기줄기 튀어 나갔다.
유리면에 쩍쩍 들러붙어 꾸물꾸물 흘러내렸다.
문짝이 부서져라 이마와 몸통으로 쾅쾅 들이받았다.
박박 긁어 대는 손톱에 어서 오라시라는 친절한 글귀의 시트지가 갈기갈기 떨어져 나갔다.
마트 안에 있던 사람들도 대경실색하여 난리가 벌어진 건 밖의 사람들과 똑같았다.
“막아! 밀어내!”
누군가의 고함이 넓은 마트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바깥에서 전신을 훤히 들어내 놓고 있던 사람들은 총을 든 극소수만이 남아 있었다.
죽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맞서 보았지만, 엄폐물이 부족한 탁 트인 대로에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좀비가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들이치는 현장의 한가운데서 이성을 잃은 사람들은 몸을 숨길 곳은 고사하고 견제할 방패막이조차도 찾지 못하고 엉엉 울부짖으며 도망치다 그대로 덮쳐졌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도 살길을 모색한 매우 운 좋은 한두 명만이 도로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던 차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쾅쾅거리는 소음 앞에 온몸을 떨어댔다.
총을 쏘아대며 간신히 연명하던 자들은 대항을 포기하고 주춤주춤 물러나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마트 진입도 물 건너간 지 오래였다.
들어가려는 사람들 못지않게 안에 있던 사람들도 필사적이었다.
마트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마트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마트 안에 있던 사람들도 입구가 뚫리면 죽게 된다고 여겼다.
마트 안에서 필사적으로 문을 막고 있던 사람들은 처참한 떼죽음의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시시각각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두려움은 더욱더 배가 됐다.
밖에 있던 몇몇은 손에 든 소총도 내팽개치고 무작정 등을 돌려 어디론가 달음박질쳤다.
뿔뿔이 흩어지는 것 말고는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으로써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발판 삼아 죽어라 뛰어 이곳을 벗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물어뜯기는 사이 정신없이 내달렸다.
마트 입구에서 떼로 몰려있던 인파가 썰물처럼 쓸려나가자 반쯤 열린 문틈으로 좀비 떼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출입구의 문틈에는 이미 좀비의 팔다리가 무수히 끼어 있었다.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출입구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좀비들은 거침없이 몸을 날렸다.
“미, 밀어내! 어서!”
“으으윽, 지금 밀고 있잖아!”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다 쌍둥이의 벌목도에 대가리가 쪼개진 좀비가 여럿 되었다.
후우우웅- 뻐걱-
쌍둥이들이 널찍한 벌목도를 문틈으로 들이민 좀비의 대가리에 정신없이 휘둘렀다.
장작 한번 패본 적 없었기에 복작거리는 입구에서 빗맞는 경우가 허다했다.
머리뼈를 한칼에 쪼개 버리기에는 아무리 건장한 쌍둥이들이라지만 경험도 힘도 달렸다.
게다가 한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온 힘을 쥐어짜 끊임없이 찍어 내렸다.
“좀 죽어라, 이 더러운 새끼들아!”
뻑- 뻑- 뻑- 뻑걱-
“캬악!”
정수리가 쩍 벌어진 좀비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털썩-
쪼그려 앉은 사람들이 문틈 사이에 끼인 좀비의 시신을 밀어내거나 잡아당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누군가 정수리가 쪼개져 널브러진 좀비의 시체를 문틈에서 잡아당기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가 미는 거야? 이쪽으로 당기라고!”
쪼그려 앉아 사력을 다해 시체를 당기던 또 다른 누군가가 문짝을 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문 좀 살짝 열어 봐! 시체가 안 빠져!”
“그게 마음대로 돼? 그러다 완전히 열려버린다고.”
“아 좀! 열어야 시체를 빼내지!”
“지금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거야! 한번 힘 빼면 밀려 버릴지도 몰라!”
손발이 맞지 않아 문틈에 낀 시체들을 빼내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좀비도 사람도 출입구에 떼로 몰려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는 사이 배불뚝이 변 과장이 총구를 문틈으로 겨눴다.
그 모습에 쌍둥이 중 한 명이 소스라치게 놀라 고함을 질렀다.
“야! 미쳤어? 그만둬!”
고함에 깜짝 놀란 변 과장이 치켜뜬 눈으로 노려보며 지지 않고 소리쳤다.
“대가리 깨지도 못하잖아! 문은 닫아야 할 것 아니야!”
“총 쏜다고 문이 닫혀? 동네방네 좀비들 다 부를 거야? 대가리가 빠가야?”
“이 어린 노무 새끼가! 니 대가리부터 날려 줄까?”
“뭐야? 이런 올챙이 같은 새끼가!”
일촉즉발의 순간에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문틈에 끼인 좀비가 밀어내는 손을 덥석 물어버렸다.
물린 사람이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저, 저 사람 좀비한테 물렸어.”
“아, 아니야! 그냥 긁힌 거야!”
푸욱-
어디선가 날아 온 식칼이 손을 물린 사람의 복부를 다짜고짜 파고들었다.
“허억!”
깊숙이 찔린 배를 틀어막고 새우처럼 웅크렸다.
“그, 그냥 놔두면 안 돼!”
“머리, 머리를 깨부숴!”
빠악-
누군가의 망치가 배를 부여잡고 웅크린 사람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털썩-
한 방에 찍소리도 못하고 바닥으로 뻗어 버렸다.
손을 물린 사람은 자신의 배를 찌른 사람과 뒤통수를 때린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
“확실히 깨졌어?”
“모, 몰라!”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 반말이 오갔다.
다들 누굴 존중해 줄 경황이 없었다.
“저리 비켜봐!”
누군가 사람들을 밀치고 뒤통수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사람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망치를 높게 치켜들었다.
인상을 왕창 찌푸리며 연속으로 사정없이 찍어 내렸다.
빡- 빡- 빠각- 빠가각- 빠자자작-
머리가 완전히 뭉개지자 그제야 쳐든 망치를 내렸다.
“후유, 화, 확실히 깨부쉈어.”
“수, 수고했어······요.”
“뭐 해? 어서 막아!”
손을 물린 사람이 순식간에 제거되었다.
정말 손을 물렸는지 아닌지 아무도 확인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목을 당한다면 바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진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만 아니면 되었다.
정신없이 급박한 상황에 일단 위험 요소는 최대한 제거하고 봐야 했다.
모든 남자가 출입구에 다닥다닥 붙어서 좀비와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는 중 남구는 혼자서만 동떨어져 있었다.
심지어 좀비들이 몰려드는 출입구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먼발치에 시선을 두고 활만 만지작거렸다.
‘역시 빠르군. 광채를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여기까지 찾아 왔구나! 저게 몇 마리지?’
끝이 뾰족한 꼬리를 치켜세우고 촉수처럼 하늘하늘 흔들어 댔다.
털도 없이 두꺼운 거죽으로 둘러싸인 기다란 몸체를 기다란 네 개의 다리로 떠받치고 걸음걸음마다 어깨를 꿀렁거렸다.
마실이라도 나온 듯 어슬렁어슬렁 여유롭게 걸으며 모여들고 있었다.
유독 길쭉한 앞다리에 돋아난 날카로운 갈고리발톱이 날 선 소음을 발생시키며 아스팔트와 마찰을 일으켰다.
소름 끼치게 희번덕거리는 큼지막한 눈동자가 주변을 살피느라 뒤룩뒤룩 굴러다녔다.
그 새 어디서 무엇을 잡아먹었는지 하나 같이 주둥이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떼로 몰려 있는 좀비 근방에 크리처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탐색하듯 좀비 떼의 외곽에서 왔다 갔다 어슬렁거렸다.
너무나 한가로워 산책이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가장 덩치가 큰 우두머리가 적당한 자리에 배를 깔고 엎드리자 다른 개체들도 그 주변으로 서서히 이동 했다.
마트에서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크리처의 속도를 고려한다면 한달음에 덮쳐질 만한 거리였다.
사방에 헤아릴 수 없이 주검이 깔려 있었지만 크리처는 이미 생명 에너지가 날아가 버린 시체 따위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크리처도 어떤 먹잇감이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좀비 역시 크리처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좀비는 오직 인간에게만 집착하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열 마리라······.’
크리처는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하나의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습성을 가졌다.
단독 생활하며 혼자 다니는 개체도 간혹 있기는 있었다.
우두머리의 역량에 따라 무리의 수는 천차만별이었지만, 대게 대여섯 마리씩 소규모 무리를 이루었다.
10마리나 대동하고 다니는 우두머리는 드물었다.
저런 크리처 무리가 각지에 걸쳐 무더기로 소환됐을 것이다.
과거에도 은성이 이끄는 그룹에 막대한 피해를 안긴 놈들이었다.
‘지하터널에서 만났던 놈들이 생각나는군.’
떠오르는 기억에 절로 미간이 꿈틀거렸다.
생명의 핵을 찾아 헤매던 지하터널에서 마주한 개체보다는 훨씬 작았다.
지금 보이는 크리처들은 얼추 늑대나 대형 개의 크기와 비슷했다.
날렵한 몸매의 길이가 1m에서 1m 50cm 정도 되어 보였다.
‘저놈들도 진화를 거듭하면 그때 그놈들처럼 거대해질 테지.’
특히 5m가 넘어가는 무지막지하게 장대한 우두머리 크리처가 생각나 남구의 꿈틀거리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그 우두머리 한 마리한테 선발대가 전멸당했었다.
“허억! 저, 저저저, 저것들은 또 뭐야?”
박 부장이 멀찍이서 기다란 꼬리를 흐느적흐느적 휘적이며 어슬렁거리는 크리처 무리를 발견하고 휘둥그레 부릅뜬 눈으로 경기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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